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250)

171화.

화등잔만 해진 마르코의 눈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가문의 영광을 되찾을 기회라고…?’

비록 그 자신의 가문이 멸문하는데 일조했던 제국을 향한 복수심이 컸던 나머지 혼란을 틈타 도적의 수령이 되는 것을 택했던 그이지만, 추락한 가문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수령이 된 그 이후에도 이따금 떠올렸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자신에게 드레이븐 가문의 영광을 되찾을 기회가 온다면 지금에 와선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 것인지를 매번 고민하던 마르코였다.

세차게 흔들리던 마르코의 동공이 일순 멎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조금 전 이든을 바라볼 때와 같은 살기가 넘실거리듯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르코가 난데없이 대소를 터트렸다.

“크, 크큭! 크하하하하! 으하하하하!!!”

어찌나 크게 웃던지.

그가 있던 곳에 지붕이 가라앉을 듯했고, 살기를 번뜩이던 눈엔 눈물마저 찔끔 맺혀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토해 내듯 웃던 마르코가 비릿하게 미소 짓더니 차갑기 짝이 없는 음성을 내뱉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

“데스 스타가 돌아와? 직접 마주했던 네놈이니 사실이기야 하겠지.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네놈에게 우리 가문이 풍비박산이 난 그 순간부터, 그리고 그런 우리 가문을 제국이 헌신짝처럼 내버린 순간부터 난 네놈과 이 빌어먹을 제국을 더 없이 증오해 왔다. 그런데 뭐? 네놈과 함께 제국을 위해서 싸워? 웃기는 소리!!!”

천둥 같은 고함을 질러 대며 말하는 마르코의 목엔 핏줄이 바짝 서 있었고, 이든을 향한 그의 눈엔 붉게 충혈된 것마냥 핏발이 한가득하였다.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내가 제국을 위해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네놈과 손잡을 일 또한 더더욱 없을 것이다!!! 내 데스 스타가 돌아온다면 더없이 그를 반갑게 맞이하지. 네놈과 이 빌어먹을 제국의 최후를 바라면서.”

“…….”

마르코가 악을 쓰듯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엔 그간 벼르고 별려 왔던 한 서린 칼날 같은 심정을 온전히 품고 있었다.

듣던 이든이 일순 착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찰나였다.

다시 평소와 같은 얼굴로 돌아온 이든이 심드렁한 얼굴을 하며 입을 뗐다.

“뭐,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고.”

저벅. 저벅.

그러곤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발길을 돌리던 그때.

문으로 향하던 이든의 발길이 일순 덜컥 멈추었다.

이든이 멈춰 선 채 그대로 입만 뗐다.

“근데 말이야. 그거 알아?”

“……?”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는 후회해 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거.”

“…무슨 뜻이지.”

여전히 흉흉한 기세로 이든을 바라보며 마르코가 물었다.

이든이 마르코가 있던 쪽으로 고개만 스윽 돌려 입가를 말아 올렸다.

“최소한 네놈은 늦지 않았단 얘기다. 그 후회를 만회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단 소리지.”

“…….”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한마디를 끝으로 더는 할 말 없다는 듯이 다시 문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든.

휘적휘적 걸어가 이든이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쾅.

그곳에 문이 닫히며 사방에 어둠이 찾아왔다.

드리워진 어둠 속, 창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작은 구멍에서 빛 한줄기만이 간신히 들어오던 그때, 이든이 나갔던 자리를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던 마르코가 조금 전 듣던 마지막 말을 되뇌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후회로 남지 않고, 만회할 수 있다고…?’

매번, 매 순간. 후회를 반복하는 것이 사람. 그리고 후회하는 이는 그때마다 과거에 했던 선택을 되돌리기를 바란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 붙잡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한들 이를 돌릴 기회가 온다면…?

내내 기광만 넘쳐흐르던 마르코의 눈이 다시 어지러이 흔들렸다.

그리고 흔들리는 그의 시선이 일순 작은 창으로 향했다.

그 작은 창에선 이제 막 동이 트며 미세한 빛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걸리는 순간.

더 밝은 빛이 이 안에 어둠을 비추겠지.

