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09/250)

109화.

퀭….

눈 밑이 거무죽죽해서는 턱밑까지 내려온 것 같다.

도무지 살아 있는 사람 꼴이라곤 보기 힘든 모습들.

천마 무관 학교.

예비 교두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과거 이름난 용병으로 떵떵거리던 태산 같았던 듬직한 모습은 더는 온데간데없고, 볼이 홀쭉해져서는 하나같이들 삐쩍 곯은 모습들이다.

그런 그들의 시선이 눈앞의 음식들을 향했다.

산해진미까진 아니더라도 부족함 없이 차려진 음식들이건만….

어느 누구도 쉬이 음식에 손을 가져갈 생각을 않는다.

“하아…. 내가 살다 살다 입맛이 없을 줄이야….”

“누가 아니랍니까. 도무지가 입맛이 없습니다….”

밥이라는 것도 기력이 있어야 넘어가는 법이다.

꼭두새벽부터 사람 진을 쏙 빼놓는 지옥 같던 훈련 탓에, 밥을 소화시킬 기력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밥숟가락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아….”

그래도 먹어야 살 것 아니냐고?

그렇긴 하지.

근데 문제는….

정말 밥 먹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는 거지.

스윽.

사람들의 시선이 한 사람을 향했다.

웬만한 장정보다는 머리 하나는 훨씬 큰 앳된 얼굴의 청년.

바위도 씹어먹을 듯한 저 산만 한 덩치의 청년, 발리스타조차도 눈앞의 식사에 손 하나 대지 않고 있지 않은가.

또르르.

툭. 툭.

“응…?”

정적 속.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재차 발리스타의 얼굴로 향했다.

“이런….”

조금 전 들렸던 물 떨어지는 소리.

다름 아닌 발리스타의 닭똥 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륵 떨어지고 있던 것.

그를 보던 사람들이 딱하단 듯 혀를 찼다.

“에혀… 얼마나 힘들었으면 다 큰 친구가 눈물을 흘릴까….”

“하긴… 우리 중에 가장 힘이 좋다지만, 그래도 아직 애는 애지. 쯔쯧….”

모두의 이목을 한데 모았던 발리스타는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식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내가, 내가 밥맛이 없다니…. 이 해괴망측한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

그게….

그 정도로…. 울 일이야?

시답지 않은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발리스타를 어처구니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예비 교두들이 다시 앞의 음식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도 먹어야겠지…?”

“아암. 살려면 먹어야겠지…. 이 훈련량에 밥까지 못 먹으면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

끄덕.

저마다 동의한다는 듯 고갤 주억거리며 억지로라도 입 안에 밥알을 쑤셔 넣는다.

우걱우걱.

음식을 씹는지, 숟가락을 씹는지 분간조차 못 하는 듯한 넋이 나간 얼굴들.

그런데 왜일까?

그들 역시 눈가가가 축축하게 젖어 오는 까닭은….

주륵.

전염은 빨랐다.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흑….”

“크흡!”

훌쩍!

눈물 젖은 빵 먹어 보지 못한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 했던가.

여기 비로소 인생을 깨달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

톡톡톡.

무언가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톡톡톡톡.

느리게 두드리던 그 소리는 차츰 빨라지고 있었다.

소리가 들려온 곳. 다름 아닌 이든의 검지가 연신 들렸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앞에 놓은 책상을 두드리고 있던 것이다.

“흠… 이를 어쩐다.”

무엇이 그토록 고민이기에 하지도 않던 짓까지 할까.

한 손으론 책상을 두드리고, 남은 한 손으론 턱을 괸 채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똑똑.

그때, 누군가 길드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못 들은 모양인지, 이든은 여전히 하던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똑똑.

이에 재차 울리는 길드장실.

그럼에도 반응이 없자,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던 문이 살짝 열렸다.

열린 틈 사이로 카르엘이 고개만 빼꼼 내밀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길드장님?”

들려온 목소리에 이든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으, 응? 카르엘 씨?”

이든의 반응에 고개만 내밀던 카르엘이 의아한 얼굴을 하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문 두드리는 소리도 못 들으시고.”

“아…. 그랬습니까?”

