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250)

153화.

넋을 놓은 채, 이든은 온몸이 굳고 말았다.

‘데드 스타, 그놈과 같은 드래곤이라고?’

일순 이든이 뭐든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쥐고는 레온하르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레온하르트가 재차 낄낄 웃어 댔다.

“왜, 드래곤이라고 하니까. 대뜸 겁부터 나나 보지?”

그때.

딱.

그가 손가락을 부딪쳐 튕기자 이든이 쥐었던 숟가락이 쑥 빠져나왔다.

우웅.

둥실 떠오른 숟가락이 재차 스튜 그릇 안으로 쏙 들어갔다.

레온하르트가 재차 입을 뗐다.

“그리고 아무리 급하다지만 숟가락이 뭐야. 숟가락이. 그런 거로 잘도 겁먹겠다.”

“…….”

아무거나 손에 잡는다고 쥐었던 것이 하필이면 숟가락일 게 뭐람.

듣던 이든이 무안한 얼굴을 하던 그때, 온몸에 아려 오는 통증이 재차 밀려왔다.

“윽….”

레온하르트가 그 모습을 보더니 혀를 찼다.

“쯔쯧, 숟가락 들 힘만 겨우 있던 주제에 경계한답시고 그랬으니 온몸이 안 쑤시고 배겨? 그리 있지 말고, 밥 다 먹었으면 어서 눕게.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야.”

“…….”

듣던 이든이 찰나 망설이는가 싶더니 잠자코 그의 말대로 그 자리에 누웠다.

위험한 이였다면 정신 차리지 못하였을 때, 진즉에 자신을 노렸을 터.

게다가 그가 드래곤이든 뭐든 간에 자신을 살린 은인 아니던가.

이든이 멋쩍은 얼굴로 입을 뗐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뭐, 그럴 만해. 데스 스타 그 새끼가 어디 보통 사달을 내놨나?”

일순 이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말을 듣던 순간, 레온하르트 영지에 걱정이 밀려온 탓이었다.

그가 재차 자리에서 등을 떼고 일어났다. 다시 밀려온 통증에 절로 얼굴이 구겨졌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그나저나 레온하르트 영지는 어찌 됐습니까? 데스 스타 그 새끼는 어떻게 됐고요?”

내내 맥아리 없던 모습이 아닌, 이곳에서 정신을 차린 뒤로 가장 조급해하고, 흥분한 말투였다.

그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지 듣던 레오하르트 역시 장난기를 쏙 뺀 채 바로 답하였다.

“뭐부터 말을 해 줘야 할까. 역시 데스 스타 그년에 관해 먼저 얘기하는 것이 순서겠지. 일단 데스 스타 그 새끼는 치명상을 입고 도주했네.”

“…도주요?”

나름 허심을 노린 필살이라 생각했건만, 살아남아서 도주라니….

이든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말은 그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게. 녀석이 비록 도주했다곤 하나, 다른 곳도 아닌 드래곤 하트에 심각한 손상이 갔어. 다시 움직이려면 꽤 오랜 시간을 정양해야 할 거야.”

“…드래곤 하트.”

“드래곤 하트가 무언지는 대충 알고는 있지?”

“…예.”

“무튼, 자네의 일격이 놈의 유일한 약점에 제대로 틀어박혔다. 그 말이야. 그러니 앞으로 한동안은 날뛰고 싶어도 날뛰지 못하겠지. 그리고… 레온하르트 영지는 말일세.”

“…….”

데스 스타에 관한 얘기를 듣고 안심했던 찰나, 언뜻 다시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이든, 그 역시 모든 것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의식을 잃기 전 데스 스타의 발악에 가까웠던 일격만큼은 생생히 떠오르는 그였다.

필시 만만치 않은 공력이 느껴졌던 만큼 영지 역시 큰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전혀 예상 밖의 답이 들려왔다.

“…쑥대밭이 됐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잘못 들었는가 싶어 되묻는 이든의 말에 레온하르트가 한숨을 푹 쉬곤 재차 입을 뗐다.

“말 그대로일세. 레온하르트 영지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말일세.”

“…어, 어떻게… 어떻게 그런…!”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죽었다 살아나 가뜩이나 힘없던 몸에 더 빠질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때, 잠자코 듣던 이든이 버럭 화를 냈다.