마치 새까만 진흙탕과도 같았던 마르코의 마음에 일순 작은 파장이 인 것처럼 말이다.

작은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던 마르코의 눈은 줄곧 거기에서 떼어지질 못하였다.

마음을 어질하게 흔드는 복잡한 감정을 안고서.

***

시간은 다시 흐르고.

수도에서 출발했던 유니콘 본부의 게럴드 길드장 일행이 크리스 지부장과 함께 레온하르트 마을 인근에 들어서고 있었다.

“응?”

먼발치에서 마을을 바라보던 게럴드의 눈이 휘둥그레진 모양으로 커지더니 이내 사방을 훑기 시작했다.

“뭐야, 외벽 공사가 한창이잖아?”

옆에 나란히 말을 탄 채 듣던 크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갤 주억거렸다.

“예. 이든 님께서 영주로 취임하신 이후 급히 진행된 공사입니다.”

“허어….”

오는 내내 듣자 하니, 이든이 이곳 마을에 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하건만….

아직 공사 초기라는 것을 감안해도 엄청난 작업 속도가 아닐 수가 없었다.

‘유니콘의 길드원 시절부터 무서우리만큼 일 처리가 빠르더니만, 이런 것에서도 빛을 발하는군.’

연신 훑던 게럴드가 그런 이든의 일 처리 속도에 혀를 내두르던 그때, 공사 현장을 바라본 게럴드는 문득 의아한 구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저만한 공사 현장이 이든의 추진 속도에 따라가려면 그만큼 일하는 인부들의 수도 많아야 하는 법이다.

한데, 레온하르트 마을에 저만한 인원을 인부로 투입할 여력이 있던가?

필시 식량은 자급자족일 테고, 저 많은 마을 사람들 입 개수에 맞춰 내년 식량을 충당하려면 매일 뼈 빠지게 일만 해도 부족할 것이 분명했다.

‘뭐…. 뭔가 방도가 있던 거겠지.’

게럴드가 여전히 의아한 기색이 한가득한 얼굴로 영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발길을 옮기던 그때.

점차 영지에 가까워져 오자 공사현장에 있던 인부들의 모습도 육안으로 좀 더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인부들의 모습을 보던 게럴드가 일순 고갤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무엇이 이상하냐고?

인부들의 모습이 그가 생각하던 인상과 조금 달랐달까.

힘쓰는 인부들이야 다들 우락부락하고, 한가락 하게 생기기들 했지만, 지금 바라보는 인부들의 모습은 뭐랄까.

조금 도를 지나쳤다…?

얼굴과 몸 곳곳에 난 칼자국들이 저 인부들이 어떤 세월을 살아온 것이지 감히 예상치 못하게 만들었다.

그냥 딱 겉모습만 보면….

‘산도적같이 생겼네.’

물론 그들이 진짜 산도적이란 것을 게럴드가 알 리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영지에 점차 가까워질수록 웬 기합을 터트리는 함성이 쩌렁쩌렁 들려왔다.

게럴드가 이를 듣기 무섭게 곧장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크리스의 얼굴이 재차 어색해졌다.

“아 그게…. 마을 청년들이 훈련 중입니다.”

“훈련?”

“네. 영주님께서 다른 무엇보다 약해진 병력을 보강해야 하신다면서 청년들과 엘프들을 한데 모아 직접 훈련을 시키고 계십니다.”

“아, 그런 거였나. 마을 청년들과 엘프들이라…. 잠깐.”

말을 하던 게럴드가 일순 화들짝 놀랐다.

“엘프? 지금 엘프라고 했나?”

이 역시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인지라 크리스가 담담히 말했다.

“네, 현재 마을엔 부족한 병력의 힘을 보충하고자 엘프족 병사들이 거주 중입니다. 이 역시 영주님께서 취임하시고 나서 엘프의 왕과 회담을 통해 이뤄 낸 겁니다.”

“…….”

허…. 허허….

듣던 게럴드는 정말이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엘프들이 마을에 거주 중인 것도 기상천외할 일이건만, 그것을 엘프의 왕과 회담을 통해 끌어냈다고?

