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역시 그랬군.”
데스 스타가 살아 있단 말에도 불구하고, 갤러하드의 반응은 담백하기만 했다.
이든이 재차 입을 떼곤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당시 이곳에 영지민들을 대피시켰던 내가 데스 스타가 어찌 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지. 다만, 마음 한구석이 걸리는 것이 왠지 그럴 것 같다 여겼을 뿐이지.”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놈은 재차 돌아올 겁니다.”
“…….”
“바로 이곳에.”
데스 스타가 그의 말대로 살아 있다면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으니, 그다지 놀랄 것은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의아한 것은 있었다.
왜 하필 다른 곳도 아닌 이곳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곳인가. 아니, 애초에 그의 목적은 또 무엇이고? 이곳에 뭐라도 숨겨 놓은 건가?”
묻고 싶던 것이 많았는지 입을 뗀 갤러하드에게서 질문이 줄줄이 연달아 나왔다.
충분히 예상했던 질문들인지라 그에 반해 이든은 여전히 담담할 뿐이었다.
“…레어가 있습니다.”
“레어…? 드래곤이 서식하는 보금자릴 말하는 건가?”
“네. 제가 눈을 뜬 곳이 그 레어였고요.”
“아니 자네가 정신을 차렸을 땐 레온하르트, 그자가 돌보고 있었다고….”
일순 말끝을 흐리던 갤러하드가 화등잔만 해진 눈을 했다.
그가 곧장 말을 이었다.
“설마 레온하르트 그자가…. 드래곤이었단 말인가. 자네 뜻은?”
“맞습니다.”
“허…. 이 무슨….”
“놀라시긴 아직 이릅니다.”
“……?”
“데스 스타는 평소 은인자중하는 여타 드래곤들과 다르게 지난 천 년간 이 땅에 현신을 수없이 반복해온 놈입니다. 그리고 놈의 목적은 오직 단 하나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드래곤을 말살하는 것. 그 자신 스스로가 이 땅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드래곤이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랬군… 그래서 이곳에!”
“네, 레온하르트 님은 데스 스타를 제외하고 남은 유일한 드래곤입니다. 레온하르트 님만 사라지면 그의 목적이 달성하는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네.”
“……?”
“데스 스타가 지난 천 년간 이 땅에 수없이 현신했다면 왜 그동안 역사는 이를 알리지 못했나?”
갤러하드 그 역시 인간과는 비견되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긴 했지만, 먼 과거 드래곤이란 생물이 흔했던 당시의 시절은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그간 데스 스타의 활동 역시 모르는 것이 당연했고.
그나마 이를 아는 엘프를 알고자 한다면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뻘 세대쯤으로 올라가야 알 수 있을 테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역사가 남을 수 없으니까요.”
“응?”
“놈의 힘을 겪어 보셨으니 아실 것 아닙니까. 역사가 남으려야 남을 수가 없습니다.”
“…하긴.”
갤러하드가 비로소 이해한 표정을 했다.
역사라는 것은 응당 기록하는 이가 있어야 그것이 남는 법이다.
하나, 기록할 이마저 남지 않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가능한 이라면 이유도 모른 채 나라 하나 폐허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경험했던 데스 스타가 그만한 힘을 가진 이였다.
“…자네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놈은 이른 시일에 재차 이곳에 오겠군.”
“그게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반드시 그럴 겁니다.”
“근데 말이야. 자네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어. 이전까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은밀히 움직인 것 같은데, 2년 전 그때의 행적은 대놓고 움직였단 말이지. 병력까지 동원하며 말이야. 마치 이번만큼은 역사에 기록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응?”
“데스 스타가 레온하르트 님을 노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거든요. 십수 년 전, 레온하르트 님이 이곳에 영주로서 있던 그 시절. 그분이 난데없이 종적을 감춘 그 날. 그때 그분은 데스 스타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으니까요.”
