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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146/250)

146화.

제아무리 이든의 기력이 바닥을 보였다 한들 죽을힘을 다해 짜낸 속도는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형이 돌풍을 뚫고 여인의 뒤를 점하였다.

마기를 줄기줄기 피우던 흑색 검이 곧바로 여인을 향해 내려치던 그 순간.

몰아치던 검은 돌풍이 일순 방향을 바꿔 여인의 몸을 휘감았다.

휘둘렀던 흑색 검이 일순 돌풍에 가로막히며 뒤로 튕겨 나갔다.

까아아앙!!!

힘없이 튕겨 나온 검에 이든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일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여인의 무미건조한 얼굴의 입꼬리가 말아 올려졌다.

여인이 입을 뗐다.

“애써도 소용없다. 고작 너의 힘으론 나에게 어떤 생채기도 낼 수 없어.”

하나, 이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허공에 있던 그대로 휘리릭 돌며 튕겨 나왔던 검을 재차 그녀를 향해 쏘아 내려던 그때였다.

여인의 손이 이든을 향해 쭉 뻗어졌다.

후우우우우웅!!!

일순 여인을 휘감던 돌풍이 이든을 향해 휘몰아쳤다.

재차 달려들려던 그의 몸이 중심을 잃고는 날아가려던 그 순간.

이든의 검이 황급히 역수로 쥐어지며 바닥에 틀어박혔다.

붕 뜨던 그의 몸이 가까스로 가라앉았다.

안간힘을 쓰며 버텨 내는 이든을 바라보며 여인이 웃었다.

“그래도 대단하구나. 내가 본 인간 중엔 네가 제일이다.”

바득.

듣던 이든이 이를 악물었다.

살면서 그가 저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던가.

전생의 무진이었던 때도, 신교의 수장으로서 교인들에게 무신(武神)으로 추앙받던 그였다.

태어났을 땐 한낱 인간이었을지언정, 신교의 수장이 된 이후로 죽은 그날까지 세간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 한 순간도 평범한 인간이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과거의 경지에 엇비슷하게 오른 지금, 이든은 유례없던 커다란 벽을 마주했다.

물론 잇단 전투로 기력의 대부분이 소모된 상태였던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 한들 이리도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 할 상황이 올 것이라곤 생각도 못 하였다.

앞의 저 여인은 필시 그의 기력이 온전했다 한들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대단한 고수임이 분명했다.

이든의 기감이 재차 앞에 선 여인의 기척을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단전을 훑었다.

역시나.

단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단전의 위.

그녀의 심장 쪽에 도무지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무한의 기운이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이든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대체 저자는 누구란 말인가. 어떻게 저토록 무한의 가까운 힘을 속에 품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의 생각을 훤히 읽은 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허락도 없이 내 몸을 훑다니 무엄하구나.”

“……!”

이든이 놀란 듯 그대로 표정이 굳었다.

내내 제 생각을 읽는 것을 넘어서 조금 전 무엇을 했는지 알아채는 그녀의 통찰력은 그야말로 궤를 달리하는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무엄하단 말과는 달리 그녀는 썩 기분 나빠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여인이 짐짓 고민하듯 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고는 입을 뗐다.

그녀의 나른한 듯한 목소리가 사방 천지에 울렸다.

“수족들은 나를 두고 말하기를 위대한 존재라 부르며, 적들은 나를 두고 말하기를 죽음의 화신이라 부른다. 내 이름 데스 스타. 그리고 나를 부르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말은 ‘드래곤’이라 하지.”

“드래곤…!”

드래곤.

이든, 그 역시 이들 존재에 대해선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말하는 이들의 하나같이 공통된 얘기는 이들이 신의 필적한 힘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직접 확인한 지금,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 저 여인은 지금껏 그가 만나본 어떤 이들보다 가장 강하고, 가장 위험했다.

그때.

멀찍이 날아갔던 갤러하드가 어느새 달려와 소리쳤다.

“이든…!!!”

“……!”

“협공이네. 답은 그밖에 없어!!!!”

그리고 그의 판단은 누구보다 정확했다.

갤러하드야말로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데스 스타의 위명을 듣지 못하였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드래곤 손바닥 안에서 도망을 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갤러하드의 의중을 알아차린 이든의 신형이 데스 스타를 향해 벼락같이 쏘아졌다.

그가 사자후를 쩌렁쩌렁 내지르며 먼발치에 있던 모든 이에게 들리도록 외쳤다.

“다들!!! 도망쳐!!!!!”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이 시간을 벌 테니 그대들만이라도 도망쳐라.

