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레온하르트 영지에 있어서 식량은 어떤 자원보다 더없이 중요한 것이었다.
2년 전부터 마을 한편에 밭을 갈아 농사를 지어 오고, 인근 숲으로 나가 사냥을 통해 식자재가 될 것을 충당해 오긴 했지만, 입이 많다 보니 제대로 된 풀칠은 고사하고, 영지민 모두가 근검절약을 몸에 밴 채로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매번 도적들이 이곳을 노리며 약탈을 시도하려 할 때도, 별것 없는 오합지졸의 병사들이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식량을 어떻게든 사수하겠다는 각오로 악을 쓰다시피 이곳을 지켜 온 그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먹을 것이 앞에 있으면 이곳 마을 사람들은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항상 눈이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분명 그랬는데 말이지.
“…….”
아침 훈련이 끝나고 찾아온 꿀맛 같은 식사 시간…. 이어야 하는 지금.
이백여 명 가까이 되는 마을 청년들이 훈련을 마치고 둘러앉은 이곳에 평소와 다른 푸짐한 상차림이 차려졌다.
한창 잘 먹을 나이다 보니, 평소였다면 눈에 불을 켜고 전쟁을 방불케 할 식사가 진즉에 시작돼야 했건만,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어째 하나같이들 멀뚱히 앉아 한 숟가락도 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아닌가.
탈이라도 났냐고?
아니, 단지 훈련이 좀…. 심하게 고됐을 뿐이다.
말소리도, 먹는 소리도 한 점 들리지 않던 정적 속에서 한 청년이 불쑥 입을 뗐다.
“아…. 입맛 없다.”
“나도…. 내가 살다 살다 입맛 없단 생각이 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침 훈련 때, 숟가락 하나들 힘조차 남지 않고 모두 쏟아 낸 그들이었다. 그러니 밥을 넘길 힘이라고 남아 있겠는가.
입맛이 없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안 먹을 수도 없었다. 왜냐고? 그래야만 버틸 테니까….
“이따 낮 훈련이 더 남았다고 했지…?”
일순 억지로 숟가락을 들던 청년의 손이 덜컥 멈추었다.
“…야, 그 말 듣는 순간, 그나마 남아 있던 밥맛까지 사라진다.”
“하아….”
곳곳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모두가 입 밖으로 말을 꺼낸 것은 아니지만, 다들 한마음 한뜻이었으리라.
그때.
밥을 뜨지 못하던 청년들의 시선이 힐끔 옆으로 옮겨 갔다.
그들의 시선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둘러 모여 식사를 하던 엘프들에게로 향했다.
엘프들 역시 어째 쉬이 수저를 들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들 역시 입맛이 없어서 그러냐고?
아니, 걔들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연신 동공이 흔들리던 엘프 중 하나가 넌지시 물었다.
“…저희 이거 먹어도 되는 겁니까?”
딱히 답을 바라고 누구를 콕 집어 물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답은 곧장 들려왔다.
“…머, 먹으라고 주신 거겠지. 아마도?”
“…….”
대화를 나누던 엘프들의 얼굴엔 난감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묻던 엘프가 자신 앞에 놓인 음식 하나를 집어 들어 올렸다.
들린 고기 한 점이 기름을 뚝뚝 흘리며 탱글탱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육류를…. 먹어야 한다고요?”
“…….”
이번만큼은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다른 이들 역시 이걸 어찌해야 하는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엘프들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들은 숲속에 거주지를 만들어 살아가는 종족이다.
그리고 세간엔 엘프들을 가리켜 숲의 수호자라 불렀다.
그들이 단순히 숲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숲속의 생명체들을 수호하기 때문에 그리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럼 사냥꾼들은 뭐 해 먹고 사냐고?
이들이 그 정도 융통성이라곤 없을까.
아무리 그들이 숲을 수호한다지만, 다른 이들의 생계까지 막을 만큼 생각이 없진 않았다.
다만, 생계가 아닌 단지 유희 삼아 동물들을 사냥한다거나, 숲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선 엄히 관리하는 편이었다.
아무튼, 남을 해치는 흉포한 몬스터를 제외하곤, 숲에 사는 모든 것이 그 자신들의 일원이라 생각하는 이들이다 보니, 손님들이 찾아와 대접할 때 외엔 자연히 육류로 된 음식은 스스로 금하는 그들이었다.
한데, 눈앞에 한가득 차려진 음식이 죄다 고기투성이였으니, 이들의 반응이 이런 것도 그리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
엘프들이 저마다 먹기를 망설이던 그때, 어디선가 탐탁지 않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뭐야, 어째 하나같이들 깨작대는 소리도 안 나는 거야?”
