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입 뻥끗 않던가?”
아슬란 황제의 물음에 카슬테인이 고갤 숙였다.
“죄송합니다. 신이 부족하여 자백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듣던 아슬란 황제가 휘휘 고갤 저었다.
“듀란드 그자의 입이 무거운 것을 왜 자네 탓을 하는가. 고생 많았네.”
“송구합니다.”
그때, 아슬란의 시선이 칼스테인에게서 떼어지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렇다는구만, 어찌…. 자네가 직접 들어가 보겠나?”
황제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이든이 서 있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내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의 얼굴에 일순 차디찬 미소가 드리웠다.
“네.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에게 빚진 것도 있고, 내심 그가 그리 나와 주길 바랐으니까요.”
“그, 그런가… 하하.”
아슬란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든의 저 표정을 보고 있자니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과 태자의 목숨을 노렸던 반란의 주동자였던 듀란드가 왜인지 모르게 안쓰러워진 그였다.
***
끼이이….
지하 감옥의 두꺼운 철문이 재차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짐짝처럼 버려져 있던 듀란드의 시선이 자연스레 미비한 빛이 흘러나오는 문 쪽을 향했다.
들어오는 한 인형(人形).
쿵.
재차 닫힌 철문.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시 찾아온 어둠.
들어온 이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훗….”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
듀란드가 낸 소리였다.
조금 전 심문받았을 때와 달리 이번엔 듀란드가 먼저 입을 뗐다.
“칼스테인, 자네야말로 결정을 내렸나? 날 죽일지. 아니면 이 의미 없는 이 짓거리를 계속할지.”
취조당하는 이는 듀란드 그 자신이건만, 말하는 본새는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반강제적으로 제 죽음을 권유하는 모양새가 이자가 진정 반란을 주동한 범죄인이 맞는지 의문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온 음성은 듀란드를 퍽 당황하게 만들었다.
“계속하지.”
“…응?”
어둠 속에서 보일 리는 없지만, 듀란드는 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네놈은 설마….”
사방이 깜깜한 어둠이라지만, 어찌 이 목소리를 잊으랴.
그가 입술을 짓씹듯 천천히 입을 뗐다.
“이든…!”
그리고 그의 말에 답하듯.
화르르륵.
일순 푸른 불꽃이 허공에서 피어났다.
불꽃이 피어난 곳은 손.
칼스테인과 같은 안광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듀란드가 아닌 불꽃을 피워 낸 이. 마치 듀란드에게 확인시키듯 자기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빛을 받으며 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착 감긴 눈에 수려한 외모였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더없이 서늘한 미소였다.
이든이 천천히 입을 뗐다.
“너와 독대하는 날을 너무도 기다려 왔지.”
“네, 네놈이 어떻게 여길…!”
“칼스테인 백작이 말해 주지 않았나? 직접 고문하여 네놈의 자백을 받아 낼 이가 올 것이라고.”
“서, 설마….”
“그래. 그게 나야….”
이든의 입꼬리가 조금 전 미소보다 위로 쭈욱 올라갔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을 주는 것은 왜일까.
듀란드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다 일순 소리 내 웃었다.
“훗….”
“…….”
“그리 말하면 내가 겁이라도 먹고 줄 알고?”
“…….”
“천만에!!!!”
“…….”
“네놈이 내가 어떤 고문을 한다 한들 내 대답은 항상 같을 것…!”
훅.
그때.
감옥을 은은하게 비추던 이든의 삼매진화가 훅 꺼지며 재차 사방에 어둠이 드리웠다.
이든의 돌발행동에 듀란드의 말문이 막히고, 입이 꾹 다물어졌던 그 순간.
콰직!!!!!!!!!!!
무언가 부서지고 짓이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반응은 즉각적으로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울부짖는 듀란드의 비명이 사방에 울렸다.
어찌나 악을 써 대며 소릴 질러 대는지, 한차례 비명을 토해 내던 듀란드의 목에선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끄, 끄으으….”
곧이어 침음성이 들려오고.
화륵.
꺼졌던 삼매진화가 다시금 피어오르며 안을 비췄다.
핏발이 터져 붉게 충혈된 듀란드의 눈이 자신의 발 한쪽을 향했다.
뼈마디가 전부 부서졌는지. 이전에 형체는 알아볼 수 없는 넝마가 된 자신의 발이 보였다.
듀란드의 동공이 치켜떠지며 이든을 향했다.
“이, 이놈… 내가 이런다고… 입 한번 뻥끗할 것 같으냐….”
정신이 혼미해졌던 탓일까.
듀란드가 실언을 했다.
이는 곧 자신의 뒤에 배후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말이었으니까.
이든이 씩 웃었다.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여기서 멈추면 상당히 아쉬워질 참이었거든.”
“…….”
“앞으로 어떤 식으로 고문이 진행될 것인지 설명해 주지.”
이든이 넝마가 된 살가죽을 짚었다.
그리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조금 전 발을 시작으로 그다음엔 발목을 부술 거야. 그다음 종아리를 자근자근 밟아 줄 예정이고, 이다음엔 무릎을 가루로 만들고, 그 후엔 이 넓적다리를 잘근잘근 다져 줄 계획 중이지. 이 일련의 과정을 모두 끝내면 어떻게 될까?”
“…….”
“완전히 넝마가 되어서 살가죽만 남은 네놈의 한쪽 다리가 보이겠지. 아…! 너무 걱정하진 마. 절대 죽이진 않을 거니까. 왠지 알아?”
“…….”
이든의 손이 듀란드의 반대쪽 다릴 향했다.
“다리 한쪽이 더 남으니까 말이야. 즐길 거리는 충분해….”
“……!”
듀란드의 눈이 부릅 뜨였다.
