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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154/250)

154화.

드래곤 하트를 심었단 소릴 듣고, 쩍 벌어진 입을 연신 다물지 못하던 이든의 모습에 레온하르트가 씩 웃었다.

“내가 사지육신은 말짱하지 못해도, 유일하게 이 심장만큼은 아주 말짱하거든. 그중의 반을 자네에게 심었지.”

입을 쩍 벌리던 이든의 표정이 경악에 가까워졌다.

“그, 그게 가능한 겁니까? 아니 그보다. 그런 것을 제게 막 주셔도 되는 겁니까?”

“당연히 안 되지! 한번 떼 주면 다시 붙이지도 못하는데! 한데 어떡해? 그거라도 안 주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내 자네를 최초 발견했던 당시에 자네 꼴이 어땠는지 아나?”

“…많이 심각했습니까?”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 진짜 까딱하다간 뒤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니까? 다크 스타 그 또라이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 준 이 기특한 녀석을 대체 어찌 살려야 할까? 막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순간, 자네 숨이 넘어가는 거야.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일단 이거라도 떼어 주어야겠다 싶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거 반을 내준 거라니까!”

듣던 이든이 재차 단전을 매만졌다.

“여기에… 드래곤 하트가….”

그리고 비로소 이해가 됐다.

호연지기를 바닥까지 끌어내 쓰고, 생명을 담보로 싸웠음에도 그 자신의 숨이 아직 붙어 있던 이유를 말이다.

그의 꺼져 가던 생명의 불씨를 다시 일으킨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이든의 단전 속에서 힘차게 뛰고 있는 드래곤 하트 덕분이었다.

물론 일부를 떼어 준 반쪽짜리에 불과할지라도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 하트.

비록 본래의 단전은 잃었다 한들 일전의 경험에 비추어 데스 스타를 마주했을 때만 떠올려도 지금 그의 안에 얼마나 대단한 힘이 들어차 있는지 감히 예상이 가질 않았다.

단전을 매만지던 이든의 손이 부르르 떨려 왔다.

‘다시 재기할 힘을 얻었다. 아니, 어쩌면…. 이건 일생일대의 기연일지도 몰라…!!!’

물론 아직은 드래곤 하트만 그의 안에 있다 뿐이지, 그것이 품고 있는 힘을 스스로 느낄 수준에도 올라오지 못한 범부들과 비슷한 감각의 상태였다.

필시 이것이 품고 있는 그 힘과 자신의 무공을 접목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자명했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이 남은 것이다.

그래도 아까보다 조금 밝아진 듯한 이든의 표정에 레온하르트가 웃으며 입을 뗐다.

“아무튼, 그 심장이 자네의 목숨줄을 멱살 잡고 저승에서 끌고 온 셈이지. 물론 내 의학 상식과 으마으마한 신성력이 그걸 도왔다는 것 역시 잊어선 안 될걸세.”

이든이 멋쩍은 얼굴을 했다.

조금 전 그에게 괜히 살렸네, 껍데기만 남았네 했던 자신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그가 고갤 숙였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은인께서 노력해 주신 것도 모르고, 조금 전 제가 실언을 하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크흠! 아암, 실언이지. 아주 큰 실언을 하였어.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자네 살리겠다고 아주 2년 동안 개고생을 했다니까. 에휴…!”

그때, 이든이 넋이 나간 것처럼 되물었다.

“…네?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응? 뭐가 말인가?”

“…2년 동안 절 치료하셨다고요?”

“응.”

“제가 자그마치 2년 동안 혼수상태였단 말입니까?”

듣던 레온하르트가 볼을 긁적였다.

“자그마치…? 겨우 2년이 자그마치라 할 정돈가? 뭐, 아무튼 2년 가까이 자넬 보살핀 것은 맞네.”

“…….”

그 자신의 단전에 드래곤 하트가 자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그였다.

심각하리만치 굳은 이든의 얼굴에 레온하르트가 그의 안색을 살피더니 물었다.

“뭐야, 표정이 왜 그리 심각해졌어?”

“…기껏해야 며칠 기절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정양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미 2년이나 지났다니…. 그럼 제 부모님은…. 제가 꼼짝없이 죽은 줄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흠.”

