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250)

131화.

“아버지…!!!!!!!!!!!!!!”

“…리, 리안나….”

리안나가 본 듀란드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다리의 뼈는 온통 부서지고 이를 지탱해 주던 근육마저 찌부러지다 못해 가죽 대기만 남다시피 하여 넝마가 된 한쪽 다리와 그에 못지않게 무릎까지 넝마가 되어버린 남은 다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세상 어느 딸이 그런 아비의 모습을 보고도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폐인이 되다시피 한 듀란드의 모습에 리안나가 주저앉으며 꺼이꺼이 울었다.

당장에 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그녀를 붙잡고 있는 병사들을 뿌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눈물 흘리던 리안나의 눈에 서슬이 비치며 이든을 향했다.

그녀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문을 열었다.

“네놈이냐. 네놈이… 우리 아버지를 저렇게 만든 것이냐!!!!!”

단지 소리만으로도 고막을 난도질하는 듯한 날카로운 음성이 리안나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무공 한 줌 익히지 않은 몸이라곤 믿기지 않을 살기까지 쏘아진 것은 덤이었다.

하나 왜일까.

그녀의 반응을 즐기듯 이든의 입가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리안나가 보는 앞에서 듀라드가 수감된 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입을 뗐다.

“누구긴 누구겠어. 바로 나지.”

“…이, 이이이 천한 개새끼가…!”

“흠. 폐하의 말씀이 맞구나.”

“…….”

“네년이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였어.”

고갤 휘휘 저으며 안타깝단 행동을 보이던 이든의 발이 일순 위로 들렸다.

그 모습에 듀란드가 경기를 일으키듯 발작해 댔다.

“…아, 안 돼!!! 제, 제발! 제발!!!!!!!!!”

콰직!!!!!!!!!!!!!!!!!!!!!

하나, 이미 들린 이든의 발은 자비 같은 것은 모른다는 듯 듀란드의 넓적다릴 향해 내리찍어졌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터져 나왔다.

듀라드의 찢어질 듯한 고성이 사방 천지를 진동시키듯 감옥 안을 울려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버지!!!”

듀란드가 외마디 비명을 쏟아 내기 무섭게 리안나의 반응도 벼락처럼 튀어나왔다.

설마하니 자신이 보는 앞에서 듀란드의 고문 모습을 보여 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이, 이이이… 이 개새…!!!!!!”

리안나가 핏발 선 눈으로 이든을 향해 쌍욕을 쏟아부으려던 그때.

이든의 손이 이번엔 듀란드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개새 뭐?”

“……!!!!”

욕설을 내뱉던 리안나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아무리 그녀가 앞뒤 재지 않고 제멋대로 날뛴다 한들 제 아비를 인질로 잡은 이든 앞에서까지 막 나갈 만큼 생각이 없진 않았다.

그때, 듀란드의 팔을 움켜진 이든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꾸우우우욱.

우득.

그의 팔뚝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비명을 쏟아 내던 듀란드의 입에서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꺽, 꺼허어어어억……!”

“그만둬!!!”

“그만둬?”

“…….”

“부탁하는 태도가 그 모양인가.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것 같은데.”

우드드득….

이든의 손에 재차 힘이 들어가기 무섭게 마저 못다 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안나의 눈이 부릅 뜨였다.

“……!”

지금껏 하늘 높을 줄 모르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그녀였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제 아비 앞에서까지 자존심을 세우진 못했다.

리안나가 일순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황급히 입을 뗐다.

“자,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우리 아빠 좀 놔줘요. 제발…!!! 끄흑! 흑…! 흐윽…!”

그녀는 양손에 연기라도 날 듯이 연신 손바닥을 비벼 대며 용서를 빌었다.

제아무리 아비가 사형을 앞둔 일급 범죄자라 한들 산 채로 사지를 짓이기는 고문을 당하는 모습은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것이었다.

듀란드의 팔뚝을 쥐던 이든의 손에도 절로 힘이 풀렸다.

이든이 듀란드가 갇혀 있던 옥에서 나와 철문을 닫자 리안나가 달라붙어 들여보내 달라는 듯이 이든의 바짓가랑이를 쥐었다.

“제발 들여보내 주세요…! 차라리… 차라리 아버지랑 같이 있게 해 줘요… 제발…!!!!”

하나, 이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든이 병사들을 향해 입을 뗐다.

“이년을 옥에 가둬라.”

“네…!”

병사들이 읍하곤 리안나를 재차 끌고 갔다.

아비를 부르짖는 리안나의 절규가 사방에 울려 댔다.

“아, 안 돼! 아버지!!!!!! 아버지!!!!!!!!”

쿠웅.

리안나가 옥에 가둬지고.

