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250)

129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수도에 소집된 지부장들은 앞다투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듀란드의 주동하에 이루어진 반역에 관해 사실 여부를 물었다.

사실이란 얘길 들었을 때, 유니콘 길드는 아무런 피해가 없이 지나갔는지를 걱정하다가 반란을 막아 낸 이들 중에 이든 길드장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를 듣곤 상당히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서야 이든이 길드장을 그만두는 연유에 관해 물었다.

신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대단한 실적을 이룩해 낸 그였으니, 갑자기 그만둔다는 게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고령의 부모님을 모시고 싶다는 이든의 대답을 듣고 하나같이 수긍하는 모습이긴 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급작스럽게 결정된 길드장 자리의 위임으로 유니콘 길드는 다시 투표를 거쳐 길드장을 선출해야 했다.

투표는 수도 본부에서 이전보다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여 모든 지부의 길드원들에게 물어 하나도 빠짐없이 의견을 취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결과는….

아슬아슬한 차로 칼스테인 영지의 게럴드가 길드장으로 뽑혔다.

칼스테인 지부의 압도적인 실적이 반영된 결과였다.

게럴드는 내내 얼떨떨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뭐, 잘된 일이었다.

가뜩이나 심심하니 어쩌니 하더니만 일복 터진 것이다.

결국, 게럴드는 길드장으로 승격됨과 칼스테인 영지의 빈 지부장 자리를 하루빨리 채워야만 했다.

그리고 칼스테인 영지의 지부장은 만장일치로 이리아 비서장이 되었다고 한다.

역대 유니콘의 지부장 중 가장 최연소 승격이였다.

그렇게 유니콘의 일이 마무리되어 갈 때, 수도의 황궁 역시 반란의 잔재들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였다.

그리고.

이든의 길드장으로서의 업무 마지막 날.

카르엘 비서장과 함께 위임 마무리 작업을 앞두고 있을 때, 그의 앞으로 한 서신이 당도했다.

황궁에서 보내온 서신이었다.

금실의 비단으로 정성스레 싸인 이 서신은 놀랍게도 황궁의 관료가 직접 전달하러 와 주었다.

카르엘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 서신을 받고는 이든을 대신해 읽어 주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던 이든의 눈살이 차츰 찌푸려졌다.

“…네? 작위 수여요?”

“…네. 그렇다는데요?”

이든의 고개가 서신을 전해 주러 온 관료 대신이 있던 쪽으로 향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작위 수여라니요.”

따지듯 묻는 그의 모습에 나이 지긋한 관료가 식겁한 얼굴을 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반란 당시 이든의 활약에 대해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었다.

그뿐이랴. 칼스테인 백작에 이어 또 한 명의 소드 마스터가 탄생했다며 여기저기서 떠들어 대고 난린데, 이 관료라고 그 소문을 듣지 못하였을까.

아마 이든의 괴팍한 성격 역시 오기 전에 충분히 들었을 것이다.

관료가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나, 나라를 구하신 영웅분께 보답하고자 폐하께서 성의를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의는 개뿔. 앞으로도 귀찮은 일 시켜 먹으려고 주는 것 아닙니까?”

“하, 하하… 그, 그래도 명예 작위라 하셨으니 그리 귀찮은 일은 없으실 겁니다. 명예 작위란 말 그대로 작위만 내린다 뿐이지. 딱히 뭔가 일을 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흠….”

이든이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자 관료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한편으론 대단하기도 하다.

황궁에서 온 관료가 앞에 빤히 있음에도 황제의 성의 표시에 눈치 보지 않고 이토록 질색할 줄 아는 사람은 당연코 그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작위를 받게 되면 귀찮은 일이 한두 번은 생길 듯한데….’

이든은 결단코 작위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내가 직접 가서 철회해 달라 해야겠습니….”

이 일에 관해 이든이 직접 황제에게 따지러 가려는 찰나.

관료가 황급히 입을 뗐다.

“자, 작위뿐만 아니라. 토지와 보상금이 지급될 예정으로…!”

“…뭐라고요?”

이든의 걸음이 덜컥 멈추었다.

그가 재차 물었다.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토지랑… 보상금?”

“…아, 예에…!”

