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갔어?”
“어, 갔어.”
“후우. 갔다!”
“하아… 더럽게 힘드네.”
검을 휘두르던 교관들이 저마다 큰 숨을 내쉬었다.
“어땠어?”
“엄청 감탄하던데?”
이든이 더없이 뿌듯한 얼굴로 끌끌거렸다.
“작전 좋았고.”
“크크.”
발리스타가 이든을 따라 웃다가 들고 있던 무쇠 검을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응? 어디서 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 소리가 들려?”
“아니야?”
“아, 맞긴 맞는데….”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왜 검을 내리지?”
“…작전 성공했으니, 다 끝난 것 아니오?”
“끝나다니 무슨 소리야?”
“응…?”
“훈련 마저 끝내야지.”
“뭐, 뭐어…!?”
발리스타가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이는 비단 다른 교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든이 뚱한 얼굴로 혀를 찼다.
“이것들 보게? 진짜 다들 도중에 들어갈 생각이었어?”
툴툴거리는 이든의 말에 발리스타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그, 그치만… 우리 벌써 2악 2깡 했는걸?”
“근데?”
“아, 아니 근데라니! 우리도 이제 들어가서 잠을 자야…!”
“자랑스러운 유니콘 무관 학교 교관들.”
이든이 웃으며 교관들을 달랬다.
“한번 3깡 해 보자. 응?”
“…진심이오?”
“응. 진심인데.”
“…그러다 우리 죽을지도 모르오.”
“이왕 시작한 거 3깡 마저 하면 좋잖아. 정 못하겠으면 다음부턴 안 하면 되지. 그치?”
“…….”
대답이 없자, 돌연 이든이 버럭 화를 냈다.
“이것들이 강해지고 싶다더니! 벌써부터 정신들이 그리 해이해진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지…! 우리 정신이 해이해진 게 아니라. 형이 도가 지나친 거지!!!”
“뭐!? 도가 지나쳐?”
이든이 발리스타와 교관들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노발대발해 댔다.
“이것들이 좋게좋게 말하니까. 빠져서! 간만에 사달 한번 내 봐? 어!?”
불끈 주먹을 쥐는 이든의 모습에 교관들이 저마다 눈물을 삼켰다.
‘젠장….’
‘그래. 한다, 해! 더러워서 해!’
그날. 연무장에선 새벽이 깊도록 교관들의 피땀 흘리는 소리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든은 생각했다.
역시 3깡은 무리였구나. 라고….
***
유니콘 길드장의 집무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익숙한 목소리도 같이 들렸다.
“말론입니다. 길드장님.”
“들어오세요.”
이든의 목소리에 수도 본부 말론 사무관이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보고서를 살피던 중이었는지 옆에는 카르엘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이든이 먼저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길드장님 앞으로 서신이 왔습니다.”
“제 앞으로요?”
“예. 여기….”
말론 사무관이 들고 있던 서신을 카르엘에게 건넸다.
서신의 발신자를 살피던 카르엘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궁에서 온 서신이에요.”
‘황궁’이란 말에 이든의 눈썹이 살짝 움직이며 반응했다.
올 것이 왔다는 표정.
이든이 말론이 있는 곳을 향해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뭘요. 그럼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말론 사무관이 나가고, 이든이 곧장 입을 뗐다.
“카르엘 씨, 서신 내용을 대신 살펴 주시겠습니까?”
“아, 예…!”
카르엘이 조심히 서신을 뜯어 안에 내용을 살폈다.
서신을 조용히 읽던 그녀의 눈이 일순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기, 길드장님. 이 내용이 대체…. 어떻게 된 거죠? 기사 아카데미와 친선 경기라니요?!”
그녀의 시선이 황급히 이든을 향했다.
이든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의아한 빛으로 가득했다.
“길드장님…?”
카르엘의 부름에 이든이 웃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저쪽에서 미끼를 덥석 문 모양이군요.”
“네? 미끼라니요…?”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보다 약속 장소와 시간이 적혀 있지 않던가요?”
“아! 그게….”
카르엘이 재차 서신을 살폈다.
앞에 내용에 원체 놀란 탓에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은 뻔한 것이다.
“있어요! 황궁에서 회동을 갖자 하는데요? 기사 아카데미 교장과….”
“그렇군요. 언제입니까?”
“모레요.”
이든이 고갤 주억거렸다.
“카르엘 씨.”
“네?”
“이틀 뒤 일정 모두 뒤로 미뤄 주세요. 카르엘 씨 일정도요. 황궁에 가 봐야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이든이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재밌는 구경거리를 앞에 둔 천진하기까지 보이는 얼굴이었다.
