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제국 창설 이래 순수하게 강함. 그 자체로만 따져 전설적인 인물을 꼽자면 누가 있을까?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아마 한결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이미 평범한 인간의 범주는 아득히 벗어났다고 전해지는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 아슬란 황제를 도와 천하를 일통하고 제국을 일으키는 데 가장 큰 활약을 했다는 개국공신이자 제국 최초의 소드 마스터.
하지만 돌연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 레온하르트 공작.
제국 마법사 아카데미의 수장이자, 황실 마법사 중 최고 권위자.
현재 8서클 마법에 통달했으며, 고대의 9서클 마법에까지 손대고 있다고 전해지는 대마법사 듀크 경.
그리고….
현 제국 제일 검.
그리고 제국이 낳은 두 번째 소드 마스터라 전해지는 칼스테인 백작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같이 나열한 모두가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의 정점을 이룬 자들이었다.
그런데….
연무장에 모인 예비 교두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입만 쩌억 벌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
검의 정점을 이뤘다는 소드 마스터의 증명이라 할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가 그들의 길드장이 쥔 검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
한참이나 이어진 정적 끝에 선뜻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 오러… 블레이드… 저거… 오러 블레이드 맞지?”
“…어… 그런 것 같은데?”
“마, 맞지 않을까…? 말로만 듣던 그대로인데…?”
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쉬이 믿지 못하는 이유.
소드 마스터란 존재를 한 번이라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륙 최강의 전력을 보유했다는 아스란 제국조차 보유한 소드 마스터가 칼스테인 백작 단 한 명뿐이다.
이 손에 꼽는 초인들을 만날 기회가 어디 쉽게 오겠는가?
오러 블레이드라고 알아본 것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짐작하여 나온 말일 뿐.
당연코 그들은 오러 블레이드란 형태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해 봤자 검신에 피어오르는 오러 정도였지.
하지만….
그들의 시선이 재차 이든의 검으로 향했다.
희끗희끗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오러가 아닌, 검 위에 검을 덧씌운 듯 크고 두꺼운 완연한 검의 형태.
그리고 조금 전, 휘두르지도 않고 단지 닿기만 했을 뿐인데 연무장 바닥을 종이 자르듯 가른 저 말도 안 되는 위력.
필시 말로 전해 내려오는 그 오러 블레이드가 확실했다.
예비 교두들이 재차 할 말을 잃고 넋이 나간 얼굴들을 하던 그때.
발리스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든 혀… 아니, 길드장님.”
“응?”
“그, 그거… 오러 블레이드… 맞지?”
‘오러 블레이드?’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여기선 검강(劍强)을 오러 블레이드라 부르나 보지?’
그가 어깰 으쓱였다.
‘뭐, 상관없나. 뭐라 부르든지 간에 무도를 걷는 이라면 모두가 목표로 하는 것 아닌가.’
이든이 고갤 주억거렸다.
“맞아. 이게 바로 오러… 뭐시기다.”
“대박….”
발리스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다가 서운한 듯 입을 뗐다.
“아니, 왜 진작 말해 주지 않은 거요!?”
“뭐, 뭐가?”
“소드 마스터였다고 말이요!”
“소드 마스터?”
이든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소드 마스터어? 이름 한번 거창하긴.’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아무튼, 생각보다 열정적인 반응에 나도 꽤 당황했다만, 소드 마스터건 오러 뭐건 간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이든이 검을 들어 올렸다.
검은빛에 오러 블레이드로 감싸진 사람 키만큼 거대해진 검신이 하늘을 향해 치켜세워지자 그 위용이 더욱 남다르다.
웬만한 대검도 고갤 숙일 엄청난 크기.
모두가 넋을 놓고 이를 바라보던 그때,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네들도 나처럼 될 수 있다는 거지.”
“…….”
응? 무슨 말이지…?
“예? 잘 못 들었습니다?”
대부분이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얼굴을 하던 그때, 누군가 먼저 입을 뗐다.
“호, 혹… 우리도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다… 그 말을 하는 거요. 지금?”
“맞아.”
“…….”
재차 찾아온 정적.
하지만 조금 전,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 줬던 상황과는 다르게 두 번째 적막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오러 블레이드가 무슨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곧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을 쏟아 내는 것이 아닌가?
