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50)

116화.

유니콘 무관 학교의 연공실.

후우우우웅.

고고한 바람이 넓고 커다란 등을 타고 올라왔다.

위로 솟구치는 바람에 삐죽 솟는 머리카락.

잠시 후.

“후우…….”

커다란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리자, 솟구치던 바람이 일시에 땅으로 훅 꺼지며 먼지 바람을 일으킨다.

“흐읍!!!”

그리고 재차 들리는 들숨.

조금 전처럼 바람이 위로 솟구치며 다시금 머리가 삐죽 솟는다.

참으로 기묘한 모습이었다.

그 이해 못 할 광경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사내는 눈을 떴다.

“어떻소?”

발리스타가 물었다.

옆에서 잠자코 그를 살피던 이든이 고갤 주억거렸다.

“나쁘진 않은 것 같군.”

“헤헤….”

이든의 칭찬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발리스타가 허허실실 웃었다.

하지만 다시 진지해지는 그의 표정.

발리스타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참으로 신기하오. 마나를 금세 쌓게 해 주는 호흡법이라니. 이런 건 들어 본 적이 없소!!!”

“별것이 다 신기하다.”

몸소 체험한 심법의 효능에 발리스타가 혀를 내두르며 입에 침 마르도록 찬양을 해 댔다.

하지만 그런 발리스타만큼이나 이든 역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역시 이곳엔 심법 같은 개념이 전무했군. 그냥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는 호흡으로 몸 안에 진기가 절로 쌓이게 하는 방식이라. 뭐, 이곳에 풍부한 진기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한 건가….’

중원과 비교해 진기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다지만, 그래도 이든의 입장에선 무식한 방법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자 새삼 칼스테인 백작과 그의 아들 칼라슈가 새삼스레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체계화되지 않은 방법으로 부자가 그 정도에 경기까지 올라갔다라. 재능도 재능이겠지만, 실로 엄청난 양반들 아닌가.’

이든이 잡생각에 빠져 있을 때쯤.

재차 발리스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든 형.”

“응?”

“그런데 방금 내가 한 것 말이오. 이름이 뭐라 했더라…? 공마…룡심법?”

“광마룡심법.”

이든이 정정했다.

“구결은 잘도 외우는 녀석이 뭔 그 쉬운 이름 하나 못 외워?”

“그 구결인지 뭐시기 외우겠다고 이미 머릿속이 꽉 찼소. 더는 이 머리 안에 지식이 들어갈 자리가 없단 말이오!”

“훗. 말하는 것하고는.”

“그나저나 이든 형은 대체 이런 건 어디서 알게 된 것이오?”

‘어디서 알긴.’

발리스타의 물음에 이든은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그가 무진이었던 시절.

천하제일인이 되겠답시고 무림을 종횡하던 그때 그 시절.

그의 곁을 지켜 주던 한 사람.

우호법 장룡.

무진 못지않은 과격함과 패도 적인 손속으로 무진과 함께 그 명성이 자자했던 동료이자, 친구였던 사내.

발리스타가 익힌 광마룡심법이 바로 그의 절학 중 하나였다.

패도 적인 움직임엔 폭발적인 힘이 뒤따라야 하는 법.

광마룡심법은 그 이름만큼이나 일시적인 폭발력의 힘을 키워 주는 데 더없이 좋은 심법이었다.

그리고 이든의 예상대로 이는 발리스타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무공이었다.

“이든 형?”

이든이 말이 없자, 발리스타가 재차 그를 불렀다.

이든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디서 났는지 네놈이 알 것 없고. 넌 내가 알려 준 것들이나 아침저녁으로 죽어라 연습해. 알겠어?”

“나 참. 알았소!”

“아 그리고 친선 경기 준비는 잘돼 가고 있는 거지?”

발리스타가 고갤 주억거렸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소. 심법과 검법을 병행하기 무섭게 아이들의 실력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니까.”

“그럼 다행이고.”

“한데….”

“음?”

발리스타 조금 난감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애들 실력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올랐거든?”

“근데?”

“근데…. 애들이 영 자신이 없어 하는 것 같소. 자기네들이 어떻게 기사 아카데미 학생들과 대련을 하느냐고 잔뜩 겁먹었던데…?”

“…뭐? 우리 애들이 겁을 먹어…?”

모든 준비가 수월하게 되어 가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문제였다.

‘자신감, 자신감이라…. 가장 중요한 것을 완전 손 놓고 있었잖아?’

“어쩔 생각이오? 실력은 늘고 있지만, 저대로라면 분명 원래 기량의 반도 발휘하지 못할 텐데.”

“어쩌긴.”

얘기 도중 이든이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어, 어디 가시오. 길드장님!”

이든이 뒤도 안 보고 크게 외쳤다.

“애들 보러 간다!”

바삐 움직이는 이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발리스타가 어깰 으쓱였다.

“나 참. 손자 걱정하는 노인네도 아니고. 아무튼, 참 유별나.”

***

휘익.

연무장에 모여 검을 휘두르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덜컥 멈추었다.

“다음!”