“토지는 어떤 토지… 어디 변방 촌구석 토지?”

“아, 아뇨! 수도 중심부에 저택을 마련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택?”

“예…!”

“…귀족들이 사는 그 저택?”

“예…!”

“…….”

“…….”

한참 동안 이어진 침묵.

계산이라도 하듯 이든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됐다.

‘…수도의 저택이면 내가 평생 아득바득 벌어도 못 사는 건데…. 게다가 받게 되면 부모님 모시고 살 곳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도 수도로 모셔올 부모님의 거처에 대해 고민 중이었던 그였다.

찰나 재빨리 계산을 마쳤던 이든이 넌지시 물었다.

“그 혹시…. 보상금은 어느 정도 되는지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아는 바가 있냐고?

관료가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당연히 알고 있지.’

그렇지 않아도 아슬란 황제가 그 부분에 관해 미리 귀띔해 주었다.

필시 이든 그놈이라면 물어볼 거라나 뭐라나….

관료가 의미심장한 음성을 내뱉었다.

“아마 평생 놀고먹어도 부족함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쿵!!!!

이든이 바닥이 울리도록 무릎 한쪽을 꿇곤 관료 앞에 포권지례를 올렸다.

“소신! 이든!!!! 폐하의 교지를 받잡사옵니다!!!!!!!!”

“…….”

“…….”

이든의 돌발행동에 재차 정적이 이어졌다.

함께 자리한 관료와 카르엘의 표정이 절로 굳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

‘속물….’

‘와… 속물이네. 이 양반.’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이든의 얼굴은 더없이 경건해 보였다.

물론, 그 경건한 표정 속에 감춰진 속마음에는 능구렁이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수도 중심부 집값이 얼마나 비싼데!!!’

…아암. 그렇고말고.

어째선지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그였다.

***

두두두두….

말 6마리를 매단 사륜마차가 수도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달리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길가에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비키다가 넘어질 정도였다.

저러다 큰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마부의 실력이 대단한지 정작 사고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거침없이 내달리던 사륜마차가 향한 곳은 수도의 중심부에 있는 황궁이었다.

마차가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황궁의 병사들이 황급히 이를 막아섰다.

“멈추십시오. 이 이상은 함부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병사의 제지에 마부가 망설이던 그때, 창이 열리며 더없이 날카로운 소리가 비수처럼 쏘아졌다.

“감히 어딜 막아!!!”

병사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마차의 창가 쪽으로 향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길을 막고 있어! 어서 비키지 못해!?”

열린 창을 통해 얼굴을 드러낸 여성.

세월이 조금 묻어나와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미모가 빼어난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세상엔 외모가 전부는 아닌 법. 그녀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표정은 영 달갑지 않다는 얼굴이다.

자연스레 하대하는 조금 전 말투도 그렇고, 특히나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마치 벌레 보듯 하는 것 같아 절로 기분이 나빠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의 시선이 마차에 그려진 가문의 문양으로 향했다.

바라본 병사들의 눈이 부릅 뜨였다.

너무도 익숙한, 모르는 사람은 없다시피 한 칼스테인 백작 가문의 문양이었다.

병사들이 급히 고갤 숙이며 비켜섰다.

“시, 실례했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새하얗게 질린 병사들의 얼굴을 흘겨보던 창가 쪽 여인 리안나가 그들을 같잖게 바라보며 입을 뗐다.

“어서 출발해.”

“예!”

마부가 읍하며 고삐를 쥐자 사륜마차가 재차 정원을 가로지르며 황궁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궁을 향해 더없이 빠르게 돌진하는 이 마차처럼.

그 안에 있던 리안나의 눈빛 역시 언제 돌진할지 모르는 성난 황소와 같았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제 아비가 저지른 죄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를. 그리고 칼스테인 백작이 그녀를 살리기 위해 뒤에서 황제에게 얼마나 선처를 바라며 애썼는지를.

지금 황궁으로 향하는 자신의 걸음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궁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은 당연히 칼스테인 백작의 귀까지 들어갔다.

“뭐…?”

진두지휘하여 황궁을 안정시키는 데 여념이 없던 칼스테인 백작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굳다시피 한 그의 모습에 병사가 황급히 입을 뗐다.

