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250)

80화.

딱.

마치 목탁을 두드리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성안에 울렸다.

“윽!”

‘윽’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캐슬롯이 자신의 머릴 감싸 안았다.

혹 위에 혹이….

푸르딩딩한 멍과 혹으로 떡칠을 한 그의 얼굴은 어느새 그 크기가 배로는 불어난 듯 보였다.

캐슬롯이 눈물을 삼키며 혹을 감싸던 그때, 이든이 쥐고 있던 검집을 위로 확 치켜들었다.

“스읍! 이 새끼가. 손들고 서 있으라 했더니, 어디서 농땡이를 피우려고.”

“노, 농땡이가 아니고요. 너무 아파서….”

“눈 안 보인다고 생각하고 손 내리기만 해 봐. 아주 정성스럽게 매타작 한 번 더 해 줄 테니까.”

“…헙!”

이든의 말에 캐슬롯이 헛바람을 삼키곤 재차 두 손을 위로 바짝 치켜세웠다.

‘미안하다. 나의 기사들이여…흑….’

눈물이 글썽이는 캐슬롯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기사들과 병사들이 캐슬롯과 비슷한 처지로 바닥에 머릴 박고 있었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해야 할 그들이 단체 기합을 받고 있는 모습은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캐슬롯을 옆에 둔 이든이 의자에 다릴 꼬고 앉아 있었다.

이든이 검집으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윗선에 대해서 모른다 이거지. 언데드 무사에 관해서도 일절 들은 것이 없고. 그리고 펑크 상단하곤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 단지 그의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다?”

캐슬롯이 애써 밝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예, 예…! 그렇습니다. 하하….”

“아! 그랬구나. 이거 하마터면 내가 생사람을 잡을 뻔했군?”

“하하하… 그럴 수도 있죠.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확 씨!”

이든이 웃음을 뚝 멈추곤 검집을 위로 홱 치켜들었다.

캐슬롯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이 새끼가 누굴 호구로 아나!”

“저, 정말 모릅니다…!”

“몰라? 모올라?”

“모른다구요!!!”

“이 새끼가!!!”

따악!

“꿱!”

이든의 검집이 재차 캐슬롯의 머릴 후려갈겼다.

조금 전, 올라왔던 혹 위에 새 혹이 뽈록 자라났다.

“모른다는 새끼가 엉? 윗선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엉? 말과 행동이 안 맞잖아. 이 새끼야!”

따악따악딱!!!

대가리! 대가리! 대가리!

“꿱꿲꿲!!!”

이든이 연달아 휘두른 검집에 캐슬롯이 결국엔 입에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부르르르… 부르르….

혼이 쏙 빠져나간 채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캐슬롯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의지엔 추호도 변함이 없었다.

‘미쳤다고 그걸 알려 줘?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못 알려 줘…!’

당장이야 얻어맞고 끝나겠지만,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발설하는 순간, 캐슬롯 가문은 영영 끝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무리하면서까지 정예병들을 끌어모아 유니콘 길드의 뒤를 치려 했던 이유가 뭔가.

가문의 숨통을 쥔 윗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캐슬롯이 이를 악물었다.

‘참는다. 무조건 참는다… 그리고… 다시 비상하리….’

“아, 맞다! 펑크한테 물어볼까?”

‘응…?’

뒤로 회까닥 넘어갔던 캐슬롯의 동공이 제자리 돌아오더니 요동치며 흔들렸다.

“…네?”

“아, 그렇네! 펑크가 있었지!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화색을 띠며 웃고 있는 이든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캐슬롯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하하… 망했다. 비상은 얼어 죽을….’

그사이, 이든이 휘적휘적 걸어가 머릴 박고 있던 기사 한 명을 발로 툭툭 쳐 댔다.

“야.”

“……?”

“이 새끼 행동 봐라. 야, 기상!”

“예, 옙!!!”

몸을 벌떡 일으킨 기사의 시선이, 이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따라 향했다.

이든의 엄지가 향한 곳. 다름 아닌 펑크 길드장이 누워 있는 곳이었다.

“가서 펑크 데려와.”

“예, 옙! 알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가는 기사의 등 뒤를 향해 이든이 나직이 말을 씹어 댔다.

