소설리스트

73화. (73/250)

73화.

“엄마!”

“응?”

“저기 봐. 저기!”

한 여인이 아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다 들리도록 소리쳤다.

“돼지야. 돼지!!!”

응? 돼지…?

여인의 시선이 멈춘 곳. 거기엔 톰슨이 목까지 잔뜩 시뻘게진 채 고갤 푹 숙이고 있었다.

붉으락푸르락하던 톰슨의 얼굴에서 핏발 선 안광이 쏘아지며 여인을 마주 봤다.

뻐끔뻐끔.

소리가 새어 나오진 않았지만, 뻐끔거리는 톰슨의 입술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애 입단속 좀 시키쇼!!!!’

여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려던 그때. 뒤이어 걸어오는 길드원들로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졌다.

“…풉.”

“…!!!”

핏발서든 톰슨의 눈가에 서서히 눈물이 맺혔다.

“시바… 적당히 좀 처먹을걸….”

비단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것은 톰슨만이 아니었다.

모든 길드원이, 심지어 대장인 케인마저 차마 고갤 들지 못하고, 시선을 내내 바닥을 향해 내리깔고 있었다.

‘가지가지들 한다….’

그 모습에 펑크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경 쓰이던 것은….

한 사람이 펑크를 보더니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도살장에 끌고 가는 목장 주인 모습이구만.”

무심코 들려온 그 말에 펑크는 얼굴을 구겼다.

‘왜 나까지 창피를 당해야 하냐고!’

저마다 눈물을 삼키는 사이.

조롱과 멸시 속을 헤치고 수레는 어느덧 성문 앞에 도달했다.

이든이 손을 들어 행렬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마치 예정된 것처럼 자연스레 이든 옆에 선 케인.

이든이 내린 말 위로 케인이 올라탔다.

“고생 많았네.”

“별말씀을요.”

대장 교체.

펑크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가지가지 한다….’

기가 찬단 얼굴을 하던 펑크를 향해 케인이 멋쩍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니요…. 하하하… 그럴 수도 있지요.”

아니, 이럴 순 없어….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나기라도 한 걸까.

웃던 펑크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으며 억지로 웃고 있는 것.

케인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크, 크흠….”

케인이 무안한 얼굴로 헛기침을 연발하다 다시 길드원들을 향해 쩌렁쩌렁 외쳤다.

“추, 출발!!!”

선두의 말들이 움직이고 곧이어 수레와 길드원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런 케인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뒤따라오던 펑크 길드장의 눈에 일순 스산한 눈빛이 일렁였던 것을.

‘이 정도로 볼품없는 놈들이야. 실력이 어떨지 뻔하지…. 일을 처리하는 데 아무런 문제는 없겠군. 후후….’

“아 진짜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시바…. 읍읍!”

톰슨이 와락 소리 지르자, 옆에 있던 로즈가 그의 입을 대뜸 틀어막았다.

단번에 집중된 이목.

로즈가 주변을 살피며 미안한 얼굴을 하다가 그의 등허리를 세게 내리쳤다.

퍼억!

“미쳤냐. 너!?”

로즈의 말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톰슨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던 로즈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곤 옆에 내던지다시피 했다.

“아니 시발. 그래도 밥은 제대로 줘야 할 거 아냐. 이게 뭐냐고…!”

톰슨이 신경질적으로 가리킨 곳.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엔 식판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식판 위에 참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음식들.

육포와 마른 빵이었다.

…너무하긴 하네.

로즈가 힐끔 그쪽으로 눈을 돌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역시 할 말이 많은 듯한 얼굴이었다.

표정만 보면 목구멍까지 욕이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길드원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웬 소란들이야?”

그때, 먼발치에서 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톰슨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는 황급히 달려온 것.

케인은 둘러앉아 울분을 삭이던 길드원들 옆에 섰다.

톰슨이 억울한 듯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대장. 아무리 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

“호송으로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할 용병들이 이게 뭡니까. 이게!!!”

“…….”

톰슨이 육포 하나를 쥐곤 거칠게 흔들어 댔다.

말라비틀어진 육포가, 흔들어 대는데도 꼿꼿이 서 있었다.

그 요지부동인 육포의 모습에….

그리고 돌덩이같이 가지런히 놓인 마른 빵 모습에 케인도 차마 할 말이 없는 듯한 얼굴이다.

그러게. 진짜 너무하긴 하네.

케인이 고갤 돌리곤 먼 산을 바라봤다.

“…크흠. 그, 그래도 굶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하하….”

“대장….”

케인의 말 같지도 않은 말에 톰슨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찌나 딱딱한지. 씹는데 이빨이 아파서 도무지 먹질 못하겠습니다. 아니, 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은 아껴야 한다고 하고. 하다못해 적셔 먹을 스튜라도 주든가…!”