이든이 무안한 듯 볼을 긁적여 댔다.

그 모습에 카르엘이 별일이란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엔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기척만 듣고는 바로 ‘들어오세요’라고 잘만 말하던 그가 아닌가.

뭐 간혹가다 그가 고민이 많은 날에는 문을 두드린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두 번 두드린 것도 흔한 일이 아닌데, 오늘처럼 소리조차 못 들은 적은 결단코 없었다.

카르엘이 평소대로 이든의 사무용 탁자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역시나 그녀의 손엔 보고서가 들려 있었지만, 오늘은 왠지 보고서부터 들이밀지 않았다.

카르엘이 나서서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체 무슨 고민이시기에 그러세요?”

“아, 그게 말이죠….”

이든이 말끝을 흐리다 재차 입을 뗐다.

“무관 학교 때문이었습니다.”

카르엘이 고갤 갸웃거렸다.

“무관 학교요? 무관 학교의 어떤 문제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혹 시설에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라도 있으세요?”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시설 관련해선 카르엘 씨가 일일이 확인하셨으니 더없이 훌륭하겠죠. 다만…. 교두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두? 아, 이번에 무관 학교에 배정된 교관들 말씀이시군요.”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다 의아한 듯 카르엘이 고갤 갸웃거렸다.

“근데…. 교두 문제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죠? 예비 교두 모두 정해진 훈련을 잘 따라 주고 있지 않은가요?”

이든이 고갤 저었다.

“단지 따라와 주는 것만으론 안 됩니다.”

“그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체화시키는 거죠.”

“체화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오늘 훈련량만큼 스스로 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이야 제가 잔소리를 해대니까 따라와 주는 거지. 본격적으로 길드 일이 바빠지면 그들 스스로 해낼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제 뜻대로 될지 문제입니다.”

“흠….”

과연….

카르엘이 납득했다는 듯 고갤 주억거렸다.

길드장이란 자리는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지금이야 이든이 붙들고서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이 훈련량을 소화해 내는 것이지….

그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바빠져 신경을 쓰지 못하는 날이 오면 그들 스스로 이 훈련을 계속하기는 할까?

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녀 역시 이든과 고민을 나누며 생각에 잠겼던 그때.

한참 뒤에 카르엘이 먼저 입을 뗐다.

“동기부여….”

“네?”

중얼거리던 카르엘이 확신에 찬 듯한 얼굴로 재차 입을 열었다.

“지금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말이에요. 동기부여에요!”

“동기부여?”

카르엘이 고갤 끄덕였다.

“생각 없이 무작정 세운 목표보다 어떤 특별한 동기로 인해 세워진 목표가 있다면 임하게 되는 자세부터 달라지는 법이잖아요.”

“그러니까 카르엘 씨 말씀은 현재 무관 학교 교두에겐 그것이 없단 말이군요.”

“맞아요. 지금 무관 학교의 교두들은 동기가 없어요. 그냥….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사람들밖엔 없는 거죠.”

“그렇군.”

이든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맞다. 왜 이런 간단한 것을 놓치고 있었지?’

사실 이는 조금만 생각해도 금방 해결될 문제였다.

이든이 생각에 잠겨 전생을 떠올렸다.

신교.

세간엔 마교라 불리었던 그곳.

스스로는 신교라 칭하지만, 그들이 외부인들에게 마교라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강자존.’

그렇다.

한결같이 무림에 절대 고수를 배출해 내는 신교의 유일무이 장점인 그것.

신교는 철저하게 강자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그중 절대 강자는 천마라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세간에 손가락질까지 받아 가며 그들이 철저히 강자존을 고집하는 이유.

바로 동기부여다.

그 자신들에게 있어 강자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신교가 마인들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것이 이것이다.

억울하면 강해져라. 그리고 그들 위에 서라.

그것이 곧 신교의 법이다.

무림의 한 획을 그은 신교의 규칙이라고 보기엔 원시적이지만, 가장 원초적인 것이 가장 큰 동기를 일으키는 법이다.

그렇기에 무진 스스로도 이 악물고 강해지기를 바라 왔고, 그렇게 해서 후보자가 되어 후엔 신교의 일인자가 되지 않았는가?