듣던 레온하르트가 고민하듯 턱을 쓸며 매만졌다.

그에게 있어 2년 정도야 잠깐 눈 한번 감았다 뜬 것과 같은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인간에겐 적지 않은 시간이긴 했다.

게다가 이든의 말대로 그의 가족들이 이든이 죽었다 여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고.

“내가 잠깐 봐 줄까?”

“…네?”

“드래곤이라는 게 생각보다 전지전능하거든.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라면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지. 지금 자네의 가족들이 어찌 지내는지 궁금한 것 아닌가?”

“…가능하겠습니까?”

“기다려 봐.”

레온하르트가 눈을 감곤 입을 꾹 다물더니 잠시 뒤, 그가 다시 입을 뗐다.

“자네 부모 이름이 브라운과 메리 맞지?”

어느새 그의 부모의 이름까지 꿰뚫어 본 그였다.

이든이 고갤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어디 보자…. 으음. 음. 모두 정정하시네. 다만…. 자네가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못 받아들이고 있어.”

“…….”

“집을 포함해 있던 재산이라곤 다 팔아 떠돌아다니며 자넬 찾고 있군. 자네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 그리 여기며 사방팔방을 돌아다니고 계셔. 아이고…. 쯔쯧! 나이 들어서 저래 돌아다니면 몸 상할 텐데.”

“…그럴 수가.”

이든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 자신의 부모에게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겠다 약조했건만, 이를 지키지 못한 것도 모자라서 사라진 자신을 찾겠다고 고생하는 부모의 소식에 걱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레온하르트 역시 그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넬 대신해서 서신이라도 써 주고 싶지만, 집까지 팔아 버리고 저리 돌아다니니…. 어떻게 보낼 방도가 없고.”

“…혹 이곳으로 부모님을 모셔오는 것은.”

“미안하지만, 그것은 안 되네.”

“…예?”

“이곳 안식처는 사방이 결계로 둘러싸 있어서 오직 드래곤에게만 출입을 허하지. 드래곤이 아닌 자는 애초에 출입 자체가 안 된다. 그 말일세.”

“그럼 저는 어떻게….”

“그새 까먹은 건가. 자네 그 배꼽에 나의 심장 반쪽짜리가 있다는 것을. 비록 반쪽이라도 드래곤 하트가 몸 안에 자리한 이상, 자네에겐 내 힘의 일부가 있는 셈이야. 그러니 이곳이 자넬 거부하지 않는 것이지.”

“…….”

“흠. 일단 아는 사람에게라도 서신을 보내는 것이 어떤가? 자네의 부모님 일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맡기고 말이야.”

이든이 짐짓 고민하다 입을 뗐다.

“믿을 만한 이가 있습니다. 그에게 서신을 보내 주십시오.”

“좋아.”

“그리고….”

“응?”

내내 넋이 나간 듯했던 이든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단호한 결의마저 느껴지는 표정.

조금 전 단전을 잃고 방황하던 그 모습이 아닌 더없이 결의에 찬 얼굴이었다.

“하루빨리 예전만큼의 힘을 되찾고 싶습니다. 절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레온하르트가 씩 웃었다.

“내 아는 한에선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 보지.”

“감사합니다.”

“그 전에.”

“……?”

“앞으로 주는 음식은 남기지 말고 싹싹 먹게. 도울 때 돕더라도 일단 그 망가진 몸부터 하루빨리 고쳐야 하지 않겠어? 물론 비명을 질러 대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강제로라도 음식을 구겨 넣어야 하루빨리 나을 것 아닌가.”

맞는 말이었다.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야 음식물 쓰레기도 안 남고 말이야.”

“…네?”

“그거 치우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 알아?”

“…아, 네.”

알면 알수록 괴팍하기 짝이 없는 기인이었다.

***

주륵.

땀이 배어 나왔다.

“후우….”

그러곤 한참 뒤에 내뱉는 한숨.

일순 그의 얼굴이 영 탐탁지 못하단 표정을 했다.

‘쉽지 않아.’

이곳에서 정신을 차린 뒤로 어느덧 한 달 가까이 흘렀다.

엉망이던 몸 역시 처음보다 많이 나아진 상태였지만, 제대로 움직이려면 아직 한참 모자랐다.

