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250)

136화.

“캐슬롯 영지가 함락됐다고?”

듣고도 믿기지 않는지 칼스테인 공작이 재차 물었다.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있던 전령이 눈을 질끈 감았다.

“…네! 저는 함락되어 가는 중간에 기사 단장님의 명을 받고 달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진즉에 영지 전체가 함락되었을 겁니다…!”

“대체 누구냐!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확인은 했느냐!”

“벨라트릭스 왕국이었습니다…!”

“뭐…?”

듣던 칼스테인 공작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벨라트릭스 왕국은 아슬란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온 동맹국이었다.

그런 그들이 난데없이 제국을 공격해 왔으니 제아무리 그라도 부동심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캐묻듯 연달아 물어댔다.

“…벨라트릭스 왕국이? 지금 이 사단이 밸스커드 국왕 짓이란 말이냐?”

“올려진 깃엔 필시 벨라트릭스 왕국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한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무엇이!”

한시가 아쉬운 상황이다.

칼스테인 공작이 닦달했지만, 어째선지 전령은 쉬이 입을 떼지 못했다.

대체 그곳에서 무엇을 봤길래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일까.

그가 퍽 당황한 얼굴로 횡설수설하듯 입을 뗐다.

“그, 그것이… 분명 영지를 습격한 적의 깃은 벨라트릭스 왕국의 것이었습니다. 한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니?

당최가 알 수 없는 말에 칼스테인 공작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사람이 아니라니. 알아듣게 좀 설명하게!”

“말 그대로입니다…! 캐슬롯 영지에 들이닥쳤던 놈들의 모습이 산 것들의 모양새가 아니었습니다. 하나같이 죽어 있는 시체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죽어 있는 시체 모양?”

듣던 칼스테인 공작이 의아한 얼굴로 되묻던 그때, 어느 한목소리가 둘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언데드로군요.”

칼스테인 공작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거기엔 익숙한 얼굴의 나이 지긋한 초로인이 서 있었다.

“듀크 경.”

“마법사 측 역시 모든 준비가 끝나 출전 직전 보고를 드리려 하는 참에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칼스테인이 고갤 저었다.

“아닙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언데드라고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전령이 본 것이 사실이라면 필시 언데드가 확실합니다.”

대마법사 듀크 경만큼이나 마법에 관해 정통한 것은 아니지만, 언데드가 무엇인지는 칼스테인 공작 역시 아는 바가 있었다.

“언데드라면 흑마법의 일종 아닙니까. 제가 마법에 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흑마법은 오래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또한 맞습니다. 흑마법은 아슬란 제국이 세워지기 이전, 각 땅의 왕국에서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이유로 마녀들을 대거 사냥하면서 사실상 그 명맥이 끊겼었습니다. 역사속기록으로 보면 그전까지만 해도 흔히 보였던 언데드 속성에 몬스터들도 당시를 기점으로 사실상 사라졌다 하더군요.”

“한데 그것이 어째서 다시 나타났단 말입니까?”

듀크가 고갤 저었다.

그 역시 어찌하여 다시 흑마법의 명맥이 이어졌는가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저 역시 아는 바가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사실 꽤 오래전부터 흑마법의 흔적이 영지 곳곳에 나타났단 것입니다.”

“오래전부터요?”

“제 기억으론 첫 발생이 아슬란 제국 창설 초기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도 국경 인근 작은 마을에서 언데드 떼가 나타났고, 당시 발견된 마을의 사람들 모두가 언데드에게 감염되어 결국 마법사들이 나서 감염자들과 함께 마을 전체를 태워 버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당시에 저 역시 파견되어 그 자리에 있었고요.”

제국 창설 초기라 하면 거진 40년 정도 된 정말 오래전 얘기였다.

듀크가 재차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흑마법의 발원지를 추적해 낼 순 없었습니다. 해서 당시에 내린 결론은 남은 마녀의 잔당들이 앙심을 품고 벌인 짓이라 여겼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황실과 마법사 단체가 나서 해결하고 쉬쉬했던 일입니다. 그 이후로도 이따금 같은 일이 몇 번 있었고, 가장 최근에 흑마법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 레온하르트 영지였습니다.”

“레온하르트 영지요?”

“예. 공작님의 아드님이신 칼라슈 공자께서 스스로 지원하여 나섰던 토벌 때 말입니다.”

“아… 그 얘긴 저 역시 들어서 있습니다. 이든 남작이 유니콘 길드장이었던 당시 조찬회 때 이를 언급하고 난리가 났었다는 기억이….”

그때, 말을 이어 가던 칼스테인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당시 현장엔 없었지만,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때, 유니콘 길드장이었던 이든 역시 말하지 않았던가.

