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막에 금을 내던 이든의 검신에서 보다 강렬하고 거대한 마기가 솟아올랐다.
하늘마저 집어 삼킬 듯한 짙은 마기.
안개처럼 피어오르던 마기는 크기를 부풀러 가더니, 이내 커다란 검의 형태를 잡아갔다.
가시화된 검기가 극에 이르렀을 때만 표출해 낼 수 있는 검기의 극치.
흑색의 검강이, 앞을 가로막는 거무튀튀한 불투명한 막을 갈라내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콰지지직!
천천히 금이 가던 것이 일순 빠른 속도로 전체로 번졌다.
-……!
파앗!!!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가 놀란 눈으로 멀찍이 떨어졌다.
멀어지기 무섭게 그의 주변을 감싸던 막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며 비산했다.
콰앙!
지붕이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 신법을 밟은 이든의 신형이 흩날리는 막의 잔해물을 뚫고 로브의 사내를 향해 재차 쏘아진 결과였다.
순식간에 그의 코앞에 도달한 이든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빛과 같은 속도로 쏘아진 신형. 그리고 그 반동에서 나오는 힘으로 섬광처럼 휘둘러진 검.
찰나의 찰나라고도 표현해도 부족할 그 잠깐의 순간, 이든의 검이 정확히 인형의 몸을 비스듬히 갈라냈다.
촤아아아악!
근데 왜일까.
검을 휘둘렀던 이든의 얼굴이 일순 찌푸려졌다.
‘베이지 않았다…?’
사람을 베었을 때의 느낌이 전해져 오지 않는다.
마치 허공에 대고 검을 휘두른 듯한 느낌과 다를 것이 없던 그 순간.
갈라진 로브에서 인간의 형체를 한 검은 안개가 서서히 흩어지며 희미해졌다.
모든 것이 희미해지며 사라지는 그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붉은 안광에서 기이한 목소리가 울려와 이든의 귓가에 박혀 들어왔다.
-좋은 구경 했다. 하지만 자네와의 대결은 나중으로 미루고 싶군.
“걱정 마. 이른 시일 내 내가 어떻게든 네놈들 찾아내서 박살을 내줄 테니까.”
-…그건 개인적으로 사양하고 싶군. 뭐, 애초에 그럴 수도 없겠지만.
“……?”
-열심히 찾아보도록. 물론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면 말이야.
“뭔 소리야. 단서야 저 새끼 협박하면 너희가 어디 있는지 정도야….”
일순, 이든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리고 캐슬롯을 향해 급히 고갤 돌렸다.
“…설마!?”
이든의 기감이 향한 곳.
거기엔 펑크 길드장이 모두의 이목이 그곳으로 쏠린 틈을 타 캐슬롯의 뒤에 칼을 쑤셔 박고 있었다.
입에서 붉은 선혈을 내뿜던 캐슬롯이 핏발 선 눈으로 펑크를 노려봤다.
그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이… 개, 개새끼가…!”
정확히 심장을 노린 일격이었기에 캐슬롯의 숨통이 끊기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희미하게 사려져 가는 인형을 뒤로하고, 이든이 펑크를 향해 쏘아지려던 그 순간.
“…위대하신 존재이시여! 저를 굽어살피소서!!!!!!!!!!!!!!!!”
푸욱!!!!
펑크가 쥔 검은 어느새 자신의 복부에 깊숙이 찔러 넣어진 뒤였다.
그리고.
숨이 끊겨 가는 펑크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더니 다짜고짜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캐슬롯 성에 검은 화염이 치솟으며 사방을 휩쓸었다.
***
폭발의 여파는 상당했다.
이든이 밟고 있던 성의 지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지붕뿐만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캐슬롯 성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은 것이라곤 무너져 내린 성의 잔해물뿐.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던 이든이 검막으로 몸을 보호했기에 망정이지 까딱 잘못했으면 그조차 폭발의 여파에 휩쓸릴 뻔했다.
‘…….’
기감으로 사방을 살피던 이든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없다.’
허공을 밟고 있든 이든의 아래, 지면에 있던 모든 병사와 기사들이 재로 화했다.
그뿐이면 좋으랴.
이든의 기감이 이번엔 성 밖을 향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안 돼… 흐흑….”
“모두 무사하시오…!”