“…그, 그랬단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 남은 드래곤이었던 레온하르트 님께서 당시 데스 스타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물론 그 자신 역시 큰 부상을 피할 순 없었지만, 데스 스타 역시 심각한 부상을 입었죠. 바로 드래곤 하트에…. 레온하르트 님 말로는 그때, 놈의 눈 하나 역시 앗아 갔다고 그리 말씀하시더군요.”
“…그렇군. 그 때문이었어. 놈이 그 어마어마한 언데드 병력을 이끌고 이곳에 침략을 도모한 것. 이곳 어딘가에 있을 레어를 찾기 이전, 그 자신은 힘을 아낄 심산이었군.”
“네.”
“그 레온하르트란 분은 어떤 분인가? 이 사달이 날 때까지 줄곧 은인자중하셨던 것을 보면 당시 혈투때 입은 부상이 심각하신 건가?”
“데스 스타 그와는 달리 드래곤 하트엔 전혀 문제가 없으셨지만, 스스로 거동만 겨우 하시는 상태이십니다. 몸의 일부를 상당 부분 잃으신 상태였죠.”
“흠.”
“하지만 이제 유일하게 멀쩡하던 드래곤 하트마저도 멀쩡하지 않으십니다.”
“……?”
“그분의 드래곤 하트의 반이 제게 있거든요.”
“…뭐?”
갤러하드가 넋 나간 표정을 했다.
줄곧 데스 스타와 레온하르트의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훨씬 놀란 모습이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갤러하드를 대신해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데스 스타가 일으킨 폭발에 휘말렸던 그 날. 전 모든 힘을 잃었습니다. 죽음 역시 예정된 수순이었죠. 하지만 제 안에 자리한 드래곤 하트 덕분에 지금 이렇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랬군. 그래서 그 폭발에 휘말리고도 목숨을 보전할 수 있던 것이었어.”
“이제 제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는 어느 것도 아닌, 후에 언제가 될지 모를 데스 스타의 재침공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이든이 말을 마치자 둘이 있던 회관에 더없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줄곧 대화의 내용모든 게 갤러하드 그조차 감당키 힘든 주제 아니던가.
쉬이 입이 떼어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후에 있을 데스 스타의 재침공을 어떻게든 대비해야만 했다.
“자네가 이 사실을 내게 모두 말해 준 것은 그만큼 나 역시 해야 할 일이 있단 뜻이겠지?”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말해 보게. 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해 볼 터이니.”
지금까지의 대화는 단지 갤러하드를 이해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진짜 중요한 대화가 남은 것이다.
이든이 곧장 입을 뗐다.
“2년 전 그날, 출병했던 모든 엘프족 전사들을 잃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맞네. 내게 있어 절대 잊지 못할 아주 뼈아픈 기억이지. 그 때문에 우리 역시 힘을 회복하느라 세상 밖으로 나오질 못했던 것이지.”
“예, 레온하르트를 돕기로 했던 약속도 까맣게 잊으신 채로 말이죠.”
갑자기 정곡을 찔러 오는 이든의 말에 갤러하드가 괜한 헛기침을 연발했다.
“크, 크흐흠! 거, 사람 무안하게. 그 얘기는 왜 또 꺼내는가. 크흠!”
“찔리긴 하신가 보군요.”
“어흐흐흠!”
“아무튼, 잃었던 병력을 회복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압니다.”
“아무래도 그렇지. 다들 한가락 하던 정예병들이었으니까…. 한데 이 얘기는 왜 꺼냈나?”
“엘프족을 저희 마을에 주둔시켜주십시오.”
“…잉?”
“……?”
“그게 뭔 소린가? 엘프족을 주둔시켜달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날래고 강한 엘프족을 이곳 마을에 주둔시켜 달란 겁니다. 갤러하드 님께서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곳 마을은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는 상태거든요. 기껏 있는 병사 역시 오합지졸이나 다름없고요.”
하긴, 그건 그랬다.
이곳 마을 회관까지 오는 내내 눈에 보이는 거라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전부였으니까.