주변국의 소행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물론 그때는 주의 깊게 듣지 않았었다. 그저 이를 핑계로 무관 학교를 무사히 설립하기 위한 것쯤으로 여겼다.

한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칼스테인이 중얼거리듯 입을 뗐다.

“벨라트릭스 왕국이 그간 제국을 혼란스럽게 만든 흑마법의 원흉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듀란드의 배후였을 가능성이….”

듀크 역시 고갤 끄덕였다.

“벨라트릭스 왕국이 듀란드 공작을 포섭하고 제국을 뒤흔들려 했던 모종의 배후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듀란드가 시해되기 무섭게 침략을 꾀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벨라트릭스 왕국이 어떤 식으로 소실된 흑마법을 손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는 쉬이 볼 일이 아니었다.

칼스테인 공작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듀크 경. 죄송한 얘기지만, 지금 당장 출전한 병사들을 따라 가주시겠습니까? 캐슬롯 영지와 가장 가까운 곳이 반역자 듀란드의 영지이니 필시 연이어 공격을 강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마법사 듀크 경이 서둘러 자릴 떴다. 여전히 경황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총지휘관인 그까지 허둥대서는 안 되었다.

집중된 이목 속에서 칼스테인 공작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경들은 모두 들으시오!”

“예.”

곳곳에서 작게나마 읍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국을 침략한 적의 정체가 파악된바. 지금부터 본인은 황제 폐하의 대리인으로서 황명을 발동하도록 하겠소. 수도 역시 무기한 전시 체제로 돌입. 각 관료 대신은 가지고 있는 사병들을 모두 풀어 수도의 각 동서남북 외벽에 배치해 대기토록 하시오.”

“……!”

일순 회장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들썩였지만, 칼스테인이 가볍게 묵살했다.

“조용.”

“…….”

“내 말 끝나지 않았소. 그리고 수도에 있는 모든 용병 길드에게 합류를 요청하시오. 말을 듣지 않을 시. 강제해도 좋소!”

“아, 알겠습니다.”

“사관.”

그때,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 놀란 얼굴로 칼스테인 백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기록 중에 미안하네만, 급히 서신을 써 줄 수 있겠나. 칼스테인 영지로 보내야 할 중요한 서신이네.”

“네…! 알겠습니다.”

***

“폐하, 칼스테인 공작께서 오셨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신하의 목소리에 아슬란 황제가 힘없이 입을 뗐다.

“들라고 하게….”

“예…!”

다 죽어 가는 작은 목소리임에도 어찌 들었는지 신하가 곧장 읍했다.

잠시 후, 열린 문을 통해 칼스테인 공작이 들어섰다.

“폐하.”

누워 있던 아슬란 황제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하자, 칼스테인이 황급히 그를 말렸다.

“누워 계십시오. 폐하…!”

“아니네.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니 괜찮네. 신경 쓰지 말게.”

“…….”

황제를 향했던 칼스테인의 눈이 참담히 가라앉았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곧장 잘 걸어 나다니던 그였다.

한데 언제부턴가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된 것이다.

때문에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아슬란 황제를 대신해 칼스테인 공작이 그의 대리인으로서 현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것이었다.

“훗.”

칼스테인의 눈빛을 보던 아슬란이 씁쓸하게 웃었다.

“너무 그리 보지 말게. 어차피 예정된 순서였으니. 지금도 생각보다 오래 산 거야. 그보다 바깥 상황은 어떤가?”

아슬란의 물음에 칼스테인 공작이 망설이는 듯하다 어렵게 입을 뗐다.

“…캐슬롯 영지가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뭣?”

아슬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가 재차 되물었다.

“캐슬롯 영지가 적들에게 함락되었다고?”

“예.”

“생존자는?”

“전령의 말로는 그 자신이 유일한 생존자라 하였습니다. 그곳에 기사들과 병사들은 물론… 영지의 백성들 모두가 몰살되었다고 합니다….”

“…누구 짓인지 밝혀졌나?”

“벨라트릭스 왕국의 깃이 달려 있었다. 라고 전령이 전하였습니다.”

“벨라트릭스 왕국이…!?”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아슬란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하나, 뒤이어 들려오는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또 뭐가 더 있나?”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으나, 듀크 경의 말로는 벨라트릭스 왕국이 이번 캐슬롯 영지 침략에 흑마법을 동원하였다고 합니다. 줄곧 수차례 레온하르트 영지를 괴롭혔던 흑마법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바. 현재 출병한 병사들을 따라 대마법사 듀크 경도 함께 따라간 상황입니다.”

“그렇군.”

“…….”

