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250)

165화.

결국, 이든과 갤러하드 간에 긴밀했던 대화는 재차 사이좋게 오고 간 주먹으로 마무리되었다.

그야말로 막장이란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끝이었다.

보통 이쯤 되면 잘나가던 회담도 결렬되기 마련이건만….

어찌 된 일인지. 예정대로 날이 저물기도 전에 마을의 입구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엘프족의 병사들이 대열을 맞춰 줄지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그럴듯한 광경에 마을 사람들의 이목 역시 절로 그곳을 향했다.

“세상에…. 저들이 죄다 그 엘프란 말이지?”

“그렇다니까.”

“이야, 그 보기 힘들다는 엘프가 저렇게나 많이….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보는구만.”

들어선 엘프들을 뚫어지라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신기한 듯 연신 떠들던 그때, 사람들 틈에 섞여 함께 이를 바라보던 스왈로는 정말이지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허…. 진짜로 왔네. 정말로 왔어….”

처음 이든에게 오늘부로 엘프족이 마을에 주둔하게 될 것이라는 얘길 들었을 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을 못 믿어서 그렇냐고?

아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요 이틀간 이든을 보면서 깨닫지 않았던가.

그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던 것도 결국엔 무슨 짓을 해서든 제 의지대로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양반이라는 것을.

다만 갤러하드와 이든이 헤어지기 직전 그들의 싸움을 목도하고, 직접 말렸던 장본인으로서 그들이 나눴던 대화 모두가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그런데….

정말 약속대로 주둔하게 될 엘프족 병사들 보내 준 것이다

참으로 뒤끝 없는 갤러하드의 시원시원한 성격을 보여 주는 행보가 아닐 수 없었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영주인 이든도 그렇고, 오늘 만난 갤러하드도 그렇다.

사내가 보통 싸우다가도 금세 화해한다곤 하지만, 이건 도가 좀 지나치지 않은가.

뭐, 어찌 됐든 간에 마을의 복(福)임은 분명했다.

분명하긴 한데….

‘어째 불안하단 말이지….’

이젠 아무 이유도 없이 덜컥 걱정부터 밀려오는 스왈로였다.

그리고 그 걱정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이게 뭡니까?”

스왈로가 이든이 건넨 종이에 쓰인 무언가를 보며 물었다.

“뭐긴요. 내일부터 마을 청년들이 소화하게 될 일정표입니다.”

“이, 이걸 그대로 말입니까?”

“예.”

스왈로의 시선이 재차 확인하듯 계획표를 훑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 훈련.

저녁 : 이후 자유 시간.

재차 훑던 스왈로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려 댔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종이에 쓰인 계획표라는 것이 말이 좋아 계획표지. ‘그냥 너희는 밥 먹고 똥 싸는 것 외엔 죽었다 생각하고 훈련이나 주궁 장창 해라’와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입만 쩍 벌린 채 별것 있지도 않은 계획표를 두 번, 세 번 바라보던 스왈로를 향해 이든이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

“그 훈련 제가 시킬 생각입니다.”

“…네?”

“그 훈련 제가 직접 시킬 거라고요.”

스왈로의 입이 조금 전보다 더욱 쩍 벌어졌다.

사람의 입이 저렇게까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말이다.

물론 그의 앞에 있는 이든이야 아쉽게도 이를 볼 수가 없었지만.

“네…!?!? 마을의 청년들을 직접 훈련을 시키신다고요?”

“뭘 그리 놀라십니까. 이게 그렇게 놀랄 만한 일입니까?”

놀랍지.

놀랄 수밖에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직접 한다는데.

지옥과도 같은 계획표에 마왕을 연상시키는 영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물론 스왈로는 제 생각을 목구멍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가 얼버무리듯 입을 뗐다.

“아, 아니. 훈련 교관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구태여 영주님께서 왜 직접…?”

듣던 이든이 고갤 연신 갸웃거리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마을 청년들이 낮에 하는 그 체조가 훈련이었습니까?”

“체, 체조….”

단언컨대, 지금 당장 마을 청년들이 하는 훈련 역시 체조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전문 교관도 아니고, 실전경험도 거의 없다시피 한 교관이 과거 군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급조한 훈련인지라 질은 떨어질지 몰라도 훈련의 강도만큼은 황실의 병사 못지않게 빡빡하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한데, 지금 앞에 있는 영주가 그것을 두고 ‘체조’라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볼 줄도 모르는 양반이.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 영주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어떤 변명을 대서라도 스왈로 그에겐 이든을 말릴 힘이 없었다.

하나, 아직 놀라긴 일렀다.

이든은 이 불쌍한 노인을 그렇게 놀래키고도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는지 재차 입을 뗐다.

“아 그리고 그 훈련 말입니다.”

“네?”

“오늘부터 주둔하게 될 엘프족과 함께 합동 훈련으로 진행하게 될 거라는 것도 청년들에게 꼭 좀 알려 주시고요.”

“…네? 에, 엘프도 함께 말입니까?”

“아, 미리 설명해 드린다는 게 깜빡했나 보군요. 엘프족이 우리 마을의 치안을 위해 주둔하는 조건으로 제가 저들을 훈련시키기로 약조했습니다.”

“…….”

연달아 떨어진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스왈로는 이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젠 그냥 팔자려니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 영주란 청년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 그리고 이것도.”

