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8화. (178/250)

178화.

쿠르르르르.

드워프의 도시가 난데없이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흔들려 댔다.

이든이 들어섰던 개미굴 근처에서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마냥 기다리던 멀린의 얼굴이 느껴지는 지진에 금세 새하얗게 질렸다.

“가, 갑자기 웬 지진이…?”

비단 멀린뿐일까. 주변에 드워프들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터널 인근을 서성이던 드워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자신들의 도시 쪽을 향했다.

혹여 이 지진으로 그들의 도시에 문제라도 생길까 염려돼서였다.

물론 그들의 걱정과 달리 문제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애초에 도시가 설계된 순간부터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 것에 대비하여 내진 설계까지 완벽하게 해 놓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밀려오는 걱정은 어쩔 수 없다.

드워프들이 걱정과 두려움이 한데 뒤엉킨 눈빛으로 도시를 바라보길 한참 뒤.

땅속을 거세게 흔들던 지진이 일순 멈추었다.

“머, 멈췄다…!”

“후우….”

멈춘 지진에 드워프들이 하나같이 안도의 숨을 내뱉던 그 순간.

푸아아아아!

이든이 들어섰던 개미굴이 일순 토해 내듯 토사물을 내뱉기 시작했다.

터널 근처에 있던 드워프가 이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대, 대장님!!! 개미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멀린이 근처에 있다가 식겁한 얼굴을 하며 서둘러 뛰어왔지만, 제아무리 그가 대장 장인이라 한들 무너져 내리는 흙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금세 흙더미로 뒤덮인 개미굴이 손쓸 틈도 없이 매립되자 멀린이 넋 나간 얼굴을 했다.

“이, 이럴 수가….”

개미굴 입구가 무너진 흙에 매립됐다는 것은 그 안의 굴속까지 전부 흙으로 뒤덮였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말인즉슨, 저 안에 들어간 이든 역시 무사하긴 힘들단 얘기였다.

이든이 꼼짝없이 생매장될지도 모른다 여긴 멀린이 황급히 괭이를 주워 들어 땅을 파내며 주변의 드워프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어, 어서!!! 다들 어서 땅을 파내라! 이 안에 들어간 이든 님을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내야만 한다!!! 설령 이미 늦었더라도 그분의 시신만이라도 찾아내야 한단 말이다!!!”

멀린의 말이 맞았다.

그는 자신들을 대신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지로 들어간 영웅이었다.

그런 영웅을 어딘지 모를 땅속에 그대로 묻어만 둘 순 없는 노릇.

멀린의 말을 듣던 몇몇 드워프들이 곧바로 괭이를 집어 들고는 그와 함께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드워프들은 더 좋은 장비를 가져오겠다며 도시로 달려갔고, 남은 드워프들은 도시에 드워프 전부를 불러오겠다며 발에 불이 나랴 내달렸다.

그렇게 한시가 바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대는 드워프들과 달리 레온하르트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 그대로였다.

멀린이 이를 보더니 여전히 땅을 파내며 그에게 물었다.

“레온하르트 님은 걱정도 되지 않으십니까…! 친구분께서 이 속에 갇히셨단 말입니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멀린의 표정이 ‘당신은 이런 상황에도 웃음이 나오냐’라고 말하고 있었다.

줄곧 레온하르트에게 보여 온 예의 있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태도였다.

레온하르트가 웃으며 입을 뗐다.

“다들 그렇게 힘 뺄 것 없네.”

“…예?”

멀린이 이젠 인상까지 쓰며 고갤 갸웃거리던 그때였다.

레온하르트가 턱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이제 오는구만.”

“…예? 오다니 그게 무슨 말씀….”

무슨 말인지 영 못 알아듣겠다는 듯 되묻던 멀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조금 전 레온하르트가 가리킨 곳에서 웬 진동이 울려 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오는 미세한 진동.

그리고.

쿠구구구구구구.

진동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그 세기가 강해져만 갔다.

“뭐, 뭐야. 지진이 또…!?”

멀린의 안색이 재차 하얗게 질렸다.

이미 흙은 전부 무너져 내렸건만, 왜 재차 지진이 울리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던 그때였다.

우르르르르르.

