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목표물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는 백골들.
저벅저벅….
그리고 그 백골들을 바라보던 로브의 사내가 일순 뒤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의 붉은 안광이, 뒤에 발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아는 사람이었던 걸까.
로브의 사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듀란드 공작님.”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듀란드 공작이 백골들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에도 그는 전혀 놀란 기색이 없는 익숙한 듯한 표정이었다.
듀란드 공작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기껏해야 하급 언데드 스켈레톤 아닙니까. 저것들만 가지고 이든 그놈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겠습니까?”
듀란드의 물음에 로브의 사내가 피식 웃었다.
“훗. 하급 언데드요?”
이죽거리는 듯한 그의 말에 듀란드가 의아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아닙니까?”
“그런 것들과는 비교가 안 되지요….”
“음? 그렇습니까?”
듀란드의 시선이 재차 멀어져 가는 백골들을 향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갤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스켈레톤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데….”
“겉으로만 봐선 그렇겠지요. 하지만….”
로브 속 붉은 안광이 한 차례 더 밝게 타올랐다.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저것들은 사람의 뼈로 이루어진 것들이 아닙니다.”
“…응?”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그의 모습에 듀란드가 눈살을 찌푸릴 때쯤. 로브의 사내가 재차 입을 뗐다.
“드래곤의 이빨이지요.‘
듀란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서, 설마. 그것이오…?!!!”
로브의 사내가 고갤 끄덕였다.
“맞소.”
듀란드 공작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재차 백골들을 향해 고갤 돌렸다.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지만, 괴물들이 내뿜는 사기(死氣)는 그들이 있는 곳까지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듀란드가 입술을 뻐끔거리며 중얼거렸다.
“말로만 들었지. 전설 속의 전사들을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스파토이라니. 대체 드래곤의 이빨이 어디서 난 것이오?”
듀란드의 물음에 로브의 사내가 웃으며 되물었다.
“어디서 났을 것 같소?”
그의 물음에 듀란드의 얼굴이 고민할 것도 없이 하얗게 질렸다.
“서, 설마… 그분께서…?”
로브의 사내가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던 그의 얼굴도 어느새 진중해졌다.
“맞소. 그분께서 직접 하사하신 것이오. 우리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하는 저 이든이란 놈을 제거하라고 말이오.”
“…그분께서 자신의 이빨을 직접…!”
로브 속 사내의 붉은 안광이 다시 저 먼발치로 향했다.
스파토이들은 이미 어느 창가 안으로 들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춘 뒤였다.
사내가 로브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그 안에서 익숙한 민얼굴이 드러났다.
기다란 검은 장발에 홍안의 미남.
벨라트릭스 국왕 밸스커드였다.
밸스커드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하며 여전히 스파토이가 사라진 곳을 주시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아무리 놈의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위대하신 분께서 하사하신 스파토이를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요.”
듀란드 역시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아무렴요. 미스릴보다 단단한 뼈, 고위급 기사 버금가는 전투력. 무엇보다 아무리 베이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불사의 몸. 제아무리 지가 날고 기어도 저 불사의 전사들을 어찌하진 못할 겁니다. 후후후….”
그때, 듀란드의 말을 듣던 밸스커드가 물었다.
“그나저나 황궁 안에 시신이 굴러다녀도 괜찮겠습니까?”
듀란드가 무슨 상관이냔 듯한 표정을 했다.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놈은 모든 귀족에게 걸림돌 같은 녀석입니다. 황궁 안에서 죽는다 한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게다가…. 병사들에게 어떤 소란이 일어도 절대 나서지 말라 일러 뒀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잘하셨습니다. 후후후….”
“후후후.”
스파토이는 사라진 지 한참이나 되었건만 정원에 나란히 선 두 사내의 웃음소리는 도무지 끝날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걸림돌이 사라지면, 앞으로 모든 계획들이 무리 없이 진행될 겁니다.”
“아무렴요.”
“후후후….”
***
연회장에 모든 사람이 빠지고, 축제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이든과 카르엘 역시 황실에서 제공해 준 객실로 진즉에 자릴 옮겨 있었다.
