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250)

141화

이든의 신형이 벼락같이 쏘아졌다.

동시에 쥐고 있던 흑색 검이 기다란 마기의 잔상을 만들어 내며 데무한을 향해 휘둘러졌다.

삼 장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낌새라곤 일절 없이 눈 깜짝할 새 코앞까지 다가온 것.

꽤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데무한의 눈이 부릅 뜨이며 거친 안광을 토해 냈다.

하나.

채애애애애애앵!!!!

데무한 역시 녹록지 않은 실력자였다. 그가 순간적으로 쥐던 검을 교차해 내곤 이든의 일격을 막아 내었다.

카드드득!

맞부딪힌 검이 금속음을 터트리며 불꽃을 튀겼다.

이든이 검의 손잡이를 쥔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호오. 대단한데? 그걸 막아?”

“그대 실력 역시 제법….”

그때였다.

힘을 겨루던 이든의 검신이 튕기듯 떨어지고, 허공에 박힌 듯 멈춰 있던 그의 몸이 일순 팽그르르 돌았다.

쥐고 있던 그의 흑색 검 역시 검은 잔상으로 우아한 선을 그리는 듯싶다가 데무한의 목전까지 재차 쏘아졌다.

데무한의 한 손이 대검 하나를 높이 치켜들고는 그의 목을 향해 떨어지는 이든의 검을 재빨리 막아 냈다.

채애애애애앵!!!!

휘둘러졌던 방향 그대로 굳건히 서 있던 그의 두 다리가 땅바닥에 움푹 팬 자국을 남기며 옆으로 주욱 밀렸다.

연달아 기습을 날리던 이든이 다시 입을 뗐다.

“건방지게 어디서 나를 평가하려 들어. 네놈이 진정 죽고 싶은 게로구나?”

진득한 살기가 배어 나오는 거친 음성이건만, 투구 속 찰나 당혹스런 빛을 띠던 데무한의 눈이 재차 푸른 안광을 터트렸다.

그의 입가가 조금 전 이든과 마찬가지로 삐죽 솟으며 비릿하게 말아 올려졌다.

이윽고 안광을 토해내던 그의 눈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한다.

“그래. 이거야…. 이것을 기다렸다! 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이런 대결을 말이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데무한의 양손이 일순 빠르게 움직였다.

움직이던 그의 손에 쥐어진 대검이 번개와 같이 이든을 향해 휘둘러졌다.

휘휘익!!!!

콰아아아아아아앙!!!!

데무한의 검이 휘둘러진 자리에 일순 거대한 풍압이 일고, 시야 분간조차 안 될 정도로 먼지 바람이 뿌옇게 퍼지며 거친 숨을 토했다.

그때.

아직 가라앉지도 않은 먼지를 뚫고 데무한이 어딘가를 향해 튀어 나갔다.

휘이이이익!

결코 신법이라 볼 수 없는 단순한 뜀박질이건만, 그의 신형이 어느새 삼 장 이상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이든을 향해 ‘쿵’ 소릴 내며 묵직하게 떨어졌다.

데무한의 짙푸른 안광이 정확히 이든을 향했다.

“어딜 쥐새끼처럼 빠져나가느냐!”

데무한의 양손에 쥔 두 대검이 재차 빠르고 강하게 휘둘러졌다.

조금 전과 같이 강렬한 검풍이. 움직이는 그의 양손에 쥔 검을 따라 파도처럼 밀려 나오던 그때.

채애애애애애애앵!!!!

교차하여 내려찍던 그의 두 대검이 거대한 금속음과 함께 중간에 덜컥 멈추었다.

자연히 밀려오던 검풍 역시 잠잠해졌다.

교차한 검 중간.

이든의 흑색 검이 휘둘러졌던 데무한의 검로를 어느새 가로막고 있었다.

“쥐새끼 뭐?”

“……!”

흑색 검을 쥔 그의 손과 팔에 바짝 핏줄이 섬과 동시에 그의 팔이 광란의 춤을 추어 대듯 쉴새 없이 데무한을 향해 쏟아졌다.

이든이 만들어 낸 마기의 잔상이 비처럼 쏟아지는 검은 섬광을 만들어 내자 데무한의 눈이 부릅 뜨였다.

그가 황급히 대검을 가로질러 몸 가까이 바짝 대었다.

채챙! 채채채챙! 채채채챙!!!!