찰나 정적에 휩싸인 방 안.

착 가라앉아 있던 아슬란의 시선이 칼스테인을 향해 올려졌다.

“칼스테인.”

“예, 폐하.”

“미안하네. 모든 것이 내가 부덕한 탓이야.”

“그게 왜 폐하 탓입니까.”

“천하를 일통하면 뭣하는가. 결국엔…. 믿었던 수하들과 동맹국에게 뒤통수나 맞는 호구가 되어 버린 것을. 이것이 어찌 나의 탓이 아니라 할 수 있겠나.”

“…폐하!”

듣던 칼스테인 공작이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아슬란이 입을 뗐다.

“칼스테인.”

“예.”

“내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이…. 해서 한 가지 청을 들어줄 수 있게나?”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칼스테인, 모른 척 말게.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

눈앞의 황제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칼스테인 그가 어찌 모르겠는가.

굳게 입을 다물던 칼스테인 공작이 고갤 끄덕였다.

“하명하십시오… 폐하.”

“내가 죽거든…. 황위를 잇게 될 태자의 후견인이 되어 주게. 아직 어린 그 아이에게… 황실은 감당할 수 없는 짐일세. 해서 염치 불고하지만, 그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만이라도 황실을 부탁함세… 나의 부탁을 들어주겠나?”

후견인이 되어 달라.

즉슨, 앞으로 황실에 닥칠 큰 짐을 대신 짊어 달라는 것.

아슬란 황제의 속내는 그것이었다.

하나. 칼스테인 공작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신 칼스테인, 무슨 일이 있어도 태자 전하를 훌륭히 보필할 것입니다. 하니… 부디 폐하께서 힘내 주십시오.”

아슬란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힘내서…. 최대한 버텨 봐야지…!”

***

겔럴드 길드장은 지끈거리는 골을 부여잡았다.

갑작스레 돌입된 제국의 전시 체제로 골머리를 앓던 중에 느닷없이 용병을 보유한 수도 내 길드에 징집이 발표되어 난감해진 탓이었다.

똑똑.

그때, 그의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이윽고 문이 열리고, 익숙한 한 이가 들어왔다.

게럴드가 바쁜 와중에도 그를 밝게 맞았다.

“이든, 왔는가!”

게럴드의 인사에도 이든은 앉자마자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길드원들의 징집이라니요.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사실일세.”

“그럼 유니콘 길드는 어찌 되는 겁니까?”

“우선 각기 떨어져 있는 것보단 한곳에 모이는 것이 낫겠지. 해서 전영지에 흩어진 길드원들을 수도로 소집한 상태네.”

“잘하셨습니다. 헌데 캐슬롯 영지는 이미 함락되었다 들었습니다. 그곳 지부의 길드원들은 어찌 됐는지 아십니까?”

듣던 게럴드 길드장이 고갤 저었다.

“일단 생사 확인을 위해 전서구를 보내긴 했네만…. 영지가 함락된 것이 사실이라면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라 생각되네. 들리는 말로는 성에 생존자가 전무하다는군… 어떻게 시신 수습이라도 하고 싶지만, 상황이 이래선 어려울 것 같네. 일단은 남은 사람들이 먼저 아니겠나.”

“그렇죠….”

맞는 말이었다.

죽은 이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딱히 그들의 넋을 기릴 다른 방도가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현재 오고 있는 각 지부 길드원들 역시 그들만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맞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들의 가족들까지 함께 짐을 꾸려서 수도로 오고 있단 소식을 전서구를 통해 지금 막 받은 상황이네.”

“…그렇군요. 애쓰셨습니다.”

“뭐, 이 정도로 애썼다 할 정도까지야.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지.”

맞는 말이었다.

이든 역시 고갤 끄덕였다.

“네. 어찌 됐든 길드원들이 모두 수도로 모인다 해도 결국엔 황궁 휘하로 강제 징집된다는 것인데….”

징집이 되면 좋든 싫든 간에 용병들은 전방에 나서 적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유니콘 길드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걱정인 것은 남은 동룡들마저 생사가 불투명해질 수 있단 것이다.

일순, 이든은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무관 학교에 교관들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눈 탓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들이지만, 이든에게 있어 가족만큼이나 더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어찌 길드원들의 징집을 피해 갈 방법이 없겠나…?”

“…….”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게럴드의 물음에 내내 침묵을 유지하던 이든이 무겁던 입을 뗐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 그게 대체 뭔가?”

게럴드가 일순 밝은 표정으로 입을 뗐다.

곧이어 영문을 알 수 없는 답이 들려왔다.

“접니다.”

“…응?”

“길드원들을 내놓는 대신 저를 제안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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