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250)

90화.

지부장들은 하나같이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한참의 정적 끝에 이든이 재차 입을 열었다.

“내가 갈까, 아님 너희가 올래?”

가만히 이든의 말을 듣던 카일이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은 잠시 뒤였다.

그가 노기 가득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이보시오. 이게 무슨 짓이오!!!”

이든의 고개가 모로 꺾였다.

착 감긴 눈에 기이한 미소.

거기에 이마에 선 핏대.

모든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든의 비꼬는 듯한 음성이 곧바로 입에서 내뱉어졌다.

“이보시오?”

“……?”

“이이보오시오오?”

“…….”

“다시 한번 말해 봐. 이보시오?”

“…저, 저기, 이든 길드장. 왜 이리 흥분하신 거요. 우리 신사답게 얘기합시….”

“신사는 얼어 죽을!!!”

이든의 주먹이 경쾌하게 날아가 카일의 턱으로 날아가 꽂혔다.

퍼억!

찰진 타격음.

“꿱!!!”

카일의 외마디 괴성과 함께, 그의 몸이 어느새 저만치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휘잉.

날아가는 그를 따라 또르르 움직이던 두 지부장의 눈알이 멈춘 것은 카일의 몸이 벽에 처박혀 나뒹군 뒤였다.

넋이 나간 얼굴로 지켜보던 두 지부장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이런…!”

“카, 카일 길드장님!!!!”

“…….”

“어…?”

지부장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카일을 향해 길드장이라 내뱉다가, 아차 싶은 표정을 하고는 이든을 돌아보았다.

이든이 비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

“내가 아니라, 저 양반 보고 길드장님?”

“…어… 저기… 그… 이든 길드장님, 뭔가 오해가….”

“내가 아니라 저 양반 보고 길드자앙니임!?”

“…사, 살려… 주시오! 이놈의 입이 워낙에 방정맞아서…!”

“그럼 그 입을 벌해야겠구나!”

콱.

휘이이익!

바닥을 밟은 이든의 신형이 그를 향해 번개와 같이 쏘아졌다.

그리고….

퍼억!

“꾸어어어어억!!!”

이든의 발이 막말을 지껄이던 지부장의 입을 냅다 걷어찼다.

걷어차인 턱이 붕 떴다가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던 카일의 바로 옆으로 그의 몸이 처박혀 고꾸라졌다.

고꾸라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카일과 지부장 하나….

멀뚱히 관망하던 남은 지부장의 다리가 파르르 떨려 가기 시작했다.

덜덜덜덜.

이든의 고개가 그를 향해 꺾였다.

천천히 움직이는 고개.

끼이이이.

목이 돌아가며 마치 기이한 소음을 내는 듯한 환청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든의 얼굴을 마주한 지부장이 애써 두려움을 떨쳐 내며 버럭 외쳤다.

그가 이든을 향해 연신 손가락질을 해 댔다.

“이, 이보시오. 이든 길드장…! 이게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이오!!!”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이든의 물음에 지부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호, 혹! 독립 성명서 때문에 그렇다 한들 어찌 이런 무도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그거 말고.”

“…응?”

“너네들 방금 축배 들었잖아.”

“…어….”

“카일 저 양반한테 길드장 취임을 축하드린다며?”

“…어… 그게 그러니까….”

변명 거릴 찾지 못하고 허둥대던 지부장을 향해 이든이 씩 웃으며 나직이 말을 꺼냈다.

“반란이냐?”

“…….”

“…….”

“…죄송합니….”

“죄송은 얼어 죽을!!!”

이든의 주먹이 빛과 같은 속도로 내질러졌다.

쾅!!!!

“꾸어어어…!”

와르르르.

쏘아진 이든의 주먹에 턱주가리가 돌아간 지부장의 입에서 몇몇 이빨들이 쏟아지며 비산하고 있었다.

어느 새의 그의 몸이 카일과 다른 한 명과 지부장이 있는 곳으로 나란히 처박혔다.

