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250)

135화.

유니콘 무관 학교에 릴리가 합류한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생사결 탓에 발리스타는 큰 폭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비단 발리스타뿐일까.

릴리 역시 실전을 통해 부족했던 부분을 체득하며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참으로 좋은 징조가 아닐 수가 없었다.

무릇 고수 간에 대결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했다.

둘의 대결을 지켜봤던 남은 교관과 입관생 모두 덕분에 성장을 이룬 것 역시 덤이었다.

모든 것이 길드장을 그만둔 이후, 시간이 넉넉했던 이든이 무관 학교에 지대한 신경을 쓴 이후로 생긴 변화였다.

물론 이든은 단지 저들의 수련에만 신경 쓰지 않았다.

무관 학교에 매일 같이 출근하면서 그 자신의 수련 역시 게을리하는 법이 없었다.

지금처럼.

파아아아아아아앗!!!!

발리스타의 대검이 보다 선명해진 마기를 예리하게 세우며 거친 풍압과 함께 이든을 향해 쏘아졌다.

장룡의 마룡검격에 초식 중 일부. 모든 것을 분쇄해 버릴 듯한 기세로 나아가던 일수였다.

하나.

마기로 덧씌워진 이든의 양손이 발리스타가 휘둘렀던 검을 감싸듯 유려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지면에 굳건히 세워져 있던 발리스타의 두 다리가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이런…!”

이를 악물고 버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든이 선 자리로 빨려 들어갈 듯 넘어지는 발리스타의 턱을 향해 이든의 다리가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빠악!!!!

“끄억…!!!”

휘둘러져 난데없이 날아온 발에 얻어맞곤 발리스타가 ‘억’ 소릴 내며 저만치 날아갔다.

그때.

이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기감에 등 뒤로 무수히 많은 살기가 느껴진 것이다.

이든이 곧장 몸을 돌려 살기가 느껴지는 곳을 향했다.

화아아아아아아!!!!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검은 꽃잎이 사방팔방에 흩날리며 이든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검 끝에서 꽃을 피워낸 이. 릴리가 쥐었던 검을 휘두르자 주변을 맴돌던 꽃잎이 일제히 이든을 향해 떨어졌다.

마기로 이루어진 검은 색 꽃.

옥설화의 위화마검 초식이 만들어낸 진풍경이었지만, 아름다운 저 꽃잎 뒤에 숨겨진 것은 목숨을 노리는 칼날이요. 살초였다.

사방을 흐드러지게 가득 메웠던 꽃잎이 이든의 코앞까지 다가온 그 순간.

쿠우웅!

이든의 한쪽 다리가 진각을 밟았다.

후우우웅!!!

한차례 진동과 동시에 거센 모래폭풍이 그들 사이를 휩쓸었다.

동시에 이든을 향해 떨어지던 검은 꽃잎들이 목표물을 잃은 듯 비산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놀란 릴리의 눈이 부릅 뜨인 그 순간.

중앙에 몰아닥쳤던 모래 폭풍을 뚫고 한 손이 우악스럽게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훅!

“꺄아아아악!”

내던져졌다.

바닥을 나뒹굴었던 릴리가 급히 땅을 짚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매번 생사결을 반복했던 경쟁자이자 동료. 발리스타가 있었다.

경쟁자 이전 지금은 더없이 든든한 동료로 합심한 그들이지만, 앞에 마주한 괴물. 이든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인 듯 보였다.

그때, 이든이 자세를 풀곤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쳤다.

“그만.”

이든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릴리와 발리스타의 투기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후우….”

“하아….”

매일같이 반복된 생사결도 그렇지만, 이젠 손발까지 맞췄다고 어느새 하는 행동까지 비슷해진 그들이었다.

그들의 반응에 이든이 씩 웃었다.

하지만 웃는 표정과 달리 나오는 말은 그리 곱진 못했다.

“잠깐 몸 푼 것 가지고 앓는 소리를 해 대긴.”

이든의 잔소리에 릴리와 발리스타의 눈에 핏발이 섰다.

“잠까안!? 잠깐!?!?!?!?”

“스승님! 방금 그 말 완전 어이없던 것 알아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뒤로 이든의 대련 상대가 되어야만 했던 그들의 입에서도 곱지 못한 원성이 터져 나왔다.

