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5화. (155/250)

155화.

비로소 돌아온 기감.

일순 이든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었다. 이곳에서 정신을 차린 뒤로 이만큼 웃어 본 적이 있던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환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곧바로 사라지는 미소.

그의 얼굴이 재차 조금 전처럼 한없이 진중해졌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되찾게 된 기감에 비로소 체내 드래곤 하트의 기운이 느껴지긴 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기감만 돌아온 상태. 기운을 느끼게 됐다 하여 그 힘을 온전히 그 자신의 것이라 할 순 없었다.

이든이 재차 구결을 외웠다.

뻗어 간 그의 기감이 단전 쪽에 자리한 드래곤 하트를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되찾은 기감에 기뻐하느라 미처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던 드래곤 하트의 무궁무진한 힘이 뚜렷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야 이거!? 뭔 놈의 심장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운을 품고 있는 거야?’

드래곤 하트가 자리하기 이전, 폐 된 본래 그의 단전에 있던 내공은 우스워 보일 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들어차 있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어쨌든 이것도 본래 가진 힘의 반쪽짜리 수준이란 거잖아?’

지금만 해도 놀라 뒤집어질 정도건만, 제대로 된 드래곤 하트의 힘은 대체 어느 정도인 건지 쉬이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것을 지니고 다녔던 데스 스타와의 결전에서 왜 그 자신이 호연지기까지 끌어다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든의 얼굴이 다시 찬찬히 굳어졌다.

흡수해야 할 기운의 양이 대단할 것이라 어느 정도 짐작은 했던 상태지만, 직접 제대로 마주하니 이건 그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이것을 어찌 흡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마공인 흡성대법과 정공인 천마심공을 합친 지금의 심법조차 이번이 처음 사용하는 것 아닌가?

이 끝없는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다가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위험 역시 적지 않으니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한 번에 흡수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야. 일단…. 천천히, 일부만 내 것으로 만들어 보는 거다.’

고민이 끝난 순간, 이든은 곧바로 구결을 외웠다.

그의 기감이 재차 자리한 드래곤 하트를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마나’를 흡성대법의 성질을 이용하여 조금씩 야금야금 흡수하려던 그 순간.

“크헉…!”

이든이 일순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의 온몸에 자리한 핏대란 핏대는 전부 솟아오르며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부풀어진 그의 얼굴이 금세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뭔 놈의 양이…!’

나름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극히 일부만을 흡수했건만, 그조차도 몸에 무리가 올 만큼 양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이든의 기감이 곧바로 드래곤 하트에 손을 떼곤 곧바로 일주천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번, 두 번… 수백 번을 일주천하고 나서야 흡수했던 마나가 안정을 취하며 천마심공으로 인해 마기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드래곤 하트의 극히 일부의 힘이 온전히 그의 것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어…!?’

변화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우득.

일순 들려오는 뼈마디 소리에 이든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그거? 이렇게 갑자기?’

우드드드득!

곧이어 온몸 전체에 연달아 들려오는 뼈마디 소리와 함께, 엄청난 고통이 그의 전신을 때려 댔다.

“크헙!!!”

이든이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악다문 입에서 피가 주륵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고통과 함께 그의 몸에 찾아온 이 변화.

그것은 다름 아닌 환골탈태였다.

그 자신은 조심히 흡수했다는 것이 단 한 번으로 엄청난 양의 기운이 들어오면서 몸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연달아 몸 안에서 일어나며 그의 몸 구석구석을 뜯어 고쳐 대고 있었다.

우지끈. 우드드득!!!

고통은 길었다.

“큽!”

이든이 재차 신음하며 더욱 강하게 이를 악물었다.

뼈가 강제로 재조립되고, 근육이 강제로 뜯겨져 다시 뭉치는 과정은 도무지 맨정신으로 버틸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몸 안에 벼락이 내려치는 듯한 고통이 수차례 일어나길 한참 뒤.

