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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89/250)

89화.

이든이 길드장으로 취임한 직후, 그는 그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당연했다.

급작스러운 레스타드의 타계 이후. 예정에도 없던 길드장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간 처리하지 못한 일이 산적하여 급히 처리해야 했던 탓이었다.

그중 하나가 칼스테인 영지 소속 호송팀 인원 개편이었다.

이든은 명실공히 칼스테인 영지의 호송팀의 최대 전력이었다.

보통 호송팀이라 하면 팀원 간에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그 부족한 부분에 부합한 능력을 갖춘 인원을 추가하여 메꾸기 마련이다.

유니콘 길드의 호송 업무가 추가된 이후, 모든 지부가 그런 식으로 호송팀을 운영해 왔다.

다만 예외적으로 칼스테인 영지는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나…?

그 이유가 무엇이고 하니.

바로 이든이란 요 기막힌 변수 때문이다.

워낙에 이든이란 인물의 능력이 출중하다 보니 그가 속한 호송팀엔 메꿔야 할 빈틈이라곤 딱히 보이지 않았던 것.

당시 레스타드 길드장은 칼스테인 영지의 호송팀은 여타 영지와 달리 추가 인원을 보충하는 일이 호송팀 개설 초기 이후 일절 없었다고 했다.

본래 호송이라는 것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천만한 일인 만큼 하루가 멀다고 인원 추가를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수도 본부는 보충 인원을 뽑는 대로 다른 지부에 보내기 바빴으니 이는 모든 영지 통틀어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였다.

그만큼 칼스테인 지부에 이든이 끼치는 영향이 실로 대단했단 뜻이다.

하지만….

이든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의 한숨에, 옆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그를 대신해 서류를 살펴주며 사무 일을 돕던 카르엘이 넌지시 물었다.

“이든 씨…. 아니, 길드장님 괜찮으세요?”

아직 입에 붙지 않아 이름을 부르는 일이 종종 있긴 했지만, 급히 호칭을 바꾸었다.

카르엘의 물음에 이든이 솔직하게 답했다.

“길드장의 일이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군요.”

“하하… 그렇죠?”

전생. 그러니까 천마였던 무진이 신교를 이끌던 시절….

말이 천마고 교주지.

재경의 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던 그가 재경 관리를 해 보기나 했겠는가.

실질적으론 재경 각주에서 다 하다시피 했으니, 직접 일선에서 사무 일을 하는 것은 실상 처음이었다.

스윽.

카르엘의 시선이 탁자에 놓인 서류를 향했다.

-칼스테인 영지 인원 현황 보고서.

라고 쓰인 서류를 카르엘은 연신 만지작거렸다.

그녀도 작게 한숨을 한번 내뱉었다.

‘난감하네….’

이든의 공백이 생각보다 큰 탓에 칼스테인 지부에 급히 파견해야 할 인원이 시급했던 탓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에 투입할 인원이 없다는 것.

용병이란 직업이 사실 그렇다.

손실도 쉽지만,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

보통 용병 길드는 인원이 부족하여 급히 머릿수를 채워야 하는 경우, 평소 일면식이 있는 타 길드의 용병을 섭외하여 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유니콘 길드는 조금 달랐던 것이 타 길드의 용병을 거금을 들여 포섭하는 강수를 두는 한이 있더라도 오로지 유니콘 내부 길드원 소속만 현장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원을 보충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카르엘이 넌지시 제안했다.

“내키지 않지만 우선 부족한 인원수만큼 다른 길드에서 보충해 오는 것이 어떨까요?”

그녀의 물음에 이든은 고갤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단호하기 짝이 없는 말투, 카르엘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이든이 재차 입을 열었다.

“용병이란 작자들은 하나같이 거친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예민해진 상황에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가 아닌 외부인이 개입하게 된다면 필시 마찰이 생길 겁니다.”

카르엘은 말없이 고갤 끄덕였다.

당장에 방법이 없으니 그냥 넌지시 제안한 말이었지만, 그녀 역시 용병 출신이었기에 이든의 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 어쩌면 좋죠? 칼스테인 영지는 당장 인원 보충이 필요한 상황인데, 인원을 끌어올 수 있는 지부는 오벨슈타인 영지와 캐슬롯 영지 두 곳뿐이에요.”

“흠….”

이든이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오벨슈타인 영지와 캐슬롯 영지라하면 그의 기억에 분명 카일 지부장을 지지하던 곳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레스타드 길드장을 시해했을 가능성이 큰 곳이란 거지….’

카르엘이 말해 준 두 곳은 카일의 듀란드 공작 영지 지부와 함께 그가 예의주시하고 있던 곳이다.

비록 이든이 길드장 자리에 올랐다지만, 카일과 함께 의기투합했던 그들이 이든의 명을 곧 대로 따라 칼스테인 지부의 인원을 보충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분명 온갖 핑계를 대며 인원을 보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이든이 연신 턱을 쓸었다.