“백작님, 이러실 때가 아니라 어서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아, 알았네…!”

리안나가 얼마나 난리를 쳐 대고 있으면, 일개 병사가 저리도 닦달을 해 댈까.

칼스테인 백작이 그답지 않게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곤 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병사의 말대로였다.

궁의 응접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너무도 익숙한 음성이 난리를 쳐 대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 어딨어! 아버지부터 확인해야겠어. 어서 안내하지 못해!!!!”

저 먼발치에서부터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녀의 옆엔 제인과 칼라슈가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그녀를 말리고 있었다.

“어, 어머님 일단 진정을…!”

칼라슈도 칼스테인 백작 못지않게 감정 변화가 적은 이였다.

그런데 궁까지 쫓아가 난리를 쳐대는 제 어미의 모습은 도무지 감당되지 않는지 그답지 않게 허둥대고 있었다.

뭐, 그의 동생인 제인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고.

“어, 엄마… 진정해…!”

자연스레 쏟아지는 이목에 제인이 눈치를 보자, 리안나가 팍 인상을 썼다.

“진정!? 너희는 할아버지가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 그 소리가 나오니. 응!?!?”

듀란드 공작이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그녀는 이따금 세상 물정 모르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극에 달한 모습이었다.

이건 백치를 넘어 무식하다고 해야 할까. 제 아비가 저지른 반역죄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알면 도무지 나올 수가 없는 언행이었다.

그때, 리안나가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리를 치며 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부인, 그만두지 못하겠소!!!!”

궁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울리는 칼스테인의 음성에 리안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당신…!”

칼스테인을 발견하기 무섭게 리안나가 주변인을 뿌리치곤 성난 들소처럼 칼스테인을 향해 돌진해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칼스테인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짝!!!!!!!

리안나가 매섭게 휘두른 손이 칼스테인의 얼굴에 닿기 무섭게 찰진 소리가 궁에 울렸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칼라슈와 제인이 황급히 다가오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칼스테인의 눈엔 어느새 서늘한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이에 질세라 리안나의 눈에도 용암이 들끓듯 불꽃이 튀었다.

“당신이 그랬다면서요.”

“무엇을!”

“가여운 우리 아버지 잡아다 가둔 것이 당신이라면서!!!!!”

듣던 칼스테인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더욱 굳었다.

조금 전 뺨을 내줄 때에 얼굴은 얼음장 같았다면, 지금은 마치 감정조차 소멸된 돌처럼 굳은 얼굴이었다.

“당신…. 지금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이오?”

“상황파악?”

“당신 아비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요. 지금?”

그때, 리안나가 역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당신 아비? 당신 아비…!?!? 장인도 아니고 당신 아비!!!!!!!”

“조용!!!!”

“당신이야말로 입 닥쳐!”

“…뭐?”

“우리 아버지가 뭘 잘못했는데, 반역? 증거는 있어? 우리 아버지가 반역을 일으키려 했는지. 어쨌는지 당신이 뭘 알고 우리 아버지를 잡아들여. 어!?!?!?”

“……!”

이쯤 되면 답도 없다.

한설이 휘몰아치던 칼스테인의 눈엔 어느새 핏발이 가득 서 있었다.

그가 이를 악물 듯이 조용히 경고하듯 입을 뗐다.

“그 입.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요. 이곳이 어딘지 잊은 거요?”

“조심…!? 당신이야말로 잊었어. 내가 누구의 딸인지!!!!!!!!”

그때였다.

“어서 저 반역자의 딸을 추포하라!!!!”

먼발치에서 들려온 수비대장의 외침과 동시에 병사들이 달려와 그녀를 향해 창을 겨눴다.

리안나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이 천한 것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때, 그녀의 날카로운 음성을 뒤덮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놈이 감히!!!!”

리안나의 날 선 눈이 그곳으로 홱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아슬란 황제가 더없이 위엄 넘치는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아무리 그녀가 생각 없기로서니 황제 앞에서 고갤 치켜세울 정도로 막 나가는 여자는 아니었다.

리안나가 놀란 듯싶더니 황급히 고갤 숙였다.

“폐하.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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