끔찍하던 소리가 멎었다.

“후우….”

이든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몸이 그새 땀에 푹 젖어 있었다.

‘정말 끔찍하군.’

전생에도 한 번 겪었던 것이지만, 이건 도무지 익숙해질 느낌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든 그조차 피가 배어 나올 만큼 이를 악물어야지만, 겨우 버틸 수 있는 어마어마한 고통이 몰려오는 것이 바로 환골탈태였다.

긴 호흡을 끝내고, 정신이 수습되자 의문이 밀려왔다.

‘근데 하필이면 지금 환골탈태가 왔지?’

드래곤 하트가 자리하기 전, 본래 그의 단전이 있을 때도 환골탈태는 겪어 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환골탈태가 필요 없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세계에서 정신을 차린 뒤로 갓난아기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을 해 왔으니, 이미 무인으로 적합했던 몸인지라 따로 변화가 필요 없던 것이 그 이유였다.

해서 이 같은 고통이 이번 생에선 없을 것이라 안심했건만. 이리 느닷없이 찾아오다니….

하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그만큼 내 몸이 엉망이었다는 거겠지….’

데스 스타와의 결전 이후, 이곳에서 정신을 차렸을 당시에 이든의 몸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정양을 얼마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드래곤 하트의 기운 중 일부가 그의 것이 되면서 몸 스스로가 변화를 꿰찼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이든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

고통은 길었지만, 그 뒤에 찾아온 열매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이든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휙휙.

팔을 크게 휘둘러 보고, 다리를 쭉 펴 보기도 했다. 확실히 그간 몸에서 질러 대던 비명이 사라지고, 가뿐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하나 있었다.

‘역시… 눈은 돌아오지 않았어.’

그것은 바로.

여전히 보이지 않는 눈이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환골탈태였는지라 혹시나 하며 기대했건만, 깜깜한 시야는 여전했다.

‘역시…. 환골탈태만으론 눈을 해결할 수 없는 건가.’

하지만 실망하긴 일렀다.

그가 취한 드래곤 하트의 기운은 극히 일부.

남은 저 많은 양을 취하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는 또 모르는 일이었다.

‘조급해하지 말자. 어쨌든 다시 재기할 수 있게 된 거니까.’

그때.

이든이 있던 곳으로 레온하르트가 들어왔다.

서서 몸을 풀던 이든을 바라보는 레온하르트가 일순 고갤 갸웃거렸다.

“누구세요?”

“……?”

“아, 그러니까. 그쪽이 이든 본인 되시는 분이라고요….”

평소답지 않은 레온하르트의 공손한 물음에 듣던 이든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되시는 분이 아니라. 제가 그 이든입니다.”

“…그래요?”

“아, 진짜.”

“농일세. 농! 하하… 하!”

레온하르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정말 많이 바뀌었는걸.”

“제 모습이 그리 많이도 변했습니까?”

“조금 전, 내 반응을 보고도 모르겠나? 자칫 못 알아볼 뻔했다고.”

“…그 정도입니까?”

못 알아봤다는 말에 이든은 문득 걱정이 밀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훗날 다시 그의 부모를 뵙게 되었을 때 못 알아보실까 걱정되어서였다.

그런 이든의 속마음을 꿰뚫어본 걸까. 레온하르트가 이든의 어깰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설마하니 부모 되는 사람이 제 아들을 못 알아보겠나?”

“그렇…죠?”

“그리고 얼굴은 가만 보면 옛날과 그대로야. 내가 처음 보고 의아했던 것은 자네의 변한 몸 때문이었지.”

“변화가 크게 찾아왔나 보군요.”

“그래. 아주 많이.”

레온하르트가 재차 뚫어지라 바라보며 이든의 모습을 훑었다.

2년간의 요양으로 삐쩍 마르던 몸은 온데간데없고, 살이 올라 탄탄해진 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더 커진 키가 보였다.