“…대, 대체 당신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던 겁니까!”

“…….”

“레온하르트 영지의 영주이셨다면서요. 놈과 같은 드래곤이었다면서요! 영지가 그 모양 그 꼴이 되는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셨길래 그냥 바라만 보셨던 말입니까. 대체 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이든이 목에 핏대가 설 만큼 온 힘을 짜내어 소릴 지르던 그때.

“쿨럭! 커억…!!!”

이든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더없이 안정을 취해야 하건만, 조금 전 행동으로 몸에 무리가 온 탓이었다.

“미안하구먼.”

“…….”

“내 마음 같아선 직접 나서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 못 되었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상황이 못 되다니요?”

듣던 레온하르트가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자넨 눈이 보이지 않으니 모를 테지.”

“……?”

그때, 레온하르트가 이든의 팔목을 덥썩 잡고는 자신의 한쪽 어깻죽지와 허벅지를 훑게 했다.

영문 모를 표정을 하던 이든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알겠나?”

“…….”

“지금 내 꼬라지가 이 모양이라 말이야.”

“…그, 그런….”

조금 전, 레온하르트의 돌발행동에 이든이 느낀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텅 빈 팔과 다리였다.

이든이 말을 잇지 못하던 그때, 레온하르트가 재차 입을 뗐다.

“세간에서 떠들어 대지 않던가. 레온하르트 공작이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확실히 그런 얘기가 파다했습니다.”

“이 때문이었네.”

“…어찌 그리되신 겁니까?”

“어째서 이리되었을 것 같나?”

이든의 물음에 도리어 레온하르트가 되물었다.

이는 이미 답이 나왔다는 것.

예상이 가는 걸까. 이든이 불쑥 답을 꺼냈다.

“데스 스타…. 그놈 때문입니까?”

“맞아. 그놈이 날, 이 꼴로 만들었지.”

“…대체 놈의 목적이 뭡니까?”

“놈의 목적?”

“당신이 그리되었다는 것은 이번과 같은 일이 이전에도 있었단 뜻 아닙니까?”

“…있었지. 아주 많이.”

“……?”

“지금 세상엔 드래곤이라고 해 봐야. 놈과 나 단둘뿐이라서 이젠 전설 속 동물 취급이 돼 버린 지 오래지만, 불과 천 년 전만 해도 드래곤은 지금만큼 희귀한 종족은 아니었어. 제법 그 수가 있었지.”

“…….”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드래곤들은 평화를 사랑했지. 간혹 긴 삶이 무료할 때면 인간으로 변하여 다른 이의 삶은 사는 것도 재밌었고 말이야. 나 같은 경우엔 가장 최근에 겪었던 유희가 레온하르트 공작으로 사는 삶이었던 것이고. 한데 모든 종족이 다 그렇겠지만, 간혹 별종들이 나오는 법이거든? 우리는 그 별종이….”

“데스 스타였군요.”

“맞아. 그놈이 우리 중의 별종이었지. 색깔도 특이했어. 유일무이한 검은색의 드래곤이었지. 그런데 그놈이 성체가 되어 세상 밖을 나설 때 가장 먼저 저지른 짓이 뭔지 아나?”

“……?”

“…지 동족을 죽인 것이었어. 당시에 꽤 오래 살고, 명망까지 높던 드래곤을 말이야.”

“…….”

“성체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당시 가장 강하다 여겨진 드래곤을 죽인 거야. 그것도 지 혼자서 말이야. 하여 다른 드래곤들이 물었지. 대체 무슨 짓이냐고, 왜 이런 짓을 벌였냐고, 그가 자네의 명예를 더럽혔냐고 말이야. 그런데…. 그걸 듣던 데스 스타 그년이 뭐라 했는지 아나?”

“…….”

대답은 없었다. 이든은 그저 그의 말을 숨죽이며 듣고 있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드래곤들을 말살하는 것. 그것이 지 삶의 목적이라고 하더군. 세상에 유일무이한 위대한 존재로서 남겠다고 말이야. 또라이도 이런 또라이가 없던 것이지….”

“…그래서요. 그걸 듣고도 가만있었습니까?”

