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달려가시는 전방 그대로 쏘시면 됩니다!!!”
옆에서 함께 말을 달리던 기사의 말에 이든이 고갤 주억거렸다.
그리곤 허리춤에 있던 흑색 검집에서 곧바로 검을 뽑았다.
뽑아낸 검신에서 일시에 엄청난 마기가 먹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곧장 휘둘러진 그의 검.
그 순간.
휘익!!!!!
반월 모양에 웅장한 검은색 검기가 듀란드 영지의 무너진 성문으로 돌진해대는 언데드들을 향해 쏘아졌다.
콰르르르르릉!!!
먹구름이 천둥 번개를 몰고 오듯, 날아간 검기가 굉음을 울리며 대지를 가르며 새까맣게 늘어선 언데드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정확히 성벽 언저리에서 멈추며 사라진 검기.
자칫했으면 성벽마저 베어 버릴 뻔했지만, 성벽 위.
언데드의 사기(死氣)가 아닌 산 사람들의 생기가 느껴진 곳까진 미치지 않도록 미리 힘 조절을 했던 탓이다.
그리고.
이든이 쏘아 냈던 검기에 효과는 엄청났다.
개미 떼처럼 몰려 있던 적들의 진영 한가운데가 휑하니 뚫리며 그 많던 적 중 삼분지 일이 단숨에 비명 한번 없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 엄청난 광경에 뒤에서 말을 달리며 따라오던 모두가 입을 쩍 벌렸지만, 마냥 넋 놓고 있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든의 옆에서 말을 달리며 내내 상황을 알려 주던 기사가 재차 입을 뗐다.
“이대로 뚫고 들어가면 될 것 같습…!!!”
하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이든이 말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제가 선두에서 놈들을 뚫겠습니다. 바로 따라붙으십시오!”
그러곤 곧장 신법을 써서 내달리더니 성문 인근에 모여든 언데드들을 향해 그의 신형이 쏘아지는 것이 아닌가.
옆에서 달리던 기사가 황급히 이든이 탔던 말의 고삐를 함께 잡으며 뒤에 따라붙은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 다들 남작님을 따라붙는다. 이럇!!!!”
기사의 외침에 남은 스물다섯 기의 말들이 일제히 속력을 냈다.
먼저 나섰던 이든이 진즉에 전방을 휩쓸다시피 길을 트고 있던 터라 그들이 뒤따라가는 데에는 조금의 어려움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도착한 성문 인근.
그 주변에 바글거리던 언데드들은 어느새 한낱 썩은 살점들로 화하여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하나,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성을 에워싼 채 주위를 포진하던 언데드들이 눈에 불을 켜듯 재차 성문 쪽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문 부근을 정리하며 앞을 뚫던 이든이 땅을 콱 밟고는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쏘아진 그의 신형이 이미 진즉에 들어선 언데드들을 향해 벼락같이 쏘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이든이 느끼는 기감의 영역이 천지사방으로 보다 더 넓게 퍼지며 성 내부에 천라지망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움직임에 제약이 생길 수 있음에도 운용하던 기운의 대부분을 기감 쪽으로 돌린 것이다.
이든,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조금 전 성문 주변을 뚫었을 때와 달리 성 내부엔 언데드 뿐만 아닌 그들과 고군분투하며 싸우는 병사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평소 그의 움직임대로 싸우다간 자칫 성의 아군들까지 휩쓸릴 위험이 컸던 탓이다.
“다들!!!!”
이든이 지금 막 들어선 동료들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병사들과 함께 내부로 들어선 적들을 소탕해 주십시오!!!”
이든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황궁의 정예병과 유니콘의 호송팀이 주변에 언데드들을 향해 내달렸다.
이든과 함께 온 기사들의 검엔 투지 만발한 짙은 푸른색의 오러가 피어오르며 언데드 병사들의 목을 떨어뜨렸고, 유니콘 길드원 역시 그들과 비교하여 기량은 떨어질지언정 줄곧 손발을 맞춰 왔기에 합심하여 놈들을 상대하는 기세만 놓고 보면 황궁의 정예 기사들 못지않았다,
사기 백배한 기세로 투입된 그들이 적병들의 움직임을 늦춘 사이.
