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지금 기사 아카데미 교문 앞의 상황을 가장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시끌벅적?
북적북적?
우글우글…?
뭐, 어떤 걸 갖다 붙여 놔도 다 어울릴 만한 상황이었다.
친선 경기 당일.
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죄다 몰려왔는지. 기사 아카데미의 앞은 그야말로 경기를 구경하겠다는 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냐고?
당연하지.
제국의 영토 인구 절반이 수도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곳에 사람들이 죄다 모였다는 건 정말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바글바글하단 것이다.
“자자, 다들 줄 서세요. 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열기 띈 반응에 기사 아카데미의 경비들만으론 통제가 되질 않으니, 황궁의 병사들이 급히 동원되었지만, 여의치 않아 보였다.
“어어! 거기 밀지 마시고! 줄 서요. 줄!! 여기 사람들 줄 선 거 안 보여요!?”
“에헤이! 이 사람이 어딜 새치기를!!!”
“아 진짜 밀지 좀 말라고!!!”
사방에서 고성이 오갔다.
고막을 찌를 듯한 소음과 사람에 치일 듯한 번잡함 속에서 잠시 뒤. 마치 짠 것처럼 일순 정적이 찾아왔다.
조금 전과 완전히 상반된 쥐 죽은 듯한 거리.
사람들의 이목이 일제히 한곳을 향했다.
쿠구구궁.
기사 아카데미의 바로 코앞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니콘 무관 학교의 대문이 웅장하게 열리며, 당일 있을 친선 경기의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든을 필두로 쭉 일렬로 선 교관과 아이들을 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오오…!”
“유니콘 무관 학교 아이들이야!”
“저들이…!?”
“애들이라도 무인은 무인이군. 하나같이 눈빛이 살아 있잖아?”
“아이들뿐인가. 교관들 모습 좀 보게 하나같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게 말이야…!”
곳곳에서 들려오는 찬탄.
사람들의 이목을 한몸에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그들의 발걸음이 용기백배하여 당차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들어진지 참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지만….
응? 무슨 말이냐고?
그게 말이지….
***
유니콘 무관 학교의 대문이 열리기 직전인 조금 전 상황.
담장 넘어 고개만 빼꼼히 내밀던 발리스타가 인파로 가득한 기사 아카데미의 입구 상황을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워메! 저게 다 뭐여! 뭔 놈의 사람들이 저리들 모였대!?”
“…….”
“기, 길드장님. 우리 바로 코앞이라고 늦장 부린 것 아니오? 사방에 그냥 사람밖에 없는데? 어떡하지!? 우리 이러다 경기 시작도 전에 못 들어가는 것 아니오!? 응!? 응!?”
큰 덩치에 발만 동동 구르며 호들갑 떨어 대는 그가 여간 거슬렸던 걸까. 이든이 확 인상을 썼다.
“아! 거참!!! 더럽게 신경 쓰이게 하네. 그 입 좀. 입!!!”
이든의 타박이 못마땅한지 발리스타가 뾰로통한 얼굴을 했다.
“그, 그치만 긴장되는 걸 어쩌란 말이오.”
발리스타의 시선이 재차 담장 너머로 향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데.”
비단 그만 긴장될까.
다른 교관들과, 그리고 친선 경기에 나설 당사자들인 아이들 역시 똑같이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할 수 있다 호언장담하던 것들이 몰려든 인파를 보고는 도로 기가 죽은 모습들이라니….
이든이 앓는 소릴 내며 한숨을 푹 쉬곤 입을 뗐다.
“다들 잘 들어.”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이든을 향했다.
“……?”
“시합을 앞두고 긴장되는 건 당연한 거야. 특히 너희처럼 피땀 흘려 가며 죽어라 노력해 온 사람들일수록 더더욱 그렇지.”
“…….”
대답은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의 말대로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온몸이 떨려 오고 있었으니까.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근데 말이야. 저기 있는 기사 아카데미 놈들도 너희처럼 바짝 긴장하고 있을까?”
“…….”
“긴장은커녕 놈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이길 거로 생각하고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을걸?”
꿀꺽.
정적 속, 마른침만 삼키는 소리가 무심히 들려오던 그때.
