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으아아아아악!”
터널 곳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달아 울려 왔다.
조금 전 터널 안으로 뛰쳐들어갔던 드워프 돌격병들이 낸 소리였다.
괴물들이 사방을 에워싼 채 쉴 틈이라곤 없이 공격해 오니 제아무리 숱한 침략에 맞서 온 저력의 드워프라 한들 버티는 데 재간이 없던 것이다.
그 자신들의 대장을 포함하여 돌격했던 병사들이 꼼짝없이 죽어 나가자 조금 전 괴물들에게 원거리에서 무언가를 쏘아 댔던 드워프들이 허리춤에 있던 근접용 검으로 무기를 고쳐 쥐고는 대장과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뒤따라 뛰쳐 들어가려던 그때였다.
“들어오면 안 돼!!!”
대장이 외치는 소리에 뒤따라 들어가려던 드워프들의 걸음이 덜컥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괴물들에게 살점을 뜯기고 잡아먹힌 채 죽어 가는 병사들.
그때.
화아아아아악!
드워프 대장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일순 그것에 불을 붙였다.
이를 본 터널 밖 드워프들이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동시에 소릴 질렀다.
“대장님!!!”
드워프들의 외침에 그들의 대장이 괴물들에게 둘러싸인 채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일순 튀어 오른 거대한 불꽃과 함께 폭음이 울리며 괴물들로 그득하던 터널이 흔들리더니 손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대장 장인 멀린을 포함해 레온하르트와 이든이 도착했을 땐 이 모든 것이 이미 끝난 이후였다.
무너져 내린 터널을 바라보던 멀린이 넋 나간 듯한 표정으로 병사들에게 물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가….”
멀린의 물음에 조금 전, 괴물들과 난전을 벌이던 드워프 생존자들이 차마 고갤 들지 못하고 푹 숙이던 그때, 살아남은 드워프 중 하나가 멀린의 물음에 입을 뗐다.
“노리 대장께서…. 괴물들에게 포위당하시곤, 터널을 막기 위해 스스로 화약을 터트리셨습니다….”
“뭐, 뭐라고!?….”
얘길 듣던 멀린이 일순 주저앉았다.
그가 무너진 터널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노리… 대장… 어찌 스스로 죽음을 택하셨소…!!! 대체 왜…!!!”
이든과 레온하르트는 그에게 아무런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주저앉아 노리 대장의 죽음에 넋 놓아 울던 멀린이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
“어때, 이제 좀 안정이 되는가.”
레온하르트의 물음에 멀린이 고갤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귀한 손님을 앞에 두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레온하르트가 고갤 저었다.
“그게 왜 부끄러운 모습인가. 멀린, 자네는 대장 장인이야. 이들의 우두머리로서 부하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해 주는 그 모습에 오히려 감탄했네. 그 드워프 이름이 노리라고 했던가.”
멀린이 말 없이 고갤 주억거렸다.
“노리, 그 친구가 참으로 뿌듯해하겠군. 진심으로 슬퍼한 자네를 보고서 말이야.”
“맞습니다.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지요.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재차 말을 잇는 레온하르트와 거기에 동조하는 이든의 말에 멀린이 얼굴을 붉혔다.
“다들 그리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 멀린을 보며 씩 웃던 레온하르트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말해 보게. 대체 조금 전 난리는 뭐였고, 드워프들이 말하는 괴물이라는 게 대체 뭔지 말이야.”
얼굴을 붉혔던 멀린의 얼굴에 재차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가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거대 개미입니다.”
“거대 개미?”
“네, 저희 도시 근처에 있는 땅속에 놈들의 개미굴이 있지요.”
듣던 레온하르트가 일순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허…. 거대 개미굴이라니. 놈들은 그리 흔한 몬스터가 아닌데…? 대체 드워프들은 어쩌자고 거대 개미들이 서식하는 이곳에 도시를 세운 건가?”
