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250)

99화.

죽음.

저들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근육 하나 없는, 단지 백골 그 자체인 모습.

하나.

근육을 대신한 사념이 저 백골들의 전신을 지탱하고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덜거덕. 덜거덕.

기이한 뼈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들 주위로 공기가 얼어붙듯 스산한 기운이 객실 안을 가득 채웠다.

그들의 동력은 다름 아닌 사기(死氣).

객실에 비치되어 있던 식물들이 그들의 발길 닿는 곳 주변에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가시화된 사념이 백골의 움푹 팬 눈에서 푸른 안광을 토해 내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한곳에 멈추어 섰다.

그들의 안광이 앞에 있던 두 개의 문중 하나를 향했다.

방의 입구와 가장 가까이 있던 백골이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을 일시에 걷어찼다.

콰아아아아앙.

마치 포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굳게 닫혔던 방문이 산산이 조각나 비산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덜거덕. 덜거덕.

열린(?) 문 안으로 기이한 뼈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는 수십 구의 백골들.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 듯, 그것들이 방 안의 두 사람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들의 먹잇감 중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곤 외쳤다.

“카르엘 씨, 더 뒤로!”

“네…!”

그의 외침과 동시에 선두의 백골들이 땅을 박차곤 일제히 달려들었다.

쐐애애애액!

순식간에 먹잇감 앞까지 뛰어내린 백골들이 일시에 한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가시화된 사념인 그들의 안광처럼 푸른 기운을 머금은 그들의 검이, 어둠 속에서 잔상을 만들어 내며 휘둘러지던 그 순간이었다.

콰르르릉!!! 콰드드득!

방 안에 마치 천둥이 울린 듯한 굉음이 퍼졌다.

동시에 달려들던 백골들을 향해 한 인형의 양팔과 주먹이 쏟아지듯 쇄도했다.

다다다다다!!!! 콰과과광!!!

원체 빨라 잔상까지 만들어 낸, 검은 기운을 머금은 인형의 팔이 백골들을 무자비하게 꿰뚫고 부수기 시작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면 피부가 찢기고, 뼈가 으스러지며 말 그대로 넝마가 되었을 무자비한 권격.

콰득. 콰득. 우직!

우수같이 쏟아지던 주먹에 백골들의 온몸이 부서진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금이 가고 부러진 뼛조각들이 바닥을 나뒹굴던 그때.

백골들을 무자비하게 박살 내던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곤, 자신의 주먹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뼈…?”

-…….

“뼈치곤 너무 단단한데?”

사내의 중얼거림에도 남은 백골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푸른 안광만 토해 낼 뿐.

그때, 사내 옆에 선 여인이 답하듯 대신 입을 열었다.

“스켈레톤.”

“응?”

“저것들은 스켈레톤이란 언데드예요!”

“스켈… 뭐, 아무튼 뼈로 된 괴물이란 거죠?”

“…네.”

“흠. 근데 아무리 봐도 뼈 때리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사내가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뻐근해진 손목을 풀었다.

“…만년한철을 때리는 느낌이었는데. 뭐 상관없나?”

-…….

다시 굳게 쥔 사내의 주먹에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사내가 씩 웃으며 입을 뗐다.

“뭘 멀뚱히 보고만 서 있어?”

백골들의 푸른 안광이 소리가 난 곳을 주시했다.

백골 다섯 구를 일시에 쓰러뜨린 사내,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잘 시간이다. 피곤하니까 빨리빨리 들어와라.”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백골들이 악에 받친 듯 남은 열댓 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쐐애애애애액!!!!

푸른 검기를 머금은 백골들의 검 열댓 개가 오직 이든 한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빈틈이라곤 도무지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목숨을 노리며 사방을 점한 채 달려드는 서슬 퍼런 살기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사각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 빈틈 없는 공격에 일시에 온몸이 얼어붙어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길드장님!!!”

무엇을 상상했던 걸까.

뒤에 있던 카르엘이 저도 몰래 눈을 질끈 감고는 소리쳤다.

그녀조차 갈가리 찢긴 이든의 참혹한 모습을 상상했던 모양이지만….

백골들이 상대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이였다.

입신에 이른 초월자는 시간을 느끼는 감각마저 조절해 낸다.

이든이, 찰나의 찰나까지 시간을 쪼개 냈다.

쏜살같이 흐르던 시간이 일순 느려지듯, 이든을 향해 쏘아지던 검들이 일시에 멈춘 듯 보였다.

그리고 그의 기감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의 위치를 순식간에 잡아냈다.

