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흡…!”
이든의 몸에 핏대가 그득하게 섰다. 얼굴색 역시 시뻘겋게 붉어졌지만, 처음 드래곤 하트의 기운을 흡수할 때만큼 몸이 터질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요 며칠 내내 수련과 함께 이 같은 짓을 병행하며 수차례 반복하다 보니 흡성대법의 성질을 이용한 드래곤 하트의 기운 흡수에도 이제 제법 익숙해진 탓에 어느 정도가 흡수할 만한 적당한 양인지 비로소 감이 잡힌 것이다.
그리고.
“후우….”
긴 숨을 내뱉은 순간, 그의 안색이 편안하게 돌아왔다.
가부좌를 틀던 이든이 자신의 배꼽을 연신 매만졌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드래곤 하트가 망가졌던 단전을 대신하여 자리한 이후, 그의 수련은 기존의 방식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게 되었다.
어떻게 바뀌었냐고?
바로.
운기행공이 필요가 없어졌다.
본디 실전이든 수련이든 간에 체내의 기운을 쓰는 것은 매한가지였고, 사용한 기운만큼 운공이란 과정을 통해 기운을 재차 채우는 것이 모든 수련과 실전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당연한 과정 아니던가.
하나, 단전이 아닌 드래곤 하트가 자리한 지금은 운공이 달리 필요가 없었다.
그의 체내에 있는 드래곤 하트엔 무한한 기운으로 가득 차 이었다.
물론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은 마기로 그 성질이 전환된 양만큼으로 한정돼 있었지만, 쉬지 않고 기운을 재생성해 대는 드래곤 하트는 이든이 마기를 사용해 대기 무섭게 하트 내의 기운 일부가 마기로 전환 대며 그때마다 채워 주기를 반복해 대었다.
물론 전환되어 채워진 마기만큼, 드래곤 하트의 본래 기운 역시 시시때때로 채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때문에 현재 그의 수련 과정에 운공은 빠져 있었다.
대신 운공이 제외된 만큼, 틈이 날 때마다 하트 내의 기운을 그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 덕분일까.
지금의 그는 모든 힘을 잃었을 당시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강해져 있었다.
가부좌를 튼 그 자세 그대로 이든이 자신의 내부를 살폈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빛이 돌았다.
‘기량은 대체적으로 돌아왔어.’
최소한 그가 힘을 잃기 전, 그러니까 데스 스타와의 결전을 앞두었던 당시. 그만큼의 기량은 충분히 올라온 상태였다.
아직 흡수해야 할 드래곤 하트가 많이 남았건만, 벌써 이 정도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심할 순 없었다.
이든이 일전 데스 스타와의 일전을 떠올렸다.
‘지금 하트에 있는 기운을 다 흡수한다고 해도 놈을 이길 수 있을까…?’
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데스 스타는 말도 안 되게 강했으니까.
물론 일전엔 죽음을 각오하고 호연지기까지 죄다 끌어써 동귀어진을 각오했기에 그만큼의 타격을 줄 수 있던 것이지.
그 자신의 목숨까지 보존한 채로 승리를 장담하는 것은 드래곤 하트의 기운을 모두 흡수한다 하더라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야.’
레온하르트의 말대로라면 데스 스타 역시 정양이 끝나는 대로 재차 공격을 강행할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어차피 예정된 재대결이라면 이길 수 있을까. 없을까를 걱정하기보단 하루라도 빨리 그의 안에 자리한 드래곤 하트의 기운을 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옳았다.
이든이 고갤 휘휘 젓고는 머릿속에서 데스 스타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우선은 지금 몸과 드래곤 하트에 좀 더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시름을 떨쳐 버린 순간, 남은 것은 바짝 날이 선 각오뿐이었다.
이든이 곧장 초식을 밟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재차 거대한 폭음이 울리며 레온하르트의 레어가 거칠게 흔들렸다.
어디선가 제발 잠 좀 자자라는 절규가 들리는 듯했지만, 물론 적당히 무시했다.
***
“이곳이었지?”
한 거구의 사내가 연신 주위를 살폈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시선에는 날 선 경계의 빛이 가득했다.
저벅저벅.
그가 걷고 있는 이곳은 다름 아닌, 과거 캐슬롯 영지였던 땅.
불과 2년 전만 해도 아슬란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영토였지만, 전쟁 이후엔 모든 것이 사라지고 현재는 화천민촌 같은 모습만을 겨우 유지하며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불모의 땅으로 변모해 버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제는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땅이 아니었기에 치안 같은 것은 바랄 수도 없는 더없이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스윽.
주변을 걷던 사내가 일순 등에 걸쳐 있던 대검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예견했던 걸까.
곧이어 쏘아진 화살 여러 개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휘익. 채채챙!
대검 같지 않은 속도로 빠르게 휘둘러지는 그의 검에 날아든 화살들이 속절없이 바닥을 굴렀다.
스윽.
사내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화살의 촉을 향했다.
