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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133/250)

133화.

별것 없던 이사를 마치고, 이든은 날이 밝기 무섭게 매일같이 유니콘 무관 학교를 찾았다.

이곳에 교관들이 목표로 한 일정 수준에 오르기 전까진 계속해서 출근 도장을 찍을 생각이었다.

대부분 교관의 무공 상태를 점검하고 마지막 발리스타의 차례가 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에 발리스타가 호흡을 가다듬더니 일순 그의 눈이 부릅 떠지며 쥐고 있던 대검이 허공을 갈랐다.

후우우우우웅!!!!!

어찌나 힘이 대단한지 휘두르는 풍압만으로 공기가 진동하고, 바닥에 흙먼지가 사방에 비산하며 피어올랐다.

우호법 ‘장룡’의 신공.

마룡검격의 일 초식이었다.

스으으으.

휘둘렀던 발리스타의 대검엔 기존에 푸른색의 오러가 아닌, 검은색의 오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든의 밑에서 가르침을 사사한 뒤로 그의 몸 안에 있던 진기가 마기로 변한 것이다.

이는 비단 발리스타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었다.

발리스타 외 다른 교관들, 그리고 무관 학교의 입관생들 역시 마인들의 수련법을 토대로 가르치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들의 체내에도 자연스레 마기가 축적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일정 경지에 오르면 발리스타와 마찬가지로 마기가 가시화될 터.

검은색의 오러.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비단 검은색이라 하면 부정적인 인식을 먼저 주게 된다.

특히나 제국 내에서도 검에 오러를 피울 줄 아는 검수들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들이 피워 내는 오러의 색은 백이면 백 푸른색이었다.

즉슨, 오직 유니콘 무관 학교 출신의 사람들만이 검은색의 오러를 피워내게 된다는 말인데, 훗날 이것이 나중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지금으로선 모를 일이었다.

“후우…!”

발리스타가 깊은숨을 쭈욱 내쉬었다.

그러자 그의 검에 가시화되어 피어오르던 마기도 차츰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네.”

앞에서 기감으로 발리스타의 변화를 훑던 이든이 찬찬히 고갤 끄덕였다.

듣던 발리스타의 얼굴이 일순 활짝 폈다.

“그렇소!?”

“응. 스스로 봤을 때 오러의 크기는 어떤 것 같아?”

보이지 않아도 그의 기감이라면 능히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가시화된 오러를 비교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했다.

이든의 물음에 발리스타가 밝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색이 검은색으로 변하긴 했지만, 오러가 눈에 띄게 커졌소. 기사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로 줄곧 정체된 기분이었는데, 이든 형에게 배운 뒤로 체감될 만큼 성장한 기분이오. 이 정도면… 익스퍼트 상급 정도 되려나?”

“흠.”

왜일까. 나름 만족스러운 반응에 발리스타와 달리 이든은 영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발리스타가 쭈뼛거리며 조심히 입을 뗐다.

“…표정이 왜 그러시오?”

“생각보다 성장이 느려서.”

“잉? 내가 생각보다 성장이 느리다고?”

수련을 시작한 뒤로 불과 반년 정도 지난 뒤였다.

익스퍼트 초급에서 상급까지 단숨에 넘어갔는데 성장이 느리다니?

발리스타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다.

“지금도 말도 안 되게 빠른 것 아니오…? 지금 내 경지만 해도 제국에서 손에 꼽을 텐데?”

“내가 목표로 한 너의 성장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야. 반년 안에 소드 마스턴지 뭔지까지 성장시키는 게 목표였는데 말이야.”

“…….”

발리스타의 표정이 찰나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이! 말도 안 돼!!! 어떻게 반년 안에 소드 마스터가 된단 말이오? 솔직히 이든 형이 1년 안에 소드 마스터로 만들어 준다 했을 때도 반신반의했구만, 무슨!”

이것 봐라?

이든의 눈썹이 찰나 꿈틀거렸다.

어느새 그의 흑색 검집이 발리스타의 머릴 향해 휙 날아들었다.

