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172/250)

172화.

촌장 스왈로가 미리 준비해 둔 차를 홀짝이며 시간을 보내던 게럴드가 일순 밖에서 들려온 소란에 창가 쪽으로 고갤 돌렸다.

“이제 왔나 봅니다.”

게럴드가 창밖에 요란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떼자.

곧이어 그의 맞은편에서 두 노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도 모르고! 뭐가 그리 바쁘다고 무사했으면서 얼굴 한번 안 보여 줬는지….”

“오면 당신이 혼쭐 좀 내줘요.”

“이를 말이오. 당연히 그래야지!”

나오는 말투는 그다지 곱지만은 않았으나, 필시 조금 전 얘길 꺼내던 두 노인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하듯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그런 두 노인의 모습에 창가 쪽을 향하던 게럴드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들을 향했다.

게럴드의 시야가 담던 두 노인의 정체.

다름 아닌 브라운과 메리였다.

그들을 바라보던 게럴드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훗. 저리도 좋으실까….’

브라운과 메리의 반응은 참 당연한 것이었다.

자그마치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종된 아들을 찾겠다고 있는 재산이라곤 모두 팔아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고생한 그들 아닌가.

그렇게 매번 먼 길을 떠났다가 아들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빈 소식으로 돌아올 때면, 항상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얼굴을 적시던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아들의 얼굴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 것이니, 기쁨에 어찌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토록 기도하며 바라고, 원했던 만남을 코앞에 두고도 그 잠깐의 기다림조차 한 세월로 느껴지던 그 순간.

벌컥.

그들이 있던 실내의 문이 열리고, 이든이 웃는 낯으로 안에 들어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일순 찾아온 정적에 이든이 고갤 갸웃거리던 그 순간이었다.

와락.

넋을 놓은 채 이든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던 브라운과 메리가 한걸음에 달려가 이든을 꽉 껴안았다.

“어, 잠시만, 갑자기 이게 무슨….”

이든이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입을 떼던 그 순간.

더없이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이 녀석아, 어디 있다가 왜 이제야 나타난 것이야…!”

“우리가 너를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니…!”

어찌 이들의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달려들다시피 하여 브라운과 메리에게 안긴 이든의 얼굴이 놀란 듯 찬찬이 굳어졌다.

“어머니, 아버지…?”

“…대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지낸 것이야.”

“어디 몸 상한 데는 없고…!?”

이든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몸 상한 곳은 없는지 연신 제 아들을 구석구석 살피기에 바빴다.

그때, 이든의 몸이 일순 바닥에 붙어 납작 엎드려졌다.

브라운과 메리를 향해 큰절을 올렸던 이든이 더없이 죄스러운 얼굴로 천천히 입을 뗐다.

“이 못난 아들이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든에게도 저런 면이 있었군.’

본래는 회담 장소로 사용하려 했던 곳이 이든과 그의 부모로 인해 상봉 장소가 되어 버렸다.

게럴드도 그렇고, 이든과 함께 자리한 갤러하드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바쁜 사람들이었지만, 제 부모와 극적으로 만난 이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가족 간의 아름다운 상봉은 나중에 마저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어쨌든 이든, 그 자신이 이들을 부른 것이니, 그 이유를 확실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든이 브라운과 메리를 살짝 떨어뜨리곤 입을 뗐다.

“어머니, 아버지. 남은 얘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단 손님들이 자리하셨으니 이분들과 먼저 얘길 끝내고 곧바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듣던 브라운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비로소 길드장 게럴드와 함께, 이든과 이곳에 들어섰던 한 엘프가 보였다.

그가 엘프의 왕일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하고 단지 중요한 인사라고만 생각한 브라운이 이든에게서 떨어지지를 못하는 메리를 살짝 잡아끌었다.

“여보, 우선 아이의 말대로 나중에 이어 얘길 나눕시다. 바쁜 아이 아니오? 기다리는 손님들도 계시고.”

그제야 메리도 주변을 둘러봤다.

