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예…?”
모든 기사에게 영원한 스승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는 이.
기사 아카데미의 교장 루시우스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입술로 가져가던 찻잔을 쥔 그의 팔이 얼어붙은 것처럼 도중에 덜컥 멈추었다.
그리고 그의 앞.
뭘 그런 걸 가지고 놀라냐는 듯 능청스레 차를 마시는 이.
듀란드 공작이 향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곤 재차 입을 뗐다.
“뭐 그리 놀라는가?”
“…아니. 당연히 놀랄 일이지요.”
루시우스의 반응에 듀란드가 피식 웃었다.
‘훗. 하긴…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지.’
조금 전, 루시우스 교장은 듀란드 공작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제의를 받았다.
바로 유니콘 무관 학교와 아카데미와의 친선 경기를 열자는 것.
사실 루시우스 교장은 유니콘 무관 학교에 관해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최근 길드장이 됐다는 이든이란 자의 명성을 어렴풋이 듣긴 했지만, 그의 주변엔 그만한 명성을 떨친 이들이 차고도 넘쳤다.
당연히 별 볼 일 없는 이라 생각했고, 그런 이가 세운 무관 학교 역시 별 볼 일 없다 여겼다.
그런데 불쑥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유니콘 무관 학교와 친선 경기를 추진하자니….
당연히 루시우스 교장의 얼굴이 탐탁지 않을 만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고고히 차를 마시는 사내. 듀란드 공작은 결코 헛된 일에 시간을 쏟는 사람은 아니었다.
필시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루시우스 교장이 어색한 기색의 표정을 지우곤 물었다.
“이유가 뭡니까. 이해는 안 가지만, 공작님께서 그들과 친선 경기를 제안한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요.”
“이유. 이유라… 사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세.”
“예? 그럼 대체 왜….”
“다만, 그곳을 영 탐탁지 않게 보시는 분이 있다네. 그분이 누구일 것 같나?”
듀란드의 물음에 루시우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루시우스가 아는 선에선 듀란드 공작이 그분이라 칭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설마. 폐하께서…?”
듀란드는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의 반응에 루시우스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폐하께서 왜 저들을 신경 쓰신단 말입니까?”
“글쎄. 아무래도 영 거슬려서 그런 것 아니겠나?”
“거슬려서요?”
탁.
루시우스가 되묻자, 듀란드 공작이 향을 음미하며 한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앞에 놓았다.
그의 눈이 루시우스를 향했다.
“터놓고 얘기하세. 지금 기사 아카데미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가 뭔가?”
“그야.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을 발굴하여 그들을 훌륭한 기사로 성장시키기 위해….”
“쯧. 난 그런 교과서적인 대답을 듣고자 물은 것이 아니네. 진짜 본질적인 이유 말일세.”
“…허어.”
기어코 루시우스의 입에서 침음성이 나왔다.
설마하니 이런 얘기를 터놓고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루시우스가 무겁던 입을 뗐다.
“그야. 권력의 대물림 아닙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자네도 지금껏 아카데미를 그에 맞게 운영해 오지 않았나?”
“크, 크흠!”
치부를 들킨 것 같아 살짝 얼굴이 붉어진 루시우스가 괜한 헛기침을 했다. 그의 반응에 듀란드가 피식 웃었다.
“창피한 일이 아닐세. 자네가 그만큼 영리하게 일을 잘하고 있다는 방증이지.”
“흠.”
루시우스가 한결 편해진 얼굴을 했다. 듀란드 공작이 재차 입을 뗐다.
“일전 유니콘 길드장이 조찬 때 그러더군. 유니콘 무관 학교에 설립 이유는 본 제국의 힘을 기르기 위한 인재 발굴이라고. 헌데… 난 또 다른 속내가 있다고 보네.”
“속내요?”
“바로 권력의 대물림을 막고자 하는 것.”
“…….”
“가능하다고 보는가?”
루시우스 교장이 피식 웃었다.
“설마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한계가 명확합니다. 본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대다수가 귀족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오직 그들만이 좋은 스승을 두고, 좋은 교육을 일대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평민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그런데 일대일도 아닌, 일 대 다수 교육으로 그만큼의 효율을 낸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
“뭐, 교관들이 훌륭하다면야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애초에 저곳에 그런 교관들이 있을 리도 만무하죠. 어디서 어중이떠중이 용병들이나 모아 왔을 테니까요.”