눈치챈 발리스타가 재빨리 몸을 날려 피하려 했지만, 일순 검집의 궤도가 꺾이며 그의 정수리에 정확히 떨어진다.

빡!

찰친 타격음과 함께.

“악!!!!!”

발리스타의 단말마 비명도 들려왔다. 머리에 혹이 뽈록 솟아오른 발스타가 고레고레 악을 써 댔다.

“왜 때려!!!!”

“이게 어디서 소릴 질러!”

이든이 재차 때리려는 시늉을 하자 발리스타 움찔하며 회피하려던 그때, 들어 올려진 이든의 검집이 일순 멈칫했다.

피하려던 발리스타의 움직임도 덩달아 멈췄다.

“왜, 왜 안 때리시오…?”

“알았다.”

“뭐가…?”

“네 녀석의 성장이 생각보다 더뎠던 이유.”

“느린 것 아니라니까.”

“내 기준에선 엄청 느린 거야.”

“…….”

저 기준.

저 괴물 같은 양반의 기준이란 것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발리스타로선 쉬이 감이 오질 않았다.

아무튼, 발리스타가 이든의 검집을 피해 슬금슬금 몸을 뒤로 빼내며 물었다.

“…어쨌거나 그 이유란 것이 뭐요?”

“실전.”

“……?”

“성장 속도와 비교하면 실전이 턱없이 부족해. 너, 지금까지 실전 경험이 몇 번이야?”

발리스타가 머릴 긁적이며 기억을 되짚었다.

“어렸을 때 옆집 형하고 싸운 적 한 번 하고, 어렸을 때 집 근처 숲에서 어슬렁거리던 오크 때려잡던 거 한 번. 그리고….”

대체 태생부터 얼마나 강하게 태어났으면 어렸을 때 오크를 때려잡았단 걸까. 하지만 이든이 묻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 말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진짜 제대로 된 실전은 없었어? 일전 아카데미 다닐 적에 토벌 나갔을 때처럼 말이야.”

“그런 실전은… 그것말고는 딱히 없는데. 생각해 보니 진짜 실전이라고 할 만한 게 없네?”

“역시….”

“아니, 근데… 실전 경험이 그렇게 중요하오? 그냥 수련만 해도 가능한 것 아니야?”

‘가능하기야 하지.’

하지만 효율이 다르다.

흔히 절정의 고수들이 말하기를.

천 번의 수련보다 한 번의 실전이 더 많은 깨달음을 준다고 했다.

이는 이든 역시 크게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백번 천번 같은 훈련을 반복한다 해서 경험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전투 현장.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여러 가지 변수들. 피 튀기는 실전만이 무딘 감각을 어느 때보다 영민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예민해진 감각은 수련의 효과를 배로 올려 준다.

이는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수련만으로 감각을 깨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실전이라는 것이 어느 때고 쉬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보니 쉽게 시도해 볼 수도 없다.

물론 단지 수련만으로 실전만큼이나 감각을 높이는 타고난 천재들이 이따금 등장하곤 한다.

그래서 세간엔 그를 가리켜 천하제일 후기지수라 하는 것이고.

이곳에도 그런 이가 한 명이 있긴하다.

칼스테인 칼라슈가 딱 그런 인물이었다.

물론 발리스타 역시 영재란 범주에 있는 친구지만, 칼라슈만큼에 천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실전. 실전이라….’

이든이 턱을 쓸며 발리스타의 부족한 부분을 어찌 메꿔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

일순 이든이 벌떡 일어서더니.

스릉.

뜬금없이 검집에서 검을 빼내 드는 것이 아닌가.

발리스타가 화들짝 놀라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이든 형…?”

“…….”

“왜 검을 빼 드는 것이오…?”

“내가 왜 빼 들었을까?”

되묻는 이든의 모습에 발리스타의 안색이 금세 새하얗게 질렸다.

‘미, 미친! 저 양반 벌써 맛이 갔잖아…!’

섬뜩한 표정으로 천천히 발리스타를 향해 다가가는 이든과 당장 내뺄 준비를 하는 발리스타.