역시 황실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두 사람이 쓰기에 부담스러울 만큼 넓은 방 두 개가 있는 객실이었다.
휘청휘청.
얼마나 들이마셔 댔으면 걸음도 제대로 걷질 못했다.
여기저기서 건네는 술잔 덕에 만취한 이든이 휘청대며 걷다가 잠시 탁자 옆 의자에 걸터앉았다.
“후우… 간만에 들이부었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한숨을 크게 내뱉던 이든이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번쩍!
쭉 뻗은 이든의 두 손에 푸른 불꽃이 일순 번쩍였다.
동시에 그가 있던 방 안에 주향이 그득 퍼졌다.
카르엘이 멍한 눈으로 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 물었다.
“뭐 한 거예요…?”
“주독을 날려 버리는 겁니다.”
“주…독?”
처음 듣는 말에 카르엘이 고갤 갸웃거렸다.
듣던 이든이 웃으며 알기 쉽게 덧붙였다.
“숙취요.”
“아아….”
킁킁.
카르엘이 방 안 가득 퍼진 주향을 맡더니 부러운 듯 말을 꺼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저한테도 좀 알려 주시면 안 돼요?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데….”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많이 취하셨습니까?”
“그게… 길드장님 옆에 있다 보니 권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아아….”
이든이 미안한 얼굴을 했다.
“괜히 저 때문에 카르엘 씨까지 고생이군요.”
“길드를 위한 일이니 어떻게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하하.”
이든이 손을 내밀었다.
“팔을 내밀어 보십시오.”
“팔을요?”
“네.”
카르엘이 팔을 내밀고, 이든이 곧바로 그녀의 손목을 찾아 쥐었다.
깜짝 놀란 카르엘의 얼굴이 일순 붉게 물들었다.
“길드장님?”
“조금 생소할 텐데 절대 움직이거나 말도 해선 안 됩니다. 아셨죠?”
“아, 네…!”
잠시 뒤, 손목을 쥔 이든의 검지와 중지 끝에서 발산된 그의 기운이 카르엘의 맥으로 스며들었다.
“……!”
카르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찌 알았는지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아까도 말했지만, 절대 움직여서도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
그의 한마디에 카르엘이 막 입을 떼려다 몇 번 입술을 뻐끔거리고는 이내 꾹 다물었다.
‘대체 뭘 하시려고….’
그녀 입장에선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지만, 사실 이든이 지금 하는 것은 그녀의 주독을 날려 버리기 위한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맥이란 곧 사람의 심장.
심장이란 영혼의 울림이다.
이든은 자신의 기운을 카르엘의 영혼 안에 불어넣은 것이다.
영혼은 곧 생명과도 직결된다.
주독을 날려 주겠답시고 생명을 건든다…?
어찌 배보다 배꼽이 큰 작업 같지만, 그간 이든의 경험이라면 이쯤은 별것 아니었다.
그때.
불안한 눈으로 이든을 응시하던 카르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기가 카르엘의 맥 안에서 청아한 기운으로 바뀌며 그녀의 속 안에 있던 주독을 몸 밖으로 배출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카르엘이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내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그때.
카르엘의 맥을 쥐던 이든이 손가락을 뗐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
입을 쩍 벌리던 카르엘이 떠듬거렸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죠? 방금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맥에 기운을 불어넣어 몸 안에 있는 주독을 모두 화(火)해 날려 버렸으니 내일 숙취로 고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아.”
맥이니, 주독이니, 화니.
알 수 없는 말투성이라 고개만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던 것은 조금 전 이든이 해 주던 그 작업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야밤에 난데없이 고생한 이든이 살짝 흐르는 땀을 훔치곤 입을 뗐다.
“자, 그럼 우리도 슬슬 잘 준비하죠. 내일 아침부터 일정이 바쁘지 않습니까?”
듣던 카르엘이 퍼뜩 정신을 차리곤 고갤 끄덕였다.