점차 거세지는 진동에 파놓던 흙이 흔들리며 재차 무너져 내리려던 그 순간.

푸화아아아악!!!!

매립된 개미굴에서 일순 무언가가 뻥 하고 튀어나왔다.

“악!!!”

인근 땅을 파내던 드워프들이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주저앉았다.

난데없는 그 소란에 다른 드워프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튀어나온 무언가를 따라 향하던 그때.

“쿨럭!! 켁! 쿨럭!!!!”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무언가가 연신 기침을 토해 냈다.

“아오! 나이 먹고. 쿨럭! 이게 뭔 고생이야. 쿨럭!”

들려온 목소리에 멀린의 눈이 일순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멀린이 놀라 소리쳤다.

“이, 이든 님…!?!?”

땅속에서 튀어나온 이.

그는 다름 아닌 이든이었다.

***

“낄낄! 아주 고생 많았네.”

레온하르트가 흙투성이가 된 이든을 보며 뭐가 그리 웃긴지 까르르 웃어댔다.

이든이 와락 표정을 구겼다.

“아 좀!!! 이게 그렇게 웃깁니까?”

“…크흠!! 어허! 웃기다니! 내 친구 드워프들의 곤란함을 해결한 영웅을 내 어찌 비웃을 수 있겠나. 커흠!”

헛기침까지 해 가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던 레온하르트가 시침 딱 떼곤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들이켜던 그 순간.

힐끗.

레온하르트의 눈이 저도 모르게 재차 흙투성이가 된 이든을 향했다.

그야말로 상거지 꼴인 이든의 모습. 그리고 반응은 반사적으로 나왔다.

“…풉!!!”

급기야 레온하르트가 입 안에 머금던 차까지 내뱉어 버린 것.

하필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애꿎은 멀린이 내뱉은 차를 홀라당 뒤집어썼다.

멀린이 울상을 하며 차를 스윽 닦아 내곤 입을 뗐다.

“아, 아무튼.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저희를 대신해 그 위험한 곳까지 들어가 여왕개미를 물리치시고, 이 도시를 위기에서 구해 주신 것 역시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순, 멀린이 마주 앉은 이든을 향해 진심으로 고갤 숙여 보였다.

보일 리 만무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을 구해 준 영웅에게 진심을 다한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고마움에 이든이 살짝 미소 지었다.

“드워프분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저 역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어쩜 말하는 것조차 저리도 영웅의 풍모가 느껴지는가….

라고 멀린이 감동을 금치 못하던 그때.

이든의 미소가 기이하게 뒤틀렸다.

“자고로….”

“……?”

“고마움의 표시는….”

이든의 엄지손가락과 검지가 동그랗게 말아졌다.

“이게 최고라 하던데. 말로만 어물쩍 넘어가시려는 건 아니죠?”

멀린의 눈이 ‘지금 내가 뭘 본거지?’란 눈빛을 하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이도 잠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멀린이 반색하며 목소릴 키웠다.

“이, 이를 말씀입니까! 응당 고생해 주신 이든 님께 제가 어찌 맨입으로만 고마움을 표하겠습니까. 하하… 하하하!”

멀린이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어색한 웃음에선 그가 퍽 당황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든이 난데없이 품에서 여백의 종이와 필기구를 꺼내 펼쳤다.

멀린의 시선이 그 종이와 이든의 얼굴을 번갈아 향한다.

이든이 씩 웃어 보이며 의미심장하게 입을 뗐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정산받아야 할 것을 차례로 정리해 볼까요?”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줄곧 지켜 온 멀린의 좌우명이었지만, 왠지 지금의 이든을 보니 잘 못 걸렸단 생각이 절로 드는 그였다.

“다, 다 썼습니다.”

멀린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조금 전까지 써 내려간 종이를 건넸다.

레온하르트가 그것을 대신 받아 들더니 쭉 훑고는 고갤 끄덕였다.

“음. 정확하네.”

“…….”

멀린의 표정이 묘해졌다.

도시를 구해 준 은인에게 약조했던 보상을 해 주는 것이 맞긴 하다.

이든이 극구 사양하더라도 약조했던 모든 것들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의 좌우명.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아니던가!?

그런데 이 광경은 뭐랄까….