총 교관의 외침에 선두에 선 교관들이 먼저 시범을 보이고, 그 뒤에 아이들이 교관들을 따라 검을 휘두른다.

덜컥.

그리고 재차 멈춘 움직임.

단지 검을 연속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구간마다 끊어가며 정확한 동작을 연습시킨다.

즉, 기초의 완벽화.

이든이 교관들과 아이들에게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이었다.

“다음!”

휘익!

비록 하급 마인들이 익히는 기초 검술 ‘칠마검’이지만, 기초를 완벽하게 체화시켜야 다음 단계를 익혀나갈 때,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한 법.

그래서인지 검을 휘두르는 내내 모두의 눈빛은 내내 진지하기만 했다. 어느덧 칠마검의 기본 초식이 모두 끝나고 총 교관이 외쳤다.

“그만!”

교관들을 포함, 아이들이 차렷 부동자세로 총 교관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총 교관 존슨이 입을 뗐다.

“자, 아침 훈련은 이것으로 마치고. 점심 식사 후에 남은 훈련을 마저 하도록 하겠다. 해산.”

“해산!”

복명복창한 아이들이 곧바로 배식을 받으러 걸음을 옮겼다.

한눈에 보아도 푸짐한 음식들.

이 역시 한창 자랄 시기에 잘 먹고 쭉쭉 커야 한다는 이든의 고집 덕이었다.

아이들이 차례로 배식을 받으며 한곳에 둘러앉았다.

평소와 같았음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음식을 흡입했을 아이들이 어째선지 쉬이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그나마 먼저 먹는 아이들도 깨작대는 수준.

아이들이 한마디 말도 없이 배식판을 뒤적거리던 그때.

그들이 둘러앉은 머리 위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맛이 없나. 어째 먹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데.”

“…어, 길드장님…?”

아이들의 이목이 일제히 향한 곳.

그곳엔 이든이 배식판을 들고 서 있었다.

“같이 먹을까?”

이든이 허겁지겁 음식을 삼켰다.

그리고 그런 그를 따라 깨작거리던 아이들도 손을 바삐 움직이며 식사를 입에 가져갔다.

정적 속 음식을 씹느라 바삐 움직이던 아이들의 입이 이든이 불쑥 꺼낸 말에 일제히 멈추었다.

“다들 친선 경기 때문에 걱정들이 많다면서?”

“…….”

딱히 대답이랄 것도 없이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해 댔다.

그 묘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이든은 바보는 아니었다.

“대체 뭐가 그리 걱정들이지?”

“…….”

“사람들 앞에서 호되게 깨지고, 망신이나 당할 것 같아서?”

“…맞아요.”

아이들의 반장 노릇을 하고 있던 제크가 입을 뗐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무서워요.”

“뭐가?”

“…전부 다요. 대련 상대인 기사 아카데미 형들도 무섭고, 지켜볼 관객들의 시선도 무섭고.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건…. 벽이에요.”

“벽?”

“나름 자신감을 가졌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노력하면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확신이 이제야 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친선 경기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할까 그게 너무 두려워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기사 아카데미의 벽이 더 높게만 느껴질까 봐. 그게 너무 걱정돼서….”

“너무 스스로를 낮게 보는 것 아냐?”

“…네?”

“지금 너희들이 받고 모든 훈련, 결코 우습게 볼 것들이 아니야. 장담컨대 남은 시간 동안 교관들 하라는 대로만 따라 해도, 기사 아카데미 1학년들 수준은 금세 뛰어넘는다.”

“…말도 안 돼요. 저기 있는 도련님들, 평생을 훌륭한 기사들 밑에서 수련해 온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고작 몇 개월 수련으로 저들을 어떻게 따라잡아요.”

“아니. 이길 수 있어.”

“…어떻게요?”

“강해질 수밖에 없는 방법이 있거든. 자, 다들 먹었으면 따라 나와. 내가 몸소 알려 줄 테니.”

잠시 후.

이든을 따라 아이들이 하나둘씩 연무장으로 나왔다.

아이들의 기척을 느끼던 이든은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심신은 본디 하나인 법.

마음속에 불안감이 아이들의 걸음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열 명의 아이들이 모두 이든의 앞에 줄지어 서던 그때.

미소 짓던 이든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이든이 입을 뗐다.

“자, 다들 목검 들고.”

아이들이 주춤주춤 허리춤에 있던 목검을 들었다.

이든 역시 목검 하나를 잡아 들었다.

“지금부터 본 교관과 생도 간의 대련이 있겠다.”

“네…!?”

난데없는 말에 아이들이 입을 쩍 벌렸다.

“길드장님하고 대련을요!?”

“그래. 물론 일대일은 아니고, 일 대 십 대련으로. 생도들이 승리하는 조건은 단 하나. 날 한 대라도 때려 보도록.”

“…저희 열 명이 한꺼번에 길드장님을 한 대라도 때리면 된다고요…?”

“그래.”

“…저희가 어떻게 이겨요. 그걸.”

응…?

“길드장님 엄청 유명하잖아요. 심안의 무사로. 분명 건들지도 못할 게 뻔한데.”

“맞아.”

반응이….

이게 아닌데?

