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250)

125화.

비 오는 날에도 먼지가 필 수 있을까.

그것도 비가 상당할 정도로 쏟아지는 습한 날씨에 말이다.

여기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어김 없이 보여 주는 이가 있었다.

아무리 철벽을 자랑하는 견고한 진영이라도 일인 단신으로 단숨에 무너뜨린다는 신교제일의 교전술이자, 유일무이 최강의 신법.

천마군림보가 듀란드의 반란군 진영 한가운데에서 연달아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폭발의 중심엔 이든이 있었다.

저벅.

쿠르르르르릉!!!!!!

그가 한 발을 내디디면 천둥이 울리듯 요란한 소리가 났고.

파앗!!!!

콰과아아아아아앙!!!!

남은 한 발을 내디디면 땅이 꺼지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니 지나간 곳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다.

신교의 최고의 신법이라 불리지만, 신법이란 말보단 하나의 공격수단으로써의 신공이란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패도적인 신법.

눈앞에 몇천, 몇만의 적이 어떤 견고한 갑옷과 방패로 무장을 했다 한들.

천마군림보 앞에선 스러지는 낙엽이요. 밟고 지나가도 모를 개미 떼와도 같았다.

그때, 반란군 중심을 휩쓸며 전열을 흩트려놓던 이든이 검집으로 손을 뻗어 흑색 검을 뽑고는 그것을 하늘 위로 내던졌다.

뽑은 검을 하늘 위로 던진다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지만, 의문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곧이어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연달아 들려오는 육신이 파편이 되는 소리가 모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니까.

쐐애애애애애애액!!!!

퍼벙. 펑. 펑. 펑!!!!

검이 살을 뚫는데, 박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흑색 검이 스스로 의지라도 가진 것 마냥 이든의 주변을 유영하며 알짱거리는 반란군들의 몸뚱이를 꿰뚫어 대는 소리였다.

밑으로 땅에는 천마군림보로 지진을 일으키고, 머리 위로는 흑색 검이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적들이 눈에 보이는 족족 날아들어 도륙을 내 버리니, 그 기기묘묘한 모습에 반란군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며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속은 이쯤에서 멈추는 법이 없었다.

이미 그 두 개만 해도 반란군의 전의는 충분히 상실했건만.

이든의 양손이 일순 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곧게 편 열 개의 손가락 위로 검은 마기가 치솟더니 기다란 발톱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이기어 검에 이은 수라마참조아격이 가시화되어 양손에 구현된 것.

동시에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이든이 두 팔을 인정사정없이 휘둘러 댔다.

파지지지지지직!! 콰과광!!!!

찢어발긴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수라마참조아격이 휘둘러진 자리.

본래 형체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그야말로 처참히 찢기고 뜯어진 반란군들이 살덩이가 시신혈해를 이루며 사방에 날리고 비산하며 흩어졌다.

이 모든 것이 찰나에 일어난 과정.

삽시간에 반란군의 진영을 혼란으로 만든, 전쟁이라고 볼 수조차 없는 학살이란 말이 더 없이 어울리는 혈풍이 도래한 그곳에 이든이 내공을 가득 실은 목소리로 쩌렁쩌렁 으르렁거리듯 외쳤다.

“칼스테인!!!!!!!!!!!!”

그 외침에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바라보던 칼스테인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든이 재차 외쳤다.

“폐하와 태자 곁을 지켜!!!!!!!!!!!!!”

“아…!”

칼스테인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반란군부터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됐던 영주들의 시선까지 이든, 그 자신에게 묶어 뒀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곳은 자신이 맡을 터이니, 홀로 떨어진 황제에게 가서 그의 곁을 지키라는 것.

이든의 계획을 알아차린 칼스테인이 곧바로 아슬란 황제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리던 그때였다.

“어딜!!!!”

버몬트가 그를 막아설 작정으로 칼스테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휘이이이익!!!

하나, 칼스테인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빗나간 버몬트의 검이 허공에 휘둘러지고. 이미 저만치 멀어진 칼스테인이 남은 수비대를 이끌고 황제와 태자를 지키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려던 그 순간.

“이 새끼들이, 네놈들이 가도록 순순히 놓아둘 성싶으냐!!!”

버몬트의 검이 더욱 짙푸른 오러를 피우며 칼스테인과 수비대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그의 검은 그들에게 닿지 못했다.