“길드장님, 거 허풍이 너무 심하시오!”
그들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여태껏 두 명이었고, 지금 눈앞의 길드장을 포함한다 해도 기껏해야 세 명이다.
이 넓디넓은 대륙에 다섯 손가락도 필요 없는, 단 세 손가락에 꼽히는 소드 마스터들만이 존재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뜸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 주곤 하는 말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불신 어린 눈이 이든을 향했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오러도 피워 본 적이 없거늘!’
하지만 이는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
이든이 유지하던 오러 블레이드의 힘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거대한 흑색의 검신이 차츰 연기로 화하며 그 속에 새하얀 백색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착.
검을 검집에 꽂아 넣은 이든이 입을 뗐다.
“재차 말하지만, 가능하다.”
“…….”
다시금 찾아온 정적.
하지만 허풍을 듣는 듯했던 아까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교두들의 시선이 그들의 길드장에게 집중되고, 이목을 집중시킨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 그리고 여기 있는 교두들의 노력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 그게… 정말이오?”
이든이 고갤 주억거렸다.
“물론이다. 장담하는데 내가 마음먹고 가르치면 1년 안에 오러 뭐시기까진 아니더라도 오러는 피워 낼 수 있을 거다.”
그의 말에 곳곳에서 경악이 터졌다.
오러라곤 구경도 못 해 본 이들의 소리였다.
이든의 고개가 그중 한 사람을 향했다.
이들 중 누구보다 빛나는 눈으로 이든을 바라보던 한 사람. 발리스타에게로.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인 발리스타 자네 같은 경우엔….”
“…꿀꺽.”
발리스타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겠지.”
발리스타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거칠게 흔들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일정 경지 이상의 무인에게 있어 성장은 남다른 의미이니깐.
그렇지않아도 발리스타 스스로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 않았던가.
어느 순간, 자신의 성장이 정체되어 있음을.
“여기서… 더 성장한다고?”
넋이라도 나간 듯 중얼거리던 발리스타는 기사 아카데미 출신답게 이미 고릿적에 오러를 피워 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벽에 가로막힌 듯 성장이 덜컥 멈추었다.
발리스타가 입을 천천히 뗐다.
“저, 정말로…. 내가 여기서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다. 그 말이오?”
“물론.”
이든이 고갤 끄덕이다 재차 입을 뗐다.
“단.”
이든의 고개가 발리스타에게서 다시 교두 전체를 향했다.
“내 가르침을 따라올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야.”
이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두들이 외쳤다.
“다, 당연히 따라가지!”
“다른 것도 아니고 오러 나오게 해 준다는데!”
“아암!! 어떤 가르침인들 못 쫓아갈까!!!”
“그럼, 그럼!”
반응은 격렬했다.
단 이든이 다시 입을 떼기 전까진.
“정말?”
“……?”
“오늘 훈련량도 겨우 따라오고. 벌써들 죽는소리 해 대면서 진짜 따라올 수 있겠어?”
“……!”
환희의 찼던 예비 교두들의 눈이 다른 의미로 흔들거렸다.
오늘 꼭두새벽부터 있던 그 무지막지한 훈련이 재차 떠오른 것이다.
‘그러니까… 길드장의 가르침이란 게 설마….’
그 고문을 말하는 거야!?
라고 모두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발리스타 역시 마찬가지인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 길드장님, 혹시… 그 가르침이란 것이 아침에 있던 그 훈련을 말하는 것이오…?”
이든이 심드렁한 표정을 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수련이라고 해서 뭐 거창한 것인 줄 알았어?”
“…….”
“다들 큰 착각들 하셨구만.”
이든이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잘 들어. 그 명성 자자하신 칼스테인 백작이란 양반도 그렇고, 그 잘난 아들내미도 그렇고. 세상에 난다 긴다 하는 검수들이 무슨 특별한 방도라도 있어서 그 자리에 올라간 줄 알아?”
“…….”
“전승되는 가문의 검술이니 비기니 뭐니, 그건 그냥 거들 뿐이야. 그들 역시 그냥 남들과 같은 방식의 수련을 했을 뿐이야. 단!”
“…….”
“남들과 같은 방식이되, 남들과 비교 안 될 어마무시한 훈련량을 소화한 거지. 체력 단련 몇 번 깔짝이고 검 몇 번 휘두른다고 오러가 나올 것 같아?”
