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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82/250)

82화.

“캐슬롯 성이…. 함락됐었소?”

압송 실패에 관해선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캐슬롯 성이 함락되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로브의 사내가 고갤 끄덕였다.

“이미 내가 도착했을 땐 성이 함락되어 상황이 정리된 후였소. 그리고 캐슬롯이 이든이란 자에게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발설하려 하더군.”

“…캐슬롯 그 망할 놈이.”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발설하려 했던 사실에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은 듀란드 공작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캐슬롯이나 이든 그놈만 처리하면 될 일 아니오?”

“불가능했소.”

“응? 불가능이라니. 무슨 말이오?”

“…그 이든이란 놈, 만만한 상대가 아니더군.”

“…당신조차 제압할 수 없었단 말이오?”

듀란드의 물음에 로브의 사내가 피식 웃었다.

“훗. 제압? 당신 재밌는 말을 하는군. 제압은 강자가 약자를 내리누를 때 쓰는 말이오. 이든, 그놈은 나보다 강했소.”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듀란드 공작이 믿기지 않는단 얼굴을 했다.

눈앞의 로브의 사내는, 비록 황실의 대마법사 수준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에 준하는 가히 흑마법의 대가라 불리어도 손색없을 고수거늘. 그런데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꼬맹이가 눈앞의 이자를 압도했다고?

하지만 농담이 아니라는 듯, 로브의 사내가 붉은 안광을 터트리며 차디찬 음성을 내뱉었다.

“내가 농담 따위 하는 사람으로 보이오?”

일순, 방 안을 엄습하는 가라앉은 분위기에 무안한 듯 듀란드가 연신 헛기침을 해 댔다.

“크, 크흠. 어찌 됐든… 여전히 믿기지 않는구려. 유니콘 길드에 그만한 인물이 있을 줄은….”

“나 역시 의외였소.”

“…그리 실력이 대단했습니까?”

“대단하단 말로도 부족하오.”

로브의 사내가 말끝을 흐리다가 재차 말을 이었다.

“가히 장담하건대, 칼스테인 백작과 비교할 만하더이다.”

듀란드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욱 크게 반응했다.

눈앞의 저 로브의 사내가 당해 낼 수 없을 정도였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상당하겠거니 했는데, 비교 대상이 현존 제국 제일의 검사인 칼스테인 백작이란다.

이번만큼은 듀란드 공작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듯 난색했다.

단지 칼스테인이 그의 사위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믿기지 않는다는 뜻에서였다.

“…그, 그것은 비교가 너무 심한 것 아니외까?”

“…….”

듀란드의 미심쩍어하는 눈치에 로브의 사내는 어떠한 대답도 없이 묵묵히 입을 닫았다.

사실 그 역시, 본인 스스로 말하고도 어처구니가 없어 하는 눈치였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얘기만 논할 수는 없는 일.

중요한 것은 당장눈앞에 닥친 현실을 어찌 해결하냐는 것이었다.

로브의 사내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오. 현 사태를 어찌 넘어가냐는 것이겠지.”

여기서 그가 말하는 현 사태는 캐슬롯 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듀란드 공작 역시 조금 전의 화제를 머릿속에서 애써 지우고는 입을 열었다.

“캐슬롯 성에 관한 일은 내 쪽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소. 잡음이야 많겠지만, 어찌 됐든 이번 일이 끝나면 캐슬롯 역시 처리할 생각이지 않았소?”

“…….”

무언의 긍정.

로브의 사내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펑크도 그렇고 캐슬롯도 그랬다.

여기 모인 이들에게 있어서 그들은 한낱 장기짝에 지나지 않았다.

듀란드가 재차 입을 열어 물었다.

“그보다…. 앞으로 어찌할 생각이시오.”

“무엇을 말이오?”

“유니콘 길드.”

잠시 잊었던 ‘이든’이란 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새로운 골칫거리에 로브의 사내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흠. 우리의 존재에 대해선 알아내지 못했지만, 분명 들쑤시고 다니긴 하겠지….”

“하면….”

“흔들어야 하지 않겠소?”

“흔든다?”

“…내부를 흔들어 유니콘 길드를 단박에 무너뜨릴 방법이 별것 있겠소?”

“설마….”

듀란드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의 예상이 맞는다는 듯, 로브의 사내가 고갤 끄덕였다.

“레스타드 길드장, 처리합시다.”