쐐애애애애애애액!!!!

자신의 숨통을 노리듯 다가오는 날카로운 쇳소리에 버몬트가 본능적으로 공격을 회수하곤, 그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채애애애애앵!!!!!

“큽…!!!!!”

본래 휘두르려던 오러의 방향을 급하게 선회한 탓일까.

내상을 입은 버몬트가 입에서 왈칵 피를 토해 내곤, 칼스테인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의 눈이 자신의 숨통을 노리듯 주변을 유영하는 흑색 검을 향했다.

검을 잡지도 않고 움직이게 하다니, 어떤 해괴한 잔재주인지는 몰라도 볼수록 대단했다.

하나 버몬트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의 시선이 아군 진영을 쑥대밭으로 휘젓고 다니는 이든으로 향했다.

조금 전 버몬트 그 자신에게 달려들었던 저 흑색 검.

필시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예리한 움직임을 보였었다.

그 말인즉 검에 부린 잔재주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건만.

정작 버몬트가 바라보는 이든은 그에겐 안중에도 없이 반란군을 학살해 대고 있었다.

버몬트가 이를 악물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트럼프, 오벨슈타인…!!!!!!”

버몬트가 넋을 놓다시피 하는 영주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칼스테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오. 저놈!!!! 저놈을 먼저 쓰러트려야 하오!!!!!!”

그의 말대로였다.

조금 전 이든의 개입과 동시에 그 짧은 시간 동안 반란군 상당 부분이 목숨을 달리했다.

이대로 가면 전멸은 시간 문제.

버몬트의 말에 동의하듯 영주들이 고갤 끄덕이곤 곧바로 이든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켜랏!!! 비켜!!!!!!!”

버몬트가 알짱거리던 흑색 검을 피해 병사들을 밀치다시피 몸을 날리곤 이든을 향해 뛰어들며 검을 휘둘렀다.

“이놈!!!!!!!”

휘이이이이익!

버몬트의 푸른 검기가 이든을 향해 쏘아지던 그 순간.

검을 휘두르던 버몬트의 얼굴이 찰나 더없이 굳었다.

이든의 입가에 지어진 진한 미소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놈, 어서 오거라…!!!!”

“……!!!!”

화등잔만 해진 버몬트의 눈동자에 삽시간에 다가오는 검은 손아귀와 어느새 부러진 자신의 검이 비추었다.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오던 손아귀에 비해 그의 대응은 너무도 느렸다.

촤아아아아아아악!!!!

버몬트의 몸이 힘없이 스러졌다.

그리고.

그의 인두가.

이든의 손에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들려 있었다.

단 일수에.

칠 인의 기사 중 칼스테인 그 다음간다는 버몬트가 허무하리만치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 기막힌 모습에 일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모두의 숨죽인 시선이 이든 단 한 사람을 향했다.

툭.

이든이 들고 있던 버몬트의 인두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피로 점철된 손을 허공을 향해 뻗자 유영하던 흑색 검이 유유히 날아와 그 손에 쥐어졌다.

진한 미소를 피우던 이든의 입이 천천히 떼어졌다.

“자, 투항할 텐가. 아니면 저놈처럼 죽을 텐가. 선택해라.”

스으으으으….

그때.

이든이 쥔 흑색 검의 새하얀 검신에서 까만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밤하늘보다 어두운.

공허함마저 느껴지는 무저갱 같은 어둠은 차츰 하나의 형태로 자리 잡아갔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대검 같은 모습.

까만 흑색 빛의 광채를 보이는 그것.

필시 소드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였다.

흔하지 않은 색에 오러 블레이드지만, 목도한 이들에게 색깔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

조금 전, 버몬트의 허무한 죽음이 모두의 혼을 쏙 빼놓게 했다면.

오러 블레이드는 화들짝 정신이 들게 했다.

오벨슈타인은 곧바로 7서클 상위 마법을 펼쳤고, 트럼프는 화살 4개를 한 번에 겨누며 촉에 오러를 피워 냈다.

둘 모두가 위험하다 생각된 나머지 본능적으로 힘을 전개한 것이다.

하나.

조금 전 그들의 행동은 더할 나위 없는 큰 실수였다.