심통이 한가득해 보이는 더없이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에 엘프들이 식겁한 표정을 했다.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음성이 들려온 곳을 향하고, 거기엔 당연하다는 듯 이든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때였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엘프들의 눈이 스윽 옮겨지더니, 일제히 한 사람을 향했다.
그들 중 가장 연장자이자 대장격이라 할 수 있는 엘프였다.
동료들의 시선을 느낀 그가 내키지 않는 듯한 얼굴을 하곤 어렵게 입을 뗐다.
“저, 저기…. 교관님.”
“……?”
“혹 다른 음식은 없는 겁니까?”
듣던 이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른 음식이라니? 음식이 입에 안 맞나?”
“아, 아니 그렇다기보단….”
“……?”
“저희가…. 고기는 금하는 편이라.”
“고기를 금해?”
“네….”
“고기를 금한다고?”
“…….”
어째 저들의 곤란함을 알아듣는가 싶더니만, 이든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욱 구겨졌다.
“이런 천인공노할…!!!”
“…네!?!?”
고기를 금한다는 것이 왜 하늘이 노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든은 어느 때보다 격분하고 있었다.
“고기를 왜 안 먹어. 이 좋은 걸!”
이든의 반응에 말을 꺼내던 엘프가 잔뜩 움츠러든 채 저도 모르게 손짓, 발짓까지 해 가며 서둘러 이유를 대었다.
“그, 그게! 다른 게 아니라요! 저희가 숲의 일족인데, 어떻게 같은 숲에 사는 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듣던 이든이 어처구니가 없는지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야. 도인 납셨네. 도인 납셨어. 그러니까 지금 너희들 앞에 차려진 게 함께 어우러져 사는 친구들이니 먹을 수 없다는 거 아냐. 그렇지?”
“그렇죠…?”
“이런 말코 놈을 봤나. 그렇게 따지면 지금 저기 있는 저것들은 너희 친구들 잡아먹는 식인종들이냐?”
이든의 손가락이 향한 곳.
거기엔 난데없이 지목된 청년들이 음식을 깨작거리다 말고, 그들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둘러대던 엘프가 차마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던 그때, 이든의 얼굴이 조금 전과 달리 조금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가 진중히 입을 열었다.
“먹어.”
“하, 하지만….”
“강해지고 싶다며.”
“…네?”
“강해지고 싶다면 먹으라고.”
물론 그들은 강해지기 위해서 무릅쓰고 이곳에 왔다.
하나, 그것과 고기를 먹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엘프들이 의아한 얼굴로 연유를 물려던 그때,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숲을 사랑하는 너희들의 지극한 마음은 너무도 잘 알겠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몸을 망치는 지름길이야.”
“몸을 망친다고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는다. 이건 세상 모든 동물에게 통용되는 불변의 진리야. 그렇지?”
“…….”
“그리고 이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먹이 사슬 가장 위에 군림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이를 거부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되긴. 몸이 망가지는 거지. 애초 생겨 먹길 그렇게 태어났는데, 그걸 강제로 거부하는 꼴이니 몸이 이상이 안 생겨? 영양결핍으로 쓰러지는 거나, 나중에 몸 한두 군데에 이상이 오겠지. 그리고….”
말끝을 흐리는 이든의 모습에 엘프들의 눈과 귀가 더욱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든이 말을 이었다.
“엘프라고 크게 다를까?”
“…예?”
“엘프나 인간이나 두 발로 걷는 건 똑같은데, 그 안의 체계가 크게 다를 거냐는 의미야. 뭐, 종족마다 차이야 있을 순 있지. 한데 내 생각엔 딱히 그럴 것 같진 않거든. 그리고 너희들 지금 숲에서 살잖아. 그렇지?”
“네….”
“근데 너희들의 조상도 태초부터 숲에서 살았을까?”
어….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는데요.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하던 그때, 이든이 대신 답을 내놓았다.
“아닐걸? 그냥 지랄 맞은 인간들하고 안 엮이려다 보니 어쩌다 숲까지 들어와 문명을 이루게 된 거지. 인간이 어디 보통 지랄 맞어? 수명도 짧은 주제에.”
‘일리 있네.’
왠지 모르지만, 격하게 공감하는 엘프들이었다.
물론 그 말을 하는 것이 같은 인간이란 게 조금 이해가 안 될 뿐이지만.
