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날이 밝기 무섭게 캐슬롯 영지로 다시 길을 나서는 펑크 상단.
그리고 그들을 호송하는 용병들의 눈에 긴장의 빛이 서렸다.
호송을 나선 지 이틀째 되는 날.
이제 서로 친해질 때도 됐건만, 어째선지 펑크 상단과 유니콘 길드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덕분에 사이에 낀 짐꾼들만 죽을 맛이었다.
덜거덕거리며 느리게 움직이는 수레 옆을 걷던 톰슨이 반대편에서 걷고 있던 펑크 상단 무사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거진 노려보는 듯한 기세로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톰슨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어쩐지 첫인상부터 개 같다더니.”
“쉿.”
로즈가 인상을 썼다.
그녀 역시 찝찝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케인 역시 ‘주의’만 줬을 뿐 ‘경계’까지 하라 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물론 톰슨의 기분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이 저들에게 들려서 좋을 것은 없었다.
“어쩌지…?”
톰슨이 묻자, 로즈가 정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시치미 뚝 떼며 목소릴 낮췄다.
“일단 평소처럼 하자고.”
“만약 저 새끼들이 우리 뒤에서 칼 놓으려 하면?”
로즈가 이를 갈았다.
언뜻 스산해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에 바짝 선 날이 비치는 것만 같다.
“그땐. 다 족쳐 버려야지.”
***
다행이라 해야 할까.
펑크 상단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힐끗.
케인의 눈이 옆에 나란히 말을 타며 걷던 펑크 길드장을 향했다.
상단의 무사들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썩 기분 좋은 첫인상은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음침하고 음흉한 느낌마저 드는 모습.
“…….”
호송을 나선 뒤로,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는다.
벅벅.
케인이 신경질적으로 머릴 긁적였다.
‘기분 탓이었나.’
저놈의 상단 무사도 그렇고, 펑크 길드장이라는 양반도 그렇고.
사실 겉으로 드러내는 분위기만 기분 나쁠 뿐이지. 그들이 무슨 짓을 꾸미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심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걸린다.’
무엇이?
이든의 말이.
단지 자신의 추측만으로 끝났다면 의심을 훌훌 털어 버렸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길드원들에게 주의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이든이.
그 이든마저도 이상하다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가라앉은 서늘한 정적 속에서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무거웠던 분위기. 하염없이 느렸던 시간이 지나고 야영을 칠 시간이 다가오자 내내 긴장했던 케인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케인이 펑크 길드장에게 말을 꺼냈다.
“해가 지고 있으니, 야영을 치시죠.”
“…그러시죠.”
“모두 야영 준비를 한다!!!”
케인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이 저마다 한숨을 내뱉었다.
살얼음판 같던 분위기 속에서 비로소 한시름 놨다고 생각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스락.
응?
사람들을 진두지휘하던 케인이 불현듯 풀숲에서 들린 기척에 고갤 돌렸다.
희번덕.
이윽고, 기척이 들린 곳 풀숲에서 짐승의 안광이 보였다.
케인이 식겁한 얼굴로 사방에 소리쳤다.
“전투 준비!!!!”
케인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야영을 준비하던 용병들의 손이 일순 멈추고, 일제히 무기로 향했다.
촤라라락!
전투를 준비하는 용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케인의 눈이 향한 곳을 따라갔다.
크르르….
짐승이라 생각했던 것이 점차 크기를 불리며 다가오는 듯했다.
가히 황소만 하다 볼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거대 늑대들.
짐승의 수준을 벗어난 이 몬스터들을 바라보던 톰슨이 절로 욕을 내뱉었다.
“시발, 재수 없게도 검은 늑대들이라니…!”
검은 늑대.
세간엔 저 짐승형 몬스터들을 가리켜 검은 늑대라 불렀다.
단지 색깔만 검은색이라고 저리 불리지 않는다. 저 황소만 한 크기와 검을 갈기를 가진 늑대들만을 가리켜 검은 늑대라 부른다.
그리고 그런 검은 늑대가 상징하는 의미. 바로 ‘죽음’이었다.
해서 용병들에게 있어 놈들은 단순히 위험도를 떠나 불길한 징조였기에 톰슨이 저리도 질색을 하는 것이다. 그때, 케인이 고갤 돌려 길드원들에게 급히 명을 하달했다.