촉이 까맣게 물든 것이 필시 독을 미리 발라 놓은 모습이었다.
빠득.
검을 휘둘렀던 사내가 이를 악물더니 이내 화살이 날아온 방향 쪽으로 신형을 쏘았다.
파앗!!!!
잠시 뒤, 칼을 휘두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사내가 어느 무리 앞으로 뚝 떨어졌다.
사내의 눈이 서슬 퍼런 빛을 발하며 이글거렸다.
그가 으르렁거리듯 살벌한 음성을 내뱉었다.
“네놈들이구나. 조금 전, 활을 쏜 것들이.”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와 같은 모습에 무리의 사내들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지만, 찰나였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전신에 엄습한 공포를 떨쳐 내듯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버럭 외쳤다.
“죽여!!!”
다른 명령이라곤 일절 없었다.
그저 죽이라는 단 한마디뿐이었다.
스르릉.
우두머리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활을 쏜 무리가 일제히 검을 빼내 들던 그때였다.
“어딜!”
사내의 신형이 무리를 향해 재차 쏘아지고, 일순 그의 대검에 검은 빛 오러가 피어올랐다.
휘이이이익!
대검과 함께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속도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와 동시에.
“으아아아아악!”
“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쏟아졌다.
오직 상대를 절명시키기 위한 자비 없는 손속이 펼쳐지고 잠시 뒤.
툭.
사내가 휘둘렀던 대검의 피를 털어 냈다.
그의 시선이 눈앞에 바닥을 나뒹굴던 시신들을 지나쳐 바르르 떨고있던 한 사내로 향했다.
“끄, 끄허어어….”
무리의 우두머리가 검상에 피를 흘리며 쏟아지는 피를 애처롭게 붙잡고 있었다.
치명상이긴 했지만, 한눈에 봐도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은 아니었다.
그가 두려운 기색이 역력한 빛으로 사내를 쏘아보며 말했다.
“네, 네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너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흥.”
듣던 사내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떨고 있던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가까이 다가가선 그의 허벅지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푹.
“끄아아아아아악!!!”
살이 꿰뚫리는 고통에 곧바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검을 찔러 넣은 사내의 얼굴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가 입을 뗐다.
“며칠 전, 이곳에 두 노부부가 온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위치를 불도록.”
“끄, 끄으으… 내, 내가 그걸 말할 것 같….”
스윽.
“끄아아아아악!!!!!”
쑤셔 넣었던 검을 비틀자 재차 쏟아지는 비명.
이를 듣던 서슬 퍼런 눈빛을 한 사내, 발리스타가 나직이 입을 뗐다.
“중요한 사람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 왔다. 그러니 내 물음에 순순히 답하는 게 좋을 거야. 곱게 죽고 싶다면 말이지.”
과거 앳된 얼굴에 천진난만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묵묵히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살인 병기 같은 모습만이 그의 얼굴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
“으허허…. 좋구나.”
덥수룩한 수염을 한 거구의 사내가 침소에 엎드려 누운 채 기분 좋은 신음 소릴 냈다.
그리고.
그의 곁에 나체의 여인들이 바르르 떨며 사내의 전신을 연신 주물러 대고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의 사내, 베이글이 여인들의 손길을 느끼며 재차 입을 뗐다.
“그래, 이거지…. 이거라면 제아무리 아슬란 제국의 황제도 부럽지 않단 말씀이야. 아니 그런가?”
베이글의 물음에 먼발치에 시립해 있던 그의 수하가 고갤 조아리며 억지웃음을 띠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하….”
“크흐흠. 어으…. 조오타…!”
힐끔.
아부하던 시립한 사내가 연신 고갤 조아리다 저도 모르게 두려움에 떠는 여인들의 몸을 쭉 훑었다.
이를 보던 사내가 속으로 이를 아득바득 갈아 댔다.
‘젠장…. 저리 좋은 것들은 온전히 지 몫이지….’
시립한 사내도 그렇고, 베이글의 다른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로선 꿈도 꾸지 못할 저런 것을 그의 두목인 베이글은 매일같이 누리고 있었다.
굳이 여자뿐이랴. 먹는 것부터 해서 어디서 들여오는지 모를 술까지 온갖 것들은 오로지 베이글의 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제 몫만 챙겨 대는 두목에게 반란이라도 일으킬 법하건만, 그런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았다. 수하들 전부가 달려든다 해도 그 하나 이겨 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당연했다.
왜냐하면 베이글은 과거 제국이 잘나가던 시절에 용병처럼 떠돌며 싸움터를 누비던 방랑 기사였기 때문이다.
다만 전쟁 이후 제국의 힘이 기울면서 그는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제국의 영향 밖에 있는 곳에 터전을 잡고, 갈 곳 없던 난민들을 한데 모아 그 자신만의 무리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지금의 촌락인 것이다.
이곳에 우두머리가 된 베이글은 마치 자신이 황제라도 된 것처럼 생활해댔다.