***
황궁 내 황제의 집무실.
“오! 저기 오는군.”
정적 속 내내 침묵을 지키던 아슬란 황제가 입을 떼자 남은 두 사내의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신하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훤칠한 키에 착 감긴 눈.
일전 사교회 때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못지않게 멋을 내고 온 젊은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바라보는 사내 중 하나, 기사 아카데미의 수장 루시우스의 눈에 순수한 감탄이 일었다.
‘생각보다 제법인데. 이든이라고 했던가…?’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유니콘의 길드장 이든이었다.
눈을 빛내던 루시우스의 표정이 재차 싸늘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길드장이 뛰어난 실력이라 한들 교관들이란 작자는 거기서 거기겠지.’
터벅. 터벅.
도무지 맹인이라 생각되지 않는 당찬 걸음.
둘러앉은 사내들 곁으로 금세 다가온 이든이 고갤 숙이며 입을 뗐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아닐세. 차를 내왔네. 어서 앉아서 들게.”
아슬란 황제가 의자 하나를 빼서 두드렸다.
이든이 재차 고갤 숙이곤 자리에 앉았다.
아슬란 황제가 말을 이었다.
“뭐, 다들 들었다시피 여기 이 젊은 친구가 이번 수도에 새로이 무관 학교를 설립한 유니콘의 길드장 이든일세. 듀란드 공작은 일전에 봤을 테고, 루시우스 자넨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
“예. 그렇습니다.”
“이든, 내가 조금 전 얘길 나눈 루시우스란 친구가 바로 기사 아카데미의 교장일세.”
“역시 그러셨군요. 어쩐지 들어오자마자 남다른 기운이 느껴졌는데, 과거 전쟁터를 누비던 뛰어난 기사셨다 들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더없는 영광입니다. 루시우스 교장 선생님.”
입에 발린 소리라 한들 칭찬을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루시우스 역시 입을 뗐다.
“나 역시 마찬가지요. 심안의 무사라. 과연 소문대로 뛰어난 기세가 느껴지시오. 이든 길드장.”
덕담이 오가는 와중 이든이 능청스레 입을 뗐다.
“그나저나 듣고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친선 경기라고요?”
아슬란 황제가 예리하게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렇지. 다들 모였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
‘본론’이란 얘기가 나오자 일순 그의 집무실 안에 싸늘한 한기가 돌았다.
조금 전 덕담을 주고받던 때와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이미 다들 들어서 알고 왔을 것이오. 기사 아카데미와 유니콘 무관 학교와의 친선 경기 때문에 모이자고 한 것인데, 이에 대해 경들께선 어찌 생각하시는가?”
내내 잠자코 듣던 듀란드 공작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황제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더없이 좋은 기회다?”
“예. 유니콘 무관 학교의 설립은 본 제국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여태도 그래 왔고, 현재까지도 기사가 되길 바라며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오길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사옵니까.”
“그렇지.”
“그런 와중에 혹여 저희가 발굴하지 못한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을 여기 유니콘 길드장께서 키워 내 준다는 얘긴데 어찌 큰 행사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유수와 같은 듀란드 공작의 말에 황제가 연신 고갤 끄덕였다.
“해서 이를 기념코자 기사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유니콘 무관 학교 학생 간에 친선 경기를 치르자?”
“그렇지요.”
“루시우스 자네도 그리 생각하는가?”
루시우스가 찬찬히 고갤 끄덕였다.
“저 또한 공작님의 의견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분명 이번 친선 경기를 통해 유니콘 무관 학교의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입니다.”
“오호라. 그것 또한 맞는 말이군. 듀란드 공작과 루시우스 교장이 이리 말하는데, 이든 길드장은 어찌 생각하시오?”
아슬란 황제의 물음에 이든이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척’을 했다.
“글쎄요. 저는 조금 고민이 되는데요.”
“어떤 고민 말인가?”
“그것이 저희 무관 학교의 학생들이 하나같이들 어려서…. 가장 어린 것이 열두 살이고, 가장 많은 아이가 열세 살입니다. 기사가 되길 바라는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엔 저 역시 동의하는 바이지만, 상대가 전혀 안 되지 않겠습니까? 나이도 어린데,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라서요.”
‘훗.’
굽실대는 듯한 이든의 모습에 루시루스는 저도 모르게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루시우스가 헛기침을 한번 하곤 표정을 바로 했다.
“하하. 이든 길드장,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이든이 의아한 ‘척’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슬란이 내심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였다.
루시우스가 말을 이었다.
