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250)

112화.

발리스타를 포함, 교두들의 시선이 정면을 훑었다.

“흠….”

“허허….”

정적 속 유일하게 침음성과 헛웃음만이 들려오던 그때.

발리스타 불쑥 입을 열었다.

“뭐, 예상했던 거니까. 그렇죠? 하하….”

어색한 웃음.

하지만 그를 마주 보는 이들의 표정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뭐, 그렇지. 하하하…하하.”

난감 어린 기색이 역력한 표정들 교두의 시선이 재차 훑던 곳을 향했다.

거기엔 이제 막 유니콘 무관 학교에 입관식을 치른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

보고 또 봐도 적응이 되질 않는지 억지 웃음꽃을 피우던 교두의 얼굴엔 재차 넋이 달아났다.

‘와…. 진짜 적응 안 되네.’

조금 전 긍정적인 말을 내뱉던 발리스타조차 더는 할 말이 없는지 볼을 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헤에….”

“여기 다니면 나도 끼사 되는 곤가?”

“와 이 형 진짜 크다….”

“아저띠 우리 여기서 머 해요!?”

아무리 애들이라도 기사가 되길 희망하는 입관생인 만큼 어느 정도 똘똘하고, 기합이 팍 들어간 애들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자꾸 콧물 나와…!”

“으… 디러!”

허허….

발리스타가 타이르듯 입을 뗐다.

“저, 저기… 차렷하고. 콧물도 좀 닦고… 응?”

이건 뭐 하나같이들 얼빠진… 이 아니고.

세상의 때라곤 눈곱만큼도 묻지 않은 순수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교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애들을 가르쳐야 한단 말이지….’

어떻게!?

아니, 가능하기나 한 걸까…?

걱정부터 불쑥 앞섰지만,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

그때, 발리스타와 눈이 마주친 교두장도 퍼뜩 정신을 차리곤 고갤 끄덕였다.

“음!”

이윽고 단상 중앙에 서 있던 교두장이 입관생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그의 목에 바짝 핏대가 섰다.

이윽고 입을 뗀 그에게서 연무장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모두 주모오옥!!!”

이윽고 연무장에 모여 저마다 떠들며 집중 못 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금세 교두장에게 닿았다.

물론…. 기강을 잡겠다는 교두장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의 이목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모두 유니콘 무관 학교에 입관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본 교관은 앞으로 입관생을 책임질 총 교과안….”

“와! 저 아저띠 목소리 짱 크다!”

“쿨럭! 아, 아저씨?”

입을 다물던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저마다 입을 뗐다.

“아저띠 칼싸움 보여 주세요. 칼싸움!”

“아저띠 방금 다시 한번 보여 주세요. 쭈목!”

“야! 아저씨가 아니라 선생님이라 해야지.”

“왜?”

“…몰라! 엄마가 그래야 한다고 해떠!”

“아! 그러쿠나!”

선두에 선 교두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어쩐지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비단 그뿐이랴.

다른 아저씨들.

아니, 다른 교두들도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

듣던 이든이 인상을 썼다.

“뭐!? 아니 그걸 말이라고!”

앞에 발리스타가 억울하다는 듯 열성을 토해 냈다.

“아니, 진짜 완전 답이 없다니까? 도무지 애들이 말을 듣질 않소!”

뭐 그리 간단한 것을 가지고 고민하냐는 듯 이든이 덜컥 답을 내놓았다.

“그럼 굴려.”

“응?”

“애들이라고 눈치 없는 줄 알아? 굴리다 보면 말 잘 듣게 돼 있어.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쯧!”

발리스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가 안 그랬을 것 같소? 진작에 굴렸지!”

“근데?”

“아니 근데…. 애들이 집에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잖아.”

“…뭐?”

이든이 입을 쩍 벌렸다.

“…네?”

옆에서 잠자코 듣던 카르엘마저 믿기지 않는단 얼굴로 쥐었던 펜을 놓쳤다.

이든이 그답지 않게 퍽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집에 간다고 떼를 썼다고?”

“그렇다니깐!”

“…허. 허허….”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기어코 이든 마저 헛웃었다.

‘아니, 입관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 간다고 떼를 쓴다고…?’