휙.
이든 역시 쥐던 검을 공중으로 내던지며 곧바로 이기어 검을 펼쳤다.
쐐애애애애애애액!
퍼버버벅!
날아간 흑색 검이 섬전과 같이 쏘아지기 무섭게 곧장 들려오는 파육음(破肉音).
검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며 적아를 구분할 수 있다는 극강의 경지가 정확히 사기를 띄는 언데드만을 노리며 귀신처럼 쏘아지고 휘둘러졌다.
이든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
어느새 남은 언데드 적병들이 성문 인근까지 재차 바글거리며 안으로 들어서려 하던 그때였다.
그가 뚫린 성문 쪽으로 내달려 입구 한가운데에 떡하니 섰다.
그 모습에 적병의 움직임이 멈칫했지만, 기껏해야 찰나였다.
죽음마저 불사할 생명조차 남지 않은 그들에게 일반 병사든, 기사든, 혹은 조금 전까지 말도 안 되는 신위를 보였던 이든이든 간에 다 똑같은 먹잇감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든이 다가오는 언데드를 향해 주먹을 쥐었다.
흑색 검은 제 의지로 성안에 언데드 적병들을 유린 중이었기에 당장에 쥘 무기는 없었지만, 상관없다.
그의 지고한 경지는 검의 존재 유무를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스….
그때, 쥐었던 그의 두 손에 스멀스멀 마기가 피어오르며 새까만 기운이 입혀지기 시작한다.
이든이 전방에 몰려오는 사기(死氣)들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역시 반혼시들인가. 몰려드는 것이 겁들이 없어 보이는군. 이미 한번 죽어 봤던 놈들이라 그런가? 뭐, 그편이 나로서도 움직이기 편하지만 말이야.”
마기로 얼룩진 두 손을 불끈 쥐며 흉흉한 기세를 마음껏 방출해 내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현신한 악귀와 같아서 적의 심장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 법했지만, 놈들은 두려움이라곤 한 줌 모를 언데드였다.
움직임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그들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오던 그 순간.
마기가 입힌 두 주먹이 전방에 적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천둥 번개를 동반한 먹구름이 언데드들을 향해 쏟아지는 듯한 모양새였다.
콰르르르르르릉!!!!
그리고 그 굉음은 앞에 모든 언데드가 사라지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붉게 물들어 버린 하늘.
지금의 변화는 듀크의 대마법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지났기에 자연히 찾아온 하늘의 변화였다.
노을이 질 무렵.
듀란드 영지를 향해 쉴 새 없이 몰아치던 언데드의 숫자 역시 눈에 띄게 줄어 고작 몇백 남짓할 정도였다.
만약 적장이 조금의 생각이라도 있었다면, 병력이 이만큼 남을 때가지 공격을 퍼붓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놈들의 움직임은 오로지 뚫린 성문을 향해 득달같이 움직였다.
마치 적장의 명이 아닌, 본능만을 따라 움직이는 모양새로 말이다.
성문 한가운데를 굳건히 지키던 이든이 지면을 콱 찍어 신법을 밟고는 남은 언데드들을 향해 신형을 쏘았다.
번개처럼 놈들의 향해 내달렸던 그가 일순 뒤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 순간.
성안에서 언데드들을 유린하던 흑색 검이 섬전처럼 날아와 그의 손에 꽉 잡혔다.
그리고.
근처 코앞까지 날아와 공중을 내딛던 이든을 생기라곤 없는 흐릿한 눈동자로 멍하니 바라보던 적병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남은 잔당을 처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간 쉴새 없이 듀란드 영지를 괴롭혔던 언데드 적병들이 모두 사라지자 성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자자, 천천히 올리면 돼. 천천히!!! 대장장이들은 멀었어!?”
“연락을 취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부른 지가 언젠데 아직 도착도 못 하는 거야. 야! 누가 가서 그 사람들 빨리 좀 데리고 와 봐! 적들이 언제 재차 쳐들어올지 모르는 마당에 아직 성문도 못 고치고 있다는 게 말이 돼!”
물론 그 고요함 속에서도 후에 있을 침략을 대비하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역시 있었다.