메리가 퍽 아쉬운 표정을 했지만, 못내 고갤 끄덕였다.

“알겠어요.”

메리가 마지막까지 이든의 등을 어루만지며 입을 뗐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손님들과 얘기 나누렴.”

“네, 너무 늦지 않을 겁니다.”

그제야 브라운과 메리가 웃는 낯으로 안내하는 스왈로를 따라 회관 밖으로 나서고, 게럴드와 갤러하드가 자리한 곳에 이든이 마주 앉았다.

“죄송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 뵌 터라 시간을 오래 끌었습니다.”

듣던 게럴드와 갤러하드가 반색했다.

“그리 생각하지 말게. 간만에 뵙는 부모님 아닌가?”

“맞는 말이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듣던 이든이 미소 짓다가 다시 본래 그의 진중한 얼굴로 돌아왔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을 이곳에 모신 이유에 대해 설명드릴까 합니다.”

이든이 함께 자리한 이들을 두고 가장 먼저 꺼낸 얘기는 마을이 처한 현 상황을 정확히 짚는 것이었다.

듣던 게럴드와 갤러하드가 맞는 말이라는 듯 연신 고갤 주억거리며 무언의 동의를 하던 그때, 이든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해서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 떠나간 상인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자 합니다.”

게럴드가 일순 난감한 얼굴을 했다.

“상인들이 재차 이곳에 들어와야만 비로소 마을이 정상적으로 제구실을 하는 것은 맞네만, 떠나간 상인들을 다시 붙잡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네. 그들은 오로지 돈만 좇는 이들이야. 그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선, 이 마을만이 가진 돈 될 만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있는가?”

게럴드의 의문은 당연했다.

아무리 자세히 보려 노력해도 이 마을엔 돈 될 구석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더욱이 문제는 교통의 불편함이었다.

다른 영지들과는 다르게 이 마을은 수도와 한참이나 떨어진 제국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 마을이 가진 위치의 특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상인들을 오게 만들기 위해선 보통 매력적인 상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듣던 이든이 입을 뗐다.

“저 역시 그것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해 봤지만, 이 마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없더군요. 해서…. 그것에 관한 문제에 대해 갤러하드 님께 간곡히 도움을 요청 드리는 바입니다.”

내내 가만히 듣던 갤러하드가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내 도움을?”

“네, 일전 제가 갤러하드 님께 서신을 보냈었는데, 혹 기억하십니까?”

갤러하드가 고갤 주억거렸다.

“당연히 기억하지. 어찌 그 발로 쓰다시피 한 서신을 내 잊어버리게….”

그때였다.

갤러하드가 일순 말끝을 흐리곤 서신의 내용을 떠올렸다.

- 도움! 자원 필요.

“설마. 그때 그 내용이 오늘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나?”

“맞습니다. 이 마을은 솔직히 말하면 쥐뿔도 없습니다. 상인을 불러들일 만한 이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 현실이지요. 하여 엘프족 숲에 자원을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세상 어디에 있지도 않은, 오직 엘프족 숲에서 나는 자원 말입니다.”

“허….”

듣던 갤러하드가 침음성을 삼켰다.

물론 그야 이든을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야 했지만, 엘프족 자원이라는 것이 원체 한정적이라 귀한 것이기도 했고, 애초에 그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것이 되지 못하였다.

갤러하드가 쉬이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이든이 재차 입을 뗐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에게 내주어도 엘프족 숲에 전혀 영양이 없을 만한 흔하디흔한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흠. 우리에겐 흔하디흔하지만, 오직 엘프족 숲에서만 나오는 것이라….”

한참을 고민하던 갤러하드가 일순 무언가 떠올랐는지 입을 뗐다.

“엘프의 눈물이라면 내 장로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네만.”

“엘프의 눈물?”

듣던 이든이 고갤 갸웃거리는 사이, 게럴드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지금 엘프의 눈물이라 하셨습니까?”

“맞소. 그 정도라면 내 무리 없이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소.”

“허… 세상에, 엘프의 눈물이라니.”