“……?”

이든이 또 다른 종이를 건넸다.

이를 본 스왈로의 눈이 한 차례 더 크게 흔들렸다.

“지금 드린 그것은 엘프들에게 알려 주면 됩니다.”

“이, 이게 그분들의 계획표란 겁니까?”

“네.”

“허….”

엘프족이 소화하게 될 계획표는 또 어떻길래 저리 말조차 잇지 못하는 걸까.

그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스왈로가 마치 무거운 짐을 떠안은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이, 일단 알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모두에게 알려 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촌장님께서도 이제 그만 들어가시죠. 청년들과 엘프들에게 이를 알리려면 시간이 빠듯하실 테니까요.”

“아, 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신 수고 좀 해 주십시오.”

스왈로가 고갤 꾸벅 숙이곤 회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마을의 청년들을 한데 모아 내일부터 당장 시행될 계획표를 공표했다.

그리고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촌장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맞습니다! 당장 먹고살기도 빠듯하다고요!”

‘끄응….’

스왈로가 예상했던 대로 청년들의 반발이 거셌다.

한차례 침음성을 내뱉던 그가 애써 담담한 척하며 달래듯 말을 꺼냈다.

“내 자네들 불만을 모르는 것 아닐세. 하나, 영주님께서 괜히 무리해 가면서 이 계획표를 짜셨겠나. 그만큼 마을의 안전이 중요하니까 그러신 게지.”

하지만 이렇게 타일러 가며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듣던 청년들은 영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아니, 그래도요. 아침에 훈련하고, 낮에도 훈련하고. 저녁 역시 말이 좋아서 자유 시간이지. 이 시간에 저희는 남은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저희는 대체 언제 쉬는 겁니까.”

“맞습니다! 지금 현재 소화하고 있는 훈련양도 일하면서 하기 빠듯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건…. 그리고 이제 마을의 안전은 주둔하게 될 엘프들이 봐주기로 한 것 아닙니까? 구태여 저희가 이렇게까지 훈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아….”

스왈로라고 어찌 이 청년들의 고민을 모를 리가 있겠나.

당사자인 청년들을 제외하고 누구보다 그가 제일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영주가 이렇게 하자는데, 반발이 거세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일단 다들 이리 알고 있게나. 훈련량의 문제가 있으면 차후에 영주님께서 어련히 계획을 수정하시겠지.”

“하아….”

곳곳에서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스왈로가 엘프들이 소화할 계획표를 보여 줄까 하다가 이내 말았다.

그들이 소화할 일정에 비하면 마을 청년들의 것은 그나마 양반인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힘든 것이 이걸 본다고 안 힘든 것이 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째 하루도 조용하게 넘어가는 일이 없구나.’

대뜸 말년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즘이었다.

반발이 거셌던 마을 청년들과 달리 엘프들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이쯤은 각오하고 있었단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이리 알고 있겠습니다.”

스왈로는 내심 감탄했다.

‘다르구나.’

조금 전, 마을 청년들에게 공표할 때만 하더라도 그들의 반발을 누구보다 이해했건만, 엘프들의 반응 보자니 어쩜 이리도 다를 수가 있는지…. 새삼 이들이 보이는 자세에 마을 청년들의 정신 상태가 한참 모자란다는 생각까지는 드는 그였다.

그렇게 모두에게 계획 일정을 돌린 그는, 복잡한 생각을 안고 뒤숭숭한 잠에 빠져야만 했다.

그리고.

날이 밝고 계획 당일이 도래했다.

거의 새벽이나 다름없는 이른 시각.

“…….”

마을의 청년들이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은 얼굴로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사방을 훑던 청년이 옆에 있던 친구에게 소곤거렸다.

“에, 엘프들… 맞지?”

“어, 어어…. 맞긴 맞는데. 저들은 왜?”

청년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여 평소대로 도열한 채 서 있던 청년들 주위로 엘프들 수백 명이 그들 틈 사이사이에 녹아들듯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들하고 같이 훈련받는 건가?”

전날 스왈로가 그 자신들을 모아 일정을 공표할 때만 해도 이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

그들이 당황해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단 얘기다.

“에이, 설마… 이분들하고 우리가 같이 훈련을…? 말도 안 돼.”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것이 진짜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들이 그 자신들과 섞여 이렇게 늘어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확대되던 그 순간.

“다들 모였군.”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이목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한 곳.

이든이 그들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를 본 청년들이 하나같이 ‘이게 뭔 일이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영주님, 아니야?”

“어? 그러네. 영주님이시네.”

“근데…. 영주님이 여긴 왜?”

“왜긴 왜겠어. 참관하시려고 함께 나오신 것 아닐까?”

“영주님이?”

“…아. 못 보시지 참.”

청년들이 저마다 대화를 주고받던 그때, 이든이 어느새 도열한 그들앞에 다가와 섰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찌 저리도 성큼성큼 잘 오시는 건지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그들의 앞에 선 이든이 입을 떼며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을 내뱉었다.

“본 교관은 오늘부터 그대들의 훈련을 맡게 됐다. 교관의 훈련에 참여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

…네?

지금 저게 뭔 소리래요?

청년들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든의 입가는 시작될 훈련으로 벌써부터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중이었고.

- 아침 :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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