듀란드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예정된 수순이었으나, 갑자기 말이 나온 탓에 꽤 당황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찬찬히 가라앉는 눈.

듀란드 눈에 새파란 살기가 일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 일에 적합한 자를 알고 있습니다.”

***

덜거덕덜거덕.

짐을 실은 수레라 보기엔 조금 빠른 감이 없지 않다.

그리고 그 옆에 호송을 서 마주 걷고 있는 용병들의 걸음도 상당히 빨랐다.

아니, 빠르다기보단 조급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달까.

케인이 고갤 돌렸다. 그의 시선이 길드원들과 짐꾼들을 쓱 훑었다. 수면 시간까지 줄여 가며 강행군을 벌인 탓에,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모두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주고 있음에도….

이든은 지금 움직이는 속도도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는 얼굴이다.

케인이 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보게, 이든.”

“예.”

“그… 정 불안하면 자네 먼저 서둘러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사실 이든이라고 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고갤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지부가 위험하다고, 여러분들을 두고 먼저 갈 순 없습니다.”

단호하기 짝이 없는 말투.

케인이 무안한 듯 머릴 긁적였다.

“그, 그래…? 크흠…!”

어째서일까, 합류한 뒤로 줄곧 보아 온 이든의 모습은 그답지 않았다.

평소의 그였다면 필시 먼저 지부로 뛰쳐 갔을 것이 분명하건만.

뛰쳐 가긴커녕 오히려 경계하듯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심지어 불침번마저 이든 본인이 자진해서 온종일 섰고, 잠깐이나마 길드원과 짐꾼들은 모두 눈이나 붙이라는 식이었다.

케인의 눈이 다시 힐끔 이든의 얼굴을 향했다.

며칠을 내리 밤을 지새운 사람치곤 멀끔한 모습이지만, 피곤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케인이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곤 뒤에 따라오는 길드원과 짐꾼들을 향해 우렁우렁 외쳤다.

“곧 칼스테인 영지에 도착한다. 모두 속도를 조금 더 높이도록!”

지금도 빠른데, 속도를 좀 더 높이라고…!?

라며 충분히 불만이 나올 만했지만, 누구도 싫은 내색을 하지 못했다.

이든이, 여기 있는 모두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럇.”

덜거덕, 덜거덕, 덜거덕.

케인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레와 길드원들의 걸음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이 정도까지 빨라지니, 이것은 흡사 걷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뛰는 것에 더 가까웠다.

상시 습격에 대비해 체력을 보존해야 하는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껏 몬스터나 산적의 습격이 일절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물론 유니콘 길드원들은 애초에 습격 따윈 걱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몬스터나 산적을 걱정했다면 모를까.

그도 그럴 것이…

지금처럼 이든의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 수레를 습격한다…?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게 한참을 빠른 속도로 가다 보니 호송 행렬은 어느새 국경을 지나고 있었다.

국경에서 칼스테인 성까진 대략 한 시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전방에서 말을 몰던 케인이 옆에 이든에게 재차 말을 건넸다.

“이든!”

“예.”

“이제 곧 도착일세. 여기서부턴 그래도 안전하지 않겠나?”

“…….”

여전히 경계를 지우지 못한 얼굴빛이었지만, 그래도 국경 안이란 것이 나름 안심이 됐던 걸까.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

파앗!!!!!!! 콰과과광!!!!

케인의 옆. 이든이 서 있던 지면이 움푹 파였다.

지면을 박찬 이든의 신형이 번개처럼 쏘아졌다.

어느새 저 먼발치까지 멀어진 이든의 모습.

케인이 헛바람을 삼키며, 차마 끝내지 못한 말을 마저 내뱉고 있었다.

“…게나…. 허, 허허허….”

거참 빠르기도 하지….

얼마나 답답했을꼬.

절로 미안해지는 케인이었다.

***

“흐아아아아암!”

바깥 공기도 쐴 겸, 밖으로 나온칼스테인 지부 지부장 게럴드가 기지개를 켜곤 크게 하품을 내뱉었다.

누가 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게럴드가 허공에 대고 입을 열었다.

“지루하구나. 지루해!”

캐슬롯 영지로 갔던 호송팀 길드원들이 귀환하려면 아직 며칠이나 남은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송 쪽 부서도 오늘은 꽤 한산한 모습이었다.

매일 쉼 없이 달려오다가 뜬금없이 찾아온 여유가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그였다.