뭐,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이든 나름엔 힘을 빼고 상대했던 모양이지만, 정작 릴리와 발리스타의 상태는 여기저기 멍이 든 채 산발이 된 거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든이야 저들 꼴이 보이지 않으니 이해를 못 하는 점이야 부득불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엄청 강해졌어. 그것도 단기간에…!’

이든의 쓴소리에 격한 반응을 쏟아 냈던 그들이지만, 릴리와 발리스타 역시 입으론 투덜대도 본인들의 성장에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었다.

아침엔 생사결을. 그리고 오후엔 이든과 대련을 반복하다 보니 성장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이든 역시 그들의 성장에 누구보다 뿌듯해했지만, 전생을 비롯해 사실상 첫 스승 노릇이다 보니 마음과 행동은 늘 따로 놀았다.

이든이 재차 쓴소릴 뱉었다.

“뭐, 다들 고생 많았고, 어서들 가서 밥들 먹어라. 원체 비실비실해서 수련에 도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되니. 쯧!”

혀를 차 대며 말을 늘어놓는 이든의 잔소리에 릴리와 발리스타의 얼굴이 재차 와락 일그러졌다.

‘아무튼!’

‘좋게 말하는 법이 없어요!!!’

차마 목구멍 밖으로 내뱉지 못한 원성을 속으로 삼키며 릴리와 발리스타가 터덜터덜 식당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때.

끼익.

유니콘 무관 학교의 대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고갤 삐죽 들이 내미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연무장에 홀로 있던 이든을 보더니 반가운 소릴 했다.

“이든!”

아는 목소리였던 걸까.

듣던 이든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환해졌다.

“루디?”

이든의 신형이 쏜살같이 루디 쪽으로 향했다.

미끄러지듯 번개와 같이 다가온 그의 모습에 루디가 놀란 얼굴을 했지만, 이내 웃음을 머금었다.

“여전하구나.”

이든이 마주 웃으며 손짓했다.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하지.”

“아니야. 어차피 바로 가 봐야 돼.”

“그래? 바쁜 건 여전한가 보구나.”

이든이 아쉬운 듯이 말하며 재차 입을 뗐다.

“그나저나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갑자기 말도 없이.”

평소 같았으면 언제 오겠다 언질을 주던 그였다.

평소와 같지 않은 모습에 이든이 의아해하던 찰나, 루디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이든.”

“……?”

“나 전방으로 간다.”

“전방?”

난데없는 말에 이든이 되묻자. 루디가 침중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뗐다.

“아무래도…. 곧 전쟁이 날 것 같아.”

“전쟁? 무슨 얘긴지 자세히 말해 봐.”

“며칠 전, 주변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그 때문에 사실 확인을 알아보기 위해 황궁에서 주변국과 맞닿은 국경 쪽으로 급히 척후병을 파견했다더군. 한데….”

“…….”

“파견했던 척후병들의 연락이 모조리 끊긴 모양이야. 그 때문에 황궁에선 난리 났고.”

“척후병들이 파견된 곳에 무언가에 있긴 있었던 모양이군. 연락이 안 되는 것은 발각됐단 뜻이고.”

“맞아. 해서 황궁에서 급히 대신들을 소집한 모양이야. 아무래도 곧 전란에 휩싸일 것 같으니. 하루라도 일찍 대비해야 한다고.”

“…….”

전쟁이라니….

아니, 이든 그 역시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공작이었던 듀란드를 포섭하고, 제국을 뒤흔들 작정이었다면 필시 주변국의 짓이라 여겼으니까.

한데, 루디가 전방으로 차출될 줄이야.

앞선 걱정에 이든의 얼굴이 심각해지려는 찰나, 루디가 애써 빙긋 웃었다.

“너무 걱정하진 마. 다행히 말단 마법사들만 파견되는 건 아니니까.”

“그 얘기는….”

“그래. 황궁의 마법사들 전체가 파견되기로 했어. 물론 대마법사 듀크 경도 함께 말이야.”

“그분에 대해선 나 역시 종종 들었어. 칼스테인 공작만큼 대단한 사람이라고.”

“응. 그분 역시 마법에 한해선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으신 분이니까.”

싸움.

특히나 전쟁 같은 대규모 전투는 사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기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지휘관의 역량이었다.

그만큼 지휘관 한 사람이 판도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단 얘긴데, 이는 전생의 무림에서도 크게 통용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까지 같이 움직일 정도면 주변국의 움직임이 보통 심상치 않다는 뜻 아니야?”

맞는 말이었다.

