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으라차차차차!!!”
“오오오오!!!!”
인부들이 저마다 갈채를 보냈다.
이를 한 몸에 받던 발리스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뿌듯한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쿠웅!!!
발리스타가 짊어졌던 집채만 한 돌덩이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자, 그 어마어마한 무게를 증명하듯 지면이 한 차례 울렸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감탄 어린 함성이 들려왔다.
“젊은 친구가 힘이 아주 대단하구만!”
“그러게 말이야. 아니, 어떻게 장정 서너 명이 겨우 들 수 있는 이 거대한 돌덩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번쩍번쩍 옮길 수가 있는 거야!?”
여기저기 감탄 어린 목소리에 발리스타가 커다래진 콧구멍을 연신 벌렁거리며 실실 웃었다.
그가 배를 쭈욱 내밀었다.
“후후훗! 이 정도쯤이야 껌이죠. 껌!!! 전 어렸을 때부터 힘이 원체 장사였거든요!”
“오오오!!!”
“하긴 이 정도 힘은 타고나야 하는 거야, 훈련한다고 되는 그런 게 아니여!”
“아암! 암!”
그때 인부 중 한 명이 발리스타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아니, 그나저나 자네는 올해 나이가 몇 살이나 되는겨? 얼굴을 보아하니 어려 보이는데!”
“올해로 열일곱입니닷!”
“열일곱!?”
발리스타의 나이를 듣던 인부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시방 자네 나이가 진짜로 열일곱밖에 안 됐다고!?”
“그렇다니까요!”
“대단하구만! 대단해! 아직 열일곱밖에 안 됐다니.”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몸에 좋을 걸 잔뜩 맥였나 봐! 그러지 않고서야 이 나이에 이렇게 장성할 수가 있겠어!”
“아암! 아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며 발리스타는 연신 쑥스러워하면서도 어째선지 쭉 내민 배는 더욱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때, 인부 중 한 명이 조심히 물었다.
“그 혹시 조상 중에 뭐 오우거 핏줄이 있는 건 아니고?”
“에헤이! 오우거는 무슨! 조상이 오우거면 이렇게 잘생긴 얼굴이 나오겠어요!?”
인부들의 시선이 일제히 발리스타의 얼굴을 향했다.
아직 앳된 티를 못 벗은 얼굴이긴 하지만, 확실히 뚜렷한 이목구비가 참해 보이긴 했다.
“하긴! 그것도 그려!?”
“부모님께서 아주 훌륭한 아들 둬서 기뻐하시겠어, 아주!”
“꺄르르륵!”
발리스타가 더욱 어쩔 줄 몰라 하며 실실 웃었다.
한참을 웃던 발리스타가 한곳을 가리켰다.
“저기에 있는 저것들도 다 옮기면 되죠!?”
“헛! 자네 설마 저기 있는 걸 혼자서 다 옮길 생각은 아니지!?”
인부의 말에 발리스타가 이번엔 널따란 가슴까지 내밀었다.
그가 내민 가슴을 한 손으로 팡팡 쳐 댔다.
“에헤이! 이 정도는 저 혼자서도 충분히 다 옮길 수 있다구요!”
“세상에! 역시 대단혀! 장사야 장사!”
“아암! 암!!!”
“꺄르르륵!”
발리스타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연신 웃어 댔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해가 서쪽으로 저물어 갈 무렵.
인부 중 작업반장이 손뼉을 치곤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자, 오늘 작업은 일단 여기까지들 하자고.”
“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구먼.”
“가서 한잔해야지. 고단하구만!”
“그래도 발리스타 저 친구 덕분에 큰일은 수월하게 해결했지!”
“아암! 암!”
인부들이 발걸음을 옮기며 발리스타의 등을 두드렸다.
“고맙네. 젊은 친구!”
“고생했어!”
“뭘요. 내일 또 와서 일하는 것 도와드릴게요!”
발리스타의 말에 인부들이 너털 웃었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고!”
“다들 들어가십셔!!!”
인부들과 인사를 나누곤, 발리스타 역시 본부의 숙소로 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발리스타.”
문득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발리스타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홱 돌아갔다.
“이든 형!? 아, 아니지. 길드장님!!!”
무의식적으로 평소대로 형이라 부르다 발리스타가 황급히 말을 바꿨다. 그 모습에 이든이 씩 웃었다.
“밖에 있을 땐 편하게 불러.”
“하지만 길드장님에게 어찌 감히 형이라 부를 수가…!”
“유난 떨지 말고.”
이든의 말에 발리스타가 힐끗 이든을 보더니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럴까…. 그럼?”