첨예하게 대립하던 그들 사이로 불쑥 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스승님?”

“응?”

발리스타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이든의 움직임이 덜컥 멈추었다.

“릴리, 왔구나.”

발리스타의 눈 역시 자연스레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거기엔 이든처럼 검은 무복을 입은 앳돼 보이는 소녀가 무관 학교 안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발리스타가 이든과 릴리를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스, 스승님?”

이든이 심드렁하니 입을 뗐다.

“내 제자다.”

“…제자?”

“…….”

“이든 형의 첫 번째 제자라는 그 사람…?”

발리스타가 신기하다는 빛으로 릴리를 바라봤다.

그런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릴리가 다가오길 망설이던 그때,

“아!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구나?”

탄성을 내지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이든이 릴리를 향해 급히 손짓했다.

“릴리, 빨리 와 봐! 얼른!”

“네?”

릴리가 영문도 모른 채 불려 가곤 이든과 발리스타 사이에 섰다.

곁에 다가온 릴리에게 이든이 발리스타를 가리켰다.

“릴리, 얘 좀 죽여 봐라.”

“…네?”

“허업…!”

릴리가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했고, 옆에서 듣던 발리스타는 곧바로 식겁한 얼굴을 했다.

“스, 스승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분을 죽이라니….”

스윽.

과연 말보다 행동이 배는 빨랐다.

그녀가 채 다 묻기도 전에 이든이 자신의 검을 냉큼 릴리에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자자, 얼른!”

“…….”

검을 건네받았음에도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하던 그녀가 밍기적거리던 그때, 발리스타가 황급히 입을 뗐다.

“…자, 잠깐만 이든 형,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소! 처음 만난 사인데, 인사부터 먼저 시켜 주는 게 순서이거늘! 그리고…. 아무리 이든 형의 제자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가녀린 여자가 어떻게 날 죽일 수 있겠소?”

“뭐요?”

그때, 가만히 듣던 릴리가 발리스타를 향해 고갤 홱 돌리곤 노려봤다.

“듣자 하니 말씀을 조금 이상하게 하시네?”

“뭐가…. 말이오?”

릴리가 터덜터덜 발리스타 코앞까지 걸어가곤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가녀린 여자?”

“…….”

“내가 마음먹으면 진짜 그쪽 못 죽일 거 같아요?”

“…풉!”

“…….”

“푸하하하하하! 이 아가씨 말씀 참 재미나게 하신다.”

“하….”

그냥 웃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폭소를 해 대는 발리스타의 모습에 릴리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릴리가 조용히 입을 뗐다.

“죽이라 했죠?”

릴리에게서 느껴지는 살기에 이든이 더없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요.”

릴리가 발리스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응?”

“난 스승님을 닮아서 손속이 매서운 편이니까.”

“아니, 설마 진짜로 나랑 싸우려….”

발리스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릴리가 쥔 흑색 검이 잔영을 일으키며 발리스타의 목전까지 쏘아졌다.

“이런…!”

여유를 부리던 발리스타의 얼굴이 일순 핼쑥해졌다.

바로 앞까지 쏘아진 검 끝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필시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발리스타가 황급히 몸을 날렸다.

아니, 피하려 했으나 릴리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던 모양이다.

피잇!

나려타곤 하던 발리스타의 볼에 스치듯 자상이 그어졌다.

새겨진 상처에서 주룩 피가 흘렀다.

“이게 대체 무슨 짓…!!!!”

“발리스타.”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던 릴리의 기습에 발리스타가 버럭 소릴 지르려던 그때, 들려온 이든의 목소리에 목구멍 밖까지 나오려던 말이 콱 막힌 듯 멈추었다.

“검 들어.”

일순 이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이 몰아치는 파도처럼 발리스타를 향했다.

발리스타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세차게 흔들렸다.

“이, 이든 형…?”

“죽기 싫으면 싸워.”

“뭐…?”

발리스타가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든이 릴리에게 재차 입을 뗐다.

“릴리.”

“예. 스승님.”

“다시 시작하도록.”

이든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릴리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발리스타를 향해 재차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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