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250)

83화.

일전 레스타드 길드장이 피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시 이든의 경지로는 수도까지 꼬박 하루를 달려야 겨우겨우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약간의 내상을 각오하고 전력으로 달린다면 마실 나가듯 한 시진이면 충분했다.

그가 창조해낸 상승 신법과, 이미 평범한 인간의 범주는 아득히 초월한 그의 경지에서 나오는 지금의 속도는 가히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하고 지고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 여긴 것인지….

이든은 이를 악물고는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파팟!!!! 파아아아아앙!!!!

그의 신법이 공기를 찢으며 기이한 굉음과 함께 가공할 속도로 나아갔다.

천마군림보와는 그 묘리가 완전히 다른, 오롯이 속도와 정확성에 주축을 둔 신법임에도 그 가공할 속도가 불러일으킨 여파에 주변 지형지물들이 버티지를 못했다.

콰르르르르릉!!!

그의 발끝에서 천둥이 한번 내려치면 지나간 자리로 땅이 움푹 패고, 가공할 속도가 일으킨 바람은 태풍이 휩쓸 듯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흡사 자연재해를 불러일으키는 모습으로 기를 쓰고 내달렸는데….

유니콘 길드 앞.

쿠웅….

이든의 굳건하던 두 다리가 풀리며 이내 무릎이 땅에 땋았다.

“이든…!”

카르엘이 달려와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이든은 끝내 요지부동이었다.

이든이, 믿기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얼굴로 했던 말을 다시 내뱉었다.

“길드장님께서 돌아가셨다고요?”

“…….”

“어떻게 된 겁니까….”

싸늘하게 굳은 표정에서 내뱉어진 음성엔 잴 수조차 없는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카르엘이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닫았다.

“끄흡.”

굳게 다문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작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툭. 투둑….

참고 참아온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던 그 순간. 격양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든, 흑… 끄흑…! 길드장님께서…. 끄흑!! 이틀 전에 습격을…!!!!”

터져 나온 말은 도무지 정리라곤 되질 않아 뒤죽박죽이었지만, 그럼에도 알아듣는 덴 한 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든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굳었다.

“습격… 습격을 당하셨다고요….”

습격이란 말에 슬픔보다 더욱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끝없이 밀려오는 분노.

나직이 중얼거리는 듯한 이든의 음성엔 감히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벌떡.

뭔가에 홀린 듯 이든이 땅에서 무릎을 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세워진 그의 두 다리가 레스타드 길드장의 시신이 눕혀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흑. 흑흑.

끄흡…!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슬픔에 잠긴 목소리들.

그 사이를 헤집고, 이든이 한곳에 뉘어져 있는 레스타드 길드장 앞에 섰다.

길드장의 모습을 볼 수 없기에….

스윽… 더듬. 더듬.

이든의 기다란 손이, 세상 편해 보이는 얼굴로 웃으며 눈을 감고 있는 레스타드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 모습에….

카르엘이 다시 왈칵 눈물을 쏟는다. 하지만 어째선지….

레스타드의 얼굴을 더듬는 이든의 얼굴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작은 미소가 걸쳐졌다.

‘죽는 순간까지 웃으면서 가셨구려….’

죽기 직전, 이토록 웃으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습격으로 인해 예정에 없던 죽음이 당도한 그 순간까지도….

미소를 지었던 사내.

치열하게 달려왔고, 후회 없이 살았기에.

그렇기에 마지막 가는 그 순간까지 그는 미소를 지을 수 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든 역시 마주하며, 그에게 미소를 짓는다.

이든이 레스타드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누워 있는 레스타드를 향해 깊이 고갤 숙였다.

그의 한 손이 주먹을 쥐고….

남은 한 손이 활짝 펴진다.

진심을 담은.

후회 없이 세상을 살다간 시대의 풍운아를 향한 진심 어린 포권.

그는 그렇게 한참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레스타드 앞에서 예를 갖추었다.