쪼개어졌던 시간이 이어 붙여지며 느려졌던 검이 서서히 빨라지던 그 순간.

스윽.

이든의 두 발이 홱, 한 곳으로 돌았다.

날아들던 검 댓 개를 단지 발의 위치를 바꾼 것만으로 무위로 돌린다.

이든의 고개가 살짝 꺾였다.

날아든 검 두 개가 그의 얼굴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흩날리던 머리카락만 몇 가닥만 끊어 냈다.

이든의 한쪽 어깨가 뒤로 쭉 당겨졌다. 동시에 가슴이 틀어지며 그의 가슴팍을 향해 찌르려 들던 검날 두 개가 옷깃만을 스쳤다.

부동을 취하던 이든의 팔이 잔상을 만들어 내며 움직인다.

파바바밧!

캉캉캉!

마기를 머금은 두 손이 날아드는 남은 검들의 검면을 쳐 내며 쇠끼리 맞부딪히는 듯한 마찰음을 냈다.

쉬이이이익!

검면을 쳐 냄과 동시에 이든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날아들던 검들의 검로가 갈 곳을 잃으며 기세가 꺾였다.

이 모든 것이 단지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찰나의 순간이었다.

백골들이 휘둘렀던 검이 허공을 가르며 무위로 돌아간 그 순간.

아슬아슬하게 빈 공간을 비집듯이  서 있던 이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손을 대범하게 움직였다.

맹수의 발톱처럼, 이든의 양팔에서 줄기줄기 흐르던 마기가 맹수의 그것처럼 기다란 열 개의 발톱으로 변하며 쇄도했다.

쇄애애액! 촤아아아아악!

‘수라마참조아격.’

검은 발톱이 벼락처럼 쏘아지며 백골들을 말 그대로 찢어발겼다.

콰르르릉!

일수에 쑥대밭이 된 전방. 천마의 초식이 지나간 자리엔 먼지가 그득하게 피어올라 있었다.

‘응?’

두 손에 마기를 거두던 이든이 눈살을 찌푸렸다.

전혀 줄지 않고 그대로인 사기(死氣). 뒤에 있던 카르엘이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기, 길드장님!!! 저, 저것들…! 몸이 다시 붙고 있어요!!!”

“…….”

카르엘의 말대로였다.

후우우우우웅.

백골들이 푸른 안광을 더욱 짙게 토해 내며, 부서졌던 뼛조각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 있었던 자리로 되돌아가 맞추어지고 있었다.

덜거덕.

무서운 속도로 원상태로 돌아온 백골들이 덜거덕 소리와 함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든이 역시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군.”

물론 뼈가 다시 붙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사람 역시 뼈가 부러져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붙길 마련이니까.

다만.

이것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특히나 전생의 그가 알던 반혼시도 강철같은 몸만 지녔을 뿐.

잘린 몸이 다시 붙는다는 얘기는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모습에 의구심만 커져 가던 그때. 카르엘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저것들… 스파토이 같아요!”

“스파…. 뭐요!?

“하, 하지만 스파토이일 리가 없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스파… 아무튼, 그게 뭔데 그래요?”

“스파토이는 겉모습만 봐선 스켈레톤과 흡사하지만, 태생은 전혀 달라요. 왜냐하면… 스파토이는 드래곤의 이빨에서 태어나는 전설 속 몬스터니까요!”

“드래곤?”

이든의 기감이 재차 앞의 스파토이를 향했다.

“저것들이 드래곤 이빨에서 나왔다고요?”

“확실하지는 않아요. 다만 분명한 건 스켈레톤은 아니란 거에요. 그러지 않고선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카르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이든의 몸이 스파토이를 향해 섬전같이 쏘아졌다.

이든의 신형이 날아간 곳으로 카르엘이 넋이 나간 얼굴로 바라보았다.

“길드장님?”

어느새 스파토이의 코앞에 선 이든의 두 손에 재차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 수라마참조아격의 발톱보다 배는 큰 발톱이 솟아 있었다.

이든이 뭐에 홀린 것처럼 웃으며 팔을 휘둘러 댔다.

휙. 휘익. 휘익!

콰르르르릉! 쾅! 쿠우우웅!

몇 번을 휘두르는지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

그것은 마치 광기의 휩싸인 모습이었다.

이든이 어느 때보다 신나는 얼굴로 웃으며 입을 뗐다.

“아무튼, 이것들이 그 드래곤이란 영물의 이빨이다. 그 말 아닙니까!! 그쵸!?!?!?”

“그, 그렇죠…?”

“크하하하하! 이게 웬 횡재야….!!!!”