“가만있었을 것 같나? 위험한 놈이라 판단된 순간, 모두가 힘을 합쳐 놈을 처단하려 했지. 근데 그놈이 보통 괴물이 아니더군. 결국, 처단은 실패. 살아남은 드래곤들은 겁을 먹고는 뿔뿔이 흩어졌지. 힘을 합쳐 싸워도 모자랄 판에 제각각 흩어져 숨어 버린 거야.”

“…….”

“…결국, 놈은 어떡해서든 드래곤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하나씩 죽이는 데 성공했고, 근래에 이르러선 나와 그놈. 단둘만 남게 되었지. 놈은 날 찾았고, 난 놈과 맞서기 위해 스스로 찾아갔지. 그리고 그때가….”

“레온하르트 공작이었던 때군요.”

“맞아. 그리고 이젠 자네도 알다시피 난 놈에게 패배했네. 팔과 다릴 한 짝씩 잃고 말이야.”

“그런데 아직까지 살아 계시군요. 말인즉슨 놈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맞아.”

듣던 레온하르트가 씩 웃었다.

그 자신의 잃은 팔, 다리 얘길 할 때 씁쓸했던 얼굴과는 확연히 다른 표정이었다.

“나 역시 자네와 같은 짓을 벌였지. 그래, 어차피 싸우다 뒤질 거 너 죽고 나 죽자고 말이야. 그 이후로 나 역시 놈의 한쪽 눈과 드래곤 하트에 충격을 줄 수 있었지. 낄낄!”

말하던 레온하르트가 일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놈이 왜 드래곤 하트를 노렸던 자네의 기습에 그토록 당황했는지 이제 알겠나? 이미 나한테 한번 똑같이 당했던 곳이거든! 크크큭! 크하하하하!!!!”

웃음소리가 흡사 천둥이 울리는 듯했다. 광소를 터트리던 레온하르트는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웃음을 뚝 멈추었다.

“내가 한 번, 그리고 자네가 한 번. 도합 두 번을 같은 곳을 당했으니. 제아무리 놈이 괴물이라 한들 지금쯤 멀쩡하진 못할걸세. 이 드래곤 하트라는 게 한번 망가지면 회복할 수 없는 거거든. 그 꼴로 평생을 살아야 하지. 물론 긴 시간을 정양하면 더 이상의 악화는 막을 수 있겠지만 말이야. 다치기 전에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그 말은 언젠가 재차 공격해 올 수 있다. 그 말 아닙니까?”

“맞아. 놈은 아주 독한 또라이야. 필시 회복되는 대로 공격을 재차 해 올 거야.”

이든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한숨을 쉬었던 그의 낯빛이 유독 어두웠다.

“그럼…. 그때는 정말 끝이군요.”

“뭐가 말인가?”

“예전만큼 힘을 회복하지 못한들 놈이 다시 쳐들어온다면…. 그땐 정말로 더는 막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왜 없어?”

“……?”

“자네가 다시 막아 내야지.”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제가요?”

“아니, 당연하지! 자네가 아니면 그 또라이 막을 놈이 없는 데 응당 다시 막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든이 얼굴을 구겼다.

죽다 살아난 사람에게. 그것도 단전이 망가져 모든 무공이 폐 된 사람에게 다시 싸우라니?

어처구니없는 소릴 해 대는 레온하르트의 말에 이든이 한숨을 쉬곤 입을 뗐다.

“건망증이라도 오신 겁니까? 전 모든 힘을 잃었습니다. 당신 말대로 다시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 말입니다.”

“뭔 소리래? 껍데기는 멀쩡하잖아?”

“껍데기만 멀쩡하면 뭐합니까. 그래봤자 빈껍데기인 것을.”

“빈껍데기?”

그때, 일순 레온하르트가 피식 웃었다.

“훗. 정말 지금 자네 몸뚱이가 빈껍데기뿐이라 생각하나?”

“……?”

레온하르트가 이든의 배꼽을 남은 손으로 꾹 눌렀다.

“물론 여긴 다 잃었겠지. 한데 말이야… 자네가 하도 기특해서 내가 죽어 가는 자네 살리겠다고. 여깄다가 뭘 좀 심었거든.”

“네? 심다니… 무슨….”

“내가 가진 것 중에 이쪽에다 심을 게 하나밖에 더 있겠나?”

“…….”

일순 듣던 이든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가 자신의 단전을 매만지며 물었다.

“설마…. 여기에 드래곤 하트를 심었다. 그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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