철문이 닫힘과 동시에 그녀의 목소리도 차단되며 일시에 끊겼다.

***

“어떤가?”

아슬란의 집무실.

황제의 물음에 이든이 입을 뗐다.

“반성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그래?”

아슬란이 짐짓 놀란 표정을 했다.

일급 범죄자 수용소에 가뒀으니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아슬란이 떠보듯 물었다.

“혹…. 고문이라도 한 건 아니지?”

“제가 아무리 생각 없기로서니 리안나 부인을 고문하겠습니까?”

“하긴….”

“그냥, 부인 앞에서 듀란드를 고문했습니다.”

“…….”

“그러더니 잘못했다 울고 불며 빌더군요.”

“…역시. 그냥 안 넘어갈 줄 알았지.”

과한 처사긴 했지만, 이든을 탓할 순 없었다.

예고도 없이 이든을 수비대장에 임명하고, 그녀를 끌고 가라 시킨 것이 그 자신 아니던가.

“그런데 말입니다.”

“응?”

그때, 이든의 고개가 비스듬히 꺾였다.

그의 표정이 어쩐지 잔뜩 심통이 나 보였다.

“수비대장이라니요?”

“아….”

“아무것도 안 시킨다면서요. 명예직이라면서요.”

“아! 그거. 수비대장직 그거 진짜 하는 거 아무것도 없어. 아무 걱정하지 말아!”

‘왠지 느낌 쎄한데….’

왠지 아슬란의 꼬임에 넘어간 듯한 기분을 쉽게 떨쳐 내지 못하는 이든이었다.

아슬란 황제에게 보고 후, 집무실을 나오는 길.

이든이 궁녀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와중 먼발치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이든 남작.”

이든의 걸음이 덜컥 멈추었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칼스테인 백작이었다.

‘그나저나 백작마저 남작이라 부르다니….’

이든이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작위를 받은 것이 새삼 실감이 됐던 모양이다.

그가 멈춰 서고, 앞서 안내하던 궁녀가 조금 멀찍이 떨어져 대기했다.

이든이 칼스테인 백작을 향해 고갤 숙였다.

“칼스테인 백작님.”

“…그 부인은… 괜찮소?”

평소 리안나 부인에게 시달리도록 시달렸던 그이지만, 아내 걱정부터 하는 것을 보면 그 역시 겉으로 표현만 안 할 뿐이지 상당한 애처가인 듯한 모양인다.

이든은 그녀 앞에서 듀란드를 고문했단 건 쏙 빼놓고 얘길 꺼냈다.

“병사들에게 잘 일러 뒀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냥 옥에만 수용해 놓은 상태입니다.”

“…고맙소.”

“한데….”

“응?”

“부인께서 사정하셔서 듀란드 공작의 몰골을 보여 줬습니다.”

“아… 그랬군. 알겠소.”

리안나가 받았을 충격을 걱정하는 걸까.

칼스테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때, 이든이 불쑥 화제를 돌렸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뜬금없는 그의 말에 칼스테인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엇이 말이오?”

“듀란드의 배후를 알아낼 기회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듀란드는 자신이 저지른 반역죄로 인해 리안나 부인이 옥에 수감됐다고 여길 겁니다. 제아무리 그가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들 리안나 부인까지 갇힌 것을 목격한 이상, 그녀를 인질로 잡는 시늉을 한다면 필시 미끼를 물 가능성이 큽니다.”

“과연….”

칼스테인 백작이 고갤 주억거렸다. 그 역시 듀란드 공작이 평소 리안나를 얼마나 아껴 왔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그것을 백작님께서 해 주십시오.”

“내가 말이오??”

“예. 무조건 백작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그 자신의 부인을 미끼로 자백을 받아낸다는 것이 꺼림칙하긴 했으나, 작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칼스테인이 비장한 얼굴로 입을 뗐다.

“알겠소. 내가… 그를 설득하겠소.”

“밑밥을 제대로 깔아 놨으니 어렵지 않게 성공하실 겁니다.”

“음. 알겠소.”

칼스테인 백작과 대화를 나누고 재차 궁녀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이든의 등 뒤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든.”

“칼라슈?”

이든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갤 돌렸다.

칼라슈가 어느새 그 앞까지 급히 와 있었다.

“그 어머님은….”

“너무 걱정 말게. 그렇지 않아도 자네의 아버님과 그것에 관해 대화를 나눴던 참이니.”

“…고맙네. 그리고 미안하네. 아마… 우리 어머니께서 자네에게 해선 안 될 말을 했겠지. 내 대신 사과하겠네. 용서해 주게.”

칼라슈의 반응만 봐도 평소 리안나의 성정이 어떤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이었다.

이든이 고갤 저었다.

“너무 마음 쓰지 말게.”

“그리고….”