사방에서 절규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했던 폭발의 여파는 성벽과 내부인 성을 헤집은 것으로도 모자라 성 밖까지 뒤집어 놓았다.
이든이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이건 분명….’
펑크의 숨통이 끊어진 직후 일었던 폭발. 그리고 그간의 경험을 되짚었을 때, 이와 비슷한 현상을 그 역시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고독.’
숙주의 몸속에 살아가는 벌레로 숙주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신체에 폭발을 일으키는 대량 살상 무기.
무진이 천마로써 다스리기 이전 먼 과거, 신교에서도 하급 마인들에게 이 고독이란 것을 심어 놔 전쟁 때 사용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잔혹성 때문에 현재는 무림 내뿐만 아니라 신교에서도 그 사용이 금해지고 있으나.
조금 전, 펑크가 보여 줬던 그 현상은 필시 고독과 같았다.
‘다만….’
폭발의 여파가 남긴 사방 곳곳에서 느껴지는 넓은 범위의 화기(火氣). 고독의 폭발 범위는 이렇게 넓지 않다.
아무리 독한 고독이라도 그 범위가 십 장의 길이를 넘지 않거늘…
그런데 이든이 지금 기감으로 느끼는 화기의 범위는 성벽을 넘어 마을까지 닿아 있었다.
‘백 마리의 고독이 동시에 터져야 이 정도가 나올까….’
일전 펑크 상단의 반혼시 무사부터 해서, 고독과 닮은 이것까지.
모든 것이 먼 과거, 중원 땅을 뒤집겠답시고 신교가 벌이던 생체 무기와 똑 닮아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 놈이 전개했던 기막. 똑같진 않더라도 마기 특유의 느낌과 굉장히 흡사했다. 대체 뭐가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어떤 배경이 이런 짓을 계획했고, 어떤 이유에서 유니콘 길드를 노리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지만, 자백을 받아 내야 할 사람 모두가 죽어 버린 현재로선 당장에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일단 이곳의 상황을 수습을….”
이든이 말끝을 흐렸다.
순간, 엄습해 온 불안감 때문이었다.
‘혹… 길드원들이 고독을 심은 놈들에게 습격당하면….’
이든의 고개가 저 먼발치를 향했다. 그의 신형이 어딘가로 번개와 같이 쏘아져 사라졌다.
***
타닥타닥.
이미 밤은 깊었건만, 잠이 오질 않는지 길드원들이 멍한 눈으로 모닥불 앞에 나란히 앉았다.
긴 정적 속에서 문득 로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든은 잘 해결하고 있을까요?”
그녀의 말에 옆의 톰슨이 이죽거렸다.
“해결!? 벌써 진즉에 다 때려잡았을걸! 걔 성격 몰라서 그래?”
하긴….
그의 말에 동료들이 이해가 간다는 얼굴로 그간의 이든을 떠올렸다.
과묵하며 표정의 변화조차 거의 없다시피 한 무미건조한 얼굴.
그래, 마치… 잔잔한 바다와 같은 사내.
근데….
바다란 것이 그런 잔잔한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변덕스러운 날씨 땐, 잔잔했던 파도는 온데간데없고, 난데없이 해일이 휘몰아치며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듯,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기세로 육지를 들이박지 않던가!
그래… 그는 바다다.
평소엔 한없이 너그러운 것 같다가, 한번 꼭지가 돌면 사방을 휩쓸고 부숴 버리는 성난 바다와 같은 미친놈! 그것이 이든이었다.
질문했던 본인도 어이가 없는 듯 로즈가 머릴 긁적이며 헛웃었다.
“하하…하! 하긴 내가 별걱정을 다.”
저마다 시답지 않은 말을 꺼내던 그때.
짝짝.
케인이 손뼉을 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무튼, 우린 이든이 빠르게 돌아온다는 전제하에 최대한 쉬는 시간까지 줄이며 움직여야 한다. 펑크 상단과 캐슬롯 영지가 임무에 실패했다는 게 알려지면 분명 작정하고 재차 유니콘 길드를 노려 올 것이 분명해. 그러니까 돌아가는 그때까지 다들 주의에 만전을 기하도록. 알겠나?”
“예!”
“다녀왔습니다.”
응…?
방금 이든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
케인의 고개가 난데없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다녀왔다니 무슨… 오마나! 깜짝이야!!!!!!!!!”
