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필체는 이를 쓴 사람을 닮는다고 했던가.
천마 무관 학교(天馬 武官 學敎).
그야말로 용사 비등한 필체로 현판에 적인 이 글자는, 검으로 새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유려한 듯 더없는 힘이 느껴지는 글자였다.
필시 이 글을 새긴 이 역시.
더없이 유려하고.
“개뿔…!”
강한 힘을 가진 명사일 것이다.
“그건 맞지…!”
응…?
“근데 유려는 진짜 아니라고오오오…!”
“뭐라 쭝얼쭝얼거려. 아까부터!”
“끄으으으으…!!! 자, 자꾸… 헛것이 들려서어…!!!!”
“쯧!”
발리스타의 말을 듣던 이든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젊은것들이 이렇게 체력이 없어서야. 에잉!”
“…끄으으으으…!!!!”
“수련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헛것이 들린다 난리야.”
‘저, 저기요. 수련을 언제 시작했는지를 떠나서 이건 좀 너무하잖아아아!!!!!’
차마 나오지 않는 목소리.
핏발 가득 선 발리스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러다 진짜 죽는다고오오오!!!!”
딱.
“꾸에에에에엑!!!!”
이든의 흑색 검집이 발리스타의 머리를 향해 툭 떨어졌다.
발리스타의 이마에… 아니, 발리스타의 이마에 난 혹 위에 또 다른 혹이 뽈록 튀어 나왔다.
이든이 노발대발하며 침을 튀기듯 연설을 해 댔다.
“자꾸 엄살 피울래! 내가 일평생 살면서 수련하다 뒤졌다는 놈들을 본 적이 없어요. 본 적이!!!”
뭐요!?
듣던 발리스타가 눈을 회까닥 뒤집었다.
‘당연히 본 적이 없겠지. 눈도 안 보인다는 양반이!!! 보는 게 이상하지!!!’
악에 받친 듯한 발리스타의 속마음은 역시나 목구멍 밖까지 나오지 못하고 소리 없는 외침으로 끝났다.
왜냐고?
‘혹 위에 혹. 그 위에 혹 또 새길 일 있슈!!!’
그리고 차마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던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주변에서 그 못지않은 악에 받친 욕설이 난무하며 들려왔다.
“끄으으으으!!!!”
“이런 쌰아아아아아앙!!!!”
“미친!!!!!!!”
욕설을 내뱉던 이 중 하나가 울분을 토해 내는 듯 말을 내뱉었다.
“내가아아아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오오오!!!! 그냥 지하 감옥에서 콩밥이나 처먹고 있을걸!!!”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연신 악에 받친 듯 음성을 내뱉던 이들의 표정은 흡사 사경을 헤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핏발 가득 선 그들의 눈.
그리고 그들과 같은 모양새로 눈을 부라리던 발리스타가 연신 사방을 훑었다.
“끄으으으으으….”
“이, 이러다 뒤질 것 같아…!”
발리스타를 포함한 연무장에 모인 이들은 다름 아닌 천마 무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될 예비 교두들.
다시 확실히 말하지만, 예비다. 예비.
이들이 연무장에 모여 말 그대로 피땀 흘리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의 교육의 관한 이든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따위 몸들로 교육은 무슨 놈의 교육!!!
-저기 이든 형…. 그따위 몸이라니 다들 하나같이 괜찮구만.
-괜찮아? 괜찮아아아??? 지금 네들 몸을 보고 괜찮다는 말이 나와!?
-그… 이든 형, 눈 안 보이는 거 맞긴 맞지?
-됐고!!! 강한 검술은 강한 신체에서 나오는 법이거늘. 그따위 몸으로 무슨 검술을 갈고닦고, 학생들을 가르쳐!? 선생들이 이 모양 이 꼴인데, 애들이 제대로 배울 수나 있겠어!? 오늘부로 몸만들기 지옥 훈련 들어간다. 그전까진 검술 교육 없을 줄 알어!!!!
라고 해서 시작된 훈련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끄으으으윽. 이, 이보게들…. 나, 난 먼저 가네…!”
“아, 안 돼…. 가지 마시게!!!!”
“아직 가면 아니 되네!!!!”
“아아… 못다 핀 꽃 이리 시드는구나아….”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버티고 버티던 예비 교두 한 명의 초점이 점점 흐려졌다.
그의 눈동자가 뒤로 회까닥 넘어가려던….
그 순간!
“어? 어어어어! 가!? 가긴 어딜 가!!!! 가는 순간 진짜 지옥 가는 거여!!!! 돌덩이 하나씩 더 올리고 싶어!?”
“……!!!”
초점이 명료해지고, 회까닥 넘어가려던 동공이 차츰 제자리로 돌아왔다.
