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땅! 따앙! 땅!!
쇠 두드리는 소리만 무심히 울리는 이 건물 안.
드워프 도시에 자리한 건물 중에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지만, 이곳은 가히 그 규모가 다르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는 건물의 외관부터 그 크기가 비교를 불허했고, 그 안에서 들려오는 쇳소리는 대체 몇 명의 드워프 대장장이가 일하는 것인지 감히 짐작조차 못 하게 만들었다.
“대단하군.”
건물 한 층에 마련된 접객실에 들어선 레온하르트는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현재는 드워프 도시에서 외부인을 받지 않아 지금은 쓰이지 않는 손님 접객실.
황실이나, 엘프족 왕가의 접객실, 혹은 그 자신의 레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가구들이 소담스럽게 배치되어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잠시 뒤.
우다다다다!
그들이 있던 접객실로 한 난쟁이가 짧은 다리를 연신 놀리며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들려오는 쩌렁쩌렁 울리는 한 목소리.
“레온하르트 님!!!”
“오, 멀린!”
멀린이라 불린 달려오던 드워프가 레온하르트를 알아보기 무섭게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아이고! 레온하르트 님! 이곳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긴. 내 자네가 대장 장인이 되었을 때도 보러 오지 못하지 않았나. 내 그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어찌 지내는지 궁금해서 이리 온 것이네.”
듣던 대장 장인 멀린이 납작 엎드린 채, 고개만 살짝 들어 레온하르트를 힐끗 바라보았다.
세월이 그토록 오래 흘렀건만, 오래전 멀린의 아비가 대장 장인이었던 시절. 그때 보았던 레온하르트의 얼굴과 한 점 변한 것이 없었다.
다만….
그때와 사뭇 다른 모습이 있다면 지금의 레온하르트는 큰 부상을 입은 것인지 각각 한쪽 팔과 다리가 없다는 것 정도.
드워프 종족이 땅속에 숨어든 그사이에 무슨 일을 겪은 것이라 여긴 멀린은 굳이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멀린이 재차 레온하르트를 향해 고갤 푹 숙였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멀린의 과한 반응에 레온하르트는 썩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조금은 부담스러웠는지 그를 일으켰다.
“자자, 대장 장인 되는 사람이 그리 쉽게 무릎을 꿇으면 되겠나? 어서 일어나게.”
멀린이 황송해하는 표정으로 일어서 고갤 들던 그때.
힐끗.
그의 시선이 이번엔 레온하르트 옆에 있던 한 사람을 향했다.
착 감긴 눈에 한눈에 봐도 수려한 외모의 사내였다.
그러던 중 멀린의 고개가 찰나 갸웃거렸다.
‘…맹인?’
내내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맹인으로 보였지만,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였다.
저런 사람이라면 그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다.
처음 보는 얼굴에 멀린이 레온하르트에게 조심히 물었다.
“저, 저기…. 옆에 계신 분께선 누구신지…?”
모든 드워프들이 레온하르트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아는 드워프 중에선 그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 위대한 종족과 함께 자리한 이였으니, 눈앞에 맹인의 사내 역시 귀한 손님이라는 것을 눈치껏 알아차린 것이다.
“아, 이 친구는 말일세.”
듣던 레온하르트가 곧바로 옆에 있는 이를 소개했다.
“이든이라고 하네.”
“이든…?”
대륙에선 데스 스타를 막아 낸 이든의 활약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지만, 드워프들은 조금 달랐다.
세상 밖이 아닌, 땅속 안에서 숨어 지내기에 세상 밖 얘기에 대해선 하나같이들 잘 모르는 편이었다.
이든이 건너편에 자리한 멀린을 향해 정중히 고갤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든이라고 합니다.”
이든으로부터 레온하르트 마을의 모든 상황을 듣던 멀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을 본 레온하르트가 휘휘 고갤 저었다.
‘반응이 영 아니군.’
레온하르트 그 역시, 마을과 그곳에 영지민들에게 애정이 있는 것은 맞지만, 현재 그곳에 영주이자 총책임자는 이든이었다.