“……?”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이든 남작.”

칼라슈의 말투가 일순 바뀌었다.

남작의 작위를 받은 이든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다.

“그래 봤자 명예 작위요. 그리 축하받을 만한 일은….”

“그것도 그렇지만, 이번 명예 작위는 의미가 큽니다.”

“……?”

“소드 마스터. 제국의 세 번째 소드 마스터가 되신 겁니다.”

소드 마스터.

그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이토록 경외하는 것일까.

하나, 한가지 쉬이 짐작이 가는 것은 이것 때문에 아슬란 황제가 자신을 욕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 일 이후로 자신의 삶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든이었다.

***

끼이….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내내 그곳에 갇혔던 듀란드가 일순 눈살을 찌푸렸다.

몇 날 며칠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다 보니 새어 나오는 미비한 빛에도 눈이 부셔 오는 것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인기척에 그의 몸뚱이는 반사적으로 바르르 떨어 댔다.

듀란드가 넝마가 된 두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도망치듯 몸을 벽에 바짝 기대었다.

이윽고 들어온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듀란드.”

“……!”

“아직도 배후에 관해 자백할 생각은 전혀 없소?”

그간 며칠 내내 그를 공포에 떨게한 악귀가 아닌 너무도 익숙한 이의 목소리였다.

듀란드가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들어온 이의 이름을 불렀다.

“카, 칼스테인…. 칼스테인 자네인가…?”

“맞소.”

“카, 칼스테인… 나를… 나를 어서 죽여 주시게…. 난 배후 같은 건 모르네…. 그러니 어서 죽여 주게. 제발….”

“그럴 순 없지.”

“…어째서 그리 매정하게 구는가.”

“그야 당신은 반역자니까. 설마하니 삼시 세끼 챙겨 주며 옥에서 얌전히 죽을 날만 기다릴 줄 알았나?”

“…으으…. 네놈이 그러고도… 내 사위더냐.”

“입 닥쳐!”

일순 칼스테인의 눈에 귀화가 타올랐다.

이글거리는 짙푸른 안광이 이 어두운 공간을 비추었다.

곧이어 번쩍이는 안광만큼이나 음산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꺼내지 말도록.”

“…으으….”

“그리고 한 가지 알려 줄 것이 있다.”

“…….”

“아까 봐서 알겠지만, 리안나가 수감되었다.”

“폐하께선 그녀 역시 배후에 관해 알고 있다고 판단하신바, 이든에게 그녀를 취조하라 명하셨다.”

“……!”

듀란드의 눈이 부릅 뜨였다.

흐릿하던 그의 초점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아, 안 돼…! 그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그 아인 아무것도 모른다…!”

“글쎄. 진짜 아는지 모르는지는 그녀를 심문해 봐야 알겠지.”

귀화를 터트리며 듀란드를 응시하던 칼스테인이 출입문 쪽으로 걸음을 돌리던 그때.

듀란드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의 걸음을 붙잡았다.

“마, 말하겠다…!”

“……?”

“배, 배후에 관해 전부 다 불테니… 그 아이만은 건들지 마…!”

“불겠다고?”

“그래. 다 불겠네…! 내 아는 한에서 모든 것을 말할 테니. 제발… 그 아이만은 건들지 마!”

거짓으로 꾸며 그의 딸을 인질로 잡은 효과는 대단했다.

애원하는 그의 목소리에 칼스테인 고갤 끄덕였다.

“좋아. 그럼 질질 끌 것 없이 바로 본론부터 묻지. 누구냐? 네놈이 뒤에 업은 그 배후가.”

“그, 그자는…. 다름 아닌 베, 벨…….”

듀란드가 배후에 관해 입을 떼려던 그 순간.

쉬이이이이이이익!!!!!

등 뒤로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칼스테인 백작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푹!!!

“끄허어어어억!”

화살 하나가 듀란드의 심장에 날아와 박혔다.

고된 고문으로 겨우겨우 붙잡던 생의 불꽃이 훅 꺼지며 그의 초점 역시 흐릿하게 사라져 가며 숨을 거둬 간다.

“이이…!!!!”

칼스테인이 화살이 쏜 이를 뒤쫓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이 역시 이미 손쓸 틈이라곤 없었다.

듀란드의 심장을 향해 석궁을 쏜 이는 어느새 독약을 깨물고 삼킨 뒤였다.

독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순간, 병사가 눈을 까뒤집으며 외쳤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나를…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의미 모를 말을 외치던 병사는 이내 피를 왈칵 쏟아 냈다.

그리고… 시커멓게 죽은 얼굴로 바닥에 쓰러졌다.

칼스테인 백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자신조차 어찌 손쓸 틈이라곤 없을, 모든 것이 찰나에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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