도무지 그의 상식에선 이해가 안 가는 행동들이었다.

신교의 수장이었던 시절.

그가 직접 나서서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은 없었지만, 그 역시 하급 마인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마도관의 교육관은 어떻고 어떤 분위기였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마도관에서 훈련이 힘들다고 징징댄다?

‘그날로 단체 기합에 매타작 시작이지.’

신교는 무조건 강자존의 법칙을 따른다.

이는 마도관에 입관한 어린 마인에게도 얄짤 없이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힘들면 더욱 훈련해 매진하라.

그리고 보다 더 강한 신체를 만들어라!!!

그것이 신교의 교육 방식이었다.

뭐, 세간엔 이를 두고 야만적이네, 마귀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라며 혀를 차 댔지만, 이것도 세상이 변하면서 그나마 순화된 것이지.

옛날 고릿적에는 쓸모없는 것들은 천 길 낭떠러지에 던져 버리는 것이 부지기수였다나.

무튼.

지금의 상황은 이든의 상식선에선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든이 지끈거리는 머릴 부여잡았다.

“후우…. 쉽게 볼 일이 아닐 줄은 예상하긴 했지만, 이건 진짜 생각지도 못했는데.”

“…….”

그의 반응에 발리스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치만 보던 그때.

고민을 거듭하던 이든의 입이 한참 뒤에 열렸다.

“굴려.”

“…으, 응?”

“그냥 굴리라고.”

“지, 진짜…? 아니 진짜 굴려?”

“아 그렇다니까!”

이든이 성을 내건 말건 발리스타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했다.

이미 몇몇은 울고 불며 집에 가겠다고 난리 쳐 보낸 뒤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굴리라고?

“구, 굴리면…. 그나마 있는 애들도 다 떨어져 나갈텐데…?”

“어쩔 수 없어. 그래도 굴려야 돼.”

“…괘, 괜찮겠소…?”

“괜찮고 안 괜찮고를 떠나서. 안 굴리면 어쩔 생각인데. 뭐 어르고 달래서 우쭈쭈할 생각이었어? 여기가 무슨 보육 시설인 줄 알아?”

“그, 그렇긴 하지만… 그럼 정말 얼마 안 남을 텐데.”

“아무래도 코흘리개들만 모였으니 그럴 만하겠지. 그래도….”

말끝을 흐린 이든이 재차 단호히 입을 뗐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입관생이 몇 명이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스스로 기사가 되길 희망하는 진짜 알짜배기 입관생들. 부모에게 이끌려 마지못해 들어온 애들이 아닌, 진짜 이 악물고 피땀 흘릴 준비가 된 악바리들이 필요하다.”

“그… 길드장님 말씀이 정말로 맞는 말이긴 한데. 어찌 됐든 돈을 벌려면 입관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오? 그래 가지고 유지가 되겠소?”

듣던 이든이 피식 웃었다.

“유지? 당연히 안 되지.”

발리스타가 화들짝 놀랐다.

“그, 그럼 안되는 거 아니요!”

“중요한 건 당장 눈앞의 이익이 아니야.”

“…응?”

“지금 무관 학교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이익보단 실적이다.”

“실적?”

발리스타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연신 고갤 갸웃거렸다.

전혀 모르겠단 발리스타의 말투에 이든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놈아, 실적을 쌓아야 명성이 쌓이고 무관 학교에 명성이 쌓여야 그만큼 더 많은 입관생들이 들어올 거 아니야.”

“그, 그렇지?”

“근데 지금 유니콘 무관 학교에 개뿔 뭐가 있기라도 하냐?”

“없지?”

“그러니까 지금 입관생 수가 이 모양 이 꼴인 거라고. 들어오겠단 애들도 그 모양이고.”

비로소 이해했다는 듯 발리스타가 고갤 주억거렸다.

그러나 그의 고개가 곧 갸우뚱해졌다.

“그런데… 명성을 어떻게 쌓게…? 길드장님이 길 한복판에서 오러 블레이드라도 보여 줄 셈이요?”

이든이 인상을 썼다.

“누굴 광대로 아나?”

발리스타가 마주 인상을 썼다.