마치 고리대금 업자에게 각서라도 써 준 기분이랄까.

우러나온 마음에서 해 주려던 보상이 일순, 심통이라도 난 것처럼 싫어진 그였다.

태어난 이래 그의 좌우명이 최초로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레온하르트의 확인까지 받아 낸 이든이 고갤 주억거리며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

“물론 우리 멀린 대장께서 약조했던 그대로 어련히 해 주시겠지만, 그냥 절차상. 예? 절차상이라 생각해 주시죠. 하하!”

“아, 아아… 예. 하하….”

어째 말투에서 사짜 냄새가 났지만, 무르기엔 이미 늦었다.

멀린이 써 내려간 글과 함께 서명했던 종이가 어느새 이든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갔기 때문이다.

멀린이 정신을 차리곤 곧장 본론을 꺼냈다.

약조한 보상 중 가장 중요한 것부터 물어보는 것이 순서였다 여긴 것이다.

“저, 그럼…. 마을에 주둔시킬 드워프들은 언제 보내 드리면 될까요?”

이든이 곧장 입을 뗐다.

“뭐, 질질 끌 필요 있겠습니까? 지금 바로 선별해 주시죠.”

“지, 지금 바로 말입니까?”

“예. 워낙 시급한 일이라서요. 염치 불고하지만,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멀린이 퍽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했다.

다른 곳도 아닌, 인간 세상에 주둔시킬 드워프를 선별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든이 이 도시를 구한 은인이라곤 하지만, 그간 오랜 세월 인간에게 숱한 침략을 받다 보니 드워프들 안엔 알게 모르게 인간을 향한 뿌리 깊은 증오가 박혀 있었다.

그것마저 뿌리치고 앞으로 인간 세상에 살아갈 드워프를 선별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선별하는 데 있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은 자명한 것이건만….

멀린이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였다.

“내가 나가겠소.”

들려온 소리에 멀린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돌려졌다.

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불렀다.

“아, 아버지…!”

놀란 것은 비단 멀린뿐만이 아니었다.

“모, 몰린!”

레온하르트 역시 상당히 놀랐는지 불편한 몸으로도 어느새 자리에 벌떡 일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레온하르트가 재차 입을 뗐다.

“자, 자네…. 사, 살아 있던 건가?”

이든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시는 분입니까?”

“…일전 내가 말하지 않았나. 오래전 내 레어를 제작해 준 드워프 장인이 있다고…. 그때 그 장인이 바로 저 친구라네….”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레어를 제작하신 지 얼마나 됐죠?”

“…천 년 넘었지?”

“…….”

일순 이든이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꾹 다물다가 조심히 물었다.

“…드워프가 원래 이렇게 오래 사나요?”

“…아니. 기껏해야 수백 살…?”

레온하르트와 이든의 대화를 듣던 몰린이 껄껄 웃었다.

“허허… 이 노인네가 드워프 중엔 보기 드물게 오래 살기는 하였죠.”

웃으며 다가오는 몰린을 바라보던 레온하르트가 너무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의 모습에 환하게 웃던 그때였다.

몰린이 레온하르트의 팔과 다릴 보더니 씁쓸히 웃었다.

“그간 고된 시간을 보내셨나 보군요.”

레온하르트가 피식 웃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거든.”

“…흠.”

무슨 생각일까.

몰린이 짐짓 고민하듯 턱을 매만지던 그때였다.

담소를 나누는 둘 사이로 이든이 난데없이 불쑥 끼어들었다.

“어르신께서 저희 마을로 가고 싶으시다고요?”

“네, 맞습니다. 도시를 구한 영웅을 위해 제게 일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연세가 너무 많으신데…. 지내시기에 상당히 고되실 텐데요.”

“허허…. 장인에게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이래 봐도 이 도시에 저만큼 실력 뛰어난 장인은 결코 없답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몰린은 전 대장 장인으로서.

이 도시를 설계함과 동시에 레온하르트의 레어까지 제작했던 전설의 장인이었으니까.

그러나 듣던 이든의 표정은 영 탐탁지 않아 보였다.

“…목소리로 봐선 쇠질 할 힘도 없으실 것 같은….”

이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레온하르트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 입!!! 이놈의 입을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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