웃으며 간 동료 앞에,

어찌 남들과 같이 눈물을 흘릴쏘냐.

그가 지금 미소 짓는 것처럼.

나 역시….

웃으며 그를 보내련다.

들릴 듯 말 듯, 이든의 입술이 미비하게 움직이며 그에게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미안하오. 그리고… 고맙소.’

잘 가시오.

친구여.

***

레스타드 길드장의 죽음은 금세 세간에 알려졌다.

제국 전반에 영향을 준

거대한 길드의 수장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다녀갔고, 거기엔 황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폐하께서 상심이 크십니다.”

“…폐하의 친서도 감사한데, 공작님께서 이리 직접 오실 줄은 감히 몰랐습니다.”

“다른 이도 아닌, 유니콘의 레스타드 경을 보내는 자리입니다. 당연히 와야지요.”

듀란드 공작의 의미 모를 눈빛이 힐끔, 누워 있는 레스타드 길드장을 향했다.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는 듯했던 그의 눈동자가 레스타드에게서 떼어지고, 다시 앞에 지부장들을 훑었다.

조문객을 받기 위해, 각 지부에서 속속들이 모인 지부장들.

그중 몇몇을 바라보는 듀란드 공작의 눈에 의미심장한 빛이 일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기색을 지웠다.

듀란드가 다시 침중한 듯한 음성으로 입을 뗐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레스타드 길드장께서 각고의 노력으로 이끌어 온 길드입니다. 모쪼록 잘 추스르고, 유니콘 길드의 재도약을 기다리겠습니다.”

듀란드 공작의 조의에 지부장들이 저마다 고갤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지부장들의 인사를 받으며 듀란드 공작이 발걸음을 돌리던 그때, 돌아선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이로써 유니콘 길드는 무너질 것이다.’

누가 감히 알았을까.

유니콘 길드장 레스타드의 죽음을 몰고 온 것이 다른 이도 아닌, 바로 듀란드 공작이었음을….

길드원들의 노고 끝에 레스타드 길드장의 장례는 아무 문제 없이 마무리되어 갔다.

무사히 안치된 레스타드 길드장을 뒤로하고 게럴드 지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힐끔 눈을 돌려 옆에 마주 서 있던 이든을 향했다.

“고생 많았네.”

“고생은 저보단 지부장님께서 많으셨지요.”

게럴드는 내심 걱정했었다.

혹시 이든이, 레스타드 길드장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범인을 잡겠다며 여기저기 날뛰며 들쑤시지 않을지 말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이든은 레스타드를 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떤 사고도 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냉정했고, 차분했다.

게럴드가 옆에 이든만 들릴 듯한 높낮이의 음성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상 가는 이가 있나?”

레스타드 길드장에게 죽음을 안겨 준 흉수가 누구인지 묻는 것이었다. 이든은 고갤 저었다.

“아뇨. 다만…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긴 합니다.”

“그게 뭔가?”

“그 전에, 지부장님께선 다른 지부장님들과 친하신 편입니까?”

“…지금의 지부장들은 길드 창설 초기부터 함께 동고동락해 온 동료들일세. 당연히 친하다마다.”

“…그럼 그들을 얼마나 믿으십니까?”

“그야 어느 누구보다 믿….”

게럴드가 말을 마저 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그의 표정이 한껏 굳어져 있었다.

그가 마저 못다 한 말을 하기 위해 재차 입을 열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얼마나 믿느냐니…?”

“…….”

“이든!”

게럴드의 독촉에 이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부에도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게럴드의 눈이 부릅떠졌다.

흉수를 물었더니 내부의 적이라고?

“그 말은… 길드 내에 배신자가 있다 그 말인가?”

“예상일 뿐이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이든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길드원들에게 물으니 레스타드 길드장님께선 최근 한 달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귀가도 안 하시고 본부에서 숙식을 해결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사건 당일 귀가를 하셨다? 너무 공교롭지 않습니까?”