“하아….”

톰슨의 한탄에 케인이 절로 한숨을 내뱉었다.

하긴 모든 것을 중립적으로 보고 판단해야 할 위치인 그가 봐도 이건 너무하긴 했다.

이것들은 허기를 때우는 용도이지, 배를 채울 음식은 아니다.

식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다간 호송도 하기 전에 굶어 죽을 판….

순간, 케인이 눈을 빛냈다.

“…살 뺀다고 생각하자. 다들.”

“…….”

“…….”

아, 예….

하하. 그것참 옳으신 말씀이네요…. 톰슨의 얼굴이 일순 와락 구겨졌다.

“그 뭔 개소…! 읍읍!”

이 뭔 개소리냐, 가 입 밖으로 모두 채 내뱉어지기 전 로즈가 다시 황급히 톰슨의 주둥이를 가로막았다. 강제 단식에 톰슨 못지않게 신경질적인 로즈의 얼굴이 차츰 굳어졌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장. 아무래도 펑크 길드장님께 얘길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후우. 그렇지 않아도 내 진즉에 얘길 꺼냈네.”

“뭐래요. 그 사람이?”

케인이 난감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경험이 적어서 음식이 그리 많이 필요할지 몰랐다는군.”

“하…!”

모두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뱉었다.

훌쩍. 힝. 훌쩍.

응…?

이건 또 뭔 소리야.

케인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갔다.

거기엔….

길드원 중 가장 막내라 할 수 있던 리아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물론 이든도 막내긴 하지만, 걘 오히려 듬직한 장남 느낌이지….

아무튼, 리아를 보던 케인의 얼굴은 순식간에 당혹스러워졌다.

케인이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물었다.

“리, 리아… 괘, 괜찮은가. 왜, 왜 울고 있는 거야…?”

“대장님….”

“으, 응… 말해 보게.”

“이빨이… 너무 아파요….”

“…….”

아….

우리 리아.

약관도 안 되었는데, 벌써 틀니를….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케인이 고갤 휘휘 저었다.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그의 얼굴이 차츰 굳었다.

“자네들 말이 맞아.”

“……?”

“이대론 안 되겠어.”

그러곤 어디론가 황급히 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그런 케인의 등 뒤를 바라보던 앙휄이 혀를 찼다.

“하아… 우리 대장님 괜찮으려나.”

“응, 뭐가?”

신경질적으로 육포를 뜯던 로즈가 앙휄이 무심코 꺼낸 한마디에 고갤 갸웃거렸다.

앙휄이 어깰 으쓱이곤 입을 뗐다.

“우리 대장님 보기보다 마음 약하신데, 펑크란 사람한테 이것저것 따질 수 있겠느냐 이 말이야….”

“하긴….”

대장이란 자리가 본래 그런 자리다. 단지 선봉에서 팀원들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내부에 문제점도 지적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그것이 대장인 그의 역할이었다.

그때, 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로즈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근데… 이든은 어디 갔지?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그러게.”

길드원들이 사방을 둘러봤지만, 이든의 모습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딜 간 걸까?

***

걷는 내내 케인의 시선이 연신 주변을 살폈다.

살피던 케인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뭐지…?’

펑크 상단의 무사들.

처음 만났을 때도 음침한 것이 기분 나빴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우걱… 우걱….

육포를 뜯는 무사들의 눈이 어째 산 사람 같지가 않은 느낌이다.

하나같이들 생기가 없는 얼굴들.

지급된 저녁에 불만도 없는지 무미건조한 얼굴로 잘만 씹어 댔다.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닌데….’

정신 나간 놈들과 눈 마주쳐 봤자 싸움밖에 더 나겠는가.

케인이 시선을 옮겨 동행하는 일꾼들과 마부들을 향했다.

그들 역시 유니콘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이 형편 없는 저녁에 퍽 실망한 얼굴들이다.

…아니, 실망만 하면 다행일까.

“할아버지… 저 배고파요.”

상단의 무사들과 유니콘 길드원들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도 적은 양.

마부인 할아버지를 따라나선 손자가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자신이 먹을 분량까지 손자에게 내줬건만, 그럼에도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

손자의 투정에 노인이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꾼들까지 먹을 게 턱없이 부족해…. 이건 도무지 정상이 아니야.’

아무리 상단행 경험이 적다지만, 초짜도 아니고.

음식은 여유분이 생기더라도 넉넉히 챙겨야 한다는 상식을 모른다는 것은 도무지가 말이 되질 않는다.

이러다간 캐슬롯 영지에 도착하기도 전, 아니 몬스터와 채 싸우기도 전에 굶어 죽을 판이었다.

