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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144/250)

144화.

이든을 마주한 채 서 있던 밸스커드는 일순 숨이 턱 막혀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른해 보이던 말투.

그리고 그다지 크지 않은 나긋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

하지만 정작 그 음성을 뱉어 낸 이든에게선 진득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목을 옥죄는 듯한 살벌하고도 소름 끼치는 살기였다.

빠드득.

“이, 이이이…!!!!”

마주 선 밸스커드가 소리가 다 들리도록 이를 악물었다.

분노 표출?

아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주인님도 아닌 고작 인간한테…!?!?’

그것은 마치 그의 안에 들어찬 두려움 떨쳐 내기 위한 발악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밸스커드가 거칠게 고갤 내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 내가. 이 밸스커드가 한낱 인간 따위에게 겁을 먹었을 리가 없다!!!’

그의 창백했던 피부가 삼켜 내지 못한 화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화르르륵!!!

밸스커드의 홍안이 타오르듯 거친 불길이 치솟았다.

“수하 몇 놈 해치웠다고 건방 떨지 마라. 애송이…. 나는, 나는 밸스커드란 말이다…!!!”

목에 핏대가 설 만큼 고래고래 외쳐대던 밸스커드의 전신에서 일순 사기(死氣)가 가시화되며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일전에 데무한도 그렇고, 조금 전 쓰러뜨리던 그의 수하 셋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어마어마한 사기였다.

이든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역시 네놈이 이것들의 대장이렷다?”

검을 쥔 이든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마치 밸스커드의 사기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흑색 검의 새하얀 검신에서 마기(魔氣)가 검은 오러를 뭉클뭉클 피우기 시작했다.

마기 대 사기.

색은 같을지언정 그 안에 담고 있는 기운은 필시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 이빨을 세우듯 첨예하게 대립했다.

우우우웅….

일순 거대한 힘의 충돌 속에서 잠시 후 일어날 격돌을 경고하듯 땅이 진동하며 기함을 토해 냈다.

그때.

쿠구구구국.

그들이 마주 보고 선 곳을 중심으로 바닥이 움푹 꺼지며 곳곳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길 시작했다.

이든이 씩 웃으며 물었다.

“시작해 볼까?”

“…얼마든지!”

밸스커드의 답이 들려오기 무섭게, 그의 코앞에 있던 이든의 신형이 삽시간이 자취를 감추었다.

파팟!

그리고 어느새 밸스커드의 뒤를 점한 이든.

하나, 정작 뒤를 잡혔던 밸스커드는 당황한 기색 한점 없었다.

이든이 그의 뒤에서 검을 휘두르기 무섭게 밸스커드 역시 곧장 실드를 전개하였다.

카아아아아아앙!!!

마치 쇠와 쇠가 맞부딪힌 듯한 거친 금속음이 들려왔다.

짜릿하게 저리는 손에 이든의 눈썹이 움찔하더니, 그가 몸을 날려 멀찍이 떨어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든은 궁금증이 하나가 해소됐다는 듯한 얼굴로 재차 입을 뗐다.

“그렇군. 네놈이었군.”

“뭐가 말이지?”

“캐슬롯 영지. 그때 나타나 나의 행사를 방해했던 놈. 예전부터 참 궁금했었는데 그 역시 네놈이었구나?”

밸스커드가 비릿하게 입술을 말아 올렸다.

“아! 그때 그 일 말이로군. 맞아. 그것 역시 나였지. 놀랐나?”

“뭐, 그리 크게 놀란 건 아니고. 그냥 우리 악연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져 있었구나 싶어서 말이야.”

“어떻게 그때 그 악연이 다시 생각나게 해 줄까?”

촤아아아!

밸스커드의 양손이 로브 속에서 쭉 뻗어져 나왔다.

어느새 그의 손에 화륵, 하고 치솟아 오른 검은 화염.

그 화염은 일순 거대한 검은 화살이 되어 곧장 빠른 속도로 이든을 향해 쏘아졌다.

휘이이이이이익!!!!

검은 화살이 품고 있는 그 힘 자체는 사실 그다지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나. 지금 이든은 줄곧 이어온 싸움 탓에 기력이 바닥이다시피 한 상태였다.

맞서기보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란 얘기였다. 이든의 두 발이 곧바로 땅을 콱 내리찍었다.

검은 화살을 피해 신법을 밟던 그의 신형이 쏘아지길 잠시 뒤.

휘이익!

