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250)

74화.

쿵!

이든이 들쳐 메고 있던 멧돼지를 내던지다시피 거칠게 내려놓았다.

케인의 눈이 그 돼지를 향했다.

비단 케인뿐인가. 펑크도, 길드원들 모두의 시선이 그 식량… 아니, 돼지에 날아가 꽂혔다.

케인이 여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든, 이게 대체 뭔가…?”

이든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긴요, 식량이지요.”

“…식량?”

이든이 등허리를 연신 툭툭 쳐 대며 대답했다.

“검 쓰고 힘쓰는 사람들이 육포랑 마른 빵만 먹고 어찌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짐꾼들.”

펑크와 케인의 눈이 짐꾼들을 향했다.

“저 골골대는 목소리가 안 들리십니까.”

안 들리긴.

너무 잘 들려서 문제였지.

“저게 다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 겁니다.”

“…….”

뿌득.

펑크는 이를 악물었다.

이든의 얘기가 마치 자신을 대놓고 책잡는 듯이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고 무어라 대꾸할 순 없었다.

굶겨서라도 유니콘 길드원의 힘을 빼놓기 위한 사전의 노림수이긴 했지만, 어쨌든 여기서 성을 내 봤자 자신의 꼴만 우스워질 뿐이었다.

펑크가 화를 삭이는 사이.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어서들 고기 드실 준비나 하십시오. 불도 좀 세게 피워 놓고.”

“…어, 어어. 그래….”

참 이상하단 말이지.

일전 호송 때만 해도 마치 뭔가 득도한 것처럼 다른 사람 같았는데.

왠지 전보다 더 괴팍해진 것 같지?

그때.

스릉.

이든이 손질을 하려는 듯, 검을 빼내어 들었다.

이든의 흑색 검.

돼지 손질에 쓰이는 그의 검이 마치 슬피 우는 것 같은 것은 착각일까.

어디선가 대장장이 윌턴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지만, 이든이 애써 무시하고 잡아 온 돼지를 손질하려던 그 순간.

우다다다다!!!

톰슨이 달려왔다. 광적이다시피 돌아 버린 그의 눈동자가, 먹이를 눈앞에 둔 들짐승과 피차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이, 이든…!”

“네.”

“이 귀여운 녀석!!!!”

톰슨이 다짜고짜 이든을 와락 끌어안는가… 싶더니 잡아 온 돼지를 끌어안는다.

“아아… 요 예쁜 것.”

“…….”

뭔가 자신보다 잡아 온 짐승이 사랑받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톰슨이 자길 안는다 생각하니 그것대로 질색인 이든이었다.

하긴 내내 육포나 마른 빵같이 음식 같지도 않은 것으로 배를 채우다 눈앞에 돼지 한 마리가 떡하니 있는데,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이든이 마저 잡아 온 돼지를 손질하려던 그때.

톰슨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어허! 어찌 귀인께서 직접 돼지 손질을 하려 하시는가. 그대는 좀 쉬시오!”

“…허허.”

굶주림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일자무식의 사람도 이토록 군자로 만들지 않던가.

슥슥슥.

이든이 비켜서고, 톰슨이 단도를 꺼내 들고는 번개와 같은 놀림으로 돼지를 손질해 댔다.

일각이 조금 넘었을까.

“끝났습니다. 어서들 먹을 준비들 하라고!!!”

와, 칼질 속도 봐라. 벌써 끝났다고?

감탄한 이든이 혀를 내둘렀다.

그 커다란 돼지가 벌써 손질이 끝나 있었다.

손질하는 놀림만 보면 신검합일에 이르렀다 해도 손색이 없다.

그때, 톰슨의 외침과 동시에 누군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우다다다.

마법사 리아였다.

리아 역시 톰슨과 다름없이 반쯤 미쳐 있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불은 마법사인 리아가 태웠다.

“플레임. 더 크게 플레임. 왕창왕창 플레임!!!! 꺄하하하하!”

“…….”

푸화아아아아악!

타닥타닥.

어찌나 배가 고팠으면 대마법사 수준이라 봐도 무방할 만큼 모닥불에서 저리 큰 불길이 치솟을 수가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돼지, 아니 식량은 손질되기 무섭게 강하게 타오른 화로 위에 올려졌다.

리아의 화력은 굉장했다.

올려지기 무섭게 저 큰 돼지가 익어 가고 있으니까.

“…와, 금방 익는다. 헤헤헤….”

“…그러게요. 호호호….”

케인이 경악 어린 눈으로 둘을 바라봤다.

