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250)

101화.

소문은 빨랐다.

상부에 보고되기 무섭게 조찬회장에 모인 대신들과 귀빈 모두 ‘그’ 소식을 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연회장에 모인 이들이 짝을 이뤄 제각기 떠들고 있었지만, 가만히 그들의 얘길 들어 보면 대화의 주제는 같았다.

“그 소식 들었소?”

라고 누군가 물으면.

“듣다마다요. 혹 유니콘 길드장 객실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오?”

라는 답이 즉각 들려오는 식이었다.

물었던 이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황궁에 무장강도라니요?”

“누가 아니랍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에…! 하도 믿기지 않아서 듣자마자 제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되묻기까지 했다니까요”

맞은편에 묻던 이가 바로 맞장구를 쳤다.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나저나 소문만 들은 우리가 이 정도인데[, 유니콘 길드장께선 얼마나 더 놀라셨겠소.”

“암요.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좀도둑도 아니고 흉기까지 든 무장강도니 말입니다. 듣자 하니 들어온 무장강도의 수가 적지 않았다면서요?”

“그뿐이랍니까. 실력도 출중한 녀석들이었답니다. 하긴 그러니까 황궁 안에 들어올 간 큰 짓까지 했겠지요.”

“그나마 유니콘 길드장이었으니까 이 정도로 끝난 것 아니겠습니까?”

“어휴! 그럼요. 이든 길드장이야 무도 대회 본선까지 출전했던 실력자니까 이 정도에서 끝난 거지. 보통 사람이었으면 개죽음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하나같이 유니콘 길드장 이든이 겪은 노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 밑에 깔린 속뜻은 황궁에 대한 불신이 무엇보다 가장 컸다.

어디 변방의 영지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 황궁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기거하는 곳.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수백의 병사들과 기사들의 눈을 피해 무장강도가 황궁 안에 들어와 설쳐 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제국에서 가장 철통 보안을 자랑해야 하는 곳이 일개 무장강도들에게 뚫렸으니 불신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조사단에선 뭐라 하는지 혹 들으신 게 있으시오?”

묻는 이의 대답에 맞은편의 대신이 고갤 저었다.

“조사단 역시 무장강도가 어디서 기어들어 왔는지 딱히 모르는 눈치더군요.”

“허! 아니, 가장 중요한 그것을 모르면 도망간 범인들을 어찌 잡는단 말입니까?”

“누가 아니랍니까. 제국의 위상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쯔쯧.”

저마다 황실의 무능함을 향해 혀를 차는 사람들.

화제를 두고 사람들의 원성이 극에 달할 때쯤.

“크흠!!!”

한곳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에 조찬회장이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소란을 잠재운 목소리에 정체.

다름 아닌, 곧 착석할 예정인 황제의 상석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듀란드 공작이 듣다못해 낸 소리였다.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듀란드 공작의 모습에 모두 나불거리던 입을 다물던 그때, 듀란드가 한숨을 길게 푹 내쉬었다.

“하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원성 자자한 소리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긴 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골이 아플 지경이었다.

머리 양쪽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며 문지르던 듀란드의 눈이, 조찬회장의 빈자리 중 하나를 향했다.

유니콘 길드장 이든에게 배정된 자리였다.

그 빈자리를 바라보던 듀란드 공작의 눈에 일순 흉흉한 빛이 인 것은 착각일까.

빠득.

정적에 휩싸인 조찬회장에 듀란드 공작이 이 악문 소리가 다 들려왔다.

작전은 작전대로 실패하고.

그 난리를 겪고 객실 역시 난장판이 됐을 것이다.

분명 무어라 둘러댈 구실이 필요하긴 했겠지….

‘근데 왜 하필이면 무장강도냐고!’

둘러댄 이든 길드장의 증언 때문에 그건 또 그것대로 후폭풍이 거세고.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하지만 더욱이 문제인 것은….

스윽.

듀란드의 눈이 주변인들을 훑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반응이 무엇보다 걱정이었다.

지금만 해도 이 정도인데, 조찬이 끝나고 이들 모두가 궁 밖으로 나가는 날엔….

세간에 이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될 것이다.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다.

‘차라리 이든 그놈을 죽이는 데 성공이라도 했더라면 조금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게다가 필시 황제의 귀에도 이 소문이 들어갔을 터.

조찬이 끝나는 대로 불려 가 노인네의 잔소리를 들을 것을 생각하니 두통이 더욱 심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듀란드가 겹겹이 겹친 문제들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웅성웅성.

정적에 휩싸였던 조찬회장에 다시 소란이 일었다.

그새를 못 참고 다시 떠드는 모습에 듀란드가 짜증 섞인 눈으로 좌중을 향해 노려보려던 그 순간.

찌푸렸던 눈살 속, 그의 시선이 조찬회장의 들어선 이를 향한다.

기다란 붉은 장포로 화려하게 멋을 낸 젊은이.

수려한 외모에 착 감긴 눈.

떡 벌어진 체격에 훤칠한 키까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가 모든 이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있었다.

터벅터벅.

도무지가 장님이라 생각할 수 없는 당찬 발걸음이 궁녀의 안내에 따라 한곳에 멈춘다.

그 모습에 듀란드의 시선도 좀 전에 향했던 빈자리로 향했다.

그가 이를 악물고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든…!”

듀란드는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가뜩이나 실패한 계획과 그로 인한 후폭풍으로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닌 와중에, 그 일을 겪고도 저리 당당하게 등장하는 이든의 모습이 너무도 거슬렸던 탓이다.

하지만 그의 심기를 더욱이 건드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스윽.

듀란드의 시선이 이든의 양쪽에 자리한 사람들을 번갈아 가며 훑었다.

그의 양쪽에 자리한 대신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퍼붓고 있었다.