이전에 키도 제법 큰 편에 속했지만, 그보다 한 뼘은 더 커졌고, 커진 키에 썩 어울리는 떡 벌어진 어깨가 다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레온하르트가 찰나 못 알아볼 정도인 것이 이해가 될 정도의 변화였다.

레온하르트가 재차 입을 뗐다.

“무인으로서 굉장히 이상적인 몸이군.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렇습니까?”

환골탈태라는 것이 본래 그렇다.

완전무결한 무인의 몸으로 탈바꿈해 주는 것.

사실 환골탈태 이전에 이든의 몸도 이상적인 편이라 볼 수 있지만, 레온하르트가 바라보는 현재 그의 몸은 정말이지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렇게 쭉 훑던 레온하르트가 활짝 웃었다.

“아무튼, 아주 잘됐어. 이렇게 되면 앞으로 따로 정양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제 생각 역시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일은 드래곤 하트의 나머지 기운을 흡수할 것뿐인가?”

“예, 그래서 말인데. 혹…. 쓸 만한 빈 공간 없겠습니까?”

난데없는 물음에 레온하르트가 고갤 갸웃거렸다.

“빈 공간?”

“네, 어떠한 충격에도 끄떡없는 튼튼한 공간이면 더욱 좋구요.”

“뭐, 그런 공간이야 얼마든지 있다만, 그건 갑자기 왜?”

“수련할 곳이 필요합니다.”

듣던 레온하르트가 식겁한 얼굴을 했다.

“아, 아니… 대체 수련을 얼마나 무식하게 해 대려고?”

이든이 씩 웃어 보였다.

“최대한 튼튼하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부탁드립니다. 상당히 요란스러울 예정이거든요.”

그리고 예고했던 대로….

수련은 정말 요란스러웠다.

콰아아아아앙!!!!

침소에 누워 있던 레온하르트가 며칠을 연이어 밤새운 듯한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방’간소음에 도무지 잠을 청할 수가 없던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만한 소음과 진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보금자리가 꿈쩍 않고 버티고 있다는 것?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레어는 다름 아닌 사방이 미스릴로 만들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곳. 그의 레어를 계획했던 당시엔 굳이 구조물을 미스릴로 도배하여 제작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당시 제작 총괄자였던 드워프 장인이 죽기 전에 대작 하나만 만들게 해 달라며 떼를 쓰다시피 미스릴로 하고 싶단 탓에 마지못해 허락해 주었던 적이 있었다.

한데 미스릴이 어디 보통 재료인가?

바로 같은 크기면 황금보다 비싸다는 것이 미스릴 아니던가.

그때는 노망난 드워프 탓에 쓸데없는 과소비를 하게 됐다고 속으로 욕을 엄청 했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콰아아아아아아앙!!!!

재차 거대한 폭음이 들리고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레어를 바라보던 레온하르트가 당시의 드워프 장인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자네의 선견지명이 탁월했구먼. 그대가 아니었다면 집 없는 난민 신세가 될 뻔했어….’

지금에 와 떠오른 고마운 마음 때문일까.

레온하르트의 눈가에 한 방울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그가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 내며 창가 쪽으로 고갤 돌렸다.

날을 새웠기에 어둑하던 밤은 진즉에 지나가고 해가 중천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순, 맑게 갠 하늘에 환상처럼 그 드워프의 얼굴이 그려졌다.

저기 저 천공 위에 떠오른 드워프 장인이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거 보세요. 제 말대로 하기를 잘했지요?’

그러게나 말일세….

…왠지 환청마저 들리는 것 같지만….

뭐, 어쨌거나 참으로 다행인 것 아닌가.

쿠우우우우우우웅웅.

그리고 들려온 환청에 답하듯 레어가 재차 폭음과 함께 울렸다.

레온하르트가 버럭 소릴 지렀다.

“잠 좀 자자. 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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