주룩….
그의 눈에 점점 눈물이 차올랐다.
‘어머니… 보고 싶소!’
대체 얼마나 대단한 훈련이길래 이토록 난리인가.
더군다나 그들은 교두이기 이전, 이름 좀 날리던 용병 아니었던가!
삐질삐질.
연무장에 태양이 강하게 내리쬔다지만, 땀이 비 오듯 내리는 이들의 모습은 과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연무장에 도열한 사내들이 울부짖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이든식 하체 훈련 때문이었다.
“끄흐읍!!!”
다시금 새어 나오는 앓는 소리에 이든이 버럭 소릴 질렀다.
“숨 아껴라. 숨! 헐떡댈 체력으로 버티라고. 엉!? 악으로! 깡으로!!!”
부르르….
직각으로 굽힌 그들의 다리가 중심을 잃고 부르르 떨린다.
톡 건들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상황.
기마 자세 하나만 해도 미치고 펄쩍 뛸 상황에….
두둥.
그들의 머리 위로 가히 사람만 한 돌덩이가 올려져 있다.
뭔가 과하다 싶은 훈련이지만, 이들이 아무런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는 이유.
사내들의 시선이 앞의 발리스타를 향했다.
“끄, 끄으으으윽! 이런 미췬!!!!”
자신들과 영락없는 같은 자세.
하지만….
그 위에 올려진 돌이 다르다.
가히 집채만 하다 할 수 있는 크기.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내들의 시선이 발리스타가 들고 있는 돌 위에 앉아 있는 이든을 향했다.
“…끄, 끄으으아아아아!!!!”
괴성을 질러 대는 발리스타.
하지만 그뿐.
어쨌든 쓰러지지 않고 곧잘 버티지 있지 않은가?
듣자 하니 이제 열일곱 된 청년이라는데, 저 어린 친구가 저리 버티고 있는데 그보다 못한 돌덩이를 들고 있는 자신들이 버티지 못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은가?
이든이 연무장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무튼, 한 명이라도 쓰러져 봐. 그때는 내 입에서 1악 1깡이 아니라. 아침, 저녁으로 2악 2깡이 나올 줄 알아. 알았어!!?!?”
듣던 사내들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저러니 어떻게 기절을 하겠냐고…!!!’
발리스타가 번쩍 치켜든 바위에 걸터앉은 이든이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입을 뗐다.
“아까부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하지만, 강한 검술은 강한 신체! 정확히는 강한 하체에서 나온다. 하체의 무게 중심이 제대로 잡혀야 완벽한 검술이 탄생하는 법! 내 예비 교두관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어!? 이른 아침부터! 어? 같이 일어나서 훈련을 봐주고 있거늘! 어찌 이리 나약한 소리를 해 대느냔 말이야!”
듣던 예비 교두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거, 걱정 두 번 하시면 사람 죽겠소. 사람 죽어!’
아무튼 간에….
고문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들의 훈련. 하지만 멀리서 보면 세상 모든 것이 희극이라 했던가.
“워메! 대낮부터 저것이 뭔 짓이다냐?”
무관 학교의 낮은 담벼락 덕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눈을 떼지 못하며 한마디씩 내던졌다.
“다들 웃통을 뱃겨 놓고는 왜 돌덩이들을 들고 지랄들이래?”
“아니, 아직도 못 들었어!?”
“잉? 내가 또 못 들은 것이 있어?”
“이곳이 바로 유니콘 무관 학교잖아!”
“유니콘…? 시방 그 유니콘 길드 말하는 거여?”
“그렇다니까!”
“근데 유니콘 무관 학교라니? 뭐 기사 아카데미 비스름한 건가?”
“에헤 이! 이 사람! 계속 멍청한 소리 할 거야!”
“아니, 왜에 또오!”
“기사 아카데미랑 비슷한 것이 아니라.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 훈련을 시켜 주는 곳이라잖아.”
“시방 그러니까…. 그…. 기사 아카데미 준비하는 입시 학원 같은 거여?”
“그렇지!”
“흠. 그런데 기사 아카데미 입시 학원 같은 것이 필요한가?”
그의 말에 옆에서 듣던 이가 재차 혀를 찼다.
“쯔쯔쯧! 이리 무식해서야!”
“뭣이여!”
“이 양반아, 잘 생각해 봐. 기사 아카데미가 어떤 곳이여!”
“어떤 곳이긴… 예비 기사 맹그는 곳 아녀?”
“그렇지. 그럼 거기에 다니는 학생들은 어떻던가!?”
남자가 고갤 갸웃거렸다.
“학생들!? 그야… 하나같이 대단한 귀족 자제분들 아냐?”
“그렇지! 그 기사 아카데미에 우리 같은 놈들이 다니는 것 봤어?”
