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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화. (177/250)

177화.

결국, 레온하르트와 이든의 사기 행각(?)으로 대장 장인 멀린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그들은 곧바로 행동에 착수했다.

미룰 것 없이 곧장 개미굴로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드워프 도시 전체에 삽시간에 퍼졌다.

무너진 터널 인근.

드워프들이 개미굴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땅을 파내던 중 이든과 그의 일행이 등장하자 일순 멈칫하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분이 개미굴로 들어가신다고.?’

‘응, 이 방면에 아주 전문가라는 구만.’

‘그, 그치만 눈이 안 보이시는 분 같은데, 내내 눈을 감고 계시지 않는가…?’

‘예끼, 이 사람아. 입조심하게! 저래 보여도 자신이 있으시니까 홀로 들어가시는 게 아니겠는가.’

‘그, 그런가?’

‘그리고 개미굴에 눈이 보이고 말고가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어두 컴컴한 동굴인데, 우리도 장비를 총동원해서야 겨우 길을 찾지 않았던가. 필시 저분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특별한 방도가 있는 것 아니겠나?’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스스로 개미굴에 들어갈 리가 없지. 미치지 않고서야 말이야.’

‘자자, 우린 시키는 대로 어서 개미 굴 쪽으로 땅이나 파세.’

‘그, 그러자고!’

드워프들이 재차 땅을 파내던 중 현장을 살피던 멀린이 입을 뗐다.

“이제 곧 개미굴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현장을 살피는 내내 초조해 보이는 멀린과 달리 이든은 별다른 긴장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심드렁하기만 했다.

그때, 현장을 살피던 멀린이 문득 이든의 행색을 훑었다.

멀린이 조심히 물었다.

“저, 저기 이든 님.”

“네?”

“저, 정말 다른 장비가 필요치 않으신 겁니까? 아무리 봐도 지금 영주님의 차림새가…. 개미굴에 들어가시기엔 적당치 않아 보입니다.”

이든의 차림은 그냥 움직이기 편한 평상복이었다.

드워프들도 개미굴을 마음먹고 수색할 때면 항상 온몸을 중무장하기 마련인데, 그에 반해 너무 단출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한 이든의 모습에 내심 불안했던 모양이다.

이든이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괜히 이것저것 걸쳐 봤자 불편하기만 해서요.”

“그, 그래도…. 최소한 갑옷이라도 입으시는 게… 혹 시간을 내주신다면 이든 님 몸에 맞는 갑옷을 즉시 제작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든은 한가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후딱 이곳의 일을 해결하고, 서둘러 상주시킬 드워프를 마을로 데려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이든이 딱 잘라 말했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 그리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구요….”

멀린이 말투에 걱정 어린 기색이 역력해 보이자, 이든이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제가 다칠까 그리 신경 쓰이신다면 나중에 제게 딱 맞는 갑옷 하나 그럴듯하게 맞춰 주시죠.”

“이, 이를 말입니까! 제가 직접 미스릴로 해서 제대로 된 갑옷을 맞춰 드리겠습니다!”

그냥 던져 본 미끼였거늘.

그걸 멀린이 또 덥썩 물어 버린다.

‘이야. 이걸 또 미스릴 갑옷까지 뜯어내? 능력도 좋아.’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던 레온하르트가 한 번 더 감탄을 금치 못하던 그때.

땅을 파내던 드워프 중 하나가 별안간 소리쳤다.

“개미굴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확실히 문제가 있던 현장 인근에 땅을 파내니 얼마 되지 않아 개미굴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멀린의 시선이 곧바로 외친 드워프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확인한 멀린이 곧바로 이든과 레온하르트를 향해 고갤 돌렸다.

“개미굴이 맞습니다.”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잘됐군요. 그럼 곧장 들어가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곧바로 걸음을 떼는 이든의 모습에 멀린이 퍽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렇게 바로 말입니까?”

“질질 끌 것 뭐 있겠습니까. 서두르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놈들이 굴을 파내어 이곳을 노릴지 모릅니다.”

“그, 그렇긴 하지만….”

물론 이든의 말이 더없이 맞긴 했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지 않은가.

그 때문에 사전 조사를 위해 현장에 드워프 병사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고.

하나, 이든은 오히려 그것을 극구 반대했다.

괜한 사전 조사로 드워프들의 희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이를 듣던 멀린은 이든의 마음 씀씀이에 연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물론 이든의 진짜 의도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지만 말이다.