이든이 피식 웃었다.
“긴장은 최선을 다해 준비한 이들에게만 따라오는 당연한 감정이지.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 너희는 놀랄 만큼 성장했어. 그리고 증명하는 일만 남았어. 그간 너희의 노력을.”
“…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던 아이들의 눈빛이 일제히 달라졌다.
이는 교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순 달라진 분위기.
심장은 여전히 쿵쾅댔으나, 조금 전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이는 필시 그간 키워 온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은 무인 특유의 호승심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방황하던 무인들이.
그리고 코흘리개 아이들이
스스로 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린 무인(武人)이 됐노라고.
그 기특한 반응에 이든이 미소 지으며 대문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알리는 거다. 너희가 다시 태어났음을.”
쿠구구궁.
유니콘 무관 학교의 대문이 웅장한 소릴 내며 활짝 열리었다.
그와 동시에 자연히 집중된 이목.
유니콘 무관 학교의 무인들이 슬금슬금 비키는 사람들 속을 비집고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당찬 기세가 하늘을 뚫는 듯했….
“어어, 이든 형!”
“응?”
“거, 거기 아니라. 이쪽, 이쪽!”
…….
“아오! 뭔 놈의 사람들이 이렇게 많어? 방향감각이 없어지게.”
“그러게, 내가 앞장선다니까. 눈도 안 보이는 양반이 어딜 먼저 가겠다고. 자자, 이쪽으로.”
“크, 크흠!”
……
…….
그러게 일찌감치 미리미리 출발 좀 하지.
멋있다 말았네.
***
유례없을 만큼 사람들로 꽉 찬 기사 아카데미 내에 경기장.
수도에서 열렸던 무도 대회 때도 이 정도로 인파가 몰리진 않았건만.
파격적인 친선 경기로 그만큼 세간의 관심이 이곳에 집중되었다는 뜻이리라.
빽빽이 들어찬 관객석 가운데 마련된 귀빈석에도 하나둘씩 자리가 채워져 가고 있었다.
기사 아카데미의 교장 루시우스가 옆에 있던 듀란드 공작에게 말을 건넸다.
“예상은 했다지만, 사람이 이리 모일 줄은 몰랐습니다.”
듀란드 공작 역시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게 말이오. 이 넓은 수도의 경기장에 사람이 더는 들어설 수 없을 만큼 가득 차다니. 정말 놀랍구려.”
루시우스와 마찬가지로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관객석을 훑던 듀란드 공작이 불쑥 입을 열었다.
“무대는 확실히 준비됐고. 어떻게… 자신은 있으시오?”
듀란드의 물음에 루시우스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요? 자신이 있다 못해` 하늘에 닿을 지경입니다.”
“훗. 하긴….”
“사실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이 있긴 합니다.”
걱정이란 말에 듀란드가 의아한 빛으로 물었다.
“무엇이 말이오?”
“우리 기사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너무 일방적으로 이길까 말입니다. 대련이라는 게 서로 수준이 맞아야 보는 맛이 있는 법인데. 여기까지 어렵게 자리한 귀빈들과 관객들에게 싱겁게 이기는 모습만 보이면 얼마나 실망이 크겠습니까?”
듣던 듀란드 공작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하긴 그 말도 일리가 있구려. 고생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싱겁게 끝나 버리면 다들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오.”
“아무튼, 이번에 출전하기로 한 아이들의 실력에 관해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록 1학년 중에 하위권이라곤 하지만, 당당히 무도 대회 본선까지 올랐던 실력자들입니다. 무관 학교의 코흘리개들과는 비교를 불허하지요.”
“아무렴요. 내 어찌 루시우스 교장의 안목을 믿지 못하겠소. 다 계획이 있으시거늘. 하하하!”
“그럼요. 제게 다 계획이 있지요. 하하하!”
‘쿵’ 하니 ‘짝’ 소리가 날 정도로 둘은 서로 대화가 잘 통했다.
흥행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루시우스 말대로 유니콘 길드의 코흘리개들이 조금이라도 선방을 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듀란드의 목적은 다름 아닌, 유니콘 무관 학교의 몰락과 충격에 휩싸인 이든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으니까.