‘차라리 대놓고 명령 불복종이라도 한다면 도리어 일이 쉽게 풀릴 텐데.’

왜?

그땐, 명분이 생기는 것이니 길드장의 권한으로 그냥 힘으로 해결하면 그만 아니던가.

그게 또 그의 전문 분야기도 하고….

‘개뿔.’

이든이 고갤 휘휘 저었다.

‘놈들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지.’

그사이, 뒤로 산적한 서류를 살피던 카르엘의 손이 덜컥 멈추었다.

“어…? 이건….”

한 서류로 향하던 그녀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심상치 않은 그녀의 목소리에 이든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카르엘 씨?”

“…길드장님.”

카르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떠듬거리는 음성이 내뱉어졌다.

“듀란드 지부와 오벨슈타인 지부, 그리고… 캐슬롯 지부에서 성명서를 보냈습니다.”

“성명서요…?”

“이곳 세 곳 지부가… 유니콘 길드로부터 독립한다는 내용이에요….”

***

-수도의 유니콘 길드 본부 숙소.

유니콘 길드 본부에서 운영 중인 이 숙소는 평시엔 여관처럼 운영되고, 유니콘 길드의 소속이라면 누구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세 사람.

카일과 두 명의 지부장이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두 지부장의 표정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 길드장에게 길드에서 독립할 것을 알리는 성명서를 공식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필시 지금쯤이면 이든이란 자도 소식을 접했을 터, 워낙에 초강수이다 보니 막상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두 지부장과 달리 카일의 표정은 상당히 여유로웠다.

카일이 두 지부장을 힐끗 바라보다가 먼저 입을 뗐다.

“아니, 다들 무엇이 그리 걱정이길래 표정들이 그러시오?”

카일의 물음에 연신 한숨을 푹푹 쉬던 지부장들이 도리어 카일에게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카일 지부장님께선 아무런 걱정도 안 되십니까?”

듣던 카일이 입술을 씰룩이며 비릿하게 웃었다.

“걱정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들 잊으신 게요?”

지부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카일을 향했다.

카일이 재차 입을 열었다.

“우리의 배경엔 그분… 듀란드 공작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카일의 말에 지부장들의 얼굴이 일순 밝아졌다.

듀란드 공작이 누구인가.

황제를 제외하곤 명실공히 제국 최고 권력이 아니던가.

게다가 카일의 경우엔 공작의 영지 지부장을 역임 중이다 보니 평소 듀란드 공작과 친분을 쌓고 있던 터였다.

치밀한 카일의 성격상 대책 없이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터, 지부장들의 얼굴이 보다 밝아졌다.

그때, 한 지부장이 확인차 물었다.

“혹… 이번 일을 공작께서도 알고 계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카일이 미소 지었다.

너무도 자신감에 찬 얼굴이었다.

“당연하다 마다요. 제가 어찌 중차대한 일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진행하겠습니까.”

비로소 안심된 지부장들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가 띠었다.

“아아! 역시 카일 지부장님이십니다.”

“카일 지부장님께선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카일이 껄껄 웃었다.

“하하! 이제야 안심이 되는 것이오. 다들?”

카일의 장난스런 물음에 두 지부장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부끄럽지만, 그랬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안심입니다. 카일 지부장님의 계획을 듣지 않았다면 내내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카일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아니, 무엇이 무서워 그토록 떠셨단 말이오!?”

“그것이… 소문에 의하면 그 왜, 이든이란 자의 성격이 원체 개차반이라 하더이다. 뒤도 없이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고 하여… 혹여 독립한다는 성명서를 보고 뛰어오지나 않을지 싶어서….”

듣던 카일이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정말 다들 고작 그런 것 때문에 걱정들 하셨던 것이요? 하하하!”

흡사 광소와 같은 그 웃음에 두 지부장이 멋쩍은 표정을 했다.

그때, 카일이 웃음을 뚝 멈추곤 재차 말을 이었다.

“두 지부장께서도 아시다시피 나는 명실공히 듀란드 공작님의 보호를 받는 이오. 이 사실을 수도에 모르는 이가 없는데, 한낱 길드의 수장이 듀란드 공작님의 눈 밖에 날 짓을 할 대범성을 갖췄을 것 같소이까?”

“…하, 하긴 듣고 보니 카일 지부장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여, 역시…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껄껄….”

그때, 카일의 두 눈에 이채가 띄었다.

차디찬 한기마저 느껴지는 그 광안의 지부장들의 몸이 일순 얼어붙었다.

“게다가… 설령 길드장이 무력으로 제압하기 위해 뛰어온다 한들. 그가 우리 지부의 용병들을 상대할 수나 있을 것 같소이까?”

카일의 의미심장한 말에 지부장들의 눈빛이 말똥해지며 하나같이들 감탄을 일삼는다.

“아아!!! 맞습니다. 맞아요!!!”