‘여왕개미건 뭐든 간에 있는 대로 쓸어 버리면 그만 아니야? 조사는 무슨.’

그는 그냥 서둘러 이 일을 끝내고 싶어 했다.

정말로 그게 다였다.

그렇게 드워프들의 경외에 찬 시선을 받으며 이든이 개미굴 앞에 섰다.

개미굴을 바라보던 레온하르트가 불쑥 입을 열었다.

“굴의 크기를 보아하니 이든, 자네가 돌아다니는 데 전혀 문제가 없겠어.”

레온하르트의 말대로 구멍의 입구부터 해서 그 안에 나 있는 길까지 크기는 상당했다.

거대 개미란 몬스터의 크기가 가히 황소보다 큰 대형급 몬스터다 보니, 그런 놈들이 굴 안을 돌아다니려면 그 크기가 넓어야 하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참 다행이군요. 내내 굴 안을 기어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던 참이거든요.”

굴 안이 크다면 응당 개미의 크기가 그만큼 크고 위협적이라는 것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건만, 듣던 이든은 도리어 어렵지 않게 안을 누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환영하는 낌새였다.

이든이 곧바로 굴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여전히 걱정이 태산인 멀린과 달리 레온하르트 역시 이든과 마찬가지로 여유만만한 얼굴로 입을 뗐다.

“그럼 고생 좀 하게나.”

“이 정도로 고생은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일순 웃어 보이던 이든의 신형이 훅 하고 사라지더니 어느새 굴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이든이 조금 전 서 있던, 발자국만이 깊게 새겨진 빈자릴 바라보던 멀린이 레온하르트을 향해 입을 뗐다.

“정말로 이대로 저분 혼자 보내는 것이 맞는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멀린의 말에 레온하르트가 씩 웃어 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저 친구가 성격은 괴팍하긴 해도 능력 하나는 정말 끝내주거든. 내 장담하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걸세.”

***

레온하르트의 말대로였다.

굴의 특성상 신법의 사용은 불가했지만, 그럼에도 이든의 신형은 땅속에 줄기줄기 난 굴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단전 쪽 드래곤 하트가 끊임없이 마기를 생성해 내며 그의 기감을 예민하게 만들어 낸 결과였다.

파밧!!! 파아아아아앗!!!

그렇게 굴을 따라 빠르게 걸음을 뗀 지 얼마나 됐을까.

우르르르.

일순 땅속 사방에 뻗어 있는 굴속에서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굴속에 들어선 이든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몰려드는 거대 개미들의 움직임이었다.

이든이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놈들이 몰려오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필시 여왕개미가 있는 곳까지 자연히 도착할 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어.’

그때였다.

이든의 신형이 개미들이 몰려오는 굴 중 가장 많은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들던 놈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든이 곧장 허리춤에 있던 보검을 빼내어 들었다.

스릉. 지이이잉.

검명(劍鳴)을 울리며 검집에서 모습을 드러낸 레온하르트 보검의 검신이 백색 광채를 일으키며 굴속을 환히 밝혔지만, 잠시뿐이었다.

광채가 서서히 사라지고, 굴속에 어둠보다 더 짙은 새까만 마기가 검신에 줄줄이 피어오른 것이다.

“뭐, 개미들을 상대로 따로 말이 필요하진 않겠지.”

마기를 피운 검신이 거대 개미들을 향해 똑바로 겨누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이든의 발이 재차 떼어지며 개미들이 몰려든 곳으로 삽시간에 쏘아졌다.

초식조차 필요 없었다.

단지 마기를 피운 검을 정면을 향해 똑바로 세우고 전진할 뿐이었다.

콰과가가가강!!!!

막아서던 거대 개미들의 육체가 갈가리 찢기며 사방에 괴상한 즙을 토해 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단숨에 거대 개미 수백 마리를 뚫고 나아갔던 이든의 신형이 별안간 멈추었다.

또다시 그를 향해 몰려드는 엄청난 수에 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그뿐이랴. 심지어 지나왔던 길로도 추격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든의 표정은 내내 여유롭기만 했다.

그의 신형이 다시 사방에 난 길 중에 가장 기척이 많이 느껴지는 곳으로 쏘아졌다.

콰광과가가가가가!!!

개미라서 그럴까.

