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250)

77화.

“이제 곧 국경에 도착합니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펑크 길드장님.”

“…제가 고생한 게 뭐 있겠습니까. 저보단 유니콘 길드원분들께서 고생들 하셨지요.”

펑크 길드장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삼켰다.

국경에 다다랐다는 것이 곧 본인들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도 모르는 저 우매한 이들을 마음껏 비웃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

잠깐의 실수로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됐다.

씰룩거리는 입술을 참으며 한참을 걷다 보니, 상단은 어느새 국경을 넘어서고 있었다.

선두에 서서 가장 먼저 국경을 넘었던 펑크의 눈에 언뜻 이채가 희번덕댄 것은 기분 탓일까.

‘이제 곧 있으면 캐슬롯 영지에서 보낸 사람들이 마중을 나오겠지.’

그리고 그때가….

‘네놈들의 제삿날이다. 흐흐….’

굳게 다물려 있던 펑크의 입이 재차 씰룩이더니 결국엔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이놈들을 처리하면 곧바로 칼스테인 지부를 노린다. 무력으로라도 제압해서 최종적으로는….’

펑크의 머릿속에 칼스테인 지부의 비서장 이리아가 아른거렸다.

‘이리아, 그녀를 함락시킨다. 후후후후….’

헤벌쭉 웃는 펑크의 입가에 굵은 침 한 줄기가 쭈욱 늘어나며 떨어졌다. 그 모습에 케인이 물었다.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죠?”

‘아뿔싸!’

케인의 물음에 펑크가 황급히 표정을 고쳤다. 펑크가 연신 헛기침을 해 댔다.

“크, 크흠! 하하. 그리 신경 쓰실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그보다 이제 정말 도착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발뺌하며 화제를 돌리던 펑크를 향한 케인의 눈빛에 일순 한기가 비친 것은 기분 탓일까.

하지만 찰나 보였던 그 눈빛은 급변하며 정면을 향했다.

케인이 입을 열었다.

“검문소에 도착했습니다.”

검문소에 도착한 펑크는 내내 의아한 표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뭐지…?’

아니, 진짜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펑크의 당혹스러워하는 눈이 연신 주변을 훑었다.

휙휙.

주변을 훑는 그의 눈동자가 멈출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다야?’

펑크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엔 검문소 보초병들이 있었다. 그리고 펑크 길드장을 의식하는 보초병들.

그들 역시 사전에 얘기를 끝낸 이들이라는 뜻이다.

근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고?

펑크가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시발!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지!’

이틀 전 보냈던 서신에는 분명 영지에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죄다 이곳에 끌어모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근데 달랑 보초만 여섯?

미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펑크의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하고 있을 때, 보초병들은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잠시 검문 좀 있겠습니다.”

“아, 아아… 그, 그러시오.”

얼버무리는 펑크의 말에 보초병들이 고갤 갸웃거리더니 덩달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했다.

펑크 상단과 캐슬롯 영지. 이 둘은 진즉에 서로 말을 맞춘 상황이었다.

한데 길드장이란 작자가 저리 허둥지둥해 대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전에 얘기를 들었던 보초병들 입장에서도 꽤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침 뚝 뗀 병사들이 옆에 케인 대장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느 상단과 어느 용병단 소속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펑크 상단과 유니콘 길드입니다.”

“운송 물품은 여기 있는 수레가 다입니까?”

“그렇소.”

케인과 대화를 나누던 병사의 눈에 일순 이채가 띈 것은 왜일까.

“그럼 보다 확실한 검문을 위해서 직접 확인 좀 하겠습니다.”

“뭐, 그러시오.”

케인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곤 수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펑크 역시 생각을 정리한 듯 한결 편한 얼굴이었다.

‘그래. 캐슬롯 영주도 뭔가 생각이 있는 것이겠지….’

아무 생각 없이 달랑 보초병만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저 성문 뒤에 수십에 기사들과 수백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다.

그런 펑크의 마음을 알기는 할까.

병사들이 수레 위로 올라가 연신 속을 뒤적거렸다.

“…….”

이제 곧.

펑크의 눈이 서슬 퍼런 살기로 점차 새파래지며 눈을 빛낼 무렵.