우득, 우드득.

지부장들을 한구석에 나란히 뉘어 놨음에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이든이 연신 몸을 풀고 있을 때였다.

우다다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다수의 인기척 에 이든의 고개가 문 쪽으로 돌려졌다.

쾅!

거칠게 열어젖힌 문으로 수십에 달하는 사내들이 달려 들어왔다.

“카일 지부장님 괜찮으십…!!!”

난데없이 위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황급히 달려왔던 사내 중 한 명이 카일의 꼴을 보더니 말을 잇다 말았다.

그리고 카일의 옆 좌우에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지부장들의 모습 또한 보였다.

사내의 눈이 지부장들을 지나쳐 그 앞에 선 이든을 향했다.

사내의 눈이 부릅떠졌다.

“다, 당신은…! 길드장님 아니시오!?”

사내의 물음에 이든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알았으면 그대로 다시 문 닫고 나가.”

제아무리 길드장이라 한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놈에게 저런 말을 듣고도 순순히 나갈 이는 이 중에 없었다.

사내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길드장님… 혹 지부장님들을 이리 만든 것이 길드장님 짓입니까?”

사내의 물음에 이든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에 한가득 짜증이 몰려와 있었다.

“내 말 못 들었나?”

“…무슨?”

어리둥절해하는 사내들을 향해 이든이 씹어뱉듯 말했다.

“나가라고. 어른들 중요한 얘기 중이니까.”

“이…!”

이든의 말이 결정타가 된 것일까.

선두에 사내를 비롯한 뒤에 도열한 사내 수십 명의 눈에 서슬 퍼런 살기가 번뜩였다.

흉흉한 기세를 풍기던 사내 중 선두에 선 이가 한기마저 느껴지는 음성을 내뱉었다.

“어린놈이라 한들 길드장이라 예의를 차려 줬건만, 그 자리에 앉더니 네놈이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러니까. 너네들도 그거냐? 나 죽여서 반란이라도 일으키려고?”

이든의 물음에 사내가 비죽거리며 웃었다.

“못할 것도 없지 않겠소? 그대가 아직 우리에 관해 들어 보지 못한 모양인데, 우리가 그 소문 자자한 카일 지부의….”

뻐어어어억!!!

말을 잇던 사내가 마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고개가 꺾이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쿵.

육중한 사내가 쓰러지고, 그 앞에 이든이 주먹을 털며 남은 사내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거 새끼, 말 한번 드럽게 많네. 칼 쓰는 놈들이 뭔 혓바닥이 이렇게 길어!?”

“…….”

모두 넋을 놓은 그때.

이든이 웃으며 입을 뗐다.

“뭣 해? 드루와!”

사내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 이이! 다들 쳐랏!!!”

“이야아아아아아!!!!”

스릉.

카일 지부 소속의 용병들이 일제히 검을 뽑고는 달려들었다.

그들이 쥔 검에 맺힌 푸른 검기만 보아도 명성에 걸맞게 하나같이들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그야말로 다른 지부 소속에 용병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일당백의 전사들이란 말에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상대가 이든인 점이 문제였지만.

달려드는 수십의 사내들을 향해 이든의 손이 경쾌하게 쏘아졌다.

휘이익, 퍼어어어억!

빡!

퍼어어억!

“꾸에에에에엑!”

“꺼어어어억!”

“꿱!”

눈 한번 깜빡하면 어느새 사내들 대여섯이 공중에 붕 떠 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달려들던 사내들의 눈에도 찰나 경악스러운 빛이 비쳤다.

대체 한 사람에게 몇 개의 팔이 달린 것인지….

하도 빨라 잔상을 만들어 낸 이든의 팔이 수십 개로 늘어나며 사방에 쏘아지는데, 도무지 빈틈이라곤 보이진 않을 무자비한 속도였다.

쿵쿵. 쿵쿵쿵.

공중에 붕 떠 비산하던 사내들의 육중한 몸이 연신 바닥을 나뒹굴었다.