‘이익! 전엔 우릴 광대처럼 홍보로 썼으면서…!’

물론.

그의 마음속 외침은 절대 입 밖으로 나올 일은 없었다.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아무튼,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일단 알짜배기들만 추려내 줘. 내 작전을 짜 놓은 것이 있으니.”

“…그, 그렇소?”

대체 그가 말하는 작전이란 게 무엇일까. 발리스타 입장에선 이든이 자세히 말해 주지 않으니 영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왜일까.

턱을 매만지던 이든이 입을 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곳에서 미끼를 잘 던져 줘야 할 텐데 말이지.”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를 발리스타는 그저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원….’

***

“으음.”

침음성을 흘리는 아스란 황제의 눈은 도무지 찻잔에서 떼어질 생각을 못 했다.

‘이를 어쩐다….’

무엇이 그토록 고민일 걸까.

차는 이미 진즉에 식었건만, 찻잔의 손잡이를 쥔 그의 손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의 착 가라앉은 눈이 잔에 담긴 물을 향했다.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그의 눈이 맑은 물 표면에 비쳐 떠오르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비록 지금의 모습에선 찾아볼 수 없지만, 한때는 사활을 건 결단으로 대륙 전반을 일통하고 제국의 황제가 된 그였다.

만인의 위에 군림하였던 그조차 쉬이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고민.

대체 어떤 고민이 그를 망설이게 하는 걸까.

아슬란 황제는 일전 한 서신의 내용을 떠올렸다.

-훗날 황위를 이을 태자께 새 세상을 안겨 주고 싶다 하셨지요.

하지만 만만치 않은 일임을 폐하께서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제게 좋은 방도가 있습니다.

황실을 농락하고, 좀먹는 세력의 힘을 빼놓을 계책입니다.

우선 그것부터 시작하시지요.

더없이 옳은 말이었다.

하지만.

서신의 마지막 구절이 자꾸만 걸렸다.

-기사 아카데미와 유니콘 무관 학교 사이에서 분란을 조장하여 주십시오.

찻잔에 담긴 물에 고고히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니콘의 길드장 이든.

서신에 적혔던 황실을 좀먹는 세력의 힘을 빼놓을 이든의 계책.

바로 현 계급 체계에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끼치는 기사 아카데미의 힘을 분산시키자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은….

‘친선 비무라니. 이게 진정 말이나 되는 소린지….’

기사 아카데미와 그곳에 입시를 위한 학원쯤 되는 무관 학교의 친선 경기?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기사 아카데미가 어딘가.

무도 대회라는 치열한 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한 기재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 기재들을 상대로 유니콘 무관 학교의 코흘리개들과 친선 경기?

아마 기사 아카데미에선 콧방귀를 뀌며 들은 척도 안 할 것이다.

‘물론 내 힘이라면 성사시킬 수 있는 것은 일도 아니지. 하지만… 이건 너무 말이 안 되는 대결이지 않은가. 유니콘 길드장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 유니콘 길드가 친선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쥔다면…? 그리고 그곳에 출신들이 기사 아카데미에 대거 입학하게 된다면?’

눈에 보이는 당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나.

‘현 계급 체계 기반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는 훗날 황위를 이을 태자에게 더없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다만.

그의 계책엔 한 가지 이면이 있었다.

‘나에게 독을 푼 놈들의 힘만 빼는 것이 아니야. 귀족 전체의 힘을 빼놓게 된다.’

고요한 정적 속,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던 중.

물 표면에 떠올랐던 그의 눈에 별안간 빛이 발했다.

‘해야 한다. 어찌 됐든 황실을 좀먹는 고인 것들의 힘을 빼놓을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분명 생각이 있겠지.’

아슬란 황제가 이내 묵묵히 있던 잔을 쥔 손을 들어 올려 다 식은 차를 단숨에 넘겼다.

생각을 마친 그가 문 쪽으로 고갤 돌려 밖을 향해 쩌렁쩌렁 외쳤다.

“밖에 있느냐!”

그의 목소리에 신하가 황급히 들어왔다.

“예. 폐하!”

“가서 듀란드 공작을 불러오거라.”

“듀란드 공작을 말입니까?”

“그래. 내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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