피죽이 되어 가는 와중에도 비명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굴속 가득 이든이 전진하며 나아가는 굉음만이 무심히 울릴 뿐이었다.

이번에 몰려든 개미들의 숫자는 처음 몰려들었던 그 수보다 최소 열 배는 많아 보였다. 거진 천 마리 가까이 되는 개미들을 뚫으며 전진하던 이든의 눈썹이 찰나 꿈틀거렸다.

‘응…?’

우르르르.

재차 느껴지는 개미들의 기척들.

하나, 이번엔 무언가 달랐다.

단순히 기척만 느껴지던 기존의 개미들과는 달리 지금 몰려드는 것에선 숫자는 조금 전보다 적을지 언정 진득한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호오… 이번엔 조금 전과 다르다 그건가?’

하나, 놈들에게 느껴지는 기척이 특이하고 명확할수록 도리어 이든에게 어디가 여왕개미로 통하는 길인지 알려 줄 뿐이었다.

이든이 조금 무리하다시피 땅을 세게 밟았다.

그의 신형이 굴속의 길을 따라 번개와 같이 내달렸다.

어찌나 빠르고 요란하게 달리는지 견고하기 짝이 없던 굴속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마냥 흔들려 댔다.

자칫 굴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흙 속에 깔려 매립되어 버릴 수 있음에도 이든의 움직임은 더욱더 거칠게 앞으로 나갔다.

혹여 땅이 무너지면 매립된 땅속마저 뚫고 나아가겠다는 기세로 말이다.

콰과가가강!!!

굴속에서 들리는 굉음이 더 요란하게 메아리쳤다.

몰려들던 거대 전투 개미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파편 쪼가리가 되어 흩어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럴수록 놈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수백, 수천을 아우르던 놈들의 기척은 이내 수만 마리가 되어 오직 이든 하나를 잡기 위해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든은 정신없이 몰려드는 기척 중 가장 많은 기척이 느껴지는 곳만 골라내어 뚫고 또 뚫고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던 그때, 보통의 굴속과는 다른 거대한 공동 같은 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 트인 공간이 느껴지자 나아가던 이든의 신형이 덜컥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가 공동 안으로 한 발짝 떼기 무섭게 별안간 기이한 목소리 들려왔다.

-…인간?

“……?”

마치 ‘전음’과 같은.

동굴 속에서 메아리치듯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였다.

이든의 기감이 들려온 목소리에 근원지로 느껴지는 곳을 향했다.

지금껏 느껴 온 수많은 개미의 기척과는 다른, 엄청난 존재감을 풍기는 한 기척이 이든의 앞에 떡하니 있었다.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 이에게서 재차 목소리가 울려 왔다.

-…하지만 이상하다. 인간 같지 않은 존재감. 마치…. 드래곤 같은 존재감. 알 수 없군.

재차 들려온 목소리는 필시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이든이 곧장 입을 떼어 물었다.

“네놈이냐? 이곳에다 개구멍을 파 놓은 여왕개미가.”

-…맞다.

그때였다. 여인의 대답이 들려오기 무섭게 사방에 뚫려 있는 구멍에서 온갖 개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터진 둑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처럼 몰려온 개미는 삽시간에 여왕을 보호함과 동시에 이든을 에워쌌다.

이든이 순수히 감탄하듯 말을 꺼냈다.

“이야! 거, 새끼들 여왕 하나 지키겠다고 엄청나게 몰려와 대네.”

여왕개미가 이든의 행동을 뚫어지라 바라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넌 포위됐다. 두렵지 않은가?

여왕의 물음이 들려온 그 순간.

이든이 난데없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 두렵기는. 졸라게 고맙지. 어차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이고 가려 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니 얼마나 고마워.”

비아냥대듯 입을 떼던 이든의 검에서 지금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마기가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검신에서 피어오른 마기가 사방에 흩뿌려진다.

그리고 차츰 용의 모습으로 형태가 변해 가는 이든의 마기.

일순, 공동을 가득 채운 열두 마리의 흑색의 용이 대뜸 포효하며 둘러싼 개미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든의 절기 중 하나인 ‘십이마룡마참격.’

용오름을 연상시키는 참격이 공동을 휩쓸자, 땅속 사방 천지를 가득 메우던 개미들이 흔적도 없이 먼지로 화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여왕개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쿠르르르르르르르.

그때였다. 엄청난 위력에 참격이 난동을 피워서였을까. 거대 개미 굴이 차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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