제국의 정세가 불안할 경우 병력이 파견될 때, 종종 황궁의 마법사들이 파견되는 일도 있지만, 대마법사 듀크까지 파견된 경우는 지금까지 전무후무했다.

루디 역시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 듀크 경께선 줄곧 제국의 마법 학문에 발전을 위해서 쉽게 마법사 아카데미 연구실에서 나오는 경우가 없으셨어. 헌데 폐하께서 간곡히 요청도 있으셨고, 그분이 보기에도 돌아가는 상황이 범상치 않으니 별수 없었던 거겠지. 아무튼, 그렇게 됐어. 해서 떠나기 전에 너 얼굴이라도 잠깐 볼까 왔던 거야.”

“…….”

이든의 굳은 표정은 쉽사리 풀릴 생각을 못 했다.

드러난 정황상 언제가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던 일이지만, 설령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그 자신과는 상관없는 동떨어진 얘기라고 생각했다.

작위를 받은 몸이긴 했지만, 애초에 제국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엔 더는 관심 갖지 않기로 하였고, 이를 알기에 황제 역시 이든에게 쉽사리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막상 그의 죽마고우인 루디가 전쟁터에 나간단 소릴 들었으니, 이든이라고 마음이 무겁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나, 전쟁터에 나가는 친구를 앞두고 이런 굳은 얼굴만 보여 줄 수 없었다.

평소 감정 표현에 짜디짠 이든이지만, 오늘만큼은 루디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부디 몸조심해서 다녀와라.”

“그래. 그동안 너도 건강해라.”

루디가 출전 준비를 위해 재차 황궁으로 발길을 돌리다 돌연 멈추었다.

“그리고 늦었지만, 남작 작위 얻은 것 축하해.”

“겨우 명예 작위 가지고.”

“아무튼.”

웃던 루디가 재차 걸음을 옮겼다.

그가 멀어질수록 환하게 웃던 이든의 얼굴이 찬찬히 굳어 갔다.

‘전쟁이라… 전쟁….’

***

황궁 내에선 단단히 입조심을 했던 모양이지만, 제국이 전란에 휩싸인단 소문은 금세 퍼졌다.

시시때로 전방으로 향하는 병사들과 기사들의 움직임만 봐도 금세 들통나는 부분이었으니 노력한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줄지어 늘어선 채 걸음을 옮기는 군사들을 바라보며 누군가 입을 뗐다.

“오늘도 움직이잖여…?”

“아무래도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나벼.”

“이번엔 어디로 간대?”

“그 예전에 듀란드 공작의 영지였던 곳, 거기로 간다는데?”

“일전엔 캐슬롯 영지인지 그쪽으로 가더니 이번엔 또 거기야…?”

“영주들이 대거 숙청당하고 반란군까지 모조리 잡아들이면서 대부분 영지가 전력이 빈 상태라잖아. 황궁에서 어찌어찌 급하게 상황 수습을 했다지만, 빈 전력이 쉬이 채워지겠나. 이거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고 이러는지….”

“…근데 말이여.”

“응?”

“마, 만약 영지들이 모조리 함락당하면… 그땐 어떻게 되는거여?”

“그때는….”

말하던 이가 말끝을 흐렸다.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지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 수도도 안전치 못하게 되는 거겠지….”

“그래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아무렴! 제아무리 예전 같지 못하다 해도 이 넓은 땅을 일통한 천하제일의 제국일세. 필시 외세의 침략에 잘 대응할 거야.”

“그, 그렇겠지?”

***

급작스럽게 돌입된 전시 체제로 황궁 전체는 전략 상황실로 변하여 돌아가고 있었다.

궁에 대신들 역시 하나같이 갑옷을 챙겨 입곤 대륙 전반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급급하던 그때.

얼마 전 계급이 상향되어 현 상황을 총괄하던 칼스테인 공작으로부터 캐슬롯 영지에서 온 전령이 들이닥쳤다.

까맣게 죽은 듯한 표정으로 황급히 달려오는 전령의 모습에 진두지휘하던 칼스테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공작님!!!!!”

“대체 무슨 일인가…?”

칼스테인 공작의 물음에 전령이 무릎을 꿇었다.

소란스러웠던 황궁 내부가 단숨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전령의 외침만이 쓸쓸히 울렸다.

“캐슬롯 영지가…! 함락되었습니다!!! 크윽…!”

“뭐!?”

칼스테인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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