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250)

163화.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

쾅쾅쾅!

밖에서 들려온 난데없는 소란에 깊게 잠들던 스왈로의 눈이 절로 떠졌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야….”

어젯밤. 영주인 이든을 대신해 엘프족 왕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하고 전서구에 실어 보낸 것이 내내 신경 쓰이던 것을 포함하여, 생포한 채 붙잡아 둔 산적들로 밀려오는 걱정 탓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다가 뒤늦게 저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그였다.

잠이 부족했을 테니 강제로 눈이 떠진 지금도 여전히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

하나, 이대로 잠들기엔 밖에서 들려온 소란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가 잠이 덜 깬 듯한 눈으로 소란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해 창가 쪽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아, 아니…. 이, 이게 무슨….”

밀려오는 졸음 탓에 게슴츠레하던 그의 눈이 일순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무엇을 봤길래 저럴까.

창밖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던 그가 부리나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는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허….”

무언가를 열심히 바라보던 스왈로는 쩍 벌린 입을 연신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단잠을 깨웠던 소란의 근원.

스왈로의 시야에 담던 것은 다름 아닌 성의 외벽을 쌓는 공사 현장이었다.

쿵쿵쿵.

수백의 인원이 척척 맞는 손발로 움직이며 인근에서 돌을 캐 오고, 채취한 돌을 깎아 쌓아 올리는 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뭐, 여기까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의 오랜 염원 중 하나가 영지의 재건이었으니, 오히려 기뻐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차곡차곡 정성스레 기반을 쌓는 중인 외벽을 지나쳐 일하는 인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기묘한 것을 대번에 눈치챌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뭐랄까.

일하는 인부들의 생김새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다고나 할까?

하나같이들 험상궂은 것이 마치 어디 산채에서 굴러온 듯한 도적들의 꼴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인간들이 연신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며 진땀을 빼고 일하고 있었다.

도적 같은 꼴을 한 사내들의 시선이 이따금씩 향하는 곳.

스왈로의 눈 역시 자연스레 그들이 힐끔 바라보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거기엔 한 청년이 공사 현장 중앙에 서서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있었다.

“자자, 빨리들 움직여라. 빨리! 늦으면 아침밥도 없어! 어!?”

“저, 저분은….”

청년을 본 스왈로가 반사적으로 불안함을 느끼곤 일하는 인부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발에 땀이 나랴 서둘러 그 청년에게 달려갔다.

그가 청년을 향해 목청이 터지라 불렀다.

“여, 영주니이이이임!”

노회한 몸이라곤 믿기지 않을 몸놀림으로 쏜살같이 달려간 그가 도착한 곳. 그곳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든이 있었다.

들려온 스왈로의 목소리에 이든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오! 어르신 오셨습니까. 일찍 일어나셨네요?”

이든의 코앞까지 달려온 그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듯 헥헥대며 입을 뗐다.

“헥헥…. 여, 영주님….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이거요? 어제 말씀드렸던 그겁니다.”

듣던 스왈로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연신 흔들려 댔다.

“서, 설마…. 여, 영지 재건 공사 말씀이십니까?”

“네. 그것 말고 더 있나요?”

너무 당연한 것을 묻는 것 아니냐는 이든의 말투에 스왈로가 도리어 넋 나간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 아니. 어제 말씀하셨던걸…. 오늘 바로 진행하셨단 말입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잠도 안 오겠다 바로 진행했죠. 뭐.”

엘프족 왕에게 서신을 보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저 도적놈들을 노예로 부리자고 할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눈앞의 이 청년은 그야말로.

범부로선 감히 이해 못 할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란 것을 말이다.

하지만 당장에 그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눈앞의 미친놈…. 아니, 눈앞의 영주의 사고방식 같은 것이 아니었다.

스왈로가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고는 서둘러 입을 뗐다.

“하, 하지만 영주님, 이렇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다짜고짜 일을 진행하시면 어쩌십니까…! 저렇게 풀어놓은 채로 일을 시키면 틈을 노렸다가 마을 안에서 소란이라도 피울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의외로 간결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저기.”

“……?”

스왈로의 시선이 이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옮겨졌다.

그의 입이 재차 쩌억 벌어졌다.

이든이 가리킨 곳.

거기엔 도적들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입에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산처럼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스왈로가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그것들을 가리키며 쩍 벌어졌던 입을 움직였다.

“아, 아니…. 저, 저들은…!”

저렇게 사내들이 산을 이루며 쌓여 있었음에도 왜 보질 못했을까.

아마도 그건 눈앞에 펼쳐진 어처구니없는 풍경에 미처 저것(?)에 신경 쓸 틈이라곤 없어서였을 것이다.

힘겹게 입을 떼며 스왈로가 채 묻기도 전, 무슨 말을 할지 다 안다는 것처럼 이든이 도중에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산적들입니다. 일을 시킨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수상한 움직이던 녀석들, 돌을 캐 오라 했더니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녀석들, 움직임이 굼뜬 녀석들, 대드는 녀석들 등등등. 전부 다 잡아다가 족쳐 놨습니다. 뭐, 당연히 저들 중엔 도적 떼 수장도 있는 것 같더군요. 아마 어제부터 대들던 녀석일 겁니다.”

“허, 허허….”

산을 이룬 사내들 수가 어림잡아 봐도 수십이다.

근데 저것들을 일일이 죄다 잡아다가 저리 만들었다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급기야 스왈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때,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지금까지 상황도 걸작이건만, 걸작 뒤에 어떤 대작이 나올까.

벌써부터 그에게 무슨 말이 나올지 이제는 기대마저 되는 스왈로였다.

이든이 말을 이었다.

“저들에 대해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며칠만 정양하면 다시 개처럼 굴려 댈 수 있으니깐요.”