이제 곧….

뒤적뒤적.

이제 진짜 곧….

뒤적뒤적뒤적….

이제 진짜… 아니, 시발. 뭐지?

수레 안을 뒤지던 병사도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없는데…?”

‘없긴 뭐가 없어. 이 새끼야! 의심받게 말 그따위로 할래!?!?’

…근데 뭐? 없, 없어?

살기로 새파랗던 펑크의 눈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당황한 것은 다른 수레를 뒤지던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레에서 나온 나머지 병사들 저마다 어깨를 으쓱였다.

‘없다.’

병사들은 저마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황한 펑크가 급히 기억을 되짚었다.

‘이,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내가 설마 이걸 수레 한쪽에 몰아 숨겼던가…!?’

아니, 그럴 리가.

펑크는 저도 모르게 고갤 휘휘 저었다.

‘그런 짓을 했으면 내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지. 분명 저들이 제대로 찾지 못한 거야…!’

그때, 펑크의 눈과 병사들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병사가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그, 그럼… 남은 수레도 마저 확인하겠소.”

“그, 그러시오.”

잘못 돌아가는 상황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펑크가 여전히 정리가 안 된 머리를 부여잡던 그때, 남은 수레를 살피던 병사들이 밖으로 나왔다.

“아, 아무것도 없네…요?”

“…….”

허, 허허….

병사의 말을 듣던 펑크의 눈에 핏발이 섰다.

‘아까부터 저 새끼 말하는 것 좀!!! 누가 데려온 거야. 저 새끼…!!!’

펑크가 목구멍까지 욕이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던 와중에 상황을 수습하려던 병사가 머릴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요, 요즘 거래 금지 품목이 자주 유통돼서…. 그…. 혹시 모르니 훈련견을 데려와 한 번 더 살펴도 되겠습니까…?”

슬쩍.

병사의 눈이 펑크를 향했다.

‘하아… 어느 검문소가 저리 사정사정 부탁하며 검사를 한다고….’

펑크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그러시오…. 한시가 급하니 최대한 빨리 좀….”

“예…! 자자, 어서들 움직이자고.”

병사들이 황급히 걸음을 옮기는 사이, 케인이 펑크의 곁으로 다가왔다.

“일이 지연되는군요.”

“그, 그러게 말입니다. 뭐… 병사들이라고 저러고 싶어서 일일이 확인하겠습니까. 다 건강한 경제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하하하….”

펑크가 어색하게 웃자, 케인도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건강한 경제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기다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하하. 이거, 이거 케인 대장님이 다시 보이는군요?”

“그렇습니까? 하하하!”

그래. 웃자 웃어. 하하하하하!!!

뭣하면 그냥 때려잡으면 돼!

하하하… 빌어먹을.

펑크가 속으로 쓴웃음을 삼키는 사이, 병사들이 훈련견들을 데려오고 있었다.

“킁킁킁.”

거래 금지 품목에 포함되는 물건 냄새에 격하게 반응하는 이 훈련견들은 실제로 수년 전부터 이로 골머릴 썩이던 캐슬롯 영지에서 훈련을 시켜 온 개들이었다.

뭐, 원래는 이 훈련견들까지 꺼낼 계획은 없었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쩌겠는가.

수레 근처에 도착한 훈련견들이 연신 주변을 킁킁거리더니 일순 격하게 짖어 대기 시작했다.

“왈왈!!! 컹컹!!! 왈왈!!!”

있다.

있어…!

‘그럼 그렇지! 없을 리가 없지…!!!’

내심 속으로 환호하며 쾌재를 부르던 펑크의 안색이 점차… 흙빛으로 물들었다.

연신 짖어 대던 개들이 목줄을 잡고 있던 병사들을 끌고 가다시피 하며 펑크 길드장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뭐, 뭐야. 이 개새끼들이 왜 나한테 오는 거야…?’

“왈왈왈왈왈!!!!”

“이, 이 개새끼들이 왜 길드장님한테 짖어 대지? 하하….”

병사들이 허둥대며 훈련견의 목줄을 잡아끌던 그때.