남자가 연신 갸웃거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기사 아카데미에 우리 같은 평민 나부랭이가 다니는 것은 못 봤구먼?”
“그렇지! 그럼, 우리 같은 평민 나부랭이가 왜 기사 아카데미에 다니지 못하겠어!?”
“아 그거야. 무도 대회 본선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그렇지! 귀족 양반들이 죄다 본선 들어가니…아?”
남자 앞 일행이 한심하단 얼굴로 손가락질을 해 댔다.
“이제야 이해됐나?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려면 일단 무도 대회 본선부터 찍고 시작해야 하는데, 귀족 자제들이야 워낙 집안 빵빵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검술이니 뭐니 좋은 선생 두고 훈련하지만. 우리 같은 평민들이 언감생심 그런 게 가능키나 해!?”
“하긴…. 천재가 아닌 이상 독학으로 무도 대회 본선은 많이 어렵긴 하지….”
“지금까진 그랬지! 그런데! 유니콘 길드에서 이를 딱하게 여겨 기사가 되길 희망하는 평민들을 위해 교육 기관을 설립했다 이거지. 값싸고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자 말이야! 심지어 위대하신 제국의 황제, 아슬란 폐하께서 친히 자필로 써서 인증된 기관이라고 증명서까지 써 주셨다는군!”
“그래!? 그럼 저기 있는 저 양반들이 학생…. 치고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저 사람들은 교관들이고!”
“아아! 교관!!! 세에상에!!! 시방 그럼 저 교관 양반들이 아침부터 저래 무식하게 훈련 중인 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무도 대회 본선에 진출시키기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일세. 필시 어마무시한 훈련량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만큼 교관들도 강하게 만들겠다는 유니콘 길드장님의 깊은 뜻 아니겠는가!?”
“아하!!! 과연!!!!”
발리스타가 번쩍 들고 있는 돌덩이 위, 살랑살랑 부채를 흔들던 이든의 입꼬리가 위로 말렸다.
씨익.
그의 입가에 더없이 흐뭇한 미소가 걸쳤다.
‘담벼락을 낮게 하길 잘했어….’
줄곧 이든은 훈련을 감시하는 내내 귀에 기운을 집중시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리고 듣던 그가 내린 결론.
그의 예상이 딱 맞아떨어졌다.
대문 크기에 비해 유독 낮은 담벼락.
담벼락이 어찌나 낮은지 고개만 살짝 들면 안이 훤히 다 보일 만큼 사람 키보다 낮은 담벼락이었다.
담벼락이 낮으니, 예비 교두들의 어마무시한 훈련에 시선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다.
이목이 쏠리니 자연히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니 자연히 소문이 퍼진다.
이든이 담벼락을 낮춘 이유가 여기 있다.
영. 업. 전. 략.
최대한 이목을 집중시켜 후에 들어올 학생들을 단번에 대량으로 끌어모으기 위한 그의 고도의 영업 전략이었던 것.
흡족한 얼굴로 만연에 미소가 활짝 핀 이든이 재차 쩌렁쩌렁 외쳤다.
“자자, 훈련 강도 좀 높여 볼까. 지금부터 앉았다 일어섰다. 100회 실시!”
예비 교두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지금…. 우리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미, 미친…!’
‘서 있는 게 고작인데, 지금 뭐라고요!?’
‘아, 앉았다가 일어나라구우!?!? 그게 말이 되냐고!!!’
예비 교두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위로 치켜든 이든의 입꼬리는 하늘에 닿을 듯 올라가 있다.
허허….
돈 벌 생각에 신나서 입꼬리가 하늘에 닿는다니.
그토록 바라던 등선을 이렇게 하게 되는 건가?
“어허! 왜 대답이 없어!? 복명복창 안 하나!!! 앉았다 일어섰다. 200회 실시! 몇 회!”
“2, 200회…!”
“목소리 봐라! 250회!!!! 몇 회!?!?!?!?”
“250회에에에엑!!!!!!!!!”
“좋다. 150회!!!!!”
“악!!!!!!!”
“끄흡! 이, 이든… 형…!”
“응?”
그때, 앞에서 집채만 한 바위를 짊어지던 발리스타가 울상을 지으며 버럭 외쳤다.
“끄흡…! 제, 제발 적당히 좀!!! 네!?!?!?”
발리스타의 볼에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입이 귀에 걸린 이든과는 참으로 대조적으로….
딱!
“꿱!”
발리스타의 이마에 다시금 흑색 검집이 툭 떨어졌다.
새 혹이 뽈록 튀어나왔다.
“악으로. 깡으로!!!!”
“으아아아아아악!”
발리스타의 울부짖음이 연무장 담벼락을 넘어 수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