검은 화살이 일순 방향을 꺾는가 싶더니 이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끈질기게 따라붙는 검은 화살이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자, 이든이 덜컥 움직임을 멈추고는 사기가 느껴지는 그것을 향해 황급히 검을 휘둘렀다.

휙. 휙!

콰아아앙!!!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동시에 검은 화살도 소멸했으나, 그 여파에 이든 역시 적잖은 내상을 받았다.

주륵.

이든의 입가에 실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가 이를 바득 갈았다.

‘젠장할…!’

잇따른 전투에 오늘 하루만 해도 비전기를 세 개나 쏟아부었다.

바닥을 보이는 기력만 아니었다면 놈의 조금 전 공격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말인즉슨 현재로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별것 아닌 것에도 위험하단 얘기였다.

이든이 찰나 숨을 돌리곤 곧장 신형을 쏘았다.

방어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최대한 더욱 많은 공격을 쏟아 내면 될 일.

밸스커드의 코앞까지 쏜살같이 다가간 그가 흑색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휘익. 휙. 휘익!!!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얼마 남지 않은 마기가 희미한 잔상을 남기며 수차례 쏟아졌다.

멀쩡할 때만큼 위력적이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든의 쾌검에서 나오는 검격은 절대 방심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공격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쉴 새 몰아치는 그의 검격에 밸스커드의 실드에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콰드득.

그 소리에 밸스커드의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조금 전, 입가에 피를 흘리던 이든의 모습에 이젠 힘이 빠졌다고 안심했건만, 착각이었다.

앞에 저 맹인 검수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될 독종이었다.

밸스커드의 실드의 새겨진 금이 차츰 그 길이를 더해 가며 전체로 퍼지며 깨지기 직전.

그의 전신을 둘러싸던 검은 실드가 일순 폭발을 일으켰다.

사정 봐주지 않고 검을 휘두르던 이든의 몸이 이로 인해 뒤로 밀리던 그 순간.

무방비가 된 밸스커드의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갔다.

능력이 닿는 한에선 거리를 상관하지 않으며 공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상위 흑마법 중 하나. 텔레포트였다.

‘이동’이라는 수단 그 자체로만 본다면 신법보다 더 상위의 공부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스스스….

텔레포트의 가장 큰 약점은 몸을 전부 이동하는 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든은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가 곧바로 다리에 힘을 줘 지탱하더니 밀리던 힘을 멈춰 냈다.

동시에 그의 신형이 재차 밸스커드를 향해 벼락같이 쏘아졌다.

이든이 고성을 터트렸다.

“어딜!!!”

그렇지 않아도 진즉에 밸스커드의 기척이 난데없이 사라지고 있다 느끼던 참이었다.

텔레포트가 무언지 모르던 그였으나, 조금의 기척이라도 남아 있다면 필시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을 직감한 그였다.

이든이 밸스커드의 기척을 향해 팔을 쭉 뻗었다.

그러곤 손에 집히는 대로 아무거나 붙잡곤 쭈욱 잡아당겼다.

잡힌 것은 밸스커드의 멱살이었다.

훅.

하나, 이내 잡혔던 멱살마저 신기루처럼 사라져 가는 모습.

이든이 이를 악물었다.

‘어디냐!’

그의 기감이 사방 천지를 훑었다.

그리고 먼발치 다른 곳에 떨어져 있던 밸스커드의 또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그의 앞에 밸스커드의 모습이 눈만 남은 채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먼발치에 그의 기척이 느껴지던 곳을 향해 이든이 흑색 검을 내던졌다.

쐐애애애애액!

눈만 남던 밸스커드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빛을 내었다.

‘어, 어떻게 알고…!’

먼저 이동을 끝낸 자신의 몸을 향해 쏘아지는 흑색 검을 바라보며 밸스커드는 황급히 이동을 끝내려 애썼지만, 그가 노력하는 것보다 이든이 날린 검의 속도가 몇 배는 빨랐다.

푸우우우욱!!!

마저 이동을 끝내기 무섭게 틀어박힌 흑색 검에 밸스커드가 피를 토했다.

“커헉…!”

그 역시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혹여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어 충분히 떨어진 거리까지 이동을 시도했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저 맹인 검수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잘도 자신의 몸뚱이를 찾아내어 허를 찔렀다.

밸러스가 배에 틀어박힌 흑색 검에 고통을 호소하며 무릎을 꿇던 그때.

그의 목 위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이번 건 꽤 아팠지?”

밸스커드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지기 무섭게.

휙!

마기를 입힌 그의 손이 맹수의 발과 같은 모양을 하며 밸스커드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투욱.