이 회복 속도라면 백날이 지나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할 터.

해서 이든은 몸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고 나서부터는 줄곧 가부좌를 틀었다.

운기만 가능하다면 회복의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말 그대로 운기를 ‘했을’ 경우에 말이다.

‘역시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탓에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군.’

단전은 내공을 쌓는 창고다.

그리고 그 내공이란 것은 끊임없이 쌓고, 쌓는 과정에서 오는 결과물로 필수적으로 노력이라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체내에 밀집된 기운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 지금의 이든의 안에는 드래곤 하트라는 기연이 망가진 단전을 대신하여 자리한 상태였다.

그가 노력하여 얻어 온 결과물이 아닌 타인의 힘이 들어차 있는 것이니, 아무리 애를 써도 이든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즉슨 현재로선 운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란 뜻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 안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터인데…. 문제는 어떤 방식도 통하지 않는다는 거지….’

이든은 무에 통달한 자였다.

단지 신교 자체의 무공을 넘어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주요 구결까지 훤히 꿰뚫고 있던 것이 그였다.

때문에 그의 머릿속엔 수백, 수천가지의 무공이 들어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건만, 그가 아는 모든 무공들을 대입하여 천마심공의 구결을 수십, 수백 번을 뜯어 고쳐보기도 했지만, 단전에 자리한 드래곤 하트의 반응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구파일방의 주요 구결도 아니야. 그렇다고 오대세가의 것이 말을 듣는 것도 아니야. 하면 대체….’

일순, 이든의 머릿속에서 관통하듯 무언가가 떠올랐다.

‘혹…. 마도라면?’

고민하는 줄곧 ‘정도(正道)’라 할 수 있는 구결들만 떠올렸던 그가 방향을 선회하여 ‘마도(魔道)’를 떠올린 것.

하나, 그는 신교의 교주이기 이전에 무인으로서 마도로서 힘을 쌓는 방식을 배척했던 인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부작용’ 때문이었다.

마도란 노력이 아닌, 구결 그 자체로서 비약적으로 힘을 키워 주는 마공이었다.

힘을 쉽게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만큼 훗날에 있을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게 컸다.

‘하지만 그 마도 중에서 흡성대법이라면…. 이 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흡성대법.

신교의 교주 중 오직 마도로서 유일무이하게 정점에 올랐던 자의 마공으로, 상대의 힘을 강제적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마기로 변환시키는 기괴한 무공이었다.

마공치고는 그 완성도가 대단하여 과거에 이를 바탕으로 힘을 쌓는 마인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몇몇 마인들이 욕심에 제 눈이 멀어 같은 마인들을 상대로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자 신교 내에서도 사용을 금하였던 것이었다.

이든 그 역시 무진으로서 전생의 교주였던 시절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몇 번 훑어보긴 했었지만, 그가 추구하던 무도와 맞지 않아 대충 한 부 짝에 처박아 두었던 것이었는데….

호기심으로 한번 읽어 봤던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될 것 같다. 이거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

흡성대법 자체가 가진 성질이 그러했다.

만약 이 흡성대법에 구결과 천마심공의 구결만 어떻게 잘 접목한다면 필시 그의 안에 자리한 드래곤 하트를 그의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너무도 충분했다.

고민은 진중하고 길었지만, 행동은 빨랐다.

이든은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은 흘렀다.

흡성대법을 천마심공에 접목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신교의 마공과 정공을 섞는 작업이었으니, 이전의 작업들보다 훨씬 복잡했고, 난해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누군가.

무 자체로서 정점이라 불렸던 자.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결코 불가능한 작업은 아니란 뜻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은 흘러….

“후우….”

이든이 길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전신은 어느새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운공을 한 것이 아닌 단지 구결을 뜯어고치는 작업뿐이었지만, 이번 작업 자체가 원체 고난도였던 탓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난 지금.

남은 것은 실전이었다.

이든이 곧장 고친 천마심공을 외웠다.

뜯어고친 구결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회전하며 온몸에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구결을 외던 그의 전신에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머릿속에 한 가닥 터지듯 울려오는 벼락.

그 순간.

단전을 대신하여 자리한 드래곤 하트의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느껴진다. 기감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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