수하들을 시켜 약탈을 일삼고 잡아들인 여자는 노리개로 부렸으며, 가지고 놀다 질린 여자들은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넘겨 술을 사들이는 데 흥청망청 써 댔다.
그런 사특한 짓을 일삼음에도 그가 이리도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는 것은 제국의 힘이 그만큼 약해졌단 방증이었다.
지금의 아슬란 제국은 몇 남지 않은 영토를 재건하기 위해 심혈을 쏟는 중이었다. 그에게 신경 쓸 겨를이라곤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어흐흐… 좋다….”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이상한 소릴 내던 베이글이 문득 근처에 시립한 사내를 향해 시선을 옮기곤 물었다.
“그나저나 그 노인네들은 아직인가?”
시립한 사내가 곧장 읍했다.
“예. 자신들은 더는 가진 것이 없으니 이리 잡아놔 봐야 소용없다며 버티고 있습니다.”
빠득.
보고를 받던 베이글이 이를 갈았다.
“거, 노인네들 보기보다 잘 버티는군.”
이를 갈아 대며 말하는 베이글의 모습에 시립한 사내의 몸이 절로 위축됐다. 그가 조심히 물었다.
“어, 어찌하면 좋을까요…?”
수하의 물음에 베이글이 짐짓 고민하다 재차 입을 뗐다.
“고문의 강도를 좀 더 높이도록.”
“…예!?”
“못 들었나? 고문의 강도를 높이라고.”
“하, 하지만 다 늙어 빠진 것들이라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그래서 이대로 내버려 두자?”
“…그, 그것이 아니오라.”
“이보게.”
“예, 예…!”
“저 노인네들이 가지고 있던 것이 무언지 그새 잊었나. 응? 사두마차야. 사두마차. 황실의 고위 관료들이나 부자들이나 타고 다는 사두마차라고. 저들이 무슨 연유로 여기까지 들어와서 돌아다녔는지 모르지만, 사두마차를 끌 정도라면 필시 그 재산이 어마어마한 놈들이란 뜻이다. 그렇지?”
“마, 맞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어. 구슬리든 아니면 고문을 해서 겁을 주든 간에 노인네들의 가진 재산을 이곳으로 가져와야 하지 않겠어? 근데 놈들이 버티는 꼬라지로 봐선 구슬리는 것은 일절 통하지 않을 테니 고문을 강도를 올리는 방도 말고 더 있냐 그 말이야.”
시립한 사내가 바르르 떨다가 곧장 무릎을 꿇었다.
“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과, 과연 현명한 지도자다우십니다!”
“무튼, 놈들이 서신을 쓰게 만들어 사람을 부르게 하든 무슨 수를 써서든 놈들이 가진 재산 전부를 이곳으로 가져와야 한다. 알겠느냐?”
“며, 명심하겠습니다.”
“어휴! 다른 것들보다 머리 좀 쓰길래 책사로 임명했더니만 저리도 멍청해서야. 이래서 천것들은 쯔쯧!”
혀를 차 대는 제 두목에 수하가 속으로 연신 욕을 지껄이던 그때, 베이글이 수하에게서 시선을 떼곤 음흉한 눈길로 재차 여인들을 바라봤다.
“오구. 오구구 좋다. 그래그래. 거기다. 거기. 좀 더 안쪽.”
“…….”
여인이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베이글이 가리킨 곳을 향해 손을 뻗던 그때였다.
콰아앙!
베이글이 있던 안채의 문이 거칠 게 열리며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두, 두목!!! 두모오오오옥!”
그 야단법석에 짐승 같은 표정을 짓던 베이글의 안색이 절로 구겨졌다. 그가 수하를 날카롭게 쏘아봤다.
“웬 소란이냐.”
베이글의 물음에 들어온 수하가 연신 거친 숨을 토해 내다 황급히 입을 뗐다.
“두, 두목! 크, 큰일 났습니다!!!”
수하를 보던 베이글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시시한 동네에 큰일은 무슨 큰일. 오크 무리라도 나타난 게냐?”
“그, 그것이 아니오라. 근처에 웬 수상한 놈이 얼쩡거린다는 소식에 병력들 일부가 달려 나갔는데 깜깜무소식인지라 한 놈을 급히 파견하여 주변을 살피라 했는데…. 돌아온 그놈이 하는 말이…!”
“그놈이 하는 말이 뭐.”
“나, 나갔던 병력 모두가 모,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뭐?”
베이글이 도끼 눈을 치켜뜨며 수하를 노려보았다.
그의 몸을 주무르던 여자들이 겁을 먹고는 곧바로 그에게서 손을 떼었다.
여인들의 바삐 움직이던 손이 멈추고 베이글이 누워 있던 침대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키곤 입을 뗐다.
“어디 딴 데서 작정하고 노리고 온 것은 아니고?”
“그, 그건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듣기론 한 명에게 당했다고….”
들어온 수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일순, 어디선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동네방네 떠들 듯이 들려왔다.
“베이글 이 씨빠빠 새끼야. 당장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