“자네의 말을 들으니 일리가 있네만…. 그래도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의심스러운 점은 하나 더 있습니다.”

“음?”

“테이머 길드 때 사건 이후로, 길드장님께선 가뜩이나 신변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일전엔 그로 인해 피습도 당했었고요.”

“…그렇지.”

“그것이 불과 몇 달 전입니다. 그걸 빤히 아시는 분이 아무런 호위도 없이 밤늦게 귀가하셨다? 말이 되질 않습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하군.”

“이유는 한 가집니다.”

“…….”

“아는 사람과 동행을 했다. 그리고….”

“그 아는 사람이… 길드 내부의 사람일 것이다.”

이든의 추측은 그럴듯했다.

그의 말대로 레스타드의 죽음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이든과 마찬가지로 차갑게 식은 표정의 게럴드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방금 이 얘길 꺼내면서 다른 지부장들을 화두에 올렸던 이유가 설마 그들이….”

“글쎄요. 그중에 누가 배신자인지는 차차 알아봐야겠지요. 어찌 됐든 간에 지부장님께선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셔야 합니다. 앞으로 유니콘 길드는 내부와 외부의 적들로 몸살을 앓을 테니까요.”

“으음… 똑바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내부의 적들에게 유니콘 길드를 뺏길 위험이 크지.”

고갤 주억거리며 중얼거리다시피 말을 잇던 게럴드가 재차 물었다.

“그럼 외부의 적은… 누구인가?”

“최근 호송 때 있던 일 기억하십니까?”

캐슬롯 영지에서 겪었던 사건들을 묻는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 게럴드가 고갤 끄덕였다.

“알다마다.”

“캐슬롯 영주가 죽기 전 제가 물은 적이 있습니다. 혹 윗선이 황실과 관계되어 있냐고. 확실한 대답은 없었지만, 말을 얼버무리는 것이 허를 찔린 듯했습니다.”

“…설마.”

“비록 차기 영주였다곤 하나, 놈은 후작의 직위를 가진 귀족이었습니다. 윗선이라 함은… 최소한 같은 후작이거나 혹은 공작.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마침 레스타드 길드장님이 시해를 당했다. 그리고 장례식을 빌미 삼아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이 모두의 의심을 피해 접선한다….”

“자, 자네 말은 그러니까….”

“캐슬롯이 말한 그 윗선 중 하나, 듀란드 공작 말고 그럴듯한 이가 누가 더 있겠습니까?”

“…저, 정말로… 유니콘 길드를 노린 것이… 듀란드 공작이란 말인가….”

“물론 제 개인적인 예상일 뿐이지만, 이보다 확실한 추측은 없다 생각합니다.”

“하….”

게럴드가 넋이 나간 듯 헛웃었다.

사실 황실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그게 황제를 제외한 최고 권력인 듀란드 공작일 것이라곤 꿈에도 몰랐던 그였다.

그렇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게럴드가 한참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

“…일단 내부의 적부터 걸러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럴드가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만… 저 지부장들 가운데에 배신자만 콕 집어내는 일이 가능하겠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흉수도 문제지만, 내부의 흉수를 가리는 것이 더욱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게럴드 입장에선 이든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방도가 있는 건가?”

“길드장의 자리가 공석인 현재. 유니콘 길드에서 가장 우선시 처리되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야. 당연히 후임 문제… 아!”

이든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언지 깨달은 게럴드가 말을 하다 말고 도중에 탄복했다.

그의 반응에 이든이 찬찬히 고갤 끄덕이며 힘주어 말했다.

“내부의 적은 우리가 구태여 찾지 않아도 필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말끝을 흐리던 이든의 얼굴에 더없이 찬 한기가 돌며 꽝꽝 얼어붙듯 굳어 갔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재차 입을 뗀 그의 음성이 어느 때보다 더없이 살벌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후회하게 만들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