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250)

86화.

스윽.

후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중년인들 가운데 유독 홀로 튀어 보이는, 이제 약관이나 됐을 법한 젊은 청년.

착 감긴 눈.

심안의 무사라 불리는 소문 자자한 젊은 무인.

이든이 거기에 있었다.

“…해서 후보자 총 일곱 명 가운데 여섯은 그대로 각 지부의 지부장들이 뽑혔으며, 칼스테인 지부는… 이든 길드원이 후보로 선출되었소.”

묘한 적막이 휩싸였다.

지부장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일개 길드원의 후보 선출. 그리고 길드원 전부가 참여하게 된 투표.

예상했던 것과 한참 다른 방향으로 차기 길드장 투표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그중 유력한 후보였던 카일의 표정은 썩어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니까 저자가… 소문의 그 이든이란 거지?”

“맞는다니까. 드레이븐 남작을 때려잡고, 단신으로 테이머 길드를 박살 낸 것도 모자라, 레온하르트 영지를 위기에서 구하고 최근 소문에 의하면 캐슬롯 영지가 완전 개박살 난 것도 저 친구 짓이라잖아….”

동료의 말을 듣던 길드원이 입을 쩍 벌렸다.

“…그거 너무 과장된 거 아니야? 아니, 그게 말이 돼?”

“내가 들었다니까 글쎄!”

“듣기만 한 거지 본 건 아니잖은가!”

“…그, 그야 그렇지?”

“게다가 소문이라는 것이 원래 입에서 입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풀려지는 거 아닌가? 게다가 소문이라고 해 봐야 그 근원지가 어디겠나?”

“그야… 칼스테인 지부의 길드원들이겠지…?”

“그러니까! 소문도 그럴듯해야 소문이지. 자네가 말한 것은 하나같이 과장된 헛소문 같지 않은가.”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동료가 나열한 얘기들이 하나같이 듣고도 믿지 못할 것들로만 가득했으니까.

정작 말해 준 본인조차 믿지 못하는 몇몇 사건들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사실이야.”

등 뒤에서 불쑥 끼어들다시피 들려오는 누군가의 음성.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베리 대장님?”

어쭙잖은 사내는 절로 눈을 내리깔 듯한 다부진 체격의 여성.

버몬트 백작의 영지 지부 소속의 호송 대원 대장 베리가 거기에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전부 사실이야.”

“…베리 대장님? …아! 그러고 보니, 대장님께선 일전 레온하르트 영지 호송 때, 저들과 함께하셨죠?”

베리가 고갤 끄덕였다.

“그래.”

“그, 그럼 혹시…?”

사내가 손가락으로 이든을 가리켰다. 그의 소문이 사실이었냐는 무언의 물음인 것이다.

“나 역시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목격했다. 하지만…. 그것만 보고도 알겠더군. 소문이 절대 과장되지 않았다는걸.”

“그런….”

“그러니 자네들도 조심들 하라고.”

“예…?”

베리의 심드렁한 표정이 점차 기이한 미소와 함께 섬뜩하게 변했다.

“저 친구가 능력은 참 좋은데, 성격은 진짜 개차반이거든. 심지어 귀까지 밝아.”

“…….”

“진심으로 충고하는 데 입조심들 하는 게 좋을걸? 저 친구가 길드장 되면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그러는 거야?”

“흐익…!”

베리의 말을 듣던 사내들이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후보들이 서 있던 곳으로 재차 고갤 돌리는데….

씩….

이든이 입꼬리 한쪽만을 만 형태로 그들을 향해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식겁한 얼굴로 물었다.

“우, 우리 보고 웃는… 거?”

“그런 거… 같은데?”

이든을 향한 사내들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구 흔들렸다.

“드, 들었나…?”

“들은 것… 같은데?”

수백에 달하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그 번잡함 속에서,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자신들을 콕 집어 찾아낸 것인지….

조잘조잘 떠들던 사내들의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그사이, 소란을 자제시키며 앞에선 후보 중 카일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투표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무기명 투표로 진행하겠소… 그럼 잠깐 휴식 시간을 갖고 잠시 뒤에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소. 크흠….”