“끄, 끄으으으….”

“으허허어어….”

널브러진 사내들이 저마다 침음성을 흘렸다.

그 모습에 달려들려던 남은 사내들의 움직임이 덜컥 멈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들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반 각도 되지 않던 그 짧은 순간, 오십이 넘던 인원 중 사십이 팔이 꺾이고 다리가 뒤틀린 중경상을 입은 채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훑던 사내들이 하나같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

‘어떻게… 어떻게 우리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세간엔 카일 휘하 용병을 가리켜 능히 황궁의 기사들과 호각을 이룰 수 있다고들 말했다.

그리고 자화자찬이지만, 그들 스스로도 능히 그러리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눈앞의 사내에게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단 말이 더 없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어, 어찌… 눈도 보이지 않는 자에게 이리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단 말인가!!!’

휘두르던 이든의 팔 주위에 보이던 잔상이 차츰 사라지며,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갈 무렵.

한쪽에 쓰러져 있던 카일이 욱신거리는 턱을 부여잡으며 눈을 떴다.

“끄, 끄으으….”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카일이 퍼뜩 소리쳤다.

“게 아무도 없느…. 응?”

아무도 없지 않았다.

모두가 여기 모여 있었다.

대체로 자신과 같은 꼬라지였지만….

사방을 훑던 카일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이제 막 정신을 차렸건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끼기기긱….

이든의 목이 재차 카일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천천히.

소름 끼치도록 기이하게 움직였다.

그의 입가 한쪽이 삐죽 솟으며 미소가 지어졌지만, 그것은 산뜻하게 보이기보단 흡사 마귀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카일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카일이 황급히 무어라 변명을 하려던 그 순간.

이든의 고개가 뒤로 돌아가며 넋 놓던 사내들 쪽으로 향했다.

“어이.”

“……?”

이든이 카일과 지부장들을 가리켰다.

“밟아.”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상황 파악은 너무도 빨랐다.

남은 십여 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지부장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랑합니다. 길드장님!!!!”

“이든 길드장 만세!!!!!!”

“난 전부터 수도로 오고 싶었어!!!”

우르르르!

‘이, 이런 미친…!’

카일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달려드는 자신의 지부 소속 용병들을 바라보며 카일은 입은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굴을 넘어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드는 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퍼억퍽퍼억퍽퍽퍽퍽퍽!!!!

“훌쩍…! 킁! 훌쩍…!”

“스읍.”

이든이 팔을 위로 휙 치켜들자 카일이 황급히 입을 꾹 다물었다.

“사내새끼가 훌쩍이긴. 쯧!”

이든이 혀를 차자 카일이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운 게 아니라 코피가 멈추질 않아서….”

“스으으으으읍!”

“…닥치고 있겠습니다.”

지부장들을 위한 널따란 방, 그리고 그 널따란 방을 꽉꽉 채워 비좁게 무릎 꿇고 있는 다부진 사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든이 다릴 꼬고 앉아 있었다.

이든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조금 전 네놈들이 떠들어 대던 그 윗선이라는 게 듀란드 공작이다. 이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듀란드 공작인가.’

듣던 이든의 얼굴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든이 다시 입을 뗐다.

“길드장 자리를 탈환하겠답시고 대들었던 건 용서해 줄 수 있다.”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일순 방 안을 가득 채운 한기에 카일의 입이 황급히 꾹 다물어졌다.

내내 장난기 가득하던 이든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더없이 살벌하고, 더없이 공포스럽고.

더없이 분노한 얼굴.

‘그’의 얼굴을 떠올리니 줄곧 참아 온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득.

이든의 손에서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차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바짝 선 손등의 핏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카일이 마른침을 삼키곤 힐끔 눈치만 보던 그때, 이든의 입이 열렸다.

마귀의 얼굴을 한 그의 입에서 섬뜩한 음성이 내뱉어졌다.

“레스타드 길드장님 죽인 거. 너희들 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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