“일단 자릴 옮기자. 한잔 살 테니.”
한잔 산다는 얘기에 발리스타가 환하게 웃었다.
“그거 좋지!!!”
***
벌컥벌컥벌컥!
“크으!!!!!”
잔을 우악스럽게 들고 단숨에 들이킨 발리스타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눈을 찡그렸다.
“역시 우유는 일 끝나고 마시는 우유가 최고지! 아암!!!”
이든이 피식 웃었다.
“오늘 유난 엄청 심하게 떠네.”
“어허! 유난이라니. 내가 오늘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아쇼!”
발리스타가 발끈하며 앓는 소리를 내자, 이든이 황급히 발리스타의 빈 잔을 채우기 위해 주점 주인을 불렀다.
“알았다. 알았어. 여기! 우유 한 잔만 더 주십쇼.”
“알겠네!”
잠시 뒤, 잔에 가득 채워진 우유가 앞에 대령되고 발리스타가 한 모금 더 들이켰다.
탁.
“크으! 좋고!”
“참 나. 무슨 술 마시냐? 주점에서 우유 찾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에헤이! 어쨌든 내주는 거 보면 팔긴 판다는 거 아뇨. 그리고 우유가 뭐 어때서!”
“끙….”
하긴….
파는 거니까 내주겠지.
볼을 몇 번 긁적이던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어떻게, 일은 할 만하더냐?”
발리스타가 앞에 놓인 고기를 씹어 대며 입을 열었다.
“일은 뭐 그럭저럭 버틸 만했는데, 의외였소.”
“뭐가?”
“내 듣기론 길드 내에 호송 인원이 많이 부족하다 들어서 곧바로 거기에 투입될 줄 알았는데. 건설 현장에 투입될 줄은 몰랐거든.”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끝내야 하는 작업이거든. 힘쓰는 친구들이 많이 투입될수록 더 빨리 끝날 테니까.”
“후후. 그것 때문이라면 아주 탁월한 선택이셨소! 내가 들어온 이상, 유니콘 길드에 나만큼 힘쓸 줄 아는 사람은 없지! 암!”
이든이 살짝 웃다가 다시 본래대로 표정을 굳혔다.
이든이 앞에 놓인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곤 말을 꺼냈다.
“네가 오늘 작업했던 그 현장, 그곳이 앞으로 네가 근무하게 될 곳이야.”
“…응?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
“무관 학교.”
발리스타가 고갤 갸우뚱거렸다.
“…뭔 학교?”
“검법, 도법, 창법, 권각술, 기초 군사학. 전투에 있어서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 가르치는 곳. 그리고 학생들의 신분 차별을 두지 않는 곳. 바로 유니콘 무관 학교다.”
“…무, 무관 학교?”
“응.”
발리스타가 벙찐 얼굴로 이든을 빤히 바라보다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기사 아카데미 옆에다가 무관 학교를 짓고 있다고…?”
어처구니없다는 발리스타의 말에 이든이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뭐. 문제 있나?”
“문제야 찾으면 한도 끝도 없이 많겠지…. 그치만! 그걸 떠나서 기사 아카데미에서 가만두겠소?”
“가만두고 안 두고 할 게 뭐 있어? 기사 아카데미랑 대립하겠다고 나도 이 짓거리 하는 거 아냐.”
“그럼….”
“기사 아카데미가 너희에게 그랬던 것처럼 노골적으로 신분의 차별을 뒀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그야…. 자기들도 귀족이니까?”
“그런 거 말고 더 원론적인 거.”
“그, 글쎄…?”
“학생들 대다수가 귀족이기 때문이다.”
“…음?”
“기사 아카데미는 전국에서 열리는 무도 대회를 통해 학생들을 선별하지. 그리고 본선까지 올라 선별된 학생들 대다수가 귀족이야. 너처럼 타고나거나, 어떻게 대진 운이 따라 줘서 평민 신분에 본선까지 올라간 애들이라고 해 봤자 한 학년에 기껏해야 열댓 명이겠지. 그러니 기사 아카데미 입장에선 당연히 귀족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그런데 만약 귀족 자제들의 수가 줄고, 너 같은 출신의 학생들이 늘어난다면…. 과연 지금처럼 그들이 귀족이란 것들의 눈치를 보며 신분의 차별을 두고 수업을 할 수가 있을까?”
듣던 발리스타가 조금은 멍해진 얼굴을 했다.