“…….”

아, 예….

어련히 알아서 잘하셨겠습니까.

스왈로는 이제 무어라 답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스왈로를 향해 씩 웃으며 얘길 하던 이든이 다짜고짜 번개같이 날아가더니 누군가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곧 살갗을 에워싸 때리는 찰진 소리가 들려오고 그가 떠나가라 소릴 질러 댔다.

“손발 느려지지 엉!? 내가! 인마!”

쫙!

“귀신같이 다 안다고 했어. 안 했어!? 엉!?!?”

쫙!

“아이고! 사람 죽네…!!!”

“사람은 얼어 죽을! 네들은 오늘부터 그냥 개야. 개! 개처럼 일하라고!!!”

쫙쫙!

찰지게 들려오는 채찍 소리. 그리고 덩달아 들려온 고함과 절규 속에서 스왈로는 이미 해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든의 타박 속에서 도적 아니, 노예들이 개처럼 구른 지 한참 후, 비로소 동이 트길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마을의 청년들이 어딘가에서 줄줄이 걸어 나오더니 무언가를 들고나오는 것이 아닌가.

넋 놓고 광경을 바라보던 스왈로 역시 절로 그곳으로 관심이 갔다.

‘뭐지…?’

스왈로의 관심을 끈 그것.

이는 다름 아닌 노예들이 먹을 끼니였다.

발발 뛰어다니며 그들을 닦달할 때는 언제고, 어느 틈에 미리 말해 둔 것인지 마을 청년들이 그들에게 끼니를 하나씩 배식하고 있었다.

일을 시키는 내내 개처럼 구르라곤 했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저들이 먹을 밥까지 시켜서 챙긴 이든이었다.

“…….”

“크흡.”

“크흑….”

그때,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끼니를 받아 든 도적들의 얼굴 위로 서러움에 굵은 눈물이 맺히더니 이내 볼을 타고 줄줄이 흐르기 시작했다.

받아 든 끼니가 그야말로 개밥 수준이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개처럼 부리더니 나눠 주는 끼니도 개밥이라….

이를 통해 스왈로는 이든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배울 수 있었다.

영주 되는 양반이 참으로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다시 시간은 흘러 노예들의 휴식 시간이 막 끝나려는 찰나였다.

뿌우우우.

방벽 쪽에 보초를 서 있는 병사의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한쪽 구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스왈로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무, 무슨 일이지…!?!?”

보초병이 뿔피리를 부는 경우는 도적들이 출몰할 때와 같이 위급상황이 아니고선 없는 일이었다.

끼니를 금세 해치우고 막간에 휴식을 취하던 도적들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인 것은 마찬가지인 상황.

곧이어 방벽 쪽에서 보초를 서던 병사가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고래고래 소릴 질러 댔다.

“영주님!!! 촌장님!!!”

마침 근처에 있던 스왈로가 황급히 다가가 그에게 물었다.

“대, 대체 또 무슨 일인가!”

“지금 방벽 너머 숲 쪽에서 무언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게 대체 뭐길래!”

“그, 그것이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합니다…!”

“대체 뭐길래…!”

잠시 뒤, 방벽이 부서지는 듯한 엄청난 폭음이 먼발치에서 들려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폭음이 걷히기 무섭게 쩌렁쩌렁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든, 이 개자식아!!! 나, 갤러하드가 왔느니라. 당장 나와아아아아!!!!!”

아….

왔다.

진짜로 날이 밝기 무섭게 왔다.

엘프의 왕 갤러하드가 서신을 받기 무섭게 다짜고짜 쳐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에게 답하듯 근처에 있던 이든이 쩌렁쩌렁 외쳐 댔다.

“나 여깄소!!!!”

옆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스왈로는 그야말로 쓰디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내내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토해 내듯 고함을 질러 댔다.

“제발 하나만 하십쇼. 하나만! 그리고 싸우려거든 밖에 나가서 싸우던가아아아…!”

도적들 못지않은 서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

탁.

“…….”

탁.

“…….”

마을 회관 안은 더없는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침묵 속, 찻잔 놓는 소리만 무심히 들려오는 그곳에 갤러하드와 이든 단둘이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잔 안에 있던 차가 모두 비워질 때쯤.

이든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때 잃으신 겁니까?”

“……?”

“오른쪽 팔 말입니다.”

갤러하드가 피식 웃었다.

“그새 그걸 알아차렸나? 뭐, 그런 셈이지. 이것 때문에 지난 2년간 고생 좀 했지. 왼쪽 팔로 검에 익숙해지느라 말이지.”

“힘든 시간을 보내셨군요.”

“자네만 하겠는가.”

그때였다.

갤러하드가 시퍼렇게 멍든 눈두덩이를 날달걀로 문지르며 입을 뗐다.

“이제 좀 말해 보게. 그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야.”

이든 역시 쥐던 찻잔을 놓고는 한쪽에 두던 날달걀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꼴이 아무래도….

서로 치고받고 싸운 모양이었다.

이든이 입을 뗐다.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런 뻔한 얘기 말고, 그 속에서 어찌 살아남았냐는 것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날 이후로 2년 동안 혼수상태였거든요.”

“2년 동안…!?”

갤러하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큰 부상을 피할 수 없었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2년 동안 혼수상태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다음은? 2년간 혼수상태였음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누군가 자넬 돌봐 주었단 뜻 아닌가?”

“맞습니다. 레온하르트 님께서 그간 전 돌봐 주셨더군요.”

“레온하르트…? 레온하르트라면 과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곳의 영주 아닌가? 그자가 어디에 있다가 자네를….”

“…그 전에.”

“……?”

그때였다.

이든이 갤러하드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갤러하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든을 바라보았다.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데스 스타가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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