레온하르트의 말처럼 거대 개미는 특정 지역에서만 분포하는 흔치 않은 생물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그들이 있는 곳에 도시를 세울 필요는 없는 법.
이 넓디넓은 대륙에 남아도는 것이 땅일진대, 이곳에 도시를 세운 것이 이해가 가지 않던 레온하르트가 묻자 멀린이 고갤 저었다.
“…그것이 아닙니다.”
“응?”
“본래 이 땅엔 거대 개미가 서식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땅에 도시를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저희였지요. 도시를 세운 이후 수백 년간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내다가 근래 들어 이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말인즉슨, 여왕개미가 이 근처 어딘가에 주거지를 옮겼다는 뜻이군.”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흠 …. 그것참 곤란하게 됐구만.”
그때, 내내 옆에서 듣던 이든이 물었다.
“그것들이 곤란할 정도로 그렇게 위험한 놈들입니까?”
레온하르트가 뭘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입을 뗐다.
“당연하지. 거대 개미는 말 그대로 커다란 개미야. 습성은 개미들과 똑같지. 생각해 보게. 개미와 같은 번신력에 여왕개미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 심지어 군대와 같은 조직을 갖추고 있지. 그나마 드워프들이었기에 이만큼 버틴 것이지 다른 종족이었다면 꼼짝없이 저들에게 터전을 뺏기고 말았을 거야.”
“흠….”
“하지만 당장엔 어떻게든 버틴다지만, 문제는 그 이후야. 놈들의 번신력은 상상을 초월하지. 가면 갈수록 이곳에 침범하려는 녀석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거야.”
멀린이 고갤 끄덕였다.
“맞습니다. 레온하르트 님의 말씀처럼 놈들은 갈수록 매번 그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버틸 만했던 것이 이젠 힘에 부칠 정도입니다….”
이든이 재차 물었다.
“그 말인즉슨, 애초에 원인을 없애야 한다는 것인데, 개미굴로 이어진 통로가 어딘가에 있다면 그곳에 조금 전처럼 화약을 터트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멀린이 고갤 저었다.
“그 역시 이미 시도해 봤습니다만 소용없었습니다. 거대 개미는 그 크기만큼이나 굴을 방대하게 넓혀 가는 족속들입니다. 화약 한두 개가지곤 영향도 없을뿐더러, 여왕개미를 찾지 못하면 애초에 그 번식력 때문에 섬멸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 여왕개미를 수색까지도 해 보려 했지만, 굴이 워낙에 깊고 길도 여러 갈래라 찾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음. 여왕개미 수색이라.”
듣던 레온하르트가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일순 미소를 지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마침 우리가 잘 온 듯싶구만.”
“네?”
멀린이 레온하르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며 고갤 갸웃거리던 그때, 레온하르트가 이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재차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여기 이 친구가 어련히 알아서 해결해 줄 터이니.”
“…이, 이든 님께서요…?”
“제가요?”
멀린과 이든의 반응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멀린은 그가 레온하르트의 친구이니, 필시 대단한 이라 생각하곤 한 가닥 희망이 보여서였고, 이든은 생각지도 못해서 그냥 놀란 것이었다.
레온하르트가 곧바로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야이! 이 친구야. 지금이 기회라고.’
‘……?’
이든이 ‘뭐가요?’라는 표정을 하자, 레온하르트가 재차 속삭였다.
‘생각해 보게. 이건 저들에게 잘 보일 기회라고. 자네가 드워프들의 곤란함을 도와준다면, 여기 멀린 이 친구가 자네 바람대로 드워프를 마을 내에 상주시켜 줄지 누가 아는가!?’
듣던 이든의 표정이 곧바로 ‘옳거니!’의 표정으로 변했다.
멀린이 대체 뭘 저리 속닥이는 거지? 의아해하던 그때.
이든이 표정을 싹 고치곤 능청스럽게 입을 뗐다.