멍한 눈으로 사방을 훑던 그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어째 나만 빼고 다들 바쁜 모습이구만.’

거리에 사람들을 바라보던 게럴드의 눈이 문득 하늘 쪽을 향했다.

“뭐라도 좋으니. 하늘에서 일이라도 뚝 떨어졌으면 좋겠구만… 응?”

응…?

저건 뭐지…?

하늘을 향했던 캐슬롯의 눈이 가느다랗게 떠지다가 이내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뚜우우우우우우우욱.

진짜 뭐가 떨어지는데…?

콰아아아아아아앙!!!!

떠, 떨어졌다.

진짜 떨어졌다!!!!

거리를 가득 메운 먼지.

마른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내린 듯한 소란에 길을 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란이 인 곳을 향했다.

스윽.

구덩이가 움푹 팬 곳, 그곳에 거뭇거뭇한 무언가가 움직였다.

게럴드가 하얗게 지린 얼굴을 하다가 이내 먼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이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이, 이든!?”

“지부장님, 무사하셨군요!”

“응?”

“후…. 다행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었습니다.”

“…….”

무슨 일 있을 뻔했지.

마른하늘에서 뚝 떨어진 자네 때문에…!

라고 목구멍까지 나오려던 말을 게럴드가 꾹 참았다.

갑자기 나타난 이든의 모습에 게럴드가 물었다.

“근데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요란하게 등장한 건가…? 호송은 어떻게 하고?”

“남은 길드원들은 곧 도착할 겁니다. 그보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이든은 그간에 있던 일들을 빠짐없이 설명했다.

이든의 이야기를 듣던 게럴드의 얼굴이 점차 심각하게 굳다가, 마지막 말을 듣더니 아예 넋을 놓아버린다. 대체 무엇을 들었기에 저럴까.

그가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지, 지금… 뭐라 했나? 캐슬롯 성이… 무너져…?”

“예.”

“완전히…?”

“네.”

“폭삭…?”

“…….”

“…허….”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응?”

게럴드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이게 문제가 아니라면 어떤 게 문제란 거지? 하는 표정이다.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문제는 펑크 상단과 캐슬롯 영주가 누군가의 명을 받고 움직였단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유니콘 길드를 노리고 있다…?”

“예.”

“흠.”

게럴드의 얼굴도 상당히 심각해졌다. 하늘에서 일이 뚝 떨어지길 바라긴 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문제가 앞에 떡하니 당도할 줄이야.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걸까.

게럴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도에도 이 사실을 알렸나?”

“일단 전서구를 날리긴 했습니다만, 이미 당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캐슬롯 영지에서 다시 돌아오기 무섭게 서신을 날렸다 하였으니, 진즉에 수도에 서신이 도착했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이 불편한 감정은 뭘까.

게럴드가 고갤 휘휘 저었다.

“…아무래도 자네가 이곳에서 이렇게 있을 일이 아닐 것 같네.”

“…네?”

“이유야 모르지만, 수많은 지부 중에 굳이 이곳을 먼저 목표로 삼았던 그들이야. 그런 그들이 자네로 인해 일이 틀어졌는데 재차 이곳을 노릴까?”

게럴드의 말을 이해한 이든이 한껏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수도로군요.”

게럴드가 고갤 끄덕였다.

“만약 그들이 작정하고 유니콘 길드를 노리는 것이라면 다음 목표는 이곳이 아니야. 필시 수도를 노려 내부를 흔들려 할 걸세.”

“…지금 당장 가야겠습니다!”

벌떡 일어난 이든을 따라 게럴드도 덩달아 일어났다. 그 역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우선 자네 가족들에겐 내 미리 말해 놓겠네. 부디 몸조심하게.”

“네,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선 이든의 신형이 수도를 향해 다시 번개와 같이 쏘아졌다.

게럴드가 이 사실을 길드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알리기 위해 움직이려던 찰나, 전서구 하나가 그의 앞으로 도착했다.

푸드드득.

“응? 이럴 때 웬 전서구가….”

무엇이 적혀 있던 걸까.

전서구에 발에 걸린 서신을 뜯어 살피던 게럴드의 안색이 점차 굳어진다. 이윽고 서신을 읽던 그의 눈이 재차 하늘을 향했다.

조금 전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더없이 슬픔에 잠긴 눈.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곤 나직이 중얼거렸다.

“하아…. 하늘도 참으로 무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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