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전신이 까맣게 물든 채 살기를 피워대는 이든의 모습은 필시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온몸을 감싼 채 줄줄이 피워 대는 저 살기.
필시 드래곤인 그 자신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 없는 대등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필멸자의 그릇이 아무리 크고 대단해 봤자 결국엔 인간.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는 모르나, 제아무리 기운이 대등해졌다 한들 인간 그 자체의 허물에선 벗어날 수 없는 법이었다.
[나의 전부? 가소롭군.]
후우우우우우웅!
일순 돌풍을 연상시키듯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데스 스타의 날개가 위상을 뽐내며 활짝 펼쳐진 것이다.
그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지만 인정한다. 네놈이라면 그리 말할 자격이 있지.]
화륵.
그의 멀쩡한 남은 한쪽 눈에 푸른 안광이 넘실거리듯 타올랐다.
[그토록 원한다면 보여 주지. 진정한 죽음을 말이다.]
잠시 뒤, 데스 스타의 커다란 입이 쩌억 벌어졌다.
이윽고 날카로운 이빨로 도배된 그의 아가리에 피어오른 것은 푸른 태양을 연상키는 거대한 화염구였다.
드래곤의 상징이자 오직 위대한 존재만이 부릴 수 있다는 사상 최강의 공격수단 브레스.
특히나 데스 스타의 브레스는 단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죽음 그 자체를 연상시킬 정도로, 그 안에 담긴 사기(死氣)가 지금까지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해도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가 왜 적들에게 죽음의 화신이라 불리는지를 절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죽음의 화신을 마주한 이든의 입가에 가려지지 않은 저 미소는.
데스 스타 역시 그를 두고 의아하게 여길 때쯤.
슉!!!
일순 이든의 모습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
데스 스타, 그조차 쫓을 수 없던 가히 엄청난 속도였다.
그의 푸른 안광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라진 이든의 행방을 찾아 사방을 훑던 그때, 데스 스타의 눈동자가 위로 치켜 떠졌다.
[거기구나!]
그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이든이 난데없이 데스 스타 머리 위에서 나타나 그의 남은 한쪽 눈을 향해 새까맣게 물든 손을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공격이었다.
하나, 데스 스타 역시 잠자코 당해 줄 위인이 아니기는 마찬가지.
[어딜!]
그가 고갤 치켜들곤 내내 머금던 브레스를 이든을 향해 황급히 토해 냈다.
쿠우우우우.
푸른 화염구가 일시에 쭈욱 늘어나며 섬전처럼 이든을 향해 쏘아진 그 순간.
“걸려들었군!”
이든의 입가가 비릿하게 말아 올라갔다. 데스 스타 역시 이든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함정’이었다.
덜컥.
데스 스타의 남은 한쪽 눈을 향해 쏘아지던 이든의 신형이 찰나 멈추었다.
그리고.
마기를 줄줄이 흘리던 양팔을 한곳에 모은 그 순간.
슈우우우우욱!
그들을 감싸던 천마심혼곡진의 검은 구(球)가 일시에 쪼그라드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데스 스타의 눈이 일순 부릅 뜨였다.
[네놈 설마!]
“후훗. 이 정도면 너 죽고 나 죽는 데 충분하지 않겠나?”
[이런 미친놈이!]
이든의 노림수가 바로 이것이었다.
데스 스타의 일격필살을 역으로 이용하여 천마심혼곡진을 수축시켜 자신을 포함해 그와 동귀어진하려는 것.
제아무리 데스 스타라도 그 자신의 일격 피살을 다시 받아 내라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 판단한 이든의 임기응변이었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데스 스타의 안광 속.
그의 커다란 눈알에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이 새겨진 것이다.
쏘아진 브레스를 코앞에 둔 이든 떠나가라 소리쳤다.
“내 이곳을 수축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아 냈다. 뚫을 수 있으면 뚫어 봐. 이 새끼야!!!”
[젠장!!!]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줄어든 천마심혼곡진 안에 대폭발이 일어났다.