“길드장님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
케인이 일순 말끝을 흐렸다.
어느새 펑크 상단의 무사들이 펑크 길드장의 주변을 에워싸는 것 아닌가.
“허….”
헛바람이 절로 나왔다.
보통 상단의 물건이나 짐꾼을 지킬 정도는 남겨 두고 길드장을 지키려 들기 마련인데, 상단 무사 전체가 길드장 보호를 우선시했다.
마치 짐과 짐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스윽.
그때, 검은 늑대들의 안광이 짐꾼들을 향했다.
놈들은 영리한 편이다.
강하고 위험하지만,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무식하게 싸우는 타입도 아니다. 오직 ‘사냥’을 전제로만 움직이는 철저한 사냥꾼들이기에 위험하다 판단되는 것에 대해선 철저하게 무시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검은 늑대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짐꾼들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나약해 보이는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는 늑대들.
무리 지어서 이동하는 것들이 단숨에 산개하여 정해 둔 먹잇감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용병들이 저마다 헛바람을 삼켰다. 순식간에 용병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은 검은 늑대들이, 마차에 있던 한 노인과 꼬마를 향해 뛰어든 것이다.
“아, 아아…!!!”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용병들이 미처 손을 쓸 틈이라곤 없었다.
모두가 참혹한 광경을 예상하곤 눈을 질끈 감던 그 순간.
쐐애애애액! 퍼버벅!
후두둑.
검은 늑대 댓 마리의 몸뚱이가 달려들던 모습 그대로 허공에서 폭발하며 사방에 살점과 피가 비산했다.
갑작스런 동료의 죽음에 늑대들이 흠칫 놀라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놈들의 안광이 한 사람을 향했다.
눈이 착 감겨 있는 한 사람.
맹인이다.
영특하기로서는 손에 꼽히는 이 짐승들이, 가장 우선순위로 뒀어야 할 먹잇감에 본능적으로 지레 겁부터 먹는다.
놈들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저놈이 가장 위험한 놈이라고.’
후우우웅.
그때, 어디선가 날아와 그의 몸 주위를 뱅그르르 도는 흑색 검.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의 곁을 호위하듯 허공을 유영하니, 그 신묘한 광경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
탈마(脫魔), 혹은 입신(入神)이 부르는 경지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직 온전히 과거의 경지에 이르렀다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부족하다 여길 것도 없다.
흑색 검의 호위를 받으며 검은 늑대를 향해, 이든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가갔다.
“…저녁거리가 제 발로 기어 들어왔군…. 흐흐흐.”
으, 응?
뭐라고?
이든의 말을 듣던 사람들이 저마다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연신 고갤 갸웃거렸다.
물론 사실을 확인하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든이 마치 흑색 검에게 말을 걸듯 중얼거렸다.
“노인과 아이를 지키도록.”
마치 대답하듯 그의 몸을 한 바퀴 유영하던 흑색 검이 곧바로 노인과 짐꾼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콰앙!
땅을 콱 밟은 이든의 신형이 쏜살같이 남은 늑대들을 향해 쏘아졌다.
휘릭.
팍. 퍼억. 콰아아앙! 퍼억 쿵!
남은 늑대의 수는 네 마리.
그리고.
찰나의 순간. 정확히 네 번의 타격음이 모두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짝짝.
이든이 손을 털었다.
그의 주변엔 어느새 정신을 잃은 늑대들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
어느 정도 피해를 예상했건만…
다른 사람은 뭐, 한 것도 없이 너무 쉽게 일이 해결된 탓에 무기를 뽑아 들던 길드원들은 저마다 멋쩍은 얼굴을 했다.
“크, 크흠….”
“끝났네?”
“그러게…?”
멋쩍은 얼굴로 무기를 도로 집어넣는 길드원들과 이든의 신위를 보고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짐꾼들.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위기가 일단락되었건만, 어째선지 펑크 길드장의 안색은 검은 늑대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보다 좋아 보이지 않았다.
‘뭐, 뭐야…. 방금…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거지?’
펑크의 뇌리에 이든의 신위가 강하게 남은 것.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건가…?’