이든의 속뜻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든과 갤러하드가 쥐어 짜낸 오러 블레이드가 데스 스타를 향해 동시에 휘둘러졌다.

달려드는 두 사내를 바라보는 데스 스타의 푸른 눈동자가 일순 명멸했다.

스으으.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손에 들려진 기다란 흑색의 장검.

그녀가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검이라… 어디 간만에 유희를 즐겨 볼까.”

데스 스타의 검을 쥔 손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달려드는 두 사내를 향했다.

그리고 동시에 맞부딪친 세 개의 검들.

콰아아아앙!

일순 커다란 폭음이 울리고, 맞부딪친 힘의 격돌을 상기시키듯 그들의 주위로 엄청난 돌풍이 몰아닥치며 영지 전반을 휩쓸었다.

폭음과 함께 잠시 뒤.

후우우우우우웅!!!

엄청난 돌풍이 토해지며 영지를 뒤흔들었다.

영지에 주둔하던 병사들과 엘프들은 바람에 날려 가지 않도록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바람이 잠잠해졌다.

뿌옇게 일던 모래바람이 희미해질 때쯤. 저 먼발치에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필시 저곳에서 도망치라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하나, 정작 도망을 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이가 자신들의 지휘관이었던 제라드 단장을 죽이는 것을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레온하르트의 기사 중 하나가 당장에 말을 올라타고는 울분이 쌓인 목소리로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감히 우리 단장님을…. 내 저년을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그 외침은 신호탄이 되듯 영지에 주둔 중이던 모든 병사와 엘프들을 일으켰다.

“왕을 구해라!!!”

“다 같이 달려들어. 드래곤이든 뭐든 간에 상관없어. 녀석은 혼자야!!!”

“힘을 합쳐 단장님의 복수를 하는 거다!!!”

조금 전 일순 몰아닥쳤던 어둠과 함께 상실되었던 전의는 금세 빠르게 불타올랐다.

레온하르트의 병력과 엘프족 전사들이 데스 스타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두두두두두!!!

채애애앵! 챙! 챙!!!

이든과 갤러하드의 오러 블레이드가 오직 데스 스타 한 명을 노리며 휘둘려졌다.

일반적인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초인이라 일컬어지는 소드 마스터가 한 명도 아닌 두 명이 동시에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그들을 마주한 데스 스타는 처음 서 있던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떼지 않으며 그저 무심히 둘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빈틈을 노리며 신형을 요리조리 쏘아 내는 이든과 갤러하드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 차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까맣게 어둠으로 물든 하늘.

뿌옇게 핀 먼지 속. 시야 분간이라곤 전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서로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던 그때.

갤러하드와 이든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두두두두두두.

먼발치에서 이곳으로 달려오는 수천에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달려오는 기척이라면 필시 레온하르트의 병력과 엘프족 전사들의 병력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든이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멍청한 것들!!!!”

“…….”

갤러하드 역시 말로 표현은 않았지만, 막무가내로 달려오는 병사들의 모습에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데스 스타의 파란 안광이 잔상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날파리들이 몰려드는군.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라.”

그때, 데스 스타의 팔이 달려오는 병사들을 향해 쭉 뻗어졌다.

쭉 핀 그녀의 손끝엔 둥근 공 모양의 검은 섬광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필시 죽음의 기운. 저기에 휩쓸리는 순간, 달려오는 병사 중에 살아남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검은 섬광이 병사들을 향해 쏘아지려던 그 순간.

이든의 신형이 삽시간에 그녀의 팔이 뻗어진 방향으로 내달려졌다.

이든의 오러 블레이드가 쏘아진 검은 섬광을 향해 휘둘러지며 검막(劍膜)을 펼쳤다.

검신을 타고 흐르던 오러가 쫘악 넓게 펼쳐지며 검은 섬광을 막아 내어 병사들의 목숨을 구할 순 있었지만, 정작 막아 낸 이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하였다.

“쿨럭…!!!”

이든이 한 움큼 피를 토해 내고, 이를 본 갤러하드가 재차 달려들던 병력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퇴각하라!!!!”

천둥과도 같은 외침에 달려들던 수천의 병사들의 움직임이 일순 멈추었다.

갤러하드가 다시 핏발 선 눈으로 악을 써 대며 외쳤다.

“어서 도망쳐라. 이건 명령이다! 어서!!!!!!”

이든이 병사들을 향했던 데스 스타의 공격을 막아 내고, 갤러하드가 그 틈을 타 병력을 물린다.