조금 전 발이 넝마가 됐을 때만 해도 듀란드는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저 과정을 아홉 번이나 더 겪어야 한다고…?’
고문은 예상했었다.
그리고 저들이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못 배길 때까지 버틸 자신 역시 있었다.
한데….
듀란드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 전 발이 넝마가 됐던 그 순간의 고통이 아직도 생생했다.
‘과연… 버,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 이 질문을 던진 순간.
버티지 못할 것은 이미 자명한 일임을 그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때.
훅.
이든의 손에 피어오르던 삼매진화가 다시 훅 꺼지며, 어둠이 찾아왔다.
그리고.
쿵쿵.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철문이 열리며 미비한 빛이 흘러들어왔다.
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이든의 신형이 도중에 우뚝 멈췄다.
“오늘은 당신에게 어떤 답을 듣고자 온 것이 아니야. 그냥 맛보기랄까. 앞으로의 일정을 기대해도 좋아. 나 역시 기대하고 있을 테니.”
“…….”
“최대한 버텨 다오. 부탁이다.”
“……!”
그리고.
쿠웅.
철문이 다시 닫혔다.
흘러들어오던 미비한 빛이 차단됨과 동시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일순.
듀란드의 마음 한구석에 조금씩.
공포라는 감정이 새겨지고 있었다.
***
일급 범죄자를 가두는 감옥이 마련된 지하에서 나오니, 칼스테인 백작이 이든을 기다리고 있었다.
칼스테인 백작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떻소. 자백을 하던가요?”
“아뇨.”
“역시… 그렇군요. 생각보다 고문을 버텨 내는 의지가 대단합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응?”
“그리고 저 역시 오늘 듀란드에게 자백을 듣고자 이곳에 온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이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칼스테인 백작이 고갤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든 길드장…?”
“자백을 받아 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언지 아십니까?”
“……?”
“고문은 부차적인 겁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공포죠.”
“공포요?”
“죽음을 각오한 인간들에게 한순간에 고통은 이겨 내면 그뿐입니다. 해서 그들이 가진 두려움을 자극해야 하죠.”
“…두려움?”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 신체도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자기 스스로 살려 달라… 아니, 죽여 달라 애원할 겁니다. 물론 술술 자백도 불 것이고요.”
“…….”
칼스테인은 순간 할 말을 잃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눈앞에 저 청년이 정녕 약관도 되지 않은 젊은이가 맞는지, 아니면 이런 일을 숱하게 겪어 온 백전노장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때,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우선 며칠간은 저리 혼자 두시죠.”
“혼자 말이오?
“미끼를 던졌으니 어둠 속에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잡념이 쌓이고, 곧 그 잡념은 저자의 마음속을 뒤흔들며 두려움을 키워 갈 겁니다. 그리고 그때, 백작님께서 나서시면 되는 겁니다. 그리하면….”
말끝을 흐리던 이든의 기감이 듀란드가 있던 지하 감옥 쪽으로 향했다.
그가 재차 입을 떼곤 말을 이었다.
“폐화와 백작님께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 내실 수 있을 겁니다.”
“…흠.”
칼스테인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시간이 걸릴 뿐이지 어렵지 않게 자백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 한때나마 장인이었던 자를 저리 놔두니 그 역시 마음속 한구석에 있던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하아….”
칼스테인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이를 듣지 못할 리 없던 이든이 그에게 물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지금쯤이면 급보로 소식이 내 영지에 도착했을 것이오. 칼라슈와 제인도 자기 할애비가 벌인 짓에 대해 알게 되겠지. 하나 가장 걱정인 것은….”
“마님의 반응이 걱정되시나 보군요.”
“맞소. 잘 알고 계시는군요. 아내에 대한 소문이 거기까지 났소이까?”
이든이 피식 웃었다.
“알고 있는 이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긴.”
이 부분은 칼스테인 백작도 순순히 인정하는 점이었다.
이미 자신의 부인인 리안나의 악명은 성내에 시녀와 신하들 사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칼스테인 성이 그들의 집도 아니고 매일 같이 성에만 틀어박혀 살고 있을까.
그들도 때가 되면 집에 가고, 가족들을 만난다.
그리고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떠들어 댈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리안나의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친구나 동료들에게 들은 것을 고대로 말해 줄 것이고….
그가 리안나와 혼례를 올린 지 거진 20년이 되어 간다.
그사이에 영지 전역에 그녀의 악명에 관한 소문이 안 퍼졌다면 도리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었다.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그래서 앞으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칼라슈나 제인 아가씨 같은 경우엔 적잖이 충격을 받기야 하겠지만, 마님 같은 경우엔 큰 반발이 있을 터인데요.”
“물론이오. 아마… 내가 제 아비를 추포하여 옥에 가두었다는 사실을 알기 무섭게 길길이 날뛰며 당장 이곳에 달려오고 있을 것이오. 그리고 주변 시선 상관 않고 꺼내 달라고 난장을 치겠지.”
이든이 저도 모르게 휘휘 고갤 저었다.
언젠가 들이닥칠 제 부인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칼스테인을 생각하니 그가 다 속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때, 이든이 문득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
“한데 반란군의 직계 가족이면 숙청에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까? 칼라슈나 제인은 어떻게 피해 가더라도 마님께선 위험하실 텐데요.”
“그렇지 않아도, 폐하께 청을 드려서 사면을 받기야 했는데 문제는….”
“마님께서 그것을 받아들일지가 관건이겠군요.”
“그렇소.”
“하아….”
칼스테인 백작에 관한 사적인 일이라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을 테지만, 칼라슈까지 연관된 일이다 보니 이든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칼라슈 녀석, 이번 일이 그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산 넘었더니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는 꼴이었다.
나라를 지키는 것만큼 가족을 지키는 것 또한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이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