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얼음장처럼 차디찬 무미건조한 얼굴을 보이던 데스 스타의 푸른 눈동자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무엇을 봤길래 그럴까.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이든이 다 죽어 가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옆구리는 한주먹만큼 날아가 텅 비었고, 후들거리는 다리는 서 있기조차 어려워 보였으며, 손은 검을 쥘 힘조차 남아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산송장이라 해도 믿을, 넝마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그런데….
‘저런 꼴로 내 기운을 밀어내고 있다고?’
조금 전, 그 자신이 쏘아 냈던 오러를 다 죽어 가는 꼴을 한 이든이 밀어내고 있던 것이 아닌가?
휘익.
그때, 새까맣게 사방 천지에 마기를 피우던 이든의 손에 쥐어진 검이 재차 휘저어졌다.
흑색 검에서 줄기줄기 피어오르던 마기가 파도처럼 덮쳐오던 죽음의 오러를 완전히 걷어내기 시작한다.
하나.
콰드드드득.
흡사 자연재해를 방불케 하는 죽음의 파도를 밀어내는 데 성공했어도, 이를 밀어냈던 흑색 검의 형체 역시 무사할 리는 없었다.
챙!!!!!
날이 빠지고, 곳곳에 금이 가던 흑색 검이 일순 터지며 조각조각 흩어졌다.
그 순간.
파아아아앗!!!
이든의 신형이 난데없이 검을 휘둘렀던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눈 깜짝할 새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의 까맣게 물든 손이 조아격으로 휘둘러졌다.
콰아아아아아앙!!!
막아선 데스 스타의 눈이 일순 부릅 뜨였다.
“뭣…?”
주륵.
그녀의 발이 뒤로 밀렸다.
이곳에 온 뒤로 처음으로 밀린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하나, 이든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마기로 까맣게 물든 두 손을 일시에 휘둘렀다.
촤하아아아아악!
‘수라마참조아격’이 맹수와 같은 기세로 데스 스타의 목숨줄을 노리며 발톱을 들이밀었다.
그녀가 선 주변 일대가 거대한 소음을 내며 땅 곳곳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냈다.
마치 거인이 커다란 송곳으로 땅에 구멍을 낸 듯한 모습이었다.
쾅. 콰앙! 콰아아아앙!
오직 파괴력 그 자체에 중점을 둔 초식인 만큼 정확성은 떨어졌다.
하지만.
땅이 뚫리는 깊이로 보아 발톱 하나하나가 데스 스타 그녀조차 쉬이 볼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이다.
그때.
남은 발톱 하나가 정확히 데스 스타가 서 있던 자리로 떨어지던 그 순간, 데스 스타가 발톱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아앙!!!
충돌한 힘의 세기를 간접적으로 알려 주듯 소음이 커다랗게 울렸다.
데스 스타의 내내 무미건조했던 얼굴이 일순 구겨졌다.
조아격의 위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 밀렸던 그녀의 몸이, 수라마참조아격을 막아 내느라 더욱 먼 곳까지 밀린 것이다.
내내 제자리에 서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이들을 여유롭게 상대하며 죽음 직전까지 몰아냈던 그녀였다.
한데 눈앞에 맹인 검수가 느닷없이 이해 못 할 힘으로 그녀를 내내 몰아 쳐대는 것도 모자라, 실제로 밀리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것이다.
데스 스타가 입술을 짓씹었다.
‘이 내가… 고작 인간에게 밀렸다고?’
셀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감정이란 것 역시 삭을 대로 삭아 닳아 없어진 그녀였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던 하나는 있었다.
바로 자존심.
세상에 모든 생명체를 발아래 둔 위대한 존재라는 자긍심 말이다.
그 견고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데스 스타의 자존심이, 한낮 인간이란 생명체에게 깨져 버린 것이다.
그때, 검을 쥔 그녀의 손이 번개와 같이 휘둘러졌다.
내내 유려했던 지금까지의 동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쿠콰가가가강!!!
파도와 같았던 죽음의 기운이, 거친 해일을 일으키며 갤러하드와 이든을 향해 재차 몰아치기 시작했다.
땅이 뒤집힐 기세로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죽음의 오러에 갤러하드가 이를 악물고 응수하려 할 때, 이든이 그를 물러 세웠다.
“이든?”
“뒤로. 될 수 있으면 멀리 가십시오. 자칫 휩쓸리실 수도 있습니다.”
“뭐…?”