카일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이내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를 따라 몇몇 지부장들이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게럴드를 포함한 칼스테인 지부 소속 길드원들이 이든에게 몰려들었다.

“크하하! 이러다가 이든이 정말 길드장이 되면 어찌 되는 거야?”

톰슨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유쾌하게 웃어 대며 이든의 등을 팡팡 쳐 댔다.

다른 길드원들 역시 말은 안 해도 혹시 일어날 이변에 꽤 기대들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왜일까.

이든의 표정은 영 어둡기만 했다.

로즈가 걱정되는지 그에게 물었다.

“이든, 괜찮아? 얼굴이 많이 어두운데….”

그녀의 말에 이든이 괜찮다고 입을 떼려 하던 그때, 톰슨이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는 껄껄 웃어 대며 입을 열었다.

“혹시 천하의 이든이 긴장한 건가? 껄껄껄!”

“…하하.”

긴장은 얼어 죽을.

사실 이든은 후보로 나선 순간부터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말고식이었다.

애초에 차기 길드장을 놓고 벌이는 경합엔 큰 관심이 없었단 뜻이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오로지 하나.

이들 가운데 레스타드 길드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흉수를 찾는 것이었다.

게럴드 역시 이든이 무슨 생각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대뜸 다가와 이든에게 물었다.

“누구인 것 같나?”

흉수가 누구인지 묻는 것이었다.

이든의 고개가, 카일과 지부장들이 걸음을 옮긴 쪽으로 돌아갔다.

“저들, 아니겠습니까?”

레온하르트 영지의 크리스 지부장을 제외한 남은 다섯의 지부장들.

게럴드의 얼굴에 난감하단 빛이 겉돌았다.

“저들 전부…?”

이든이 고갤 저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가 흑막과 내통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들이 노리는 게 달리 있겠습니까?”

“음… 맞아. 아마 지금쯤 유니콘 길드를 삼키려 들 생각에 입맛을 다시고 있겠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지부장들이 나간 곳을 한참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이든 쪽으로 고갤 돌렸다.

“…차기 길드장 자리, 자신 있나?”

“자신이요?”

“그래.”

“아뇨?”

응…?

가라앉았던 게럴드의 눈이 금세 휘둥그레졌다.

“자, 자신…없나?”

“아니, 일개 길드원이 후보로 나가면 누가 잘도 뽑아 주겠습니다.”

“잉…? 그, 그럼 자네 대체… 후보로는 왜 나간 건가? 자신 있어서 나갔던 것 아니었나…?”

“왜 나가긴! 지부장님이 추천했으니 나갔죠. 자신감은 무슨! 그것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때야 있는 거죠. 전 그냥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말자는 식으로 나온 건데요?”

하하하….

‘그랬던 거였구나…?’

게럴드의 얼굴에 금세 참담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망했구나, 망했어…! 유니콘 길드가 이리 끝나는가…!’

게럴드가 꼴 같지도 않은 감으로 무모한 선택을 한 과거의 자신을 책망하던 그때.

이든의 입이 재차 열렸다.

“하지만 저들에게 유니콘 길드를 내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 그래…?”

“예. 당선된다면 그것대로 편하게 해결할 수 있어 좋겠지만, 혹여 낙선된다 한들 저들에게 얌전히 길드장 자리를 내주진 않을 겁니다.”

“무슨 방도가 있는 건가?”

재차 진지해진 게럴드의 음성에

이든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방도가 필요합니까?”

“응…?”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저 새끼들을 개박살 내는 한이 있더라도 힘으로라도 빼앗아야지요.”

아….

그거였어?

“세상은 원래 힘 있는 놈이 주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그 뜻이 아닌데?

“힘으로 못 할 게 뭐 있어? 원래 주먹이 더 가깝다 하지 않습니까.”

“…….”

“안 그렇습니까? 지부장님!”

하하하! 그것참!

기막힌 전략일세그려! 하하하!

하하…하… 하아….

‘이든을 후보로 추천한 것이 잘한 짓일까…?’