“아, 맞아요! 내일 이른 아침부터 폐하와 조찬이 있을 예정입니다. 조찬이 끝나면, 황실에 모든 일정은 마무리되고요.”
황실에 일정이 마무리된단 얘기에 이든이 반갑게 고갤 끄덕였다.
아무래도 연회장에서의 그 잠깐 동안 인사들과 있던 일정이 꽤 고달팠던 모양이다.
“내일 아침만 고생하면 된다, 그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런 길드장의 모습에 카르엘이 살짝 웃어 보였다.
“그럼 내일 일정에 맞춰 아침 일찍 깨워 드리겠습니다.”
“카르엘 씨도 피곤하실 텐데 어서 주무시죠.”
“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길드장님도 안녕히 주무세요.”
“예.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카르엘이 객실 안에 마련된 방 안에 들어가고 이든도 남은 방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장포를 벗어 던지곤 침대에 발라당 누웠다.
“후우. 길드장이란 짓도 신교 수장 자리 못지않게 피곤한 일이군.”
침대에 드러누운 이든이 칭얼대다시피 말하다 막 잠이 들려던 그 순간.
이든이 발작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 사기(死氣)는?’
이든의 기감은 이미 천라망처럼 황궁 전역을 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기감에 비정상적인 사기를 가진 움직임이 포착된 것.
파밧!!!!
사기의 움직임을 살피던 이든의 신형이 침대에서 쏘아져 어디론가 향했다.
벌컥!
이든이 뛰쳐 간 곳은 다름 아닌 카르엘이 있던 방 안.
이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카르엘 씨!”
“꺅!”
“…으, 응?”
“기, 길드장님! 갑자기 이렇게 들어오는 법이 어딨어요!!!”
막 씻을 준비를 하던 카르엘이 발가벗은 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물론 이든의 경우엔 눈이 보이질 않으니 질색하진 않았지만, 부끄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이든이 곧바로 당혹스러워하던 기색을 지우곤 재차 입을 열었다.
“카르엘 씨, 그보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휙.
이든이 카르엘에게 뭔가를 던져 건넸다.
척.
카르엘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익숙한 듯 그것을 낚아챘다.
“길드장님, 이건…!?”
카르엘이 받아 든 것은 다름 아닌 이든의 흑색 검이었다.
“바로 싸울 준비 하세요. 뭔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카르엘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다급히 물었다.
“뭐, 뭐가 오는데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 곧 당도할 겁니다.”
이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쨍그랑!!!!
그들이 있던 객실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왔군.”
이든이 기감이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기척이 없다?’
기감으로 방문 너머 동태를 살피던 이든이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들어온 소리가 났는데, 기척이 없다.
다만 느껴지는 것이라곤 사기(死氣)뿐. 이는 곧 습격한 이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란 뜻이었다.
그때, 이든의 머릿속에 한 기억이 찰나 스쳐 지나갔다.
일전 캐슬롯 영지 때, 길드원들을 습격했던 펑크 상단의 반혼시였다.
‘…설마 그때 그놈들이?’
소란에 급히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은 카르엘이 검을 들고 이든 옆에 섰다.
“길드장님,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카르엘 씨.”
그때, 이든이 카르엘을 슬쩍 밀어 자신의 등 뒤에 세웠다.
“길드장님…?”
“카르엘 씨는 나서지 마세요.”
이든의 두 주먹에 스멀스멀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위험한 것들이 몰려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의 말에 답하듯.
콰아앙!
둘이 있던 방의 문이 굉음과 함께 폭발하다시피 부서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르르르.
부서진 입구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던 카르엘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저, 저건…!”
부서진 문밖, 거기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람의 형태를 한 백골의 모습이었다.
“스켈레톤…!?”
다른 곳도 아닌 황궁에서 때아닌 언데드의 기습에 카르엘이 식은땀을 흘리며 창백해진 안색으로 저도 모르게 칼을 고쳐 잡았다.
꽈악!
검 손잡이를 쥔 그녀의 손에 가득 힘이 들어갔다.
새하얘진 안색만큼이나 꽉 힘을 쥔 그녀의 손 역시 하얗게 질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