이해 못 한 갤러하드가 되물었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굳이 답이 필요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뿐이다.
이든의 전신에서 줄기줄기 토해져 나오던 마기가 일순 새까만 빛을 터트렸다.
그리고.
성난 파도처럼 휘몰아쳐 오던 죽음의 기운이 일시에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데스 스타가 쏘아 낸 죽음의 오러.
그녀가 일순 당황한 얼굴을 하던 그때, 터져 나온 새까만 빛이 일시에 그 크기를 커다랗게 부풀리며 갤러하드를 제외한 데스 스타와 이든을 집어삼켰다.
갤러하드의 몸이 부풀려진 장막에 밀려 주욱 뒤로 밀렸다.
정처 없이 뒤로 밀리는 와중 그가 황급히 소리쳤다.
“이든, 괜찮은가!!! 이든!!!!”
떠나가라 소릴 질렀으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둘을 삼켜 버린 새까만 구(球)는 빛도 소리도 모든 것을 차단시키고 있었다.
그곳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서로 마주한 채 서 있는 데스 스타와 이든 단둘뿐이었다.
스윽.
데스 스타의 눈이 주변을 둘렀다.
이든의 비전기 중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천마심혼곡진이 사방 천지를 까맣게 물들여 놨다.
가만히 바라보던 데스 스타가 고갤 주억거렸다.
“대단하군.”
그녀의 입에서 실로 감탄한 듯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너의 힘의 정체가 이것이었군.”
조금 전, 이든의 공격에 찰나 밀려나 자존심 상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정말 이든이란 사람에게 순수하게 감탄한 표정이었다.
“살기로 이루어진 어둠이라.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군.”
데스 스타의 푸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명멸하며 이든이 선 곳을 향했다.
“인정하지. 넌 강하다. 실로 인간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
“하지만 여전히 이해 가지 않는 것이 있어. 어떻게 그런 꼴을 하고서도 이런 힘을 낼 수 있는 거지? 지금껏 내내 힘을 아끼고 있었나?”
그럴 리가.
이든이 피식 웃었다.
힘을 아껴 둘 만큼 눈앞의 그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도 모자랐다.
잇따른 전투에 내내 바닥을 보였던 기력. 한데 힘이 어디서 남아돌아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이든의 호연지기였다.
그것은 평생을 걸쳐 차곡차곡 쌓아 가는 진기와는 전혀 다른 맥락의 힘이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가지고 있는 생명체 본연의 힘인 호연지기.
말인즉슨, 호연지기란 생명을 담보로 하는 힘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그 담보에서 오는 힘의 크기는 사용자가 강하면 강할수록 비례하여 주어진다.
이든은 지금, 모든 호연지기를 끌어온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말이다.
이든이 한 발짝 내디뎠다.
태산 같은 웅장한 힘이 데스 스타의 끝없는 힘을 향해 비집고 들어갔다.
데스 스타가 마주 보며 웃었다.
“말은 필요 없다. 그건가?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
검을 쥔 그녀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일순 죽음의 오러가 재차 활활 타올랐다.
일전 천마심혼곡진에 갇혀 아무런 힘도 못 쓰던 데무한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에 맞서듯, 이든의 양손에도 더없이 진한 마기가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마치 대치하는 모습을 보이던 두 개의 어둠은 일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쏘아졌다.
파아아아아아앗!!!!
천마심혼곡진 자체를 가를 기세로 휘둘러지는 죽음의 오러.
그리고 이에 맞서 죽음마저 삼킬 듯한 살기가 격렬한 파장을 일으키며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천마심혼곡진이 한차례 크게 흔들렸지만, 그 격렬했던 거대한 힘의 충돌에도 둘을 감싼 이 거대한 구는 깨지지 않았다.
바짝 붙어 힘을 겨루던 데스 스타가 감탄하듯 입을 뗐다.
“대단하군. 조금 전 내 일격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이 형태로 나름 최선을 다한 공격이었지.”
그때, 그녀의 시선이 감싼 구를 훑었다.
“한데 멀쩡하다라… 볼수록 네놈이 신기하구나.”
이든이 양손을 털 듯 데스 스타를 밀어냈다.
맞부딪친 채 붙어 있던 둘의 신형이 서로 밀렸다.
조금 멀찍이 떨어진 이든이 입을 뗐다.
“잡소리 그만하지.”
“……?”
“언제까지 간만 볼 생각이야. 당신 실력. 이게 전부 아니잖아.”