의기양양한 카일을 향해 두 지부장이 연신 손바닥을 비벼 대며 아부하기 바빴다.

“저희가 바보 같게도 그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암요. 암요! 카일 지부장님의 용병들은 가히 일당백 아닙니까!”

“용병이라 부르기에도 죄송할 정도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듀란드 공작님께서 친히 추천해 주신 기사 학교 출신들의 무인들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말이 용병이지 실상은 황궁의 기사들과 호적수를 이룬다고 하지 않습니까…!!!”

두 지부장의 말을 듣던 카일의 어깨가 절로 으쓱였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카일이 보유한 지부의 용병들은 듀란드 공작이 추천해 준 일당백의 전사들이었다.

한때는 아카데미에서 황궁의 기사가 되길 희망하던 젊은이들.

하나 번번이 시험에 낙방하여 유급을 받게 된 이들 중 쓸 만한 것들을 모아 듀란드 공작이 카일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었다.

비록 아카데미에서는 퇴학당한 이들이지만, 그래도 전투에 대한 재능만큼은 일반적인 용병들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들이었다.

심지어 몇몇 이들은 용병 일로 실전 경험까지 더해져 기사 이상의 기량을 발휘하는 이들로 넘쳐나는 곳이 바로 카일 지부장 휘하의 용병들이었다.

그 소문 자자한 카일 휘하의 용병이 한 명도 아닌, 오십에 달하는 대인원들이 그의 신변 보호차 수도의 숙소에 대기 중이었던 것.

카일이 이토록 자신만만한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정말이지! 카일 지부장님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새파랗게 어린 길드장을 따를 뻔했습니다.”

“암요! 암요! 껄껄!!!”

그때, 카일이 지부장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든, 그 어린놈이 경거망동하여 우리에게 덤볐으면 하는 것은 저만의 생각입니까?”

“예…!?”

지부장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카일을 바라봤다.

카일이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저의 용병단과 두 지부장님들의 용병들까지 모두 해서 도합 백오십에 달하는 용병들입니다. 가히 황궁의 일개 분대라 해도 무방한 이 병력이라면 능히 유니콘 길드를 탈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헛….”

“서, 설마… 카일 지부장님께서 계획하는 것이 단순 독립이 아니라… 유니콘 길드의 탈환이셨던 겁니까?”

씨익.

놀란 지부장들의 물음에 카일이 비릿하게 웃었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이리 나설 생각이었습니다. 어떻게….”

카일의 번뜩이는 시선이 두 지부장을 훑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두 지부장들이 일순 움찔했지만, 이내 카일과 마찬가지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후후후… 당연히 카일 지부장님을 도와 거사를 일으켜야 하지요.”

“암요! 암요! 다 계획이 있으신데 저희가 감히 숟가락만 올려도 될지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지부장 아니, 카일 길드장님!”

“맞습니다. 카일 길드장님이시지요. 껄껄껄!”

길드장이란 표현이 썩 나쁘지 않은 듯, 카일의 입술이 씰룩였다.

그때, 지부장 한 명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아!! 이럴 것이 아니라 카일 길드장님의 취임을 미리 축하할 겸 축배를 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오! 좋습니다. 그리하시지요. 카일 길드장님~?”

카일이 애써 붕 뜬 표정을 숨기며 난색을 표했다.

“흠흠!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들 이러십니까. 다들!”

“시작이 반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자자, 이미 취임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한잔 받으시지요. 길드장님!”

“흠흠…! 그럼 그럴까요?”

카일이 마지못한 척하며 지부장이 건네는 술을 받았다.

꼴꼴꼴.

어느새 세 지부장의 잔에 술이 가득 따라지고, 캐슬롯 영지 지부장이 먼저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길드장님의 취임을 축하드리며 제가 건배사를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카일의 입술이 씰룩였다.

그가 마지못한 척, 고갤 끄덕였다.

“좋소.”

“무뢰한들의 손에 들어간 유니콘 길드의 탈환과 카일 길드장님의 취임을 축하드리며… 건배!”

“건배!”

쨍.

세 개의 잔이 동시에 부딪히며 맑은 소릴 냈다.

그리고 축하주가 담긴 잔이 그들의 입술에 닿던 그 순간.

콰앙!!!

그들이 있던 숙소의 문이 요란한 소릴 내며 일순 뻥 하고 걷어차였다. 지부장들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어느 겁대가리 없는 녀석이 문을 이리 요란스럽게 열고 들어오는 것이야!!!”

문 쪽으로 시선을 향했던 지부장들의 동공이 놀란 듯 커졌다.

그들의 눈이 향한 곳.

거기엔 너무도 익숙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체격.

착 감긴 눈.

이든이 들었던 발을 땅에 닿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축배를 들고 지랄이야. 뒤지고 싶어!?”

뭐, 어차피 뒤질 거지만.

이득의 얼굴에 마귀와 같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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