“맞습니다. 제가 이쪽 방면으로 또 나름 전문가입니다.”
멀린이 화색했다.
“저, 정말이십니까?”
“예, 벌레 같은 놈들부터 해서 처리 불가능한 쓰레기 놈들까지 그런 것들 치우는 게 제 일이죠.”
뭔가 어감이 이상했지만, 이든의 말을 듣던 멀린의 얼굴은 그토록 밝을 수가 없었다.
멀린이 이 기회를 날릴 수 없다는 듯, 곧장 말을 꺼냈다.
“그, 그렇다면 혹 저희 도시를 시도 때도 없이 노려대는 이 개미들을 처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멀린 대장님께서 곤란하신 상황을 뻔히 알게 되었는데 제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가,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이든이 짐짓 고민하는 척 표정을 굳혔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되는군요….”
멀린이 물었다.
“걱정이요…?”
상대방의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대신 그 역시 원하는 것을 받아 낸다. 그리고 그럴 땐 곧장 본론을 꺼내기보단 약간의 뜸을 들이는 것이 보다 효과가 확실했다.
말끝을 흐렸던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대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일은 쉬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두 분의 말씀대로 거대 개미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여왕개미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 넓디넓은 굴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여왕개미를 찾는 것이 어디 보통 일입니까?”
멀린의 표정이 일순 까맣게 죽었다.
“아, 아무래도 그렇죠….”
이는 더 없이 맞는 말이었다.
넓은 개미굴 안에서 여왕개미를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만약 드워프들이 여왕개미의 은신처를 알았다면 이렇게 넋 놓고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결이 어렵게 될 것 같다는 이든의 말투에 멀린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지던 그때, 이든이 손을 저었다.
“뭐,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계속 굴속을 뒤지다 보면 어떻게든 간에 여왕개미가 있는 곳을 찾게 되긴 할 테니 말이죠.”
“그, 그렇습니까?”
멀린의 목소리가 재차 밝아지려는 그 순간. 이든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미끼를 던졌다.
“다만. 직접 일일이 하나씩 뒤져야 하는 만큼 위험 부담이 조금 크다고 할까요?”
데스 스타에게 한 방 먹인 주제에 위험 부담은 개뿔.
이든과 멀린의 대화를 듣던 레온하르트가 이든의 능청스런 연기에 속으로 헛웃음을 삼키던 그사이.
멀린이 입을 뗐다.
“시시때때로 이 도시를 괴롭히는 저것들만 치워 낼 수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저희 드워프 종족을 저 거대 개미로부터 구원해 주십시오…!”
‘뭐든지…?’
일순 이든의 입가에 알게 모르게 씩 미소가 지어졌다.
두 손 모아 간절히 빌며 부탁하던 멀린의 손을 이든이 꼬옥 감싸 잡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 한 목숨 바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드워프 마을을 위기에서 구해 보일 테니 말이지요…!”
“…이든 영주님…!”
감동한 멀린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때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든이 비로소 던져 둔 미끼를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한다.
“만약… 제가 위험을 무릅쓰고 여왕개미를 처치해 무사히 돌아온다면… 저희 영지의 어려움도 해결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영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거라면 혹시…?”
이든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네, 저희 영지에 드워프 장인들을 상주시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왠지 그런 약속을 받는다면 여왕개미를 찾아내어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캬! 연기 좋고!
레온하르트가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이, 듣던 멀린이 찰나 고민하는 듯했으나.
이미 그는 미끼를 덥썩 물어 버린 후였다.
멀린이 크게 고갤 끄덕였다.
“이를 말씀입니까! 드워프 도시를 구해 준 영웅께 제가 어찌 그만한 부탁 정도야 못 들어 드리겠습니까. 아니, 이 문제만 해결한다면 아에 레온하르트 영지와 동맹이라도 맺겠습니다…!!!”
멀린의 대답을 듣던 이든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계획대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