“본 실력을 꺼내 달라. 이건가?”
“그쪽이 본 실력으로 나와 줘야. 나도 본 실력을 꺼낼 것 아니야.”
“…나를 상대로 마치 힘 조절을 했다는 듯 말하는군.”
“뭐, 나름?”
“허세도 그 정도면 병이란다.”
“그래서. 제대로 할 거야. 말 거야?”
“괜찮겠어? 후회할 텐데.”
“후회하든 않든 간에 그건 내 사정이고, 상대가 진심으로 나섰다면 너도 진심으로 임해.”
데스 스타의 푸른 눈이 일순 깊어졌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뗐다.
“건방지군.”
“…….”
“하지만 너에겐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지. 좋아…. 보여주지. 내 진짜 본모습을. 그리고 위대한 존재의 진짜 힘을.”
그때, 데스 스타의 몸이 일순 빛으로 둘러쌌다.
새까맣던 이 공간을 환히 밝힐 만큼 강렬한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이 이내 크기를 부풀렸다. 한없이 커지고 커지는 빛.
대체 얼마나 크기를 부풀려 가는 걸까.
십 장 이상 치솟은 그 빛은 이내 하나의 형태로 변해 갔다.
천공 넘어 태양에까지 닿을 듯한 거대한 날개.
세상 모든 것의 침입을 거부하는 흡사 갑옷을 연상시키는 피부.
그리고.
거대해진 크기만큼이나 커다래진 하나의 눈에서 토해내는 짙푸른 안광까지.
그 모습은 흡사 공포를 넘어선 죽음. 그 자체로 보아도 무방했다.
그때, 데스 스타가 부풀린 크기만큼이나 우렁우렁 울리는 음성을 뱉었다.
[이것이 나의 본 모습. 죽음의 화신이라 불리는 나 데스 스타의 모습이다.]
“….”
[참으로 안타깝군. 그대의 눈이 멀쩡했더라면 단지 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을 터인데.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아쉽군.]
굳이 보이지 않는다고 모를까.
이든 역시 속으론 내심 놀라고 있던 참이다.
본모습이라 해서 어느 정도 강해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 아닌가.
조금 전 검을 나눴을 때도 감당 못 할 만큼의 강함이었건만, 본모습을 보인 지금은 너무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다 싶을 정도였다.
조금 전과는 비교조차가 불가할 웅장한 기운.
이를 마주한 이든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대단하군….’
그리고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너무도 넓고, 넓디넓은 세상에 괴물은 많았다.
그리고 그 괴물 앞에 이든 그 자신은 너무도 초라했다.
무신이라 불렸건만, 그 역시 한낮 인간이었음을 재차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등선이 코앞이었다는 것은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겠군,’
진정한 괴물을 마주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진실.
등선의 벽은 더더욱 높게만 느껴졌다.
하나.
‘이제 등선 따위 상관없겠지.’
사람이 살면서 주어지는 모든 호연지기를 한계까지 끌어올린 그였다.
생을 담보로 한, 이 싸움이 끝나면 그에게 죽음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게다가 이미 한번 얻었던 새 삶이 아니던가. 이제 그에게 다음이란 없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왜일까.
자꾸만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가족들과 친구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그의 가슴 속을 울리는 이유는.
아려오지만 나오는 것은 눈물 대신 웃음이었다.
‘훗. 나도 참…. 늙었구나.’
전생은 천수를 누렸지만,
이번 생은 참으로 짧고 아쉬웠다.
하지만 그를 더욱이 아쉽게 하는 것은 짧았던 삶에서 오는 미련 따위가 아니었다.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곳에 와서 갖게 된 가족들과 친우들의 얼굴도 모른 채 이대로 떠나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그를 망설이게 했다.
이든이 휘이 고갤 저었다.
‘망설여선 안 된다. 이 한 수로 모든 것을 끝낸다.’
우우웅.
일순 이든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떠오른 그의 몸이 드래곤의 형태로 본모습을 보인 데스 스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전신에서 그 어느 때도 없던 방대한 살기가 줄줄이 새어 나왔다.
목숨을 담보로 한 터져 버린 호연지기. 거기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마기는 필시 앞에 데스 스타의 위엄 못지않은 것이었다.
마기로 둘러싸인 이든의 전신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마치 그 자신이 마(魔)가 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까맣게 물든 이든이 비로소 무겁던 입을 열었다.
“자, 보여 봐라. 모든 마의 종주인 나에게. 네놈의 전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