우중충한 분위기에 사람들을 지나쳐 케인이 홀로 시간을 보내던 펑크 길드장 옆으로 다가갔다.

케인의 기척에 펑크 길드장이 힐끔 그를 바라보았다.

“케인 대장, 무슨 일이오?”

같은 길드도 아니고,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하대하는 말투가 참으로 가관이었지만 케인에게 그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케인이 한숨을 한번 내뱉곤 본론을 꺼냈다.

“길드장님. 이대로는 정상적인 호송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 그게 무슨 말이오?”

“길드원들의 불만이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펑크가 얼굴을 구겼다. 또 그 소리냐는 게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 다 쓰여 있었다.

“내 말했잖소. 경험이 미약해서 식량을 많이 챙기지 못했다고 말이오.”

“…예. 그러셨지요.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케인이 고갤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펑크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눈을 따라갔다.

“호송은 힘든 일입니다. 몬스터나 산적들의 습격이 그날 없었다고 해도, 매사 경계를 해야 하기에 정신적 소모가 큰 편입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짐꾼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짐을 옮기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공포를 극복하고 시간을 버텨 내는 것 또한 체력 소모가 큰 법입니다.”

케인의 정중한 말에도 펑크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었다.

펑크가 한기 돋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지금이라도 돌아갑시다.”

“뭐, 뭐요!?”

펑크가 당황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그 모습에 모두의 이목이 그들을 향했다.

펑크가 난감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빌어먹을!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리 초강수를 두는 거야?’

펑크가 당황하는 것이 당연했다.

펑크의 목적은 물건을 이송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윗선의 위대한 계획을 방해하는 유니콘 길드의 힘을 천천히 갉아먹는 것. 그리고 그 첫 제물이 칼스테인 영지 지부였다.

높은 분들께서 하시는 계획마다 우연찮게도 이곳 지부의 용병들이 개입해 있던 것.

그리고 칼스테인 영지를 시작으로 각 남은 여섯 지부를 도륙하고 마지막으로 수도의 유니콘 본부를 노린다. 이것 위선의 큰 그림이었다.

그런데….

펑크의 시선이 다시금 케인을 향했다. 흔들리지 않는 그의 눈빛.

단지 허풍이 아니라, 진짜 이대로라면 철수하겠다는 뜻이 비쳤다.

하지만 그 역시 이대로 물러설 수만은 없었다.

“케인 대장.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말씀하십시오.”

“아시다시피 칼스테인 영지와 캐슬롯 영지는 그 거리가 매우 짧소. 해 봤자 일주일도 안 될 거리에 뭣 하러 무리해서 식량을 축낸단 말이오?”

“…….”

“게다가 우린 창설된 지 얼마 안 된 상단입니다. 우리라고 이런 육포나, 마른 빵 같은 것을 뜯고 싶겠소!? 내 이번 일이 끝나면 길드원분들께 그간 노고에 제대로 보상해 줄 터이니 조금만 더 참고 힘냅시다. 예?”

지랄.

펑크의 눈에 일순 스산한 빛이 스쳤다.

‘식량이 없는 것은 돈을 아끼기 위함이 아니다. 너희들의 힘을 최대한 빼놓기 위해서지. 크흐흐….’

펑크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케인의 입장에선 이게 또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긴 그도 사정이 안 되니 식량이 이 정도로밖에 준비하지 못한 것이겠지. 게다가 끝나면 보수도 넉넉히 준다 했으니… 응?

뭔가 말이 앞뒤가 안 맞는데.

식량 살 돈은 없고, 보수를 추가로 줄 돈은 있나?

케인이 멍한 표정으로 머릴 굴리던 그때였다.

“지랄하고 있네.”

어디선가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펑크의 눈에 일순 핏발이 서는 듯했다.

“뭐…? 지랄…!?”

익숙한 음성.

케인이 허탈한 얼굴을 했다.

‘아… 이든…! 또 자네인가.’

케인과 펑크의 핏발 선 눈이 향한 곳.

거기엔 이든이 무언가를 들쳐 메고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꾸에에에에엑!!!”

응…?

근데 이건 또 웬 돼지 멱따는 소리래?

“지랄하고 있네. 이 돼지 새끼가! 닥쳐, 인마!”

퍽! 퍽! 퍽!

꾸에…엑.

이든이 들쳐 메고 있던 멧돼지를 남은 한 손으로 인정사정없이 안면을 내리쳤다.

어찌나 손이 매웠으면 멧돼지가 주먹 몇 대 맞더니 바로 기절을 했을까.

그때, 이든이 허허실실 웃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놈이 자꾸 멱따는 소리를 해 대서. 물론 잡아먹긴 할거지만.”

어딨나 했더니. 돼지 잡고 있었구나.

응?

돼지…? 그건 또 어디서 났대?

케인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