이든이 고갤 주억거렸다.

카르엘이 아니었다면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것을 영영 모르고 놓칠 뻔한 것이다.

드륵.

이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길드장님?”

“카르엘 씨 덕분에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든은 뭐가 그리도 급한지 바삐 걸음을 옮겼다.

눈 깜빡할 새, 어느새 휑하니 사라진 이든의 모습.

카르엘이 당황한 얼굴로 이든이 비운 자릴 보며 중얼거렸다.

“저, 저기 길드장님… 중요한 보고가 있었는데….”

들을 리가 만무한 그녀의 음성이 길드장실에 의미 없이 울렸다.

***

벌컥!

“자자, 다들 빨리 모여 봐!”

뭐, 뭐야. 저 양반!?

갑자기 저기서 왜 튀어나와!?

어렵게 꾸역꾸역 식사를 마치고 휴식 중이던 예비 교두들의 시선이 숙직실 문 쪽을 향했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던 이든이 어느새 그들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예비 교두들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뭐, 뭐야… 정말 2악 2깡 하려고 그러나…?’

저마다 불안을 삼키지 못하는 눈으로 이든을 바라볼 무렵.

짝짝.

이든이 손뼉을 쳐 주위를 집중시켰다.

“자 교두들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 모두 연무장으로 모이도록.”

응…?

뭘 보여 주려고??

“새로운 훈련법?”

“새로운 고문법 아닐까?”

“아….”

저마다 의문과 불안이 뒤섞인 눈을 하며 이든을 따라 예비 교두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스릉.

쭈욱 둘러앉은 교두를 중심으로 연무장 중앙에 선 이든의 흑색 검집에서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퀭한 얼굴의 발리스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든 형. 아니, 길드장님. 대체 무얼 보여 주려고….”

“힘.”

“…응?”

“힘을 보여 주려 한다. 너희들이 원하는 게 그거 아냐?”

“그게 무슨….”

이든이 입꼬릴 씩 말아 올렸다.

“보면 알아.”

이든이 축 늘어뜨린 검신에서 서서히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검신에 피어오르는 검기.

그것은 가시화된 마기였다.

그리고 이곳에선 이 검기를 이리 부른다.

‘오러’.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해야지만 피워 낼 수 있다는 상급 검수의 증거.

일반적으론 푸른 빛을 띠지만, 이든의 검기는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검은색의 오러였다.

흔치 않은 특이한 빛이지만, 굳이 이것이 오러다. 라고 말은 필요 없었다.

이곳에 모인 예비 교두 모두가 교두 이전에 무인이 아니던가. 그것이 오러임을 몰라볼 리가 없던 것이다.

이든의 늘어뜨린 새하얀 검신이 점차 흑색으로 물들어 갔다.

뚱한 얼굴로 바라보던 발리스타가 재차 입을 뗐다.

“이든 형, 뭐 하는 거….”

“조용히 지켜보기나 해.”

“……?”

장난기 쏙 뺀 이든의 모습에 발리스타가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의아한 얼굴을 하던 그의 눈이 점차 경악으로 번져 간다.

“이, 이건…!”

“세, 세상에…!!!!”

비단 발리스타뿐이랴, 이곳에 모인 모두의 눈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휘둥그레지다 못해 부릅 뜨인 눈.

“저, 저거…그러니까. 저게… 그거 맞지?”

“세상에… 저걸 실제로 볼 날이 올 줄이야.”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을 향했다.

스스스스….

어느새 새하얀 검신은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검신 전체를 둘러싼 검은 안개가 차츰 하나의 형태로 변한다.

검 위에 검을 올린 듯, 몇 배는 커지고 두꺼워진 흑색의 검신.

늘어뜨리고 땅에 닿을 듯했던 백색의 검신은 어느새 커다란 흑색의 검신으로 변하여 연무장 바닥을 뚫고 있었다.

스윽.

이든이 검을 살짝 들었다.

그러자 땅에 박혔던 흑색의 검신 끝자락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진 1장 가까이 자란 흑색의 검신.

이를 본 예비 교두들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 오러…블레이드….”

소드 마스터의 상징.

오러 블레이드가 천마 무관 학교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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