브레스는 가공할 힘으로 안에서 연달아 폭발을 일으켰고, 천마심혼곡진의 구(球)는 안간힘을 써 대며 어떻게든 그것을 버텨 내려 애를 썼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콰드드드득.
한계에 달한 걸까. 내부에 충격을 버티던 천마심혼곡진의 구에 금이 가길 시작했다.
금은 거미줄 모양으로 새겨지며 점차 번졌다.
이윽고 금이 간 그 틈을 비집고 브레스가 삐져나오더니 어느 순간 구를 터트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여파는 상당했다.
일순 구가 있던 지점에서 엄청난 돌풍이 불어오더니, 레온하르트 영지 주변을 둘러싼 숲을 통째로 뒤집어엎을 기세로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며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자연재해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여파가 잠잠해질 때쯤. 데스 스타와 이든이 서 있던 그곳에 참상이 나타났다.
온몸이 새까맣게 그을린 채 바닥에 엎어져 있는 이든.
그리고 그의 근처. 인간의 형태로 변한 데스 스타가 피를 토하며 엎드려 있었지만, 이든 만큼 죽어가는 꼴은 아니었다.
브레스의 폭발에 그대로 휩쓸린 이든과 달리 그녀는 구가 어느 순간 수축을 멈춘 틈을 타 즉시 인간의 형태로 돌아와 폭발의 범위에 최대한 벗어난 채 실드를 전개했던 탓이다.
그야말로 대단한 임기응변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 역시 충격이 적잖은 모양이다.
“쿨럭… 컥!”
이미 한차례 피를 쏟아 냈던 데스 스타가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피를 참지 못하고 연달아 토했다.
그녀의 안색이 새하얀 것을 넘어서 새파랗게 질리듯 창백해져 있었다.
그때, 데스 스타의 푸른 안광이 토해지듯 줄줄이 새어 나왔다.
분노를 가득 머금은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엎드려 숨이 붙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이든의 몸뚱어리를 향했다.
데스 스타가 입술을 짓씹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이이… 이런 정신 나간 새끼.”
그리곤 휘청거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이든의 몸뚱이가 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휘청.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걸음.
이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모습이라면, 데스 스타는 이곳에 처음 현신했던 위풍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든의 조금 전 모습처럼 넝마가 되어 있었다.
“죽여 주마. 이미 죽었다면 네놈의 시신이라도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주마….”
내내 욕설과 함께 섬뜩한 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이든 곁에 다가갔던 데스 스타가 팔을 뻗어 이든의 목을 콱 움켜쥐어 들었다.
“살아있군.”
말 그대로 숨만 붙은 채 ‘아직’은 살아있는 모습의 이든.
그의 목을 움켜쥔 데스 스타의 손에 일순 힘이 들어갔다.
조여지는 숨통에 이든의 의식이 점차 멀어져 가기 직전.
그가 연신 입을 뻐끔거렸다.
“…….”
다 죽어가는 몸뚱이에서 나오는 소리는 제대로 들릴 리가 만무했다. 데스 스타가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
“…더 있어.”
“…뭐?”
“함정 하나 더 있다고 병신아…. 크큭.”
“무슨 개소리를...”
그때.
피잉!!!
데스 스타가 목을 움켜쥐어 들어 올렸던 이든의 가슴에서 검은 섬광이 쏘아졌다.
그녀가 황급히 피하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재빨리 반응하기엔 그녀의 몸 역시 심각하리만치 부상이 심했던 탓이다.
푸욱!
그리고 어디선가 살을 후벼 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스 스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에 틀어박혀 있는 한 단검을 향했다.
“이, 이게 무슨...!”
그것은 로즈가 먼저 길을 떠난 이든에게 꼭 무사해야 한다며 건네주었던 행운의 단검이었다.
호연지기 중 일부가 깃들었던 단검이 이기어 검을 일으키며 데스 스타의 드래곤 하트를 향해 틀어박힌 것.
이든이 입술을 비릿하게 말아 올렸다.
그의 입술이 뻐끔거리며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함정에 함정이다… 병…신…아.”