수많은 기척으로 사람을 분간하기 어려운 이든 앞에서 자신의 온 힘을 보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위치를 발각시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든의 입가에 씩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파아아아앗!!!!!!

그의 신형이 번개와 쏘아지며 어느새 마법진을 전개하던 오벨슈타인의 팔을 베어 내고 있었다.

휘이이이이익!!!!

“끄헉…!”

눈 깜짝할 새 한쪽 팔을 잃은 오벨슈타인의 안색이 창백해지던 그 순간.

피잉. 쐐애애애애애액!!!

오러를 머금은 트럼프의 화살 4개가 강렬한 소릴 내며 이든을 향해 쏘아졌다.

오러 화살 하나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일 텐데, 화살 4개를 한꺼번에 쏘아 내는 것을 보면 그 위력은 필시 무시 못 할 수준일 것이다.

그때.

이든이 순간적인 판단을 내렸다.

팔을 잃고 새하얘진 안색을 하던 오벨슈타인의 멱살을 끌어당겨 붙잡고는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화살 4개를 향해 그의 몸뚱이를 내던진 것.

던져지는 오벨슈타인도, 활을 쏘아냈던 트럼프 모두가 일순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되돌리기엔 모든 것이 늦은 상황.

푸부부북!!!!

오러 화살을 맞은 오벨슈타인의 사지가 꿰뚫리며 단번에 비명횡사한 그 순간.

이든의 신형이 화살이 날아온 곳을 향해 단번에 쏘아졌다.

트럼프가 아차 하며 화살을 재장전하려 들었지만, 이든의 움직임이 그보단 훨씬 빨랐다.

트럼프의 기운이 느껴졌던 곳.

그곳을 향해 이든의 검은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휘둘러졌다.

콰과과광…!!!!!!!!!

일순 거대한 폭음이 울리고, 이든의 오러 블레이드가 휘둘러진 자리로 삼 장 깊이의 검흔이 새겨졌다.

그리고.

트럼프가 타 있던 전투마가 두 동강이 난 채 죽어 있었다.

“죽었나?”

보이지 않으니 제대로 확인할 겨를이 없던 그 순간.

피이이이이잉!!!!! 쐐애애애애애액!!!

또 다른 화살 4개가 이든을 향해 재차 날아들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촉에 오러를 담아낸 위력적인 화살이었다.

이든의 오러 블레이드가 쏘아지기 전 있는 힘껏 몸을 날렸던 트럼프가 착지하기 무섭게 화살을 쏘아 낸 것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임기응변이 아닐 수 없다.

하나, 오러를 피워 낼수록.

그리고 그 힘이 강할수록.

도리어 이든에게 자신의 위치만 알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든의 검이 번개와 같이 휘둘러졌다.

채재챙챙!!!!

날아오던 화살을 모두 쳐내기 무섭게 그의 신형이 화살이 날아온 곳에 기척을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재차 몸을 날리는 트럼프.

동시에 화살을 장전하며 촉에 오러를 피워 내던 그 순간.

쏘아졌던 이든의 신형이 트럼프가 몸을 날린 곳으로 삽시간에 휘어지며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든의 착 감긴 눈과 마주한 트럼프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맹인이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죽음을 예감한 트럼프가 넋 나간 얼굴로 황망하다는 듯 입을 뗐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들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 이든의 오러 블레이드가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푸슈슈우우우우우우!!!!

트럼프의 사지육신이 분해되어 사방에 흩어졌다.

반란군의 주축이었던 버몬트, 오벨슈타인, 트럼프가 유명을 달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

일각이 채 되지도 않았다.

활약이랄 것 하나 없이 허무하리만치 죽은 선봉장들의 죽음을 멍하니 바라보던 반란군들의 얼어붙었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누군가의 외침 때문이었다.

“사, 살려 줘!!!!!! 여기서 개죽음당하기 싫다고!!!!!!!!”

그 외침을 시작으로.

반란군들이 저마다 무기를 버리곤 도망치기 시작했다.

썰물 빠지듯.

기세등등하던 입성 때에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발악하는 이들만 남았을 뿐이었다.

빠져나가는 반란군들을 뒤로하고, 이든의 고개가 황궁 쪽으로 돌려졌다.

마치 그의 기감이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시신혈해 속 홀로 우뚝 서 있던 이든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나아가는 곳.

황제의 집무실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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