“혹여 도망가면 진짜 뒤진다.”

“안 도망갑니다!!!”

핏대 세우며 외치던 기사가 속으로 쓰디쓴 눈물을 삼켰다.

내가 미쳤다고 도망을 가겠냐…!

기사의 반응은 당연했다.

지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기 조금 전, 수십에 달하는 기사와 병사들을 때려눕힌 이든의 신위를 떠올리면 도망 같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발 빠르게 달려갔던 기사가 다시 돌아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저, 저기….”

쭈뼛쭈뼛하며 홀로 걸어오는 기사의 기척에 이든이 인상을 썼다.

“뭐야. 왜 혼자 와?”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혼자 온 것은 어찌 또 귀신같이 알아맞히는지….

혀를 내두를 만한 반응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다녀온 기사가 쭈뼛거리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도망… 쳤는데요?”

“…뭐?”

이든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캐슬롯을 향해 고갤 돌렸다.

“야, 도망갔다는데?”

캐슬롯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이이 배신자 새끼….’

펑크가 왔으면 꼼짝없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발설해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홀로 내뺀 그를 생각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던 그때, 이든이 그를 향해 씩 웃었다.

“어쩌지? 도망갔는데? 아무래도 너랑 나 단둘이서 해결을 봐야 할 거 같다. 그치?”

‘악마 같은 새끼…!!!’

캐슬롯이 기겁한 얼굴로 몸을 뒤로 슬금슬금 내뺐지만,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본격적인 매타작을 시작하기 전, 몸을 풀 듯 이든이 검집을 붕붕 돌리며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내기 하나 하자.”

“…예, 예?”

“네 입이 무거운지, 아니면 내 몽둥이가 무거운지. 재밌겠지?”

아, 아뇨. 하나도 재미없을 것 같은….

빠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캐슬롯의 단말마의 비명이 재차 울린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훌쩍! 훌쩍…!

눈물, 콧물 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끄으으응….”

“으으으… 대장님. 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습니다.”

“조, 조용해! 저 악마 녀석이 들으면 어쩌려고. 대가리에 집중해…!”

“시끄럽다!”

‘시, 시발…!’

속으로는 욕이 골백번은 나왔을 것이다.

한 시진 넘는 시간 동안 머릴 박고 있었으니, 하늘이 노랗게 보일 지경이었지만, 누구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흐트러뜨릴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였다.

훌쩍! 흑!

기를 쓰며 요지부동인 자세로 머릴 박고 있던 기사들의 눈이 힐끗 캐슬롯을 향했다.

이든이 검으로 어깰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윗선에서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언데드 병사들을 내줬다?”

“예… 훌쩍!”

“확 씨! 사내새끼가 거슬리게 훌쩍거리고 지랄이야. 아까부터! 그 정도로 안 뒤져, 이 새끼야!”

캐슬롯이 멍한 눈으로 이든을 바라봤다.

‘저기요? 방금 저 죽다 살아났는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윗선이 누군데?”

“그, 그게 흑마법을 사용하는 비밀 단체라는 것밖에….”

“비이밀 단체!? 비이이미일!?”

따악!!!!

아… 맑디맑은 청아한 소리여.

이든의 검집이 번개같이 쏘아지며 캐슬롯의 머리에 부딪혔다.

이든이 와락 표정을 구겼다.

“야, 이 새끼야! 너 아는 게 뭐야! 아까랑 다를 게 없잖아!”

“끄으으으으윽….”

머릴 감싸고 데굴데굴 구르던 캐슬롯이 질질 짜며 떼를 써 댔다.

“하, 한 번도 그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것을 어찌합니까!!!”

“이 새끼가 어디서 큰 소릴…!”

문득 뭔가 떠오른 것일까.

씩씩거리며 화를 주체 못 하던 이든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황실 사람이냐?”

무미건조한 얼굴에서 내뱉어지는 차디찬 음성에 캐슬롯이 얼굴이 핼쑥해졌다.

“저, 저기… 그러니까. 그것이….”

말을 얼버무리는 순간, 이든은 그의 심력의 변화가 있음을 잡아챘다. 비로소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떠올린 것을 천천히 읊었다.