“큭. 크으으으…! 죽여주마. 이 개자식!… 쿨럭!”
악에 받친 듯 외치던 데스 스타가 재차 피를 토했다.
이전보다 더 검붉고, 훨씬 더 많은 양의 피였다.
다른 곳도 아닌 드래곤 하트에 직접 충격을 받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든의 목을 움켜쥔 데스 스타의 손에서 푸른 빛이 명멸하듯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그 빛은 크기를 부풀리며 사방 천지에 뿌려졌다.
“전부… 전부 사라져라!!!!”
이윽고, 그 빛은 레온하르트 영지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빛에 휩싸인 이든의 의식도 점차 멀어져만 갔다.
***
“교주님, 기침하셨나이까?”
“…….”
“교주님?”
“…….”
“하아….”
침소를 내려다보던 붉은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침소에 뉘어 있던 누군가의 머리끝까지 올려진 이불을 걷어붙이고는 아직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한 사내를 흔들어 깨워 댔다.
“교주님, 어서 일어나셔야 합니다.”
“…….”
“어서 일어나십시오. 교주님!”
“으음. 아 시끄러워. 뭔 소리야….”
“어서 기침하시지요. 이따 진시에 장로들과 총회가 있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뭔 소리야. 장로는 또 뭐고.”
“후!”
결국, 중년인은 뉘어 있는 사내에 귓가에 대고 크게 소릴 질렀다.
“교주님!!!!”
“시발! 깜짝이야!!!”
“후.”
결국, 큰 소릴 내고 나서야 일어난 사내.
아직 눈곱도 떼어지지 않은 눈으로 주변을 훑던 사내의 입이 일순 쩍 벌어졌다.
아직 잠이라도 덜 깬 건가 싶어 재차 큰 소릴 내어 깨우려던 중년인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그가 교주라 부른 사내의 반응이 평소와 영 다른 탓이다.
“교주님, 괜찮으신 겁니까?”
“…이게….”
“응?”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일어난 교주가 대답 연신 눈을 끔뻑였다.
그가 재차 주변을 훑었….
“잠깐, 지금 나…. 눈도 보이잖아!?!?”
…눈을 뜬 교주라 불린 사내, 이든이 연신 눈을 끔뻑였다.
그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야?”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려다 참아 낸 중년인이 고갤 휘휘 젓고는 입을 뗐다.
“교주님, 꿈이라도 꾸신 겁니까. 오늘따라 어째 평소와 다르십니다.”
“…교주?”
자신을 교주라 부른 중년인을 바라본 이든의 눈이 부릅 뜨였다.
“…좌호법 이명학!”
“예. 이명학입니다. 이제야 좀 정신이 드십니까?”
좌호법 이명학.
우호법 장룡과 함께 신교의 이인자로 불리며 무진을 보좌했던 일대의 고수였다.
그때, 이명학이 볼을 긁적였다.
이든이 뚫어지라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 명학이 자네가 대체 왜 여기에…?”
듣던 이명학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매번 내쫓는다. 내쫓는다고 하시더니 이젠 정말 저를 내쫓으시려는 참입니까.”
이든이 고갤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도, 동경. 동경 가져와 봐. 빨리…!”
“…동경이요?”
이명학은 영문도 모른 채로 동경을 가져와 이든에게 건넸다.
휙.
손을 뻗어 동경을 뺏다시피 한 이든이 곧바로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동경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뭐, 뭐야. 나잖아!!!”
“…….”
이명학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대뜸 동경으로 자신을 비추고는 ‘뭐야 나잖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이명학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교, 교주님, 괜찮으신지요. 어디 머리라도 다치신 건 아닌지…?”
“…….”
이명학의 말이 들리기는 하는 걸까.
그렇게 한참이나 동경을 바라보며 자신의 얼굴을 쥐어뜯던 그는 일순 넋을 놓은 채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렸다.
“내, 내가… 이곳에 돌아오다니… 대체… 왜?”
이든, 아니 무진의 벌어진 입이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