일순 자신들로 인해 곤경에 처한 그들의 모습에 병사들이 갈팡질팡해 대던 그때.

“어딜!”

데스 스타의 남은 한 손에 쥐어진 검이 갤러하드를 향해 휘둘러졌다.

갤러하드가 이를 미처 피하지 못하곤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검을 쥐었던 그의 한쪽 팔이 신체에 떨어져 나갔다.

일순 밀려오는 고통에 갤러하드의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지고, 이를 본 엘프족 전사들의 눈은 그대로 회까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갤러하드의 외침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엘프족 전사들이 험한 말을 외치며 데스 스타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저 오만한 년을 당장 죽여라!!!!”

“으아아아아아!!!!!”

악에 받친 채 소릴 지르며 다가오는 엘프족 전사들과, 그런 그들을 따라 달려오는 레온하르트의 병사들.

안간힘으로 버티던 이든의 검막이 사라지고, 검은 섬광이 이든의 옆구리를 훑고 병사들을 향해 재차 쏘아졌다.

옆구리가 한주먹만큼 떨어져 나간 이든은 곧바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한순간에 끝나 버렸다.

휭.

그저 눈 한번 깜빡일 그 찰나에 순간.

검은 섬광이 몰려오던 병사들을 단번에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데스 스타가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쏘아진 방향까지 모든 것이 타오르며 한 줌 재가 되어버렸다.

거기엔 레온하르트 성의 일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의 삼분지 일이 날아가 버리며 민간에까지 피해를 입힌 것이다.

갤러하드의 얼굴이 까맣게 죽었다.

검수로서 팔을 잃었다는 아픔보다, 수하들을 잃었다는 아픔이 그의 가슴을 후벼 팠다.

비단 그뿐일까.

이든 역시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위기를 이겨 내고 목숨 바쳐 성을 지켜 낸 레온하르트의 병사들이 제라드 단장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도 허망하게 먼지로 화해 버렸다.

그리고.

성안에서 바르르 떨며 이 공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영지민들 역시 이유도 모른 채 일부가 죽어야만 했다.

마치 환상처럼 사라져 버린 수천의 기척들.

넋을 놓았던 이든의 입에서.

울분에 찬 고함이 쏟아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함을 쏟아 내는 이든의 눈가에 악에 찬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옆구리가 날아가고, 기력마저 바닥만 남아 손 하나 까딱이기 어려운 그 순간, 이든이 흑색 검을 역수로 쥐곤 기를 쓰며 일어났다.

고작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한 세월이건만, 검을 들 힘이 남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이든은 일어섰다.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다리가 애처롭게 바르르 떨려 왔다.

갤러하드 역시 피를 쏟아 낸 이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남은 반대편 손으로 검을 쥐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데스 스타가 미소지었다.

“정말이지. 간만에 즐거워지는구나.”

“…….”

“자아, 이제 어쩔 생각이지? 검을 쥘 힘조차 없는 몸으로 나에게 어떻게 대항할 생각이냐. 그리고 어떤 임기응변으로 날 즐겁게 해 줄 생각이지?”

천지 차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죽어 가는 꼴인 갤러하드와 이든과는 달리, 그들 앞에 선 데스 스타는 생채기 하나 없는 말짱한 모습이었으니까.

비릿하게 웃던 데스 스타가 일순 들던 검을 높게 치켜세웠다.

하늘을 향해 뻗어진 그녀의 검에서 사기가 휘몰아치며 검신에 맺혔다. 몇 장이나 치솟아 오른 걸까.

하늘에 닿을 듯한 엄청난 크기에 오러 블레이드가 모습을 드러내며 위용을 뽐냈다.

갤러하드 역시 반대편 손으로 오러를 피워냈으나, 그녀에 비하면 그 크기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때. 하늘로 뻗어 있던 데스 스타의 팔이 휘둘러졌다.

순간, 파도가 밀려오듯 거대한 어둠이 갤러하드와 이든을 향해 덮쳐 왔다.

후우우우우.

덮쳐 오는 어둠이 그 둘을 향해 떨어지기 직전, 피눈물을 쏟던 이든의 전신에 홍수와 같은 마기가 줄기줄기 터져 나왔다.

이윽고 그 마기는 덮쳐 오는 데스 스타의 어둠에 대항하듯 사방 천지를 감싸 안았다.

마기 대 사기.

세상천지가 온통 어둡게 물든 가운데 피눈물을 흘리며 서 있던 이. 이든의 입에서 그 어느 때보다 음산하고, 살기 띤 음성이 새어 나왔다.

“죽여 버리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년을 찢어 죽여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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