대답은 없었다.
그저 마른침만 연신 삼킬 뿐.
“그렇게 백날 평생 해 봐라. 오러가 눈곱만큼이라도 나오나!”
“…….”
“최소한 남들이 하는 것보다 배로 해야 오러 아지랑이 쪼금 피어나는 거야. 그리고 남들이 하는 것보다 수십 배 수백 배는 해야 오러 뭐시기 나오는 거고.”
모두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할 무렵.
이든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다시 입을 뗐다.
“교두 이전에 다들 무인 아니야?”
“……!”
“무도를 걷기로 작정했으면 최소한 오러는 한번 써 봐야 하지 않겠어?”
부끄러워 차마 들지 못던 예비 교두들의 고개가 차츰 빳빳하게 들렸다.
바닥을 향했던 눈도 자연스레 빛을 내며 정면을 향했다.
“다른 것 필요 없어. 그냥 오늘 했던 것처럼 날 믿고 따라오기만 해. 그럼… 자네들 검에도.”
“꿀꺽.”
“필시 오러가 따라온다. 내 약속하지.”
“우리… 검에도 오러가….”
이든의 말을 따라 중얼거리던 예비 교두들의 입에서 곧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오!!!! 좋았어!!!!”
“맞아! 내 검에도 오러 한번 피워 보련다. 다들 나 말리지들 말라고!!!!”
“나야말로! 오늘부터 2악 2깡 간다아!!!!”
저마다 다짐을 외치는 무인들.
그들의 가슴속에 동기라는 불꽃이 매섭게 타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든의 연설 이후.
연무장은 재차 훈련 중인 예비 교두들로 북적댔다.
아침엔 그리들 죽을상이더니.
지금은 따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난리다.
이든이 뿌듯한 얼굴로 길드로 발길을 돌리던 그때.
저벅저벅.
“이든 형.”
“…응?”
발리스타의 목소리에 이든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뭐야? 제일 열심히 할 것 같던 녀석이, 왜 훈련 안 하고 있었어?”
“묻고 싶은 게 있소.”
“……?”
평소같이 장난기 넘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발리스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든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뭔데?”
“…나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겠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이든 형하고 나. 겨우 한 살 차이요.”
“…….”
“근데 어제 이든 형이 보여 줬던 모습이 좀처럼 잊히지가 않소. 물론 형이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오러 블레이드는…. 가히 충격이었소. 고작 한 살 차이인데,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만큼의 실력 차 아니오.”
“…….”
“다시 묻겠소. 형들은 저들에게 1년이면 오러를 피울 수 있다 했소.”
“맞아.”
“그럼 난… 1년이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겠소?”
듣던 이든이 역으로 발리스타에 물었다.
“그 전에 내가 묻지.”
“……?”
“오늘 아침에 했던 수련. 하루에 몇 번 할 수 있어?”
“잠자고 밥 먹고 똥 싸는 시간 외엔 전부!”
“그래?”
이든이 턱을 매만지다 천천히 입을 뗐다.
“그게 그렇게 탐이 나더냐?”
“응?”
“오러 블레이드.”
“당연한 것 아니오!!!”
“뭐, 그럼 나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대충 엇비슷하게는 가능할 것 같은데?”
발리스타의 표정이 환해졌다.
“정말이오!?”
“이런 거 가지고 거짓말 같은 거 안 해.”
듣던 발리스타가 환희에 찬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 나도… 오러 블레이드를….”
그때.
산통을 깨듯 이든이 불쑥 입을 열었다.
“뭐 해?”
“응?”
“탐난다며 오러 블레이드. 그러려면 남들보다 배는 넘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릴 시간에 훈련하는 게 낫지 않겠어?”
“으, 응! 그렇지. 그렇고말고!”
발리스타가 퍼뜩 정신을 차리곤 부리나케 연무장으로 달려갔다.
“으랏차차차차!”
연무장으로 달려 나간 그가 어느새 커다란 돌덩이를 짊어지며 기합을 터트리는 소리에 이든이 피식 웃고는 다시 길드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오직 그 자신만 들릴 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1년은 무슨… 반년 안에 가능케 해 주지.”
이든의 얼굴 역시 어느새 결의에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