그 속에서 이든과 동료들이 멀뚱그리 서서 한숨 돌리던 그때였다.
그들을 향해 누군가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이곳의 총지휘관.
대마법사 듀크였다.
그리고 듀크 옆엔 루디가 있었다.
루디 역시 이든을 알아보고 그를 따라 급히 달려온 것이다.
“이든!”
“루디?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
이든이 미소 지으며 반갑게 입을 떼던 그때, 그의 말이 도중에 덜컥 멈추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듀크가 다가오기 무섭게 어느새 이든의 손을 덥썩 잡은 것이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그 자신의 체면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조금 과한 반응이긴 했지만, 이든과 그의 동료들이 딱 알맞게 도착하여 영지가 무사했던 것이니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도중에 말이 끊겼던 이든이 멋쩍은 얼굴로 답했다.
“뭘요. 도움이 됐다니 기쁩니다… 하하하….”
“하하하….”
뒤에 있던 동료들도 따라 웃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했을 반응이긴 한데, 그 명성 자자한 듀크 경이 저리 한걸음에 달려와 연신 고맙단 말을 해 줄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든이 듀크가 연신 잡고 흔들어대던 손을 스리슬쩍 빼고는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적들이 벨스커드 왕국에서 왔다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소. 나 역시 이번에 오면서 직접 확인해 보니 적기에 벨스커드 왕국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소.”
“그럼 주변국의 소행이 맞다는 얘긴데, 조금 이상하군요.”
“무엇이 말이오?”
“적장이 없는 듯합니다.”
“적장?”
듀크가 되묻자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언데드라는 것이 어쨌든 마법인 이상 시전자가 있을 줄로 압니다. 맞습니까?”
“맞소.”
“그렇다면 적어도 시전자만큼은 살아 있는 생명체란 얘긴데. 놈들을 상대하는 내내 산 기운이 느껴지는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같이 전부 죽은 기운만 가득한 언데드들뿐이더군요.”
“어쩐지 보이지 않더라니… 역시 그랬군요.”
그 역시 이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간에 마법이란 것이 시전자가 죽으면 시전 중이던 흑마법 역시 자연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듀크 또한 그 혼란 와중에도 시전자를 찾고자 노력했지만,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한데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시전자는 이미 진즉에 이곳에서 자릴 내뺐다는 얘긴데, 죽어라 기를 쓰고 이곳을 노린 것치고는 뭔가 앞뒤가 맞질 않았다.
듀크가 중얼거리듯 입을 뗐다.
“시전자가 보이질 않는다라…. 말인즉슨 듀란드 영지를 노렸던 것이 단지…!”
중얼거리면 듀크가 일순 말끝을 흐렸다.
이든이 고갤 끄덕이며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아무래도…. 놈들이 연막 작전을 쓰는 듯합니다.”
“아니…. 그만한 병력을 쏟아부으면서까지 대체 무엇 때문에…? 단순히 수도를 노리는 것이 아니란 얘긴가?”
그때였다.
과거 반역자 듀란드가 쓰던 성에서 한 전령이 말을 몰며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달려오던 전령을 향했다.
잠시 후, 그들 앞에 전령이 멈춰 서기 무섭게 듀크가 황급히 물었다.
“무슨 일인가?”
“황궁에서 급보가 왔습니다!!!”
“급보가?”
“근데… 내용이 심각합니다. 아무래도 직접 보셔야 할 듯합니다.”
“이리 주게!”
듀크가 뺏다시피 전령이 들고 있던 서신을 낚아챘다.
서신엔 휘갈겨 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레온하르트 영지에 적군 발견. 적군의 규모가 그간 영지에 출몰했던 단순 언데드와 비교를 달리함. 공성 무기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여 갖춘 상태. 적의 본대로 짐작됨. 서둘러 지원 바람.
재빨리 서신을 훑던 듀크의 시선이 이든을 향했다.
“아무래도 놈들이 노리는 곳이 수도가 아닌 듯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서신에 대체 무어라 쓰여 있었길래요?”
“…레온하르트 영지에 적의 본대가 당도하였다 합니다.”
“네?”
이든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재차 확인하듯 입을 뗐다.
“레온하르트 영지에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