“숲속에 들어 살게 된 너희들이 언제부터 육류를 멀리하는 문화가 자리 잡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편식은 웬만하면 하지 마라. 특히나 너희같이 무(武)를 좇는 이들은 더더욱 말이야. 해나 비 중에 어느 하나 부족한 나무가 거목으로 자라는 것 봤냐? 훈련도 훈련이지만, 부족함 없이 골고루 영양을 섭취해야만 몸도 크는 법이고, 커진 몸에서 더 강한 힘을 끌어 내올 수 있는 법이다.”
일목요연한 말에 모두가 납득하던 그때, 이든이 줄곧 대화를 나누던 엘프의 팔목을 콱 잡았다.
잡힌 엘프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봐봐, 팔목이 이게 뭐야? 이게! 왜 이리 가늘어!? 이래서 힘 쓰겠어? 이게 다 고기를 안 먹어서 그런 거라니까? 진짜로!”
이든이 팔목을 놓자 잡혔던 엘프가 자신의 가느다란 팔을 한번 보고는 접시에 올려진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고기 한 점을 들어 입 안에 쑤셔 넣었다.
쩝쩝.
이든이 씩 웃으며 물었다.
“어때, 맛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고기의 맛을 알게 될 거야.”
한 명의 엘프가 큰맘 먹고 고기를 뜯는 순간, 연달아 남은 엘프들이 입 안에 음식들을 구겨 넣기 시작했다.
비로소 저마다 식사를 하는 소리가 들리자 이든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던 그때, 그가 엘프들을 포함하여 청년들까지 전부 다 들리도록 기운을 실어 음성을 내뱉었다.
“입맛 없다는 거 다 안다. 지금 먹는 고기는 무슨 가죽 씹는 것 같고, 밥알은 모래알처럼 느껴지겠지. 하지만 그래도 먹어야 한다. 못 먹겠으면 강제로라도 쑤셔 넣어서 정해진 양만큼 반드시 먹도록. 그래야 힘을 내서 남은 훈련도 버틸 수 있지 않겠냐?”
“…….”
일순 먹던 청년들의 손이 별안간 멈추었다.
남은 훈련이란 말을 듣는 순간 입맛이라도 뚝 떨어진 걸까.
하지만 걱정 마라.
엘프들에게 고기까지 먹였는데, 마을 청년들 밥 하나 못 먹일까.
“어어? 먹는 소리 끊기지 거기. 이따 픽픽 쓰러져 봐야 정신 차리지. 엉?”
‘먹을게요. 먹는다구요!!!’
청년들이 재차 울며 겨자 먹기로 입 안에 음식을 구겨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일까.
기름진 음식이 갑자기 눈물 젖은 음식들로 보이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탁.
스왈로가 지금 막 끓인 차를 이든의 앞에 놓았다.
탁.
그리고 자신의 앞에도 하나 더.
없는 살림이다 보니, 단지 곡물로 우린 별것 없는 차에 불과해 향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 맛이 제법 구수하니 괜찮았다.
차를 한 모금 들이켜던 이든이 스왈로에게 물었다.
“애들은 어떻습니까?”
“다들 기절하다시피 잠든 것 같습니다. 집 안에 불이 다 꺼져 있더군요.”
듣던 이든이 피식 웃었다.
“그렇겠죠. 첫날이다 보니 다들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힘들 만하지, 얼마나 무식하게 훈련을 해 댔는데….
그때, 스왈로가 짐짓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데, 엘프분들은 그만한 훈련을 소화하고도 방범을 유지하시는 겁니까?”
“뭐, 약속한 것이 있으니 응당 하지 않겠습니까?”
“대단하군요. 다들 그토록 가녀려 보이는 몸으로 그만한 것을 버티고도 경계까지 서다니….”
“살아온 방식이 다르니까요. 이런 것에 익숙한 거겠죠.”
“흠….”
스왈로가 고갤 주억거렸다.
그야 평소 엘프들의 습성이야 알 도리가 없지만, 저 악명 높은 레온하르트 인근 숲에서 문명을 이루고 살 정도면 왠지 다들 그만한 악바리는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그였다.
서로 어느 정도 차를 음미하던 그때, 이번엔 스왈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그가 아는 영주 성격에 이렇게 마주 앉아 차나 마시며 담소나 나누자고 불렀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물은 그였다.
그리고 스왈로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든이 고갤 끄덕이며 쥐던 잔을 탁자에 놓았다.
“곧 사람이 올 겁니다.”
“사람이요?”
이든이 말을 끝내기 무섭게 잠시 뒤.
똑똑.
누군가 그들이 있던 곳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왈로의 시선이 자연스레 문 쪽으로 향했다.
“들어오세요.”
이든이 입을 떼자 비로소 울렸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온다.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온 한 사람.
다름 아닌 유니콘의 레온하르트 지부장이었던 크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