이든의 조아격에 밸스커드의 목이 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밸스커드의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든의 기감이 레온하르트 성 쪽을 향했다.

‘저곳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가는군….’

본래 예정대로였다면 이곳의 일을 모두 끝내고 당장에 레온하르트 영지로 달려가 저들을 도왔어야 옳다.

하나, 도중에 그들을 구원하러 와준 엘프족 덕분에 굳이 그가 나서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상황.

이든이 곧바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끝인가.’

주저앉아 있던 이든이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운공에 들어가려 하던 그때였다.

꿈틀.

“…응!?”

이든의 눈썹이 별안간 움찔했다.

찰나 밸스커드의 시신이 있던 곳에서 느껴진 미세한 사기(死氣) 때문이었다.

밸스커드의 숨통은 이미 진즉에 끊어 놓은 상황.

지금까지 경험해 온 바에 의하면 놈들의 숨이 끊어지기 무섭게 힘의 근원인 ‘사기’ 역시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리고 예정대로라면 사기는 이미 진즉에 사라졌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든의 기감에 잡힌 저 ‘사기’는 꺼질 생각을 안 했다.

아니, 오히려 발악이라도 하듯 그 기운을 더욱 크게 부풀려 갔다.

심상치 않을 느낀 이든이 곧장 벨스커드의 시신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내 시신의 꽂혀 있던 흑색 검을 빼려던 그 순간.

뉘어 있던 밸스커드의 목 없는 몸뚱이가 별안간 팔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든을 향해 검을 화살을 쏘아 냈다.

콰아아아앙!

“커억!!!”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긴 했지만 금방 움직일 줄은 몰랐던 것.

기습을 허용했던 이든의 몸이 주룩 뒤로 밀려났다.

그때.

밸스커드의 두 팔이 움직이더니 땅을 짚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잘린 목에서 기다란 촉수가 튀어나와 바닥을 구르던 머리와 한데 합쳐지고 있었다.

흉측한 몰골로 이어진 몸과 머리.

꺼졌던 생명이 다시 타오르고, 밸스커드의 눈에 안광이 터져 나왔다.

하나, 조금 전과는 다르다.

되살아나기 직전의 붉은 안광이 아닌, 언데드처럼 푸른 안광을 터트리며 음산하기 짝이 없는 음성을 내뱉었다.

[…나는… 밸스커드다아….! 나는… 벨라트릭스 왕국의 왕이란 말이다…!]

“어쩌라고.”

그때.

밸스커드의 배에 틀어박힌 흑색 검이 부르르 떨렸다.

이기어 검.

자아를 가진 것처럼 그의 검이 별안간 움직이더니 위로 솟구쳐 올라 밸스커드의 머리까지 쭈욱 가르며 올라갔다.

정수리까지 올라간 검이 허공까지 떠오른 그 순간.

어느새 놈의 머리 위까지 뛰어오른 이든이 팔을 뻗어 흑색 검을 쥐었다.

이든이 죽어라 남은 힘을 짜내었다.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모르나 곱게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의 손에 잡힌 검에서 짙은 검은색의 마기가 재차 줄기줄기 새어 나왔다.

“본좌를 뭘로 보고.”

천마심공의 마기는 회복력에 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물론 심각한 내상 탓에 회복한 힘은 비록 십 분지 일에 불과하였으나,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마기를 피워낸 이든의 검이 빠르게 휘둘러지며 지금도 재생을 반복하려 하는 밸스커드의 몸에 쏘아졌다.

콰광! 쾅! 콰아아앙! 쾅!

베고, 또 베어 낸다.

회복의 여지를 주려 하지 않는 듯.

이든의 검은 그의 몸을 찢어발기듯 잘게 잘게 다졌다.

그리고 금세 육편 쪼가리로 화한 그의 몸뚱어리에서 사기를 뿌려대는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이빨이었다.

하나, 보이지 않는 이든에겐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방대한 사기를 뿌려 대는 저것이 밸스커드의 몸을 재생시킨 원흉이라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해된 밸스커드의 살점들이 한데 모여 재생을 반복하려던 그 순간.

이든이 그 ‘이빨’을 콱 움켜쥐었다.

부르르….

그의 손에 움켜쥔 이빨이 이든의 마기에 반응하듯 떨어 대더니 이내 점차 까맣게 타들어 가며 재로 흩어져 간다.

그리고.

이빨이 뿜어내던 그 흉흉했던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기 무섭게.

밸스커드의 살점들도 더는 재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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