따로 목적이 있는 것은 비단 루시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기의 흐름이야 당연히 예상한 대로 흘러가겠지만, 이 일만 잘 풀리면 기사 아카데미의 입지는 더욱 좋아질 것이고 그 말인즉슨, 저 콧대 높은 황실의 대신들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가 더더욱 확고해진다는 것을 뜻하니까.
저마다 각자의 목적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을 때쯤, 경기장 내 관객들을 통제하던 병사 한 명이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듀란드 공작 옆에 섰다.
“공작님.”
“무슨 일이냐.”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
듀란드 공작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폐하께서…!?”
“예…!”
수도에서 열리는 무도 대회만큼이나 국가적인 대 행사이다 보니, 황제가 행차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나, 듀란드의 눈빛엔 어째선지 의아함으로 가득했다.
‘아니, 다 죽어 가는 양반이 어떻게 여기에….’
잠시 뒤, 병사의 말대로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아슬란 황제의 모습이 보였다.
병사 한 명이 급히 경기장 밖으로 뛰쳐나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황제 폐하 납시오!!!!”
병사의 외침에 귀빈석에 자리한 대신들과 관객들이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기립했다.
들어선 아슬란 황제가 허허실실 웃으며 사람들을 앉히라 손짓했다.
확인한 병사가 재차 외쳤다.
“다들 앉으시오!!!!”
병사의 외침에 관객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았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을 귀빈석의 대신들은 좌불안석인 것처럼 기립한 채 앉지를 못했다.
아슬란 황제가 웃으며 서둘러 귀빈들을 앉히곤 입을 뗐다.
“역시 다들 이곳에 계셨구먼.”
귀빈들이 저마다 고갤 숙이며 황제의 인사를 받을 때쯤, 듀란드 공작이 황급히 그의 곁으로 다가와 조금 전 자신이 앉았던 중앙의 상석으로 아슬란을 안내했다.
“폐, 폐하. 이곳까진 어인 행차이시옵니까.”
“하하. 이런 재미난 구경거리를 자네들만 구경하려 했던 건가. 당연히 나도 자리해야지. 아니 그런가?”
“아, 아아…. 예. 맞습니다. 어서 이쪽으로.”
“그래.”
안내를 받으며 황제가 상석에 자리하는 사이, 찰나 듀란드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아니, 진즉에 죽었어야 할 양반이 아직까지 건재한 것도 모자라서 이곳까지 오다니. 대체 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듀란드가 의아해할 수밖에 없던 것도 당연했다.
아슬란 황제의 몸에 미독을 푼 장본인이 바로 그 아니던가.
시기상으로 보면 이미 두 달도 훨씬 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 아직까지도 안 죽고 버티고 있다.
그뿐이랴. 부축을 받는다지만, 저리 말짱히 걸어 다니는 그의 모습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자리한 아슬란 황제가 연신 주변을 둘러보더니 불쑥 말을 건넸다.
“이든 길드장은 아직 오지 않은 건가?”
듀란드가 답했다.
“예.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흠. 하긴 아직 경기 시작까진 많이 남았으니까. 그도 그렇고 내가 초대한 손님도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으이.”
‘손님’이란 말에 듀란드가 반색하며 물었다.
“손님 말입니까? 혹 따로 초대한 이가 있으신 겁니까?”
듣던 아슬란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래. 내 이 사실을 알렸더니 한걸음에 달려오겠다고 하더군. 그 역시 이 일에 관심이 많이 가는 모양이더군?”
대체 어떤 손님이길래. 아슬란 황제가 저렇게까지 얘길 하는 것일까.
듀란드의 의문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모두 자리해 계셨군요.”
곧이어 듀란드 공작에게도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던 듀란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자, 자네가 이곳엔 어찌….”
비단 듀란드뿐이랴.
알고 있던 황제를 제외한 귀빈석에 모두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들어온 이가 각을 잡곤 아슬란을 향해 고갤 숙이며 입을 뗐다.
“폐하. 신 칼스테인, 폐하의 부름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나이다.”
제국의 소드 마스터 칼스테인 백작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