케인의 식겁한 얼굴이 향한 곳.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엔 어느새 이든이 서 있었다.
소리도 없이 다가온 그의 모습에 길드원들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 뭐야. 자네! 버, 벌써 해결하고 온 건가?”
“해결이라 하기엔 뭐하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예. 그것이….”
이든은 캐슬롯 영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쯤엔 모두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캐, 캐슬롯 성이 무너졌…다고?”
“예.”
“생존자 역시 자네를 제외하곤 없고….”
“예.”
“허….”
이미 다 들은 내용을 재차 확인하듯 묻는 케인, 그만큼 이든의 이야기가 듣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보통 사달이 아님을 뜻했다.
“대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응…?”
“잠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합니다.”
이든의 말에 케인이 어두컴컴한 하늘을 한번 힐끔 바라보다가 물었다.
“지, 지금 말인가?”
“증거를 없애겠답시고 캐슬롯 성을 날려 버린 놈들입니다. 그런 놈들이 다른 곳이라고 똑같이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자네 얘기는 그러니까. 설마…!”
비로소 이해했다는 놀라 묻는 케인의 말에,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이든의 얼굴.
그리고 내뱉은 음성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해일을 품고 있었다.
“예. 모든 영지의 유니콘 길드가 표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
스르르.
아무것도 없던 텅 빈 공간에 불현듯 나타난 사람의 그림자.
깊은 새벽, 다른 곳도 아닌 황실 내부에 난데없이 나타난 인형의 모습에도 듀란드 공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예상했다는 얼굴. 그가 창가의 달빛을 등진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는 사람이었던 걸까.
그를 찾아왔으니, 손님이라면 손님일 것이다.
“어찌 되었소?”
참으로 딱딱하기가 그지없는 말투. 그래도 명색이 자신을 찾아온 손님인데, 다짜고짜 본론부터 묻는다. 퍽 기분이 상할 만한데, 인형은 그의 반응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앞에 앉았다.
“일이 꼬였소.”
펑크로부터 유니콘 길드원 압송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받자마자, 무리하여 캐슬롯 영지까지 텔레포트로 단숨에 향했던 그였다.
다른 이도 아닌, 흑마법의 대가란 칭하기에도 부족함 없을 눈앞에 사내가 직접 나섰으니 응당 일을 해결했으리라 예상했건만….
듀란드 공작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꼬이다니 그게 무슨… 실패했단 얘기요?”
“실패니, 성공이니를 따질 수준이 아니오. 캐슬롯 성이 무너졌소.”
“…그 무슨….”
성이 무너지다니…?
‘캐슬롯 성이 무너졌다.’
듀란드 공작은 그 말뜻이 캐슬롯 영주가 죽었다는 뜻 정도로 들렸다. 듀란드 공작이 놀란 눈빛을 했다.
“차기 캐슬롯 영주가 죽었단 말이요?”
“…아무래도 내 말뜻을 잘못 이해했나 보군. 그 얘기도 맞지만, 방금 내가 말한 뜻은 그것이 아니오.”
“……?”
“캐슬롯 영지의 성이 정말로 무너졌소. 흔적도 없이.”
비로소 말뜻을 이해한 듀란드 공작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제국의 대도시 중 하나인 캐슬롯 성이 무너졌으니.
“…캐, 캐슬롯 성이 무너지다니… 그게 대체 무슨… 설마 유니콘 길드가 그런 짓을 벌였을 리는 없을 테고.”
“성이 무너진 것은 온전히 나의 탓이오.”
“혹… 자폭충을 쓴 것이오?”
“맞소.”
줄곧 무미건조하던 듀란드 공작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덩달아 그의 목소리도 한층 더 높아졌다.
“자폭충이라니…!!! 제정신이오!? 그것은 혹여 모를 위급 상황 때 쓰기로 하지 않았소. 어찌 그걸 캐슬롯 성안에서 터트렸단 말이오!!!”
듀란드 공작 앞, 로브를 눌러쓴 사내가 무미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위급 상황이었소.”
“…….”
“유니콘 길드의 이든, 세간에는 심안의 무사로 불린다는데 아시오?”
난데없는 물음에 듀란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말하다 말고,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 거요?”
“펑크 상단의 압송 실패, 캐슬롯 성의 함락. 모두가 그 이든이란 청년이 단독으로 벌인 일 같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