때문에 이 이상 관여할 일은 아니라 여겨 그는 줄곧 대화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레온하르트 본인이 직접 부탁을 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이든이 나서니 돌아오는 대답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영주님께서 곤란하신 상황은 알겠지만, 저희는 인간 세상에 더는 관여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멀린의 얘기를 듣던 이든이 난감한 표정을 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레온하르트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과 현재 마을이 처한 상황을 말한다면 이들의 힘을 빌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여겼건만, 들려온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이든이 쉬이 입을 떼지 못하는 사이, 멀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
“한데 마을의 이름이 레온하르트라는 것은…. 본래 그곳이 레온하르트 님께서 돌보시던 곳이란 뜻입니까?”
레온하르트가 고갤 끄덕였다.
“맞네. 십수 년 전, 유희 삼아 인간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것이, 어쩌다 보니 영주까지 맡게 되었지. 지금은 사정이 있어 영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 친구가 나의 이름을 이어받아 영주를 맡은 것이고.”
“흠.”
이름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를 이어 간다는 것.
특히나 다른 이도 아닌 레온하르트의 이름을 잇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 말인즉슨, 눈앞의 저 이든이란 이의 의지가 곧 레온하르트의 의지와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멀린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갤 주억거리며 무겁던 입을 뗐다.
“레온하르트 님께선 저희 드워프에게 있어서 더없는 은인 같은 분이십니다. 앞에 계신 이든 님께서 레온하르트 님의 의지를 잇고 계신다고 하시니, 저희 역시 마냥 이든 님께서 겪고 계신 어려움을 모른 체할 수만은 없지요.”
이든의 얼굴이 일순 밝아졌다.
“그러면….”
“단….”
“……?”
“이번 한 번뿐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드워프는 더는 세상 밖에 나설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
멀린의 제안을 듣던 이든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그가 원하던 것은 단지 엘프의 눈물 세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드워프를 마을 내 상주시켜 저들의 지속적인 도움을 받는 것.
그것이 본래 그가 원하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저리도 세상 밖에 나서는 것을 꺼리니, 이든 그로서도 더는 고집부릴 수가 없었다.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그것만 해도 큰 결단이었다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리어 저희의 사정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쉬운 결과였지만, 사실, 이 자체만 놓고 보아도 큰 수확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엘프의 눈물 물량을 확보하시는 대로 저희 쪽에 공급을 해 주시면….”
멀린이 남은 대화를 조금 더 자세히 나누려던 그때였다.
위애애애애앵! 위애애애앵!
일순 난데없이 도시 전체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멀린이 말을 하다 말고는 도중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멀린이 퍽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레온하르트와 이든을 향해 고갤 숙였다.
“죄송합니다. 도시에 문제가 생겨서 아무래도 바로 나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바쁜 일이 생긴 모양인데, 어서 다녀오시게. 우리야 뭐, 남는 게 시간이라서. 안 그런가?”
이든 마저 고갤 끄덕이자, 멀린이 재차 고갤 숙이곤 서둘러 짧은 다리를 놀리며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레온하르트가 조금 전 멀린이 달려 나간 곳을 바라보고는 입을 뗐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모양이군. 도시의 모든 드워프들이 어느 한곳으로 달려가고 있어. 무기까지 챙겨 들면서 말이야.”
“그래요? 무기까지 챙겨 들고 저리들 야단을 떠는 것을 보면 정말 큰일이 난 듯하군요.”
“어떻게 한번 가 보겠나?”
레온하르트의 물음에 이든이 고갤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시죠. 넋 놓고 있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겠군요.”
***
드워프는 모든 종족을 통틀어 가장 조심성이 많으면서도 겁이 많은 종족이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이러한 성향을 띤 것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타 종족들의 숱한 침략을 받다 보니, 자연히 생긴 습성이었다.
그리고 그 숱한 침략의 이유는 당연코 그들이 가진 기술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드워프들은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일류의 장인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장인의 기질을 타고났다.
그들이 만든 검과 갑옷은 그야말로 보물이라 해도 과찬이 아니었고, 그들이 제작한 보석 역시 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장인 기술에만 국한되어 재주가 뛰어나느냐?