“아이고! 이든 길드장님, 간밤에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황궁에 무장강도라니요! 많이 놀라셨지요?”

“하하,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리 무사하신 것을 보니 확실히 그 소문이 사실인가 봅니다!”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어떤 소문 말씀이십니까?”

“이든 길드장님의 무위가 거의 신기에 가깝다는 소문 말입니다. 새벽에 무장강도가 수십이 들어왔는데, 털끝 하나 다치신 곳 없이 이리 멀쩡하다니요!”

“맞습니다. 맞아요! 정말 소문대로 대단하십니다!”

“하하, 하늘이 도운 게지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이든의 말을 듣던 대신들이 더욱 유난스러워졌다.

“크… 그 난리를 겪고도 이리 태연하다니요!”

“그뿐입니까. 겸손까지 하시지 않소!?”

입에 발린 소리를 잘도 주거니 받거니 한다.

내내 못마땅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듀란드의 찌푸렸던 눈살이 더욱 깊게 팬 것은 덤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대신 중 하나가 넌지시 물었다.

“그나저나 그 말이 사실이외까?”

“어떤 것 말씀이신지요?”

“이든 길드장님께서 현재 유니콘 길드의 신사업으로 무관 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일순.

완전히는 아니지만 웅성거렸던 소음이 살짝 멎었다.

다들 내색하지만 않을 뿐.

모두가 그들의 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단 뜻이리라.

굳이 숨길 것도 없다는 듯, 이든도 고갤 끄덕였다.

“맞습니다.”

“아!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다른 분도 아닌 이든 길드장님께서 운영하는 무관 학교라!!! 실력은 보증된 셈이니. 많은 학생이 몰려들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맞장구치던 대신이 목소릴 살짝 낮췄다.

그가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하나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무관 학교를 세우시는 것이… 곧 기사 아카데미와 대립하기 위함이십니까?”

소릴 낮췄음에도 조금 전보다 더욱 강하게 찾아온 정적.

그들의 대화를 향한 사람들의 집중도가 극에 달한 순간이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다른 곳도 아닌, 기사 아카데미와 관련된 일이었다.

이곳에 모인 귀족들에게 있어 기사 아카데미는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바로….

대대손손 그들 가문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체제인 것.

다양한 신분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마법사 아카데미와 다르게, 기사 아카데미는 귀족 중심인 곳이었다.

기사 아카데미의 입학은 곧 그들의 자제에게 신분을 계승하는 작업을 뜻하곤 했다.

이든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넌지시 묻고 있지만, 그 안에 자신의 무관 학교를 향한 경계가 깔려 있음을….

이든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대립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래 봤자 작은 무관 학교일 뿐입니다. 어찌 기사 아카데미와 대립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그래요?”

모두가 자신을 향해 집중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금의 상황을 잘 이용해야 했다.

무관 학교 설립 후, 제대로 된 실적을 내기 전까진 구태여 이들의 경계를 살 필요가 없었다.

이든의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가 목소리에 기를 실어 소리를 키웠다.

“게다가 제가 무관 학교 설립을 추진한 진짜 이유는 아슬란 제국을 향한 저의 충성심 때문입니다.”

“충성심이요!?”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그가 재차 힘주어 말했다.

“여기 모인 대신분들께선 아슬란 제국의 힘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난데없는 질문에 좌중이 일순 고갤 갸웃거렸다.

한참 대답이 없던 와중 누군가 넌지시 답했다.

“글쎄요… 그야 강한 군사력 아닙니까?”

“맞습니다. 아슬란 제국의 진짜 힘은 강한 군사력에서 나옵니다. 그 강한 힘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하였기에 지금의 제국이 될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 제국 밖의 주변 반응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주변이요?”

“네. 가령….”

이든이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레온하르트 영지 말입니다.”

그의 예상치 못한 거론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냐는 듯 누군가 재차 물었다.

“레온하르트 공작의 영지 말입니까?”

“네. 지금은 주인 없는 그 영지 말입니다.”

일순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사방이 더욱 고요해졌다.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다들 들으셔서 어느 정도 아시겠지만, 레온하르트 영지는 근래에 들어서야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근처 숲에서 터전을 이뤄 살아가던 엘프들의 도움 덕분에 말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진 당장에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던 것이 현실이었지요.”

“그, 그랬었죠…?”

“비정상적으로 들끓던 몬스터들, 그리고 녀석들은 집착적으로 레온하르트 영지 주변을 배회하며 끊임없이 그곳 성을 노려 왔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말입니다.”

듣던 대신 중 하나가 놀라 물었다.

“혹… 이든 길드장께선 레온하르트 영지가 지금껏 위기를 겪은 것이 누군가 꾸민 짓일 수도 있다. 그 말이신 겁니까?”

왜일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대신의 말을 듣던 듀란드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려 왔다.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건 단지 제 예상일뿐이지만, 레온하르트 영지를 기점으로 해서 제국의 전복을 노린 움직임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웅성웅성.

일순 정적에 휩싸였던 조찬회장에 크게 소란이 일었다.

이든이 말한 바는 절대 가벼이 볼 것이 아니었다.

묻던 대신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 너무 억측이 심한 것 아닙니까?”

“물론 이 역시 예상일 뿐입니다. 다만… 직접 레온하르트 영지 현장에서 싸웠던 경험자로서 의문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것이 말이오?”

이든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온하르트 영지에 출몰했던 몬스터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됐습니다.”

“그게 어떤….”

“흑마법.”

소란이 일었던 회장에 다시금 찾아온 정적.

하지만 여태껏 어떤 정적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적막했다.

이든이 재차 무거웠던 입을 열었다.

“모든 몬스터들에게서 흑마법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듀란드의 눈가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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