“나이야 기껏해야 한두 살 차이 아닙니까? 아마 별 차이는 없을 겁니다.”
‘없긴. 그 나이에 한두 살 차이면 하늘과 땅 차이야 이 사람아.’
라고 이든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단순히 대련을 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유니콘 무관 학교의 설립을 축하하며 세상에 이를 널리 알리고, 아카데미와 무관 학교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 어찌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겠다, 그 말이구만.’
하지만 이든은 능청스럽게 고갤 주억거렸다.
“그런…가요?”
“그럼요! 물론 길드장님의 걱정이 크실 수 있다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친선 경기는 분명 유니콘 무관 학교에 더없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요? 그리고 실력 차로 인한 걱정 때문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역시 당장 친선 경기를 치르자란 얘기는 아니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이든 길드장께서 충분히 준비되셨을 때, 그때 치르자는 것이지요. 저희가 그리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껄껄!”
“흠.”
그야말로 ‘사기꾼’이 형님이라 부를 만큼 입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한 루시우스의 언변.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지만, 그의 앞에 자리한 이든 역시 혀를 내두를 만큼 뛰어난 연기를 보이고 있었다.
아슬란 황제가 내심 감탄하며 둘을 번갈아 가며 보던 중.
고민하는 ‘척’하던 이든이 무겁던 입을 뗐다.
“…그럼 그럴까요?”
일순 루시우스와 듀란드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루시우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친선 경기는 언제쯤으로 하면 좋을까요? 이든 길드장께서 원하시는 대로 일정을 잡아 주시죠. 한… 육 개월 정도면 괜찮겠습니다?”
이든이 고갤 저었다.
“그래도 설립을 축하하는 행사인데, 그때는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으니. 한… 삼 개월이 어떨까 싶은데요?”
‘삼 개월? 고작 기본 훈련만 마칠 수 있는 기간이군. 멍청한!’
듣던 루시우스가 속으로 한껏 비웃었으나, 겉으론 일절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사람 좋게 허허실실 웃으며 입을 뗐다.
“삼 개월이라. 흠. 아주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적기로군요. 허허.”
친선 경기가 치러질 날까지 정해지고 나서야 잠자코 듣던 아슬란 황제가 입을 뗐다.
가장 중요한 결정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오늘부터 삼 개월 뒤로 날짜는 정해졌고. 친선 경기 장소는 어디서 치를 생각인가?”
이에 대한 답은 듀란드 공작이 내놓았다.
“뭐, 고민할 것이 있겠습니까? 기사 아카데미로 하시죠?”
아슬란 황제가 놀란 얼굴을 했다.
“기사 아카데미에서 말인가!?”
“네. 기사 아카데미의 연무장이 더 넓기도 하고, 그리고 관객들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관객…?”
아슬란 황제가 놀라며 재차 물었다.
“친선 경기에 관객도 수용할 생각이었나?”
듀란드가 고갤 끄덕였다.
“국가적인 행사를 어찌 저희끼리만 즐길 수 있겠습니까? 관객들도 최대한 수용하여 모두가 같이 즐기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흠.”
아슬란이 이든을 향해 물었다.
“이든 길드장,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가?”
이든은 조금 고민하는 척하더니 입술을 말아 올렸다.
“관객이라. 좋지요. 관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아슬란 황제가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물론 듀란드와 루시우스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아슬란이 고갤 주억거리며 입을 뗐다.
“좋아. 이제 모두 결정 난 것 같군. 친선 경기 행사의 시일은 지금으로부터 딱 삼 개월 뒤, 기사 아카데미에서 열도록 하지. 루시우스 교장과 이든 길드장 모두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주게.”
“예.”
대답하는 이들의 얼굴에 저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른 미소가 새겨졌다.
기사 아카데미와 유니콘 무관 학교의 친선 경기.
이젠 엎으려야 엎을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듀란드와 루시우스가 나가고 집무실에 이든과 황제 단둘만 남은 그때.
그들이 나간 문을 흘끗 노려보다시피 하던 아슬란이 천천히 입을 뗐다.
“확실한가.”
“……?”
“듀란드 말이야. 저자가 내 몸에 독을 풀었다는 것이.”
“레스타드 길드장을 살해한 뒤, 유니콘 길드를 뒤흔들려 했던 놈입니다. 필시 황궁 역시 집어삼키려 드는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등잔 밑이 어두웠군. 내 저런 놈을 신임하다니. 내가 어리석었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바로잡으면 됩니다.”
듣던 아슬란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래… 잡아야지. 바로 잡아야 하고말고.”
문득 태자의 생각에 생각이 깊어지는 황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