난 좋다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반응이 영 시답지 않자. 이든이 작전을 바꿨다.

“이것들!!!! 좋게 말하니까 정신 상태가 빠졌지 아주. 단체 기합 한번 가? 어!?”

버럭 소릴 지르는 이든의 모습에 아이들이 눈이 번쩍 뜨였다.

“자, 너희 열 명이서 단 한 대만 때리면 돼. 만약 실패할 경우, 바로 단체 기합 가는 거야. 울고불고 짜도 집에 안 보내 줘. 알았어?”

일순 아이들의 눈빛이 변했다.

본디 수련과 기합이 한 끗 차이라지만, 세상에 기합받고 싶어 하는 이는 없는 법이다.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일시에 이든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아아아압!!!”

휙휙.

이든이 목검을 휘둘렀다.

곧바로 달려들던 아이들 몇몇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남은 아이들의 움직임이 순간 주춤거렸다.

“…어!? 반격도 하시는 거예요?”

이든이 인상을 썼다.

“그럼 하지. 안 하고 피하기만 할 줄 알았어? 뭣들 하고 있어. 그렇게 잠자코 구경만 할 셈이야?”

이든의 타박에 남은 아이들이 재차 달려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허공을 가르는 아이들의 공격. 이든이 재차 가볍게 목검을 휘두르자 허공에 손짓하던 아이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 아야….”

“다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어떻게 열 명에서 한꺼번에 덤벼드는 데 본 교관의 옷깃조차 못 건드릴 수가 있어?”

“으….”

“일어서!”

버럭 외치는 이든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게 굳은 이든의 얼굴에 노기 가득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너희. 기사 되고 싶다며. 기사 아카데미 들어가서 황궁 기사가 되는 게 너희들 최종 목표 아냐?”

“…….”

“기사가 뭐야. 그냥 칼 좀 쓰고 싸움 좀 하면 다 같은 기사인 줄 알아? 천만에! 기사는 지키는 사람들이야. 가족을 지키고, 백성을 지키고 더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이들이 바로 기사인 거야. 사랑하는 것들 지키겠다는 각오로 싸우는 이들이 그들이라고! 그런데 그따위 각오로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기사가 되겠단 거야.”

“…….”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말이 없었다.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신분 상승? 물론 좋지. 하지만 본질을 잊지는 마.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어. 지키겠단 각오로 싸워. 그럼 힘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일어서. 그리고 지키고 싶은 것들을 떠올려. 그리고 진심으로 검을 휘둘러. 나를 향해서.”

효과가 있던 걸까.

아이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이는 이든의 기감에도 여실히 느껴졌다.

주춤거리고, 겁먹던 조금 전 모습이 아닌, 악에 받친 듯한 모습.

타다다다다!

아이들이 일시에 달려들며 목검을 휘둘렀다.

처음 달려들 때와는 전혀 다른 기세로.

훈련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결국, 누구도 이든에게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예상했던 일었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내기였으니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아이들이 연신 숨을 토해 댔다.

“허억허억….”

더는 훈련이 불가하다 생각한 것인지 이든이 발걸음을 돌리던 그때.

툭.

“…응?”

“헤…. 쳤다.”

“쳤어…!?”

“쳤다. 쳤다고…!!!”

“제크가 쳤대! 성공했어!!!”

바닥을 기던 제크가 목검을 쥐곤 이든의 종아리를 기습적으로 툭 친 것.

정석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성공은 성공이었다.

이든이 피식 웃었다.

‘녀석들.’

제크가 뿌듯하게 웃고는 연무장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저마다 좋아서 떠들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까만 하늘에 수많은 별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든 역시 아이들 곁에 털썩 앉았다.

그때,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던 제크가 입을 뗐다.

“그런데요.”

“응?”

“고작 이런 거로 저희가 강해질 수 있는 거예요?”

“그럼.”

이든이 쥐고 있던 검을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세웠다.

아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을 향했다.

“궁금하지? 너희들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이든의 목검에서 밤하늘만큼이나 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그것은 점차 하나의 형태로 자리 잡아갔다.

검 위에 또 하나의 검을 덧씌운 듯한 모양에 검은색의 거대한 검.

아이들의 눈이 하나둘씩 점차 커져 갔다.

이 아이들이라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의 상징.

오러 블레이드가 이든이 쥔 목검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강해질 수 있어. 너희들도.”

이든.

그 역시 처음부터 이토록 강했을까.

그에게도 이 아이들과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너희도 할 수 있다고.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그의 진심이 닿은 걸까.

제크가 이든을 따라 목검을 하늘로 치켜세웠다.

“나도 반드시…. 소드 마스터가 될 거예요.”

“나도.”

“나도!!!”

아이들이 하나둘씩 목검을 높게 세웠다.

이든이 한마디 거들었다.

“소드 마스터를 상대로 이만큼이나 해냈는데, 기사 아카데미 1학년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어?”

아이들이 씩 웃었다.

없던 자신감이 꿈틀대며 아이들의 가슴을 꽉 채웠다.

“맞아요. 식은 죽 먹기죠!”

밤하늘에 수놓아진 저 별들처럼.

아이들의 눈 역시 더없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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