검이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이고 순식간에 저 검은 늑대들을 비명횡사시켰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늑대가 보여 주던 뜀박질은 우습게 보일 만큼, 쏜살같이 달려들던 맹인의 사내가 잠깐 사이에 늑대들을 말 그대로 때려잡았다.
아무리 짐승에 가깝다지만 놈들은 엄연히 몬스터로 분류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무기도 없이 인간이 맨손으로 저것들을 때려잡았다는 게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펑크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생각보다 힘들 수도 있겠다.’
무엇이?
‘이들을 처리하는 것이.’
그리고 미치도록 두렵다.
‘저자의 무위가.’
물론 저들이 계획대로 움직여 준다면야 별다른 힘을 안 쓰고도 제압이 가능하겠지만, 만에 하나 저들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펑크의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무감정한 펑크의 눈에 일순 서슬 퍼런 살기가 쏘아졌다.
맹인의 사내. 이든을 향해서.
이든이 뚱한 표정을 했다.
“정말 안 드십니까?”
끄덕.
“…나 참. 알겠습니다.”
이든이 앞에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를 한 점 뜯었다.
“아! 맛 좋다!!!”
이든의 그 한마디에 용병들의 시선이 재차 육포와 마른 빵에서 그 고기로 향했다.
‘아… 먹을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야 당연하지.
저건….
‘검은 늑대니까.’
검은 늑대가 무엇인가.
무려 죽음의 상징이다.
죽음!!!
근데 그 죽음의 상징을 아무렇지도 않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놈이 있다.
바로 이든이었다.
꿀꺽.
노릇하게 잘 익은 냄새가 침이 절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침을 삼켰던 길드원들이 저마다 자신의 볼을 한 대 내리쳤다.
짝!
‘저건 먹는 게 아냐!’
비록 당장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기라 하더라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상징을 어찌 아가리로 쑤셔 넣는단….
우걱우걱.
아 거 새끼, 참 잘 먹는다.
그때, 한참을 고기 뜯는 데 열중하던 이든의 곁으로 한 기척이 다가왔다. 이든의 손이 덜컥 멈추었다.
“저기….”
기척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든 덕분에 구사일생한 꼬마였다.
꼬마가 쭈뼛거리던 그때, 이든이 씩 웃으며 한 손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쳐 댔다.
“옆에 앉거라.”
“…헤!”
아이가 헤벌쭉 웃으며 앉았고, 이든이 고기 한 점을 크게 뜯어 아이에게 건넸다.
“먹어 봐.”
“…….”
아이가 불안한 눈으로 이든이 건넨 고기를 마냥 바라보다 이내 결심한 듯 크게 한 점 물었다.
우걱우걱.
모두의 시선이 아이를 향했다.
기나긴 정적 끝, 고기를 씹어 댄 아이가 헤벌쭉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와! 맛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우아아아아아!!!
굶주렸던 짐승처럼 길드원과 짐꾼들이 일제히 달려들어선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해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검은 늑대건, 죽음의 상징이건 알 게 뭐냐!
어차피 배 속에 들어가는 이상 다 같은 고깃덩어리인 것을!!!
그렇게 숲속 한가운데서 벌어진 고기 잔치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모든 이가 깊게 잠든 늦은 새벽.
침낭에서 몸을 일으킨 한 인형이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우거진 풀숲을 헤치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숲속을 걷던 인형은 무언가를 찾는 듯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푸드덕!
그 인형의 곁으로 까마귀가 날아와 어깨에 앉는다.
그런데 왠지 까마귀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까마귀였다
인형은 종이에 무언가를 써 갈기더니 이내 까마귀에 발에 단단히 묶어 고정시켰다.
“전해 주거라.”
끄덕.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듯 인형의 말에 고갤 끄덕이던 까마귀가 푸드덕 날갯짓하며 저 멀리 사라져 갔다.
멀어져 가는 까마귀를 한참이나 응시하던 인형은 누가 볼세라 두리번거리며 왔던 침낭 쪽으로 재차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잠시 뒤. 사라져 가는 인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누군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음을.
그리고.
저 하늘 위를 비상하던 까마귀가 잠시 뒤, 땅으로 곤두박질쳤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