익는 게 아니라 타는 거 같은데…?

“흐흐흐… 자, 어서 익어라….”

불 세기 좀 약하게 하라고 한마디 거들려던 그때, 톰슨의 입가 가장자리로 뚝뚝 떨어지는 침을 보고 있자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잡아 온 돼지를 손질하고 익히는 데까지 걸린 시간.

반의반 시진도 안 되었다.

원성 자자한 부실하기 짝이 없던 저녁 식사는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맹수들의 포식으로 변해 있었다.

“할아버지….”

“응?”

“…저거 우리도 먹으면 안 돼요…?”

“그, 그러게….”

손자와 함께 상행을 나섰던 노인의 눈이 노릇하게 잘 구워진 돼지를 향했다.

여기 있는 짐꾼들을 포함해서 모두가 같이 나눠 먹어도 부족함 없을 엄청난 크기의 돼지.

그런데….

섣불리 다가가기가 어렵다.

그 주변에 둘러앉아 게걸스럽게 돼지를 분해하는 용병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우걱우걱.

돼지가 돼지를 먹는다….

아닌가.

아무튼 먹는 모습이 전투적이기 그지없다.

눈빛이 흡사 전투의 돌입한 광전사들을 방불케 하지 않는가.

그러니 어느 누구도 섣불리 곁에 다가가 고기 한 점 뜯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 옆에… 어떻게 다가가….’

한 점 달라고 했다간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데….

노인이 절레절레 고갤 저었다.

“아, 아가… 그러지 말고 여기 육포나 먹자꾸나….”

“히잉….”

글썽거리는 손자의 눈을 보고 있자니 노인의 착잡한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노인이 옆에 손자를 어르고 달래던 그때.

툭.

그들의 식판 위로 큼지막한 고깃덩이가 올려졌다.

손자와 노인 두 사람이 먹고도 남을 충분한 양.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노인과 아이의 시선을 위로 향했다.

착 감긴 눈에 수려한 외모가 참으로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배 많이 고팠지?”

“…….”

“밥을 시원찮게 먹어서 매가리가 없나. 왜 대답이 없어?”

얼마나 어리둥절했으면 먹고 싶어 하던 고기가 눈앞에 떡하니 있음에도 정작 손을 대질 못한다.

씨익.

이든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 비로소 옆에 있던 노인이 퍼뜩 정신을 차리곤 손자를 다그쳤다.

“카벨, 형한테 감사하다고 어서 말씀드려야지!”

“…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쑥스러움이 많은 듯한 아이인가 보다.

이든의 큼지막한 손이 아이의 머릴 마구 헝클어 댔다.

“어르신께서도 눈치 보지 마시고, 부족하시면 마음껏 뜯어다 드십시오.”

“아, 아아… 고, 고맙소….”

그때, 이든이 고갤 돌려 짐꾼들이 있던 곳을 향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외쳤다.

“자자, 다들 가만히 있지들 마시고, 어서들 와서 고기 한 점 뜯으세요. 그래야 내일 힘내서 또 일들 할 거 아닙니까!”

“어….”

“크, 크흠!”

“그, 그럴까?”

결국, 이든의 한마디에 눈치만 보던 짐꾼들이 하나둘씩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이 일순 이채를 띠며 고기를 향했다.

굶주리며 눈치만 보던 하이에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고, 돼지는 삽시간에 부피가 줄어 가기 시작했다.

쩝쩝쩝! 우걱우걱!

***

‘이상하단 말이지….’

케인이 묘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바로 펑크 상단의 무사들이 둘러앉은 곳이었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

일관된 표정.

말 한마디 새어 나오지 않는 정적의 무리들. 뭐랄까. 마치 하나같이들… 죽은 사람 같달까.

게다가….

‘묘해….’

케인은 연신 힐끗거리며 그들의 체내 마나를 훑었다.

‘미약하게나마 마나는 있다. 그런데….’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마나는 마나인데, 마치 무언가에 오염된 듯한 느낌이었다.

마나라는 것이 맑은 물이라면,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나는 흙탕물의 것과 같았다.

‘처음 느껴 보는 기운인데….’

케인의 시선을 느낀 걸까.

펑크 상단 무사 한 명의 눈이 일순 케인을 향해 느리게 움직였다.

느리지만 정확히.

그가 케인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

흠칫!

일순 소름이 온몸을 더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뒤, 시선을 마주쳤던 케인이 저도 모르게 그의 눈을 피해 고갤 돌렸다.

시선을 회피한 케인의 모습에 그의 눈도 다시 본래의 자리였던 허공으로 가라앉는다.