절대 아니었다. 드워프는 비상한 머리를 타고난 종족이었다.
마법이 주를 이루는 현 대륙에 드워프들이 가진 기술력은 굉장히 고차원적인 것이어서, 학자들 사이에선 드워프가 세상과 단절만 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세상이 수백 년은 훨씬 더 일찍 찾아왔을 것이라 말하는 만큼 타 종족이 보았을 때, 드워프란 종족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와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뛰어난 재주를 지닌 종족이었기에 침략 역시 숱하게 많았고, 그중 가장 빈번하게 드워프를 괴롭힌 종족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드워프는 땅속으로 숨어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 주거를 이루며 숨어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백 년을 숨죽여 살아왔다.
하지만 착각해서 안 되는 것이 있다.
드워프가 겁이 많다 하여 결코 그들이 나약한 것은 아니었다.
숱한 침략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금껏 생존해 오며 지금의 문명을 이룩하고, 이어 온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저력 때문이었다.
드워프 도시로 향하는 긴 터널.
그곳에 괴이한 형체를 한 무리가 터널 끝을 향해 무리 지어 달려가고 있었다.
넓은 터널이 한순간에 비좁아질 정도로 괴이한 무리의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때, 앞서가던 무리 중 하나가 일순 멈추어 섰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남은 무리 역시 일제히 움직임을 멈춘다.
잘 달려 나가던 그들이 일순 걸음을 멈춘 이유.
다름 아닌 그들이 향하던 터널 끝에서 드워프 전사들이 방패를 앞으로 들이민 채 줄지어서 터널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막아선 드워프 중 하나가 고함을 내질렀다.
“조준!!!!”
고함과 동시에 방패를 쥐고 전방을 막아선 병사들 뒤로, 줄지어 선 또 다른 드워프들이 괴물들을 향해 무언가를 겨누었다.
잠시 뒤, 고함을 내질렀던 드워프가 재차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발사!!!”
그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괴물들을 겨누던 드워프가 쥔 무기 끝에서 불꽃이 튀더니, 화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퍼벙! 펑! 펑!
흡사 터널 안에서 천둥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 달려들던 괴물들이 피도 무엇도 아닌 노란색 즙을 터트리며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터널 속 괴물들을 학살하다시피 하던 무언가가 일순 하나같이 굉음을 멈추자, 주춤하던 괴물들이 이때다 싶었는지 재차 일시에 달려들기 시작한다.
조금 전, 고함을 쳤던 드워프가 재차 소리쳤다.
“3열! 조준!!!”
그때, 2열에 늘어서 있던 드워프들이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이자, 그다음 3열에 늘어선 드워프들이 조금 전과 같은 무언가를 괴물들을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발사!!!!!!!”
퍼펑! 펑! 펑!
재차 이어진 고함과 함께 천둥소리가 터널 안을 가득 메우더니,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달려들던 괴물들을 일시에 피죽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이어진 화포 같던 천둥소리가 멎자 내내 고함을 지르며 진두지휘하던 드워프가 일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높게 치켜세웠다.
“돌격병 공격!!!”
“으아아아아아!!!”
그때였다. 방패를 쥔 채 전방을 막아서던 드워프 돌격병들이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한 손에 창을 꼬나쥐곤 남은 괴물들을 향해 터널 안으로 뛰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짧은 다리로 어찌나 빠르게 달려가던지, 장거리 공격에 이어 달려든 드워프 돌격병의 연달은 공격에 괴물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때였다.
우르르르.
터널에 한쪽 면이 무너지더니 무너진 자리에 드러난 커다란 구멍에서 또 다른 괴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무슨…!”
선두에서 진두지휘하며 괴물들을 베어 나가던 드워프 대장이 이를 보곤 돌격병들을 향해 황급히 소릴 질렀다.
“함정이다! 다들 퇴각해. 어서!!!!”
돌격병들이 난데없이 뒤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의 모습에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발길을 돌리려 했지만, 퇴각하기엔 한발 늦은 상황이었다.
앞에는 소탕하던 괴물들이.
뒤에는 조금 전 나타난 또 다른 괴물들이 사방을 포위한 형국을 한 채로 드워프들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