한 병사가 그만 손에 쥔 목줄을 놓치고 말았다.

“엇!!! 이런!!!”

줄이 풀리기 무섭게 훈련견이 펑크 길드장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으헉!!!!”

원체 쏜살같이 달려든 터라 펑크의 무사들이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달려들던 훈련견이 그의 외투와 말 안장에 걸려 있던 가방을 미친 듯이 물어뜯어 댔다.

“으르르르르…!!! 와그작와그작.”

“아, 아니. 이 새끼들이 뭘 잘못 처먹었나. 오늘따라 왜 이래!?!?”

목줄을 놓쳤던 병사가 펑크에게 달려들었던 훈련견을 재차 잡아끌려던 그때.

푸스스스….

훈련견이 물어뜯던 외투와 가방에서 하얀색 가루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왈왈왈왈!!! 크르르르, 왈왈왈!!!!!!!!!”

쏟아지는 가루에 훈련견들의 반응이 더욱 격해지고.

쏟아지던 가루만큼이나 펑크의 안색 역시 새하얗게 질렸다.

“뭐, 뭐야…!? 이, 이게 왜 여기서 나와…!?!?”

너무 당황했던 탓일까.

펑크가 마약의 존재를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말실수를 해 댔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상행을 떠나기 전, 미리 수레에 감춰 두었던 이 마약이 어째서 자신에게서 나오는지가 더 중요했다.

병사들마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떨어지는 가루를 살피던 케인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펑크 길드장님, 이게 대체 어쩐 일입니까.”

“예…?”

“저희에겐 이것에 관해 한마디 말도 없으셨지 않았습니까. 이런 게 있는 줄 알았다면 애초에 펑크 상단과 계약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크.

연기 좋고.

유니콘 길드원과 짐꾼들이 저마다 케인의 열연에 감탄하는 사이.

펑크는 떠듬거리며 양손을 휘휘 저었다.

“다, 다들 오해요…! 난 이걸 따로 챙긴 적이 없소…!!! 정말이오!!! 그렇지 않은가!?”

펑크가 마치 확인시켜 주겠다는 듯, 짐꾼들을 향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저희도 몰랐던 일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길드장님….”

자신을 향한 불신 어린 짐꾼들의 시선에 펑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이 새끼들이 갑자기 왜 이래…!?’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본래 계획은 다 같이 수감되어 자신과 상단 무사들만 슬쩍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거짓이긴 했지만, 이 때문에 사전에 짐꾼들에게 미리 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들이 대뜸 펑크에게 등을 돌렸다.

펑크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해 댔다.

‘뭐, 뭐지…? 설마 저 짐꾼 녀석들이… 내가 저들을 책임지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아차린 건가…!?’

펑크가 고갤 저었다.

‘그럴 리가…! 저놈들은 한 푼이 급한 놈들이다. 도중에 날 배신할 리가…!’

미리 입을 맞췄던 병사들조차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어찌하질 못하고 눈치만 보던 그때.

비로소 펑크의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가설.

‘정보가 샜다.’

미리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모든 상황의 화살표가 자신을 향해 있다.

이것은 짐꾼들과 유니콘 길드원들이 사전에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미 꼬일 대로 꼬여 버린 상황.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저들을 힘으로 제압해야 한다…!’

펑크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휙휙.

‘가능할까.’

저 이든이라는 놈이 걸리긴 했지만, 불가능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캐슬롯 영주가 서신을 받았다면 필시 저 성안에 지원병이 주둔하고 있으리라.

일순 펑크 길드장의 눈빛에 흉흉한 기세가 일었다.

생각을 마친 펑크의 입이 무섭게 떨어졌다.

“쳐라.”

스릉.

행동은 빨랐다.

펑크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단의 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칼을 뽑고 달려든 것이다.

파아아아앗!!!!

그때.

쐐애애애액!!!

어디선가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쏘아 낸 화살 같던 그 섬뜩한 쇳소리는 유니콘 길드원에게 달려들던 펑크 상단의 무사들을 향했다.

펑크의 시선이 찰나 유니콘 길드원의 맹인을 향했다.

씨익.

그 맹인. 이든이 펑크를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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