게럴드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이든이 물었다.

“그것이 그리 대단한 것입니까?”

“대단하냐고? 보통 대단한 것이 아니지. 같은 크기면 가장 비싸다는 보석이 바로 엘프의 눈물이니까.”

“그래요?”

“과거 인간과 엘프들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절엔 돈만 지불한다면 나름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 보석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 엘프들이 인간들과 교류를 단절한 이상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해서 이미 풀려 있는 엘프의 눈물로 만든 보석만이 귀족들 사이에 비싼 값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이 현재 실정이지. 한데, 정말 그것을 내주실 생각입니까?”

갤러하드를 향해 시선을 옮겨 묻는 게럴드의 눈은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다른 것도 아니고, 지금은 구할 수 없다는 그 엘프의 눈물이 다시 세상에 나올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든이 자신을 여기에 자리시킨 것을 보면 필시 그것에 대한 독점권을 유니콘 길드에게 주기 위함이 분명했고.

마침 유니콘의 기세가 예전만 못해 바닥을 치려는 찰나에 얻게 된 절호의 사업 건이니 그의 눈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판이었다.

갤러하드가 이든과 게럴드를 번갈아 보며 고갤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든의 부탁이니 내 어찌 내어 드리지 않겠소. 다만….”

갤러하드가 일순 말끝을 흐렸다.

그가 더없이 호기로운 표정을 하며 마저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는 곧 상호 간의 거래 아니겠소? 내가 엘프의 눈물을 내어 준다면 그대들은 나에게 무엇을 내어 줄 것이오?”

게럴드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갤러하드가 이든의 친구라는 것만 생각하고, 응당 거저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그의 입에서 ‘거래’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힌 것이다.

하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게럴드와 달리 이든이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발생되는 수입의 2할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2할이나!?”

“그리고?”

전체 수입의 2할이라면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놀라 되묻는 게럴드와 달리 갤러하드는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우린 어차피 인간과 교류를 단절했네. 그나마 이곳 마을하고만 동맹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그런 우리에게 이곳의 화폐가 무슨 가치가 있겠나?”

처음 이든이 제안한 2할도 많다고 생각했던 게럴드가 갤러하드의 말을 듣곤 곧바로 수긍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엘프의 숲에서 인간들의 화폐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차피 밖에 나와 쓰일 것도 아닌데.

하나, 이든에게 들려온 대답은 오히려 뜻밖이었다.

“왜 가치가 없습니까?”

“응?”

“계속 이곳 숲에서만 내내 틀어박혀 사실 생각입니까?”

“그게 무슨….”

“데스 스타와 결전을 준비하려면 각 종족의 대표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좋든 싫든 간에 엘프들 역시 세상에 다시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요. 설마 그 이후에도 계속 폐쇄적으로 살아가실 생각은 아니시죠?”

이는 사실 맞는 말이었다.

제아무리 인간과 등지기 위해 단절을 선언했다지만, 평생 그리 살 수만은 없는 일.

언젠가는 엘프들 역시 재차 세상 밖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수입의 2할은 단지 부가적인 겁니다. 훗날 엘프족이 마음을 먹고, 세상 밖으로 나서려 할 때, 그때 저희를 발판 삼으십시오. 저와 제 친구들이 성심성의껏 도와 드리겠습니다.”

듣던 갤러하드의 눈동자가 찰나 흔들렸다.

하지만 재차 빠르게 냉정을 유지하듯 흔들리던 동공이 일순 멎었다.

갤러하드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뗐다.

“자네도 알지 않는가. 인간들이 우리 엘프들을 어찌 취급했는지. 우리가 그간 받아 온 상처는 생각보다 커서 쉬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네. 그런 우리가 자네들의 무엇을 믿고, 세상에 다시 나선단 말인가.”

일순 이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냥 믿어 주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우린 친구니까요.”

“……!”

냉정을 유지하던 갤러하드의 마음에 난데없이 작은 파장이 일었다.

단지 ‘친구’라는 그 한 마디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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