네?

횡재요…?

카르엘이 벙찐 얼굴을 했다.

그녀의 반응은 상관없다는 듯 연신 팔을 휘둘러 댄 이든의 발톱이 덜컥 멈추었다.

후우우우우웅.

황궁 안에 태풍이 한차례 지나갔다고 믿을 만큼 엄청난 먼지 바람이 걷히고, 그 안에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파토이가 서 있던 자리.

거기엔 잘게 잘린 뼈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뭐 이 정도면 제아무리 스파 뭐시기라도 못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아니에요.”

“응?”

“아까처럼 곧바로 일어나진 않고 있지만, 다시… 붙고 있어요.”

“…음?”

그녀의 말대로였다.

먼지가 걷힌 자리.

뼈는 산산이 조각나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으나 놈들의 사념은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카르엘도 내심 저 정도로 했으면 되살아날 수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

스파토이의 뼈가 바닥을 나뒹군 채로 서서히 붙어 가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카르엘이 고갤 저었다.

“소용없어요. 스파토이는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불사의 존재. 즉 숙주인 드래곤이 죽기 전까진 절대 죽지 않아요…!”

“불사니 뭐니 내 알 바 아닙니다.”

“…길드장님?”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저것들 잡아다가 사골로 끓여 먹을 거니까!”

“…….”

네…?

먹어요? 저것들을?

스파토이의 뼈가 점차 붙어 가려는 찰나 이든의 몸이 재차 그곳으로 쏘아졌다.

그의 손엔 어느새 흑색 검이 검집 채로 들려 있었다.

점차 되살아나는 스파토이의 위에 선 이든이 더없이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아예 되살아나지도 못하게 가루로 만들어 주지. 후후….”

이든이 쥔 흑색 검이 검집째로 빛처럼 휘둘러졌다.

콰과가가강!!!!

“허억…허억… 이 새끼들. 허억허억! 아!!! 단단하기는 더럽게 단단하네.”

이든이 거친 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그의 발밑에 뼛가루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이든이 그 뼛가루를 능숙하게 한 보따리에 쓸어 담아 한쪽 귀퉁이에 내던졌다.

툭.

쌓여 있는 보따리만 벌써 열아홉 자루다. 숨을 고르던 이든의 고개가 한쪽으로 휙 돌아갔다.

“어? 거기 잠깐. 어디 가, 일루 와!”

몰래 방 안을 빠져나가려던 스파토이의 걸음이 덜컥 멈추었다.

-…

푸른 안광을 토해 내는 스파토이.

하지만…

짙푸른 안광이 토해 내던 사기는 이제 한 줌 보이질 않는다.

그저… 그 안에 서글픔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리 와.”

-…….

“안 와?”

-…….

“이 새끼가!”

어찌해야 할까 망설이며 주춤거리던 스파토이를 향해 이든의 몸이 놈을 향해 쏘아졌다.

파아아앗!!!

휘릭!

검집째 쥔 이든의 검이 재차 빛처럼 쏘아졌다.

퍼억퍼억퍽퍽퍽퍽!!!

깡깡깡깡깡!!!!

검집을 쥔 이든의 손이 빠르게, 화려하게 움직일 때마다 스파토이의 두개골에선 철을 두드리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두드리고, 두드리다 보니.

콰득,

콰직.

차츰 강철보다 단단한 그 뼈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가루로 화해 갈 때쯤. 이든이 연신 건친 숨을 토해 내며 신경질적인 음성을 내뱉었다.

“하아하아…! 이런 우라질 같은!!! 뭐 이리 단단해!!!!!”

퍼억퍼억퍼억!!!

“내가, 이 나이 먹고!!!!”

퍼억퍼억퍼억!!!!

“이 미친 짓거리를!!!!”

퍼억퍼억퍼억!!!

“이걸로 눈을 뜰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퍼억퍼억퍼억퍼억!!!

“으아아아아아아아!!!!! 뒤져, 좀 새끼들아!!!!! 뒤져!!!! 뒤져어어어어!!!!”

퍼억퍼억퍼억퍼억뻐어어어어억!!!

지푸라기라도 보이면 잡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 아니던가.

혹시.

정말 혹시나 눈이 뜰까 하는 그 일념 하나로 버텨 온 이든의 매타작은 새벽이 깊어져서야 비로소 끝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파토이의 사기도 귀신같이 증발하였다.

뼛가루만 남은 것이다.

아니, 용 이빨 가루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스파토이 사골국이 효험이 있었냐고?

있긴 개뿔.

그딴 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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