일순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게럴드였다.

***

“참으로 오만방자하지 않습니까! 제아무리 지부장의 추천이 있었다지만, 제 주제도 모르고 나선다니요!”

“맞습니다! 뭣도 모르고 나서 대는 그 어린 것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나더군요. 물론, 차기 길드장 자리는 어련히 카일 지부장님께서 되시겠지만, 안 그렇습니까? 하하!”

“크, 크흠!”

카일이 낮게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들의 아부가 싫지만은 않은 듯, 그의 입가가 미비하게 씰룩이고 있었다.

카일이 가까스로 참으며 표정을 바로 하고는 진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자자, 다들 진정들 하시구려. 아직 투표 전입니다. 아직 당선된 것도 아닌데, 여러분들께서 벌써들 이리 치켜세우시면 부족한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카일 지부장님, 어찌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맞습니다. 누가 뭐래도 차기 길드장 자리는 당연히 카일 지부장님께서 맡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렴요! 그간 카일 지부장님께서 유니콘 길드에 몸담고 고생하신 세월이 얼마나 기셨습니까!”

“암암….”

“사실 전 이렇게 일이 복잡해진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 게럴드 지부장하고 크리스 지부장들이 괜한 소리들을 해서…! 으휴!”

그럼그럼.

내색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그들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카일이었다. 게럴드와 크리스의 쓸데없는 의견 때문에 쉽게 해결할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던가.

마음 같아선 그들을 따라 두 머저리를 향해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는 속마음을 꾹꾹 눌러 참아 냈다.

카일이 속마음과는 다르게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 거짓된 표정이 가면처럼 덮여 있었다.

“하지만 게럴드 지부장도 그렇고, 크리스 지부장의 말도 일리가 있지요. 실질적으로 우리 지부장들께서 고생하고 계신다지만 그래도 유니콘 길드는… 길드원 모두의 것 아니겠습니까?”

카일의 얘기를 듣던 두 지부장들이 감동한 표정으로 감탄하듯 입을 열었다.

“역시!”

“카일 지부장님은 그릇이 다르십니다!”

“암요. 암요!”

“하하… 그냥 당연한 것을 말한 것뿐입니다. 겨우 이 정도로 제 그릇을 논하긴 저는 너무 부족합니다.”

“크! 겸손도 하셔라!”

“암요. 암요!”

지부장들의 아부에 엉덩이가 들썩이려는 것을 애써 참아 낸 카일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길드장이 되는 것은 결국엔 나니깐.’

일이 귀찮게 되기는 했지만, 카일은 여전히 자신 있었다.

일단 설득 끝에 캐슬롯 영지의 지부장과 오벨슈타인 영지 지부장.

저 두 명의 지부장과 저들 지부의 길드원들의 표까지 보장된 상황이 아니던가.

‘물론 저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가라앉았던 카일의 눈이 두 지부장들을 지나쳐 다른 두 명의 지부장들을 향했다.

카일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버몬트 영지의 지부장과 트럼프 영지의 지부장이 영 탐탁지 않다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눈치 빠른 캐슬롯 지부장이 카일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버몬트 영지와 트럼프 영지의 지부장님들께선 어느 분을 차기 길드장으로 추대하실 생각이시오?”

버몬트 영지 지부장이 어깰 으쓱였다.

“글쎄요. 아직 고민 중이라서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 영지 지부장 역시 다를 바 없는 입장이란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셨군요. 그럼 두 지부장님께서도 저희와 뜻을 함께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뜻을 함께하자고요?”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버몬트 영지와 트럼프 영지의 지부장들이 묻자, 캐슬롯 영지 지부장이 낮게 헛기침을 하였다.

그의 눈이 삽시간에 변하며 욕망 그득한 눈빛을 발했다.

“아시다시피 이게 어디 보통 중차대한 일입니까? 앞으로 유니콘 길드의 향후 수십 년을 책임질 수장을 뽑는 자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요?”

“…해서 여러분들께 제안하는 바입니다. 여기 계신 카일 지부장님을 우리의 대표로 추대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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