이질적인 기운을 닮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떼어지자 케인이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자릴 뜨기 전.

힐끗.

케인의 시선이 찰나 그들을 훑고는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식사가 끝나고 모두 잠이 들었을 무렵.

케인이 미처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환하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응시하고 있다.

“…….”

그 이후로 케인의 얼굴은 내내 불편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문득 세상모르고 자는 길드원들을 보고 있자니 유독 자신만 유난 떠는 것인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후우… 기분 탓이면 좋겠군.”

케인이 낮게 한숨을 내쉬곤 침낭에 몸을 누이려던 그때였다.

저벅.

“응…!?”

들려오는 발소리에 케인의 손이 본능적으로 근처 바로 옆에 놔두었던 검을 향했다.

말 못 할 불안감에 예민해진 탓에 저도 모르게 나온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휴… 자네인가.”

케인의 시선이 발소리의 주인으로 향하더니 이내 안심하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안 주무시고 뭐 하십니까. 대장님.”

“그러는 이든, 자네야말로 지금까지 자지 않고.”

이든이 씩 웃었다.

“어떻게 맘 편히 자겠습니까. 공기가 살벌하다 못해 더러울 지경인데.”

이든의 말에 케인이 표정을 굳혔다.

“자네도 눈치챘나?”

“호송 첫날부터 계속이요.”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군.”

케인의 눈이 힐끔 펑크 상단 무사들이 모여 있던 곳을 향했다.

유달리 저들이 모여 있는 곳만 어둡고 퀴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랫동안 쳐다보기도 역겨운, 음산한 분위기.

케인이 다시 이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뭐, 아직 저들이 엉뚱한 짓을 한 것은 아니니까요. 일단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당연한 것이었다. 단지 의심만으로 저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도무지 그것이 쉽지 않다.

케인의 동물적인 본능이 저들이 위험하다고 계속 그를 다그치지 있었다.

그런 케인의 기분에 공감한 걸까.

이든이 마저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응?”

“설마 제가 당하고만 있도록 놔두겠습니까. 저 아시죠?”

“…….”

알다마다. 아주 잘 알지.

이든의 한마디는 사고 한번 칠 수도 있다는 선전 포고와 같았다.

하지만 왜일까.

내내 불편한 기색을 비치던 케인의 얼굴이 어쩐지 짐을 덜어 낸 듯 한껏 밝아졌다.

케인이 입을 열었다.

“그거 알고 있나?”

“……?”

“자네 같은 친구가 우리 동료라서 참으로 다행이야.”

“그렇습니까.”

“자네와 같은 광견이 적이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해. 암. 그렇고말고.”

이든이 인상을 팍 썼다.

“광견…이요?”

“…으, 응? 아아, 신경 쓰지 말게! 말이 그렇단 걸세. 말이.”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짐을 덜어 낸 케인은 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케인과 달리 이든은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케인이 느꼈던 이질적인 기운.

이든 역시 느꼈다.

왠지 익숙하다 싶었는데, 그게 뭔지 떠오른 것이다.

‘그래. 마치 레온하르트 영지에서 미쳐 날뛰던 몬스터들과 같다.’

당시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보여 주던 몬스터들.

저들과는 상반된 모습이지만, 이든의 날카로운 기감은 둘 사이의 미묘한 공통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도 그렇고, 저들 역시 그렇다. 도무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아. 마치 반은 죽어 있는 듯한….’

마치… 반혼시처럼.

‘잠깐. 반혼시…?’

머릿속에 순간 벼락이 치는 듯했다. 골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 이든의 표정이 시시각각 급변했다.

그의 기감이 곧바로 펑크의 무사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기감으로 한참을 살피던 이든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같다.”

무엇이?

무엇이 같다는 말일까.

평소 그답지 않게 급변하며 다채로운 표정을 보이던 그의 얼굴이 평소의 그 모습처럼 서서히 가라앉는다.

무미건조한 얼굴에서 달랑 입만 움직이는 듯, 유령 같은 표정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마기(魔氣)와.”

그래.

몬스터들의 광기.

그리고 저들이 보이는 음침함과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죽은 듯한 모습.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된 힘이 느껴졌다.

마기와 같은 힘. 하지만….

이든이 고갤 저었다.

‘완전히 같다고 볼 순 없지.’

이곳에 신교가 들어설 일은 단연코 없을 테니까.

‘그럼… 대체 마기와 흡사한 저 기운의 정체는 뭘까.’

이든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새벽이 밝도록 그는 쉬이 잠이 들지 못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