물론 외벽을 쌓는 공사 현장엔 힘깨나 쓰는 것들이 있어 보였지만, 한눈에 봐도 그들은 이곳 마을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자네가 있으니 괜찮지 않은가?”
“저라고 항상 불을 켜고 이곳을 지킬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깐요. 하여 어느 때고 저를 대신하여 이곳을 지켜 줄 엘프족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듣던 갤러하드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했다.
“…내 자네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우린 힘을 기르는 중….”
“그 힘. 제가 키워 드리겠습니다.”
난데없는 이든의 말에 갤러하드가 고갤 갸웃거렸다.
“힘을 키워 주겠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엘프족 전사들을 훈련시켜 드리겠단 겁니다. 그것도 단기간에, 과거 갤러하드 님의 정예병 못지않게 말이지요.”
“…자, 자네가 직접 훈련을 시키겠다고? 아니, 그보다 그게 가능하겠나? 단기간에 과거 정예병 수준으로 저들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합니다. 갤러하드 님도 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제 능력이라면 그게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지. 알다마다.’
갤러하드 역시 내심 알고 있었다.
이든의 능력이라면 그것이 허황한 얘기가 아니란 것을.
단지 너무 뜻밖의 제안이었던 터라 되물은 것이었다.
만약 엘프족을 이곳 마을에 주둔시켜 주는 조건으로 단기간에 과거의 힘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남는 장사가 없었다.
일단 이든에게 엘프족 병사들을 맡기기만 한다면 갤러하드 그 자신 역시 남은 한 손에 익숙해지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갤러하드가 곧장 고갤 끄덕였다.
“내 엘프족 병사들을 이곳에 주둔시키지. 얼마나 주둔시키면 되겠나?”
“갤러하드 님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요.”
“좋아. 병사들을 추려 내 오늘이라도 당장 이곳에 주둔시키지.”
결정을 내리는 순간, 곧장 실행에 옮기겠다는 것이 역시 갤러하드다웠다.
모두가 서로 유리할 만한 대화를 마치던 그때, 이든이 불쑥 한마디 더 꺼냈다.
“아 맞다. 근데 있잖아요.”
“응?”
“제가 듣기론 아까 오시면서 방벽을 부수셨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갤러하드의 얼굴이 일순 핼쑥해졌다.
그건 무어라 변명할 건덕지가 없는 명백한 그의 실수가 맞기 때문이다.
갤러하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그, 그건…. 내 꼭 변상하지.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말게. 설마 내가 부숴 놓고 그냥 갈 줄 알았나? 하하하….”
“아휴. 그야 당연하죠. 설마 엘프족의 왕 되시는 분께서 그냥 가셨겠습니까? 제가 다 알지요. 그냥 혹여 까먹지나 않으셨을까 해서 꺼내 본 말입니다.”
“하하하…! 자네도 농은 참.”
“아 참, 그리고 있잖아요.”
“또…. 할 말이 있나?”
“주둔하게 될 엘프분들 보내면서, 그들이 해결할 식량도 같이 좀 딸려 보내 주시고요.”
“아, 물론이지. 내 같이 보내겠네.”
뭐, 힘을 길러 준다는데 그 정도쯤이야 당연히….
“그리고요.”
“뭐, 또 뭐!!!”
“저희 마을 사람도 먹을 식량도 좀 부탁드려요. 넉넉하긴 한데, 그냥 혹시 몰라서?”
계속 붙는 사족에 갤러하드의 인내심도 극에 달했다.
그가 이든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꽥 소릴 질러 댔다.
“…이, 이런 날강도 같으니라고…!!!”
“뭐요!? 날강도!?”
“그게 날강도 짓 아니면 뭐야 인마!!!”
쿠과과광!!!
급기야 마을 회관에서 두 사람의 주먹이 재차 오갔다.
난데없는 소란에 촌장과 장로들이 달려와 둘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그중 이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다시피 한 스왈로가 급기야 참다참다 고래고래 소릴 질러 댔다.
“제발 하루만! 하루만 조용히 좀 삽시다. 네에!?!?”
물론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