거대한 대검이 교차되어 전방을 가로막았으나, 가랑비에도 몸이 젖듯 모든 공격을 막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가로막은 대검 너머 전신을 둘러맨 갑옷에도 일순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휘익휘익휙휘이익!!! 채채챙!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을 무수한 검격들.

이를 막는 이도 힘겨울 테지만, 상식적으로 휘두르는 이 역시 체력 소모가 커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나.

데무한이 바라보는 이든의 얼굴엔 그 힘든 기색 한 줌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쉬지 않고 검을 내려치는 와중 이든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뗐다.

“그놈 참. 나대길래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싶었더구먼, 몸에 빈틈이라곤 없이 갑옷을 둘러맸나 보군.”

“이…!”

신경을 긁어 대던 이든의 비아냥을 듣던 데무한이 이를 악물곤, 바짝 갖다 대던 검을 다짜고짜 뒤로 훅 들어 올렸다.

방어에 생각을 두지 않은 오로지 공격에만 치중하겠단 돌발행동이었다.

덕분에 그사이에 더 많은 공격을 허용하게 되었지만, 그의 갑옷은 생각보다 단단하여 이든의 검격을 어떻게든 버텨 내려 애써 주고 있었다.

물론 불똥이 튀고 금이 가는 꼴로 봐선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지만.

그때, 뒤로 쭉 뻗었던 데무한의 검이 이든을 향해 강하게 휘둘러졌다.

지금까지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력의 일격이 이든을 향해 쏘아지던 그 순간.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우수처럼 쏟아지던 검은 섬광이 굉음을 터트리며 데무한의 일격에 움직임이 멈추어졌다.

쾌속의 힘과 육중한 힘이 맞부딪친 힘의 여파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들 주위로 홍수와 같은 압력이 터져 나오더니 숲이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떨어 댔다.

찰나 태풍이 휩쓴 듯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친 그 자리.

공격이 멈추었음에도 담담한 얼굴의 이든과 달리, 공격까지 허용해 가며 반격을 날리던 데무한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을 쳐 댔다.

데무한의 입술이 떠듬거리듯 떨려왔다.

“어, 어떻게…!”

“…….”

“조금 전 일격을 한 손으로 막았다고…?”

데무한의 떨리는 음성을 듣던 이든의 입꼬리 한쪽이 삐죽 솟았다.

“뭘 그리 놀라? 쥐새끼의 공격 따위 한 손이면 충분한 것을. 아니 그런가?”

“이…!”

바득 이를 악물던 데무한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지며 노한 음성이 천둥처럼 터져 나왔다.

“이이… 이놈!!!! 네가 감히 이 나를 놀리는 것이냐!!!”

콰아아아아앙!!!!

터져 나온 함성과 함께 그의 몸에서 방대한 사기가 터진 둑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주 서던 이든의 몸이 그 여파에 주룩 밀렸다.

밀리던 발에 힘을 주고 다시 멈춰선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호오. 이제야 본 힘을 보이는군. 진작 그리 나왔어야지.”

듣던 데무한의 눈에 거친 숨이 터져 나오듯 푸른 안광이 타올랐다.

“그래. 내 자네를 너무 쉽게 본 듯하군. 실수를 인정하지. 하나! 방심했던 나의 빈틈을 노리지 않고 괜한 자극을 하여 내 본 힘을 꺼내게 만든 것을 저승에서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 주마!!!”

“…….”

데무한의 양손에 쥐어진 대검에 새까만 오러가 진한 먹물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그 오러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필시 사기(死氣)였다.

놈들의 힘의 근원.

어찌 된 영문인지 전부터 신교의 그것과 참으로 흡사하다 느껴 왔건만, 데무한이 뿜어내는 저 강한 사기를 마주한 지금 이 순간.

이든은 비로소 확실히 깨달았다.

놈들을 지탱하는 힘이자, 비상식적으로 강한 저 사기.

그것은 필시 신교가 무파로 변하기 이전 종교의 색채를 띠며 세간에 ‘마교’라 불리고 탄압받던 그 시절에, 제 생을 깎아 강한 힘을 손에 쥐게 해 주던 당시의 마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때의 교는 어땠던가.