“자네 얘기가 맞아. 하나같이 틀린 구석이 없어. 그런데 말이야… 세상일이란 게 늘 뜻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
듀란드의 의미심장한 말에 루시우스의 눈썹이 미비하게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일세. 쉽게 말하자면 만에 하나를 상정해 두면 좋겠다. 그 말이지.”
“흠.”
하긴.
공작의 말 역시 틀린 것은 없었다. 준비란 늘 철저하게 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천천히 고갤 끄덕이던 루시우스 교장이 넌지시 물었다.
“해서 생각하신 것이 친선 경기로군요. 아예 저들이 예선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맞아. 제대로 망신을 줘서 아예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게 싹을 밟자는 것이지. 아마 폐하께서도 그런 생각으로 이 일을 추진하자 하신 게 아니겠나?”
“과연….”
비로소 납득하는 루시우스의 모습에 듀란드가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물론 자네에겐 영 탐탁지 않은 제안이라는 것을 아네. 얻을 것이 없는 제안인데 이를 쉬이 받아들인다는 게 도리어 더 이상한 법이지.”
“맞습니다.”
“하지만 유니콘 무관 학교를 계기로 해서 저런 것들이 더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수도는 유행에 민감한 편일세. 분명 너도나도 따라 하겠답시고 저런 것들이 하나둘 늘어날 수도 있다. 그 말이야.”
그럴듯한 얘기였다.
루시우스 역시 동의하는 듯 짐짓 고갤 끄덕였다.
듀란드가 눈을 빛내며 살짝 웃었다.
“그러니 뭐, 조금 귀찮은 일이지만, 애초에 싹을 밟는 것이 낫지 않겠나?”
“…….”
마지막 날린 회심의 한마디를 듣던 루시우스 교장이 고민하는 듯 눈을 감았다.
듀란드 공작은 그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탁.
듀란드 공작이 마시던 차가 전부 비워질 무렵 루시우스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렇게 하시죠.”
“잘 생각했네. 그럼 친선 경기에 보낼 1학년 아이들을 모아 주게.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좋아. 어찌 됐든 저들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나? 물론 결과는 빤하지만 말이야. 후후후….”
“뭐 준비할 게 있겠습니까. 1학년 중에 하위권 애들만 선발해도 충분할 겁니다.”
“하긴. 후후.”
“훗.”
음모를 꾸미는 이들.
저들이 나아가는 곳이 괴물의 아가리 속이라는 것도 모른 채,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그들이었다.
***
“훌쩍!”
“…….”
“훌쩍!”
“…….”
“…힝.”
“하아….”
“훌쩍…!”
“조용히 좀 해!”
“그치만….”
“그럼 너도 다른 애들처럼 나가든가!”
“…그건 안 돼.”
“그럼 참든가!”
“그치만 힘든걸….”
“그럼 어쩌라고!!!”
아이가 참다 참다 소릴 질렀다.
옆에서 내내 훌쩍거리는 애가 영 신경 쓰였던 탓이다.
버럭 화를 내던 아이가 몸을 휙 돌리곤 이불을 뒤집어썼다.
‘누군 안 힘든 줄 아나….’
“훌쩍.”
‘…….’
“…훌쩍!”
‘…나도 집에 가고 싶다고.’
“훌쩍!”
“훌쩍….”
이윽고 옆에서 내내 훌쩍이는 소릴 듣던 그 아이마저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염은 빨랐다.
곧이어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왔으니까.
눈물을 삼키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있는 곳은.
유니콘 무관 학교의 생활관이었다.
‘후우…. 언제까지고 울 수만 없어. 그럴수록 더 집에 가고 싶은걸….’
조금 전 버럭 화를 내던 아이가 이불을 걷어 내리고 주변을 훑었다.
‘다들 나가고. 이젠 열 명밖에 안 남았어….’
본래는 꽉꽉 들어차 있던 생활관.
총 오십을 넉넉히 수용할 수 있는 넓이의 생활관이었지만, 이제 남은 사람이라곤 자신을 포함해 고작 열 명이었다.
‘…….’
훌쩍이던 소리가 차츰 멎어 들고.
저마다 하나씩 잠이 들 때쯤.
마지막까지 잠이 들지 못했던 아이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걸까….’
고작 열세 살에 불과한 아이지만, 허공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동자엔 수심이 깊어 보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줄곧 이 소년의 꿈은 기사였다.
어린 시절에 꿈이란 것이 변덕이 심해 몇 번이고 바뀌기 마련이지만. 이 아이의 고집은 늘 한길이었다.
하지만 아이 역시 스스로 알고 있었다. 평민 신분으로 기사의 꿈을 꾸기엔 너무도 터무니없다는 것을….