이쯤 되면 제아무리 발리스타도 이든의 생각이 뭔지 알아차리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설마…. 그러니까 이든 형의 계획은….”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유니콘 길드가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실적 하나 없는 듣도 보도 못한 무관 학교에 귀족들이 자기 자식들을 보낼 리가 없지. 기사가 되기를 꿈꾸지만, 배울 환경이 되지 못하는 이들, 아마도 대다수의 무관 학교 학생들은 평민들로 채워지게 될 거야.”
“그렇지…?”
“우리의 일차적 목적은 이거야. 유니콘 무관 학교를 거쳐 간 수련생들을 기사 아카데미에 대거 입학시키는 것. 그리고….”
말끝을 흐리던 이든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재차 입을 열었다.
“기사 아카데미가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거지.”
“…….”
발리스타가 넋이 나간 얼굴을 했다.
“허, 허허…. 이든 형은 다 계획이 있구려. 아, 아니 근데 말이오. 이든 형의 계획은 그렇다 치고, 내가 그곳에서 할 게 뭐가 있다고 거기에 투입된다는 거요?”
“무술을 가르친다. 후에 무관 학교에 들어오게 될 학생들에게.”
“응?”
발리스타가 우유를 들이켜려다 말고 잔을 든 채 뻣뻣하게 굳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내, 내가 말이오?”
“응.”
“이든 형이 아니라?”
“내가 애들 가르칠 시간이 어딨어? 지금도 바빠 죽겠구먼.”
“그치만, 난 누굴 가르칠 실력이 안 되는데!?”
이든이 씩 웃었다.
근데 왜일까.
얼굴은 웃고 있는데, 보는 사람이 소름이 끼치는 이유는.
이든이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곤 더없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전까지 내가 확실히 교육해 줄 테니까.”
“…이, 이든 형…?”
“너도 강해지고 싶어서 기사 아카데미 들어갔던 거잖아. 그렇지?”
“아, 아니. 뭐 그렇기야 한데….”
“강해지게 만들어 주고 일자리까지 만들어 준다니까!?”
“그, 그건 좋긴 한데… 나도 생각할 시간을 좀….”
“에헤이! 내가 설마 널 죽이기라도 할까.”
“…….”
“물론 죽기 직전까지 가르치기야 할 거지만.”
“형?”
“잘 버텨 보자. 발리스타.”
“혀, 혀엉. 아니 형님.”
발리스타는 그 순간,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이든을 말리고 싶었다.
***
감회가 새롭다.
이든이 손으로 외투를 훑었다.
줄곧 검은 무복만 고집해 오다가, 온몸에 두른 장포가 손에 잡히자 이든이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붉은 비단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색의 실로 등 뒤에 길드의 문양을 수놓은 장포를 걸친 그의 모습은 평소의 수수한 차림과는 다른 멋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장포와 마찬가지로 붉은 비단의 도포가 겉의 장포를 받치고 있었다.
연회복치고 아주 화려한 차림은 아니지만, 붉은색이 주는 느낌 자체가 강렬하다 보니 보다 화려하게 보였다.
이든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게 이럴 때 참 아쉽단 말이지.’
이든이 장포를 벗어 손끝으로 수놓아진 문양을 만지작거렸다.
“얼추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준 것 같긴 한데… 뭐, 맞겠지.”
극도로 발달한 감각이 수놓아진 문양을 어림짐작하게 해 주지만, 그럼에도 눈으로 직접 본 것만은 못하겠지.
“그래도 간만이군….”
그가 특별히 주문하면서까지 장포에 새겨 놓은 것.
그것은 유니콘 길드의 문양이었다.
다만 과거의 유니콘 문양과 차별점이 있다면, 유니콘의 머리가 용처럼 보이는 동물의 얼굴이라는 것.
기괴한 형상의 모습이지만, 이는 나름 그에게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는, 신교와 유니콘의 문양을 합친 것이었다.
똑똑.
그때, 이든이 있던 길드장실의 문이 열리고, 카르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굴곡진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본부에 있는 수많은 남정네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카르엘이 부끄러운 듯 조금 빨개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이든이 재차 장포를 걸치며 고갤 끄덕였다.
“음. 슬슬 가시죠.”
“네. 모시겠습니다.”
카르엘과 이든은 곧바로 걸음을 옮겨 본부 앞, 길드 측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마차 앞에 섰다.
과거, 레스타드 길드장이 이동할 때 쓰던 전용 마차였다.
그들의 모습에, 마부가 걸어 나와 마차의 문을 열어 주었다.
“영광입니다. 길드장님, 저는 마부 도리스입니다.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든이 마차 내부에 오르고, 뒤이어 카르엘이 따라 탔다.
곧바로 마부가 다시 마부석에 올라 수도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유니콘 길드의 마차가 바삐 향하는 곳.
다름 아닌 황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