이건 일 처리 속도와는 전혀 별개의 능력 아닌가.

내심 이든의 인맥에 새로이 감탄을 금치 못하던 게럴드는 어느새 방벽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방벽 앞에 선 게럴드가 그새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또 물었다.

“자꾸 물어서 미안한데 말이야….”

크리스가 반색하며 손을 저었다.

“별말씀을요. 뭐든지 여쭤보셔도 됩니다.”

“이럴 거면 이 방벽은 대체 왜 세워 둔 건가?”

“네?”

“아니, 보초를 서는 이들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확실히 견고하게 세워 둔 방벽엔 병사들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주둔하고 있다는 엘프들 조차 말이다.

크리스의 얼굴이 재차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째, 이든 대신 해명하는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아…. 그게 사실 제가 수도로 출발하기 전날, 영주님께서 인근에 산도적이란 산도적은 전부 씨를 말려 버리셨답니다. 그래서 이제 낮에는 따로 보초를 설 이유가 없다 하셔서….”

“뭐, 인근 산도적들의 씨를 전부 말려…?”

외벽을 짓고. 뭐, 엘프족과 협업해 마을에 그들을 주둔시켜 훈련을 시키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한데 인근에 산채를 짓고 살아가는 산도적을 전부 소탕했다고?

‘그게 가능해?’

게럴드가 놀라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전쟁 후, 갈 곳이 없어 방랑하는 난민들이 제국민만큼 많은 것이 현실이었고, 그 난민들이 최후의 목적지로 선택하는 것이 산채에 몸을 담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제국에서도 줄지 않는 산도적들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인근의 그 많은 산채를 하나도 남김없이 소탕했다니. 그가 절로 헛바람을 삼킬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들으면 들을수록 놀랍군. 정말 엄청난 짓을 저질러 버렸어. 자네….’

내심 이든이란 사람이 다른 의미로 무서워진 게럴드였다.

그사이, 게럴드 일행은 마을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뜻밖의 손님을 맞은 마을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말이다.

***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일도 하다 말고, 마을 회관 근처를 연신 기웃거렸다.

대체 저기에 무엇이 있길래. 하나같이들 눈을 떼지 못할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곳.

회관 주변에는 유니콘 길드의 소속으로 보이는 용병들이 주변을 에워싸다시피 늘어선 채 저마다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과연 유니콘 길드랄까.

그곳 소속의 용병들답게 저마다 남다른 기세를 풍기며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으나, 사람들의 관심사는 용병들 넘어 회관 안에 자리한 인사들이었다.

“그러니까. 저 안에 유니콘 길드장님께서 계신다. 그 말이지?”

“그렇다니까. 내가 똑똑히 들었다고.”

“세상에. 다른 이도 아니고, 유니콘의 길드장이라니… 근데 유니콘 길드장이 여길 왜 왔대? 우리 마을에 저기 길드장님까지 행차하실 일이 있나?”

“그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확실히 마을의 좋은 일인 것만은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유니콘의 길드장님께서 이 먼 곳까지 걸음하셨겠어?”

“하긴 그건 그렇지. 근데…. 영주님께선 아직이래?”

“잠깐 자릴 비우셨다더구먼. 듣자 하니 함께 자리할 중요한 손님을 초대하신다는데?”

“…그래? 아니, 누굴 데려오시려고 영주님께서 직접?”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필시 이곳에서 엄청난 대화가 쏟아질 것임은 분명해. 내 장담하지.”

그때였다.

“영주님이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저들끼리 대화를 나두던 영지민들의 이목이 일순 마을의 출입구 쪽으로 일제히 옮겨졌다.

회관에서 마을의 입구까진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이 제 영주 되는 사람도 못 알아볼까.

다만 사람들의 시선은 비단 이든 한 사람에게만 향해 있지 않았다.

유유자적 걸어오는 이든의 뒤로 한 사람이 바짝 따라붙고 있었으니까.

이를 본 영지민들이 재차 저마다 떠들기 시작했다.

“저, 저 사람은…!”

“엘프 왕이다. 엘프 왕 갤러하드다!!!”

이든과 동행하는 이.

다름 아닌 엘프의 왕 갤러하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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