“역시 황실의 사람도 있는 것이군. 그것도 아주 높은 직위에…. 그러니 자네가 그것에 대해 입 뻥긋 못 하는 것이 아닌가?”

“……!”

생각을 들킨 캐슬롯의 표정이 점차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덜덜….

캐슬롯의 전신이 바르르 떨렸다.

이든이 매질을 하기 위해 다가왔을 때보다 훨씬 더 격한 반응이었다. 그때, 이든이 일전의 일을 떠올렸다.

레스타드 길드장 피습 사건 때, 직접 처리했던 캐슬롯 후작과의 전투였다.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캐슬롯 후작, 그러니까 자네의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그때부터였겠지. 그 황실의 인물 그리고 비밀 단체와 모종의 관계를 맺은 것이.”

“…그, 그건….”

“당연하겠지. 내가 눈이 안 보여도 듣는 귀는 있거든. 당신의 윗선, 황실의 인물의 심기를 건드리는 순간 이곳의 존폐가 위태할 테니.”

“…….”

캐슬롯을 할 말을 잃었다.

당연했다. 눈앞의 자신을 들여다보듯 하는 사내에겐 변명 따윈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스릉.

흑색의 검집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새하얀 검신이, 허망한 눈빛을 하고 있는 캐슬롯의 목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곧 이든의 입에서, 차디찬 것을 넘어 서릿발 같은 한기가 내뱉어졌다.

“누구냐. 너의 윗선, 그 황실의 인물이.”

지금까지 보였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위엄에 캐슬롯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 그러니까… 그것이… 그자가 누구냐면….”

영지의 비상이고 뭐건 간에, 죽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랴.

바르르 떨리는 캐슬롯의 입술에서 모든 전말이 드러나려던 순간.

피이이이잉!!!!

공기를 찢고 날아오는 날카로운 소리가 이든의 귓가에 들렸다.

휘릭!

캐슬롯의 목을 겨누던 검신이 빠르게 휘둘러지며, 그들을 향해 위협적으로 날아오는 무언가를 쳐 냈다.

콰아아아아앙!

검신에 그 무언가가 닿던 그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강풍이 일며 사방을 휩쓰는 폭발이 일어났다.

“……!”

이든이 얼굴을 찌푸렸다.

갑작스러운 공격도 공격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위력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다행히 본능적으로 기막을 형성해 그와 바로 옆에 있던 캐슬롯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으, 으으으으….”

반경에서 미처 피할 새 없이 폭발에 휩쓸린 기사와 병사들이 저마다 고통에 신음했다.

사방을 살피던 이든의 기감이 일순 어느 한곳을 주시했다.

그의 기감이 향한 곳.

다름 아닌 성의 지붕 끄트머리에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인형이 있었다.

콱! 파밧!!!

땅을 콱 밟던 이든의 신형이 번개와 같이 그곳으로 단숨에 쏘아졌다.

휘익!!!!

섬전 같았던 속도.

그리고 그 속도에서 나온 힘을 그대로 실어 새까만 마기가 피어오르는 흑색 검이 그 인형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아아아앙!!!

재차 지붕 위에서 일어난 폭음.

인형이 쏘아냈던 무언가도 대단한 위력이었지만, 이든의 검격과 비교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막을 형성해 이든의 검격을 막아 내던 인형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내뱉어졌다.

-크읍…!

카드드드득!!!

천천히. 조금씩. 이든의 검을 막아낸 막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로브를 깊게 눌러쓴 인형의 붉은 안광에 놀라움이 번졌다.

이윽고 그 안에서 기이하고 음산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내 실드에 금이 가다니… 놀랍군. 유니콘 길드에 자네 같은 인물이 있었나?

이든이 피식 웃었다.

“놀랐어?”

-놀랍다.

“어, 근데 난 가볍게 휘두른 거였는데? 이게 진짜 놀랐어?”

-…….

“나도 놀랍네. 겨우 이 정도로 놀랐다니. 흑막 수준이 이래서야 영 재미가 없네.”

-…열 받게 하는 것도 수준급이군.

“더 놀랍게 해 줄까?”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