그 와중에 알게 된 유니콘 무관 학교는 아이에게 한 줄기 희망이었고, 동아줄이었다.
그런데.
입관 당시 이백에 달했던 아이들은 싹 빠져 고작 열 명만 남은 현 상황을 보니, 이곳에 남아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통해 자신이 기사 아카데미에 갈 수 있으리란 그 확신 말이다.
아이의 시선이 재차 주변을 훑었다. 이 남은 아이들도 언제 나갈지 모르는 상황.
왜 다들 나갔냐고?
‘훈련이 너무 힘들어….’
그렇다.
훈련이 힘들었다.
그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니라 너무나도 힘들었다.
동네에서 또래 중 힘깨나 쓴다던 그 자신조차 버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아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그런 훈련 따위가 아니었다.
이 힘든 훈련을 통해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겠냔 의심이 아이를 더욱 힘들게 짓눌렀다.
확신이 있었다면 많은 아이가 힘들더라도 버티고 이겨 냈을 것이다.
하지만.
유니콘 무관 학교는 이제 막 생긴 곳이었다.
심지어 교관들조차 기사가 아니었다.
확신이 들래야 들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천장을 바라보던 아이가 한숨을 푹 내쉬곤 눈을 감으려 할 때쯤.
부우우웅!!!
“응?”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부우우우우웅!
소리는 재차 들려왔다.
부우우우웅!
쉬지 않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
‘무슨 소리지…?’
잠을 자려던 아이는 이불을 완전히 내팽개치곤,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후우우우우웅!!!!
생활관 밖을 나서자 소리는 더욱 크고 웅장하게 들려왔다.
후우우우우우우우우웅!!!!
마치 거대한 돌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아찔한 소리였다.
‘대, 대체 이게….’
아이는 덜컥 겁이 났다.
‘이게 무슨 소리… 어!?’
하지만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도착한 곳, 바로 연무장이었다.
그리고 그 연무장 위에 교관들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대체 이 늦은 시간에 교관님들께선 뭐 하시는 거지?’
답이 나오는 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관들이 하나같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오천… 오백오십구….”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자, 오늘은 기필코 만 번 채우자. 만 번 못 채우면 잠 못 자는 거야. 알겠어?”
몰래 지켜보던 아이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 설마… 훈련 중이신 거야?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지금 시간쯤이면 술집도 문을 닫고, 모두가 잠이 들 시간이었다.
그런데….
‘잠도 안 주무시고, 이렇게 훈련을 한다고?’
신기하단 눈으로 연신 연무장을 살피던 아이의 시선이 문득 한곳을 향했다.
‘어… 저분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교관 중 가장 눈에 띄던 이.
태산마저 짊어질 듯한 거구의 체격.
발리스타가 거기에 있었다.
연신 검을 휘둘러 대는 다른 교관들과 달리 그는 한 자세 그대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그런데 어째선지 검을 휘두르는 교관들보다 훨씬 더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대체 뭐 하시는 거지. 그냥 검일 뿐인… 어?’
발리스타를 훑던 아이의 입이 점차 쩍 벌어졌다.
발리스타의 손에 들린 것이 단순한 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크기의 쇠검.
검의 손잡이부터 전체적인 모든 것이 무쇠로 만들어진 무지막지한 무게의 검이었다.
이윽고 재차 들려오는 검을 휘두르는 교관들의 소리.
“오천육백사십…!”
훑던 아이의 눈에 점차 경악이 어렸다.
‘서, 설마… 교관님들이 저만큼 휘두르시는 동안 저 자세 그대로…!’
그리고 아이의 눈은 점차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하, 할 수 있어. 저 사람들에게 배운다면…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야…!!!’
“우와… 뭐야…?”
“잉?”
넋 놓고 바라보던 아이의 시선이 문득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생활관의 아이들이 어느새 자릴 잡고 앉아 교관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교관님들 훈련하고 있어…!”
“으, 응… 그것도 엄청나게!”
“우리 훈련이랑 비교도 안 돼…!”
“대단하다….”
저마다 한마디씩 꺼내는 아이들의 모습들.
그때, 문득 한 아이가 입을 뗐다.
“우리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겠지…?”
교관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며 홀로 의지를 불태웠던 아이. 제크가 씩 웃으며 입을 뗐다.
“당연하지. 저런 교관님들 밑에서 배우는 거라면… 못 들어가는 게 이상한 거라고!”
제크의 눈동자가 확신으로 눈을 빛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