마공이 빠르게 쥐여 준 그 사특하고 강한 힘으로 삽시간에 세간을 공포에 떨게 했지만, 결국엔 당시 마인 모두가 마공이 가져다준 부작용으로 자멸할 뻔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것을 귀가 닳도록 선배들에게 전해 들은 후세의 천마들이 마공의 유혹을 떨쳐 내고 새로운 비전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써 왔던가.

그리고 그 비전의 결과물 중 하나가 이든을 통해 표출되기 시작했다.

조용히 과거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던 그의 무겁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보여 주지.”

“……?”

새까만 오러를 피워내던 데무한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생뚱맞게 갑자기 무슨 말을….”

그때였다. 데무한이 일순 말끝을 흐리며 입을 쩍 벌렸다.

이든을 앞에 두고 투기를 사방팔방 내뿜던 그의 눈에 일순 경악이 들어찼다.

무엇을 봤길래 저럴까.

무엇을 마주했길래 저토록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일까.

그의 흔들리는 시선이 향한 곳.

데무한이 마주한 이.

이든의 등 뒤로 새까만 마기가 전심전력으로 뻗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에워싸듯.

둘이 서 있던 천지사방을 감싸 둘렀다.

마치 무저갱처럼, 더없이 짙은 어둠이 하늘과 땅을 구분하지 않으며 새까맣게 깔렸다.

그 때문일까.

데무한이 뿜어 대던 오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의 오러가 담던 그 ‘사특한’ 기운마저 흔적도 없이 말이다.

데무한이 양손에 쥐었던 검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짙푸르던 안광마저 사라진 그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대신 피어올랐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방을 찢어발기듯 발산해 내던 그 자신의 투기와 힘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실로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때.

무저갱과도 같던 그 공간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우우우우우웅.

메아리처럼 울려오는 발소리.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데무한의 시선이 옮겨졌다.

그리고 그곳에 조금 전까지 그와 검을 나누던 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이.

이든이 입을 뗐다.

“이곳은 선대 천마들께서 대를 이어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해 낸 천마의 공간이다. 네놈같이 어쭙잖은 것들은 제힘을 결코 펼칠 수 없는 곳이지.”

그의 말대로였다.

데무한 역시 스스로 느끼지 않았던가.

이 어두컴컴한 공간에 갇힌 이후로 그 자신이 발산해 대던 힘이 사라진 것을. 하나.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깨물면 그만이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데무한이 검을 쥐었던 손을 움직이려던 그 순간.

덜컥.

그의 눈이 부릅 뜨였다.

“……!”

데무한이 저토록 당혹스러워하는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돌처럼 굳어 버린 그의 몸 때문이었다.

마치 석고를 온몸에 바른 것처럼 굳어진 몸이 그의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마치 훤히 꿰뚫듯. 이든이 입을 뗐다.

“발악해 봐야 소용없어. 움직이기 쉽지 않을 테니까.”

“대체….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

“그 전에.”

이든이 데무한의 말을 잘랐다.

그가 재차 입을 뗐다.

“천마란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왜 모든 마(魔) 위에 군림하게 된 줄 아는가.”

“조금 전부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지껄이고, 알아듣게 설명해. 이 개자식아…!!!”

고함을 쳐대는 데무한의 음성엔 일전엔 느낄 수 없던 공포란 감정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이든이 피식 웃었다.

“실로 당혹스러울 테지. 이 공간에서 너희 같은 가짜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가짜?”

“그래. 아무런 노력도 없이 거저 얻어진 그 힘 말이다. 모든 사악한 것을 무릎 꿇리기 위한 결정체인 이 공간에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숨 쉬는 것이 전부다.”

“……!”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던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대강은 알 수는 있었다.

데무한이 악을 쓰듯 전신에 힘을 주었다.

“이잇…! 움직여!”

덜컥.

“움직이란 말이다…!!!!”

그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데무한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의 것이 아니란 것처럼 결코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그사이, 이든은 어느새 데무한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진짜인 녀석들도 이 공간에선 맥을 못 추지. 이곳은 오로지 나에게만 허락된 마계(魔界)이니라.”

“……!”

데무한의 부릅 뜨인 눈이 거칠게 떨어 댔다.

두려움만이 새겨진 그의 눈동자가 한곳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흑색 검을 쥔 이든의 손이 높게 치켜세워졌다.

그가 애처롭게 중얼거렸다.

